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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20장 1~9 교회가 도피성이 되게 하라

LNCK 2022. 2. 22. 16:46

◈교회가 도피성이 되게 하라        수20:1~9     여호수아        2021.10.10.출처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 일까요? 
좋은 설교자가 있는 교회, 또 교회 예배당이 아주 크고 좋은 교회, 
또는 아주 교인이 많고, 또 그 교회 교인들이 유명한 그런 교회, 
또는 성경공부 프로그램들, 신앙훈련이 잘 되는 교회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질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 인지에 대해서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인자라도 품어주는 '도피성'과 같은 교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이미 말씀하셨던 한 가지 일을 
이제 실천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도피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나안 전역에 여섯 군데의 도피성을 만듭니다. 
이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 그 살인자가 도망갈 수 있는 성입니다. 
(고의로 죽인 경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그 가족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이 그를 죽여도 되는 것이 법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보상을 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실수를 사람을 죽인 자, 즉 과실치사인 경우에는 
그를 품어주고 보호해주고, 그가 합당한 재판도 받게 하고 
그를 지켜주는 도피성을 만들라는 겁니다. 

이 도피성을 만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저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하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 도피성이 바로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인 것입니다. 

▲이처럼 도피성을 두게 하신 것은,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거칠었을까..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지금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난 다음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겠죠. 
사람을 죽이고 또 죽였을 겁니다. 

그러니 사람 죽이는 일 정도는 
이제는 아주 무감각해질 정도로 
그렇게 살벌해진 사회 분위기였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가족 중에 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거기에 어떻게 반응했겠어요? 

아마 틀림없이 자기 가족을 실수든 고의든 죽인 그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을 죽인 그 사람이라도 보호해주라는.. 
그를 죽이지 말고 그를 지켜주라, 살려주라.. 그 말씀이 이 도피성 제도입니다. 

▲이것이 죄인에게도 은혜로우며, 긍휼과 용서로 대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라는 거죠. 

하나님은 죄를 정말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죄인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끝까지 그를 살리려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죄인을 죽이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죄인을 살리려 하십니다. 

죄는 정말 미워하시지만, 그 죄를 지은 죄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와 택함을 받았지만 
끊임없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하나님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또 기다리시고, 또 그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된 거지요.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도 서로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은혜로 덮으시고, 용서하시고,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그가 죄를 지었음에도 다시 그를 살리려고 하셨던 그 은혜로 
너희들도 서로 그렇게 대하라는 거죠. 그게 도피성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신 거예요. 

이 때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가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도피성은 여러분이 다 느끼셨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도피성 이시죠.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없는 죄인이고 
지옥에 가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가 용서받았고, 살 길을 얻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도피성에 도망갔던 그 살인자는 
그때 당시에 대제사장이 죽는 경우에 
그는 그 성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겁니다. 

이 도피성 제도는, 우리 모두가 지금 현재 누리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여러분 중에 사람을 죽여본 사람은, 아마 없으실 겁니다. 
고의든/ 실수든 사람을 죽인 경우가 우리 중에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시면 
단순히 그저 사람을 죽인 것만 살인이 아닙니다.

요일3: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미워해보셨을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우리는 정말 미운 사람이 있잖아요. 
심지어는 가족들 중에도 있잖아요. 
그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마5:2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형제에게 욕하는 사람, 형제를 비난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게 우리 자신인 거예요. 

▲그러므로 도피성은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도피성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된 겁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자예요. 

여러분이 누군가를 비판하게 된다면, 다 까닭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괜히 미워하겠습니까? 
미워할 만하니까, 그 사람의 잘못했으니까, 우리가 그 사람을 비판하고 미워하는 거지요.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정말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비판하고, 그 사람을 미워했다면 
우리가 그 심판을 그대로 받게 된다는 겁니다. 

마7:2절에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마 우리는 비명 소리를 지르게 될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고, 그를 비판하고, 그를 정죄했는지 
그 말이 우리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꼼짝할 수 없는 거죠. 

내가 '그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 라고 했어요. 
'그런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그런 사람은 우리 교회에서 쫓아내야 된다'고 내가 말을 했어요. 
'그런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 그 말이, 그대로 우리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장편 소설, <93년> 이라는 장편소설이 있는데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이야기를 쓴 겁니다. 

어느 큰 배가, 대포를 실어 나르는데 풍랑을 만나게 됐습니다. 
큰 풍랑 중에 그 대포를 엮어놓은 쇠사슬이 끊어졌버렸어요. 

그래서 그 배 안에서 그 큰 대포가, 이리 굴러다니고 저리 굴러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거예요. 

선원들이 그 풍랑 이는 중에, 그 엄청난 대포를 고정시키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 장면이 그 소설 속에 나옵니다. 

그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거죠. 
우리의 적은 외부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 속에 있는 적이 더 무섭다는 거죠. 그게 바로 '미움'입니다. 

우리 속에 미움이 있고, 증오가 있고,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는 그 마음이 
우리를 죽이는 거예요. 

▲사막의 수도사들 이야기입니다. 
사막에 수도원을 만들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기서 수도 생활하는 그 사막의 수도사들의 이야기가 기록된 기록을 보니까 

그 사막 수도원의 첫번째 규정이 '남을 비판하지 말라' 입니다.
'너도 죄인이요, 너도 비판을 받을 것이므로 
너 자신을 살피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 

이 남을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우면 
사막에서 수도 생활하는 그 수도사들,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주님만 바라보고 수도하는 그들의 
첫번째 계명이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들을 오히려 품어주셨습니다. 
그때 당시에 말할 수 없이 부도덕하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던 
정말 죄인중의 죄인인 사람들인데, 예수님은 그들을 품으셨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 가장 외롭고 경건하다고 말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내치셨어요. 

특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에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자신은 경건하고 의롭다고 하면서 
그때 당시에 죄인들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물어뜯고 밟고 뭉개었는지 
사람을 마치 짐승처럼 여겼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눈에, 더 큰 죄로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판이 어떤 것인지 
요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람을 물어뜯는 그런 정말 무서운 댓글들이 계속 달리잖아요. 
이런 것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비판'이라고 하는 거죠. 

▲비판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1) 하나는, 그 비판을 하는 자기가 
비판하는 그 대상과 하나 라고 느끼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는 죄를 지적합니다. 잘못을 지적합니다.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판당하는 그 사람과 자기가 하나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같이 아파하고, 그 속에 긍휼이 있습니다. 

2) 또 한 경우가 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이 그 비판당하는 사람과 
전혀 별개의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과 달라!' 이런 경우에는 얼마나 비인격적이고 모욕적이고 
죽이려는 살기가 느껴집니다. 

여러분 사탄도 비판하는 일에, 
옳고 그런 것을 가지고 역사 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옳은 말을 한다고 다 옳은 게 아니에요. 
옳은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도피성의 교훈이에요. 

▲2005.04.08.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월례 조찬기도회 때 
충현교회를 담임하셨던 김창인 원로 목사님, 
그분이 공개 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1945년 해방 후 개신교는, 일제 시대 때 신사 참배문제를 놓고 
장로교와 고려파로 분열했는데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광복 직후 평양, 부산 등에서 몇몇 옥중성도들이 모여 재건교회를 하면서 
함부로 입을 열어 다른 사람들을 저주했습니다.

우리가 교만해지면서 판단력이 어두워졌고 
사랑이 없어져, 우리와 뜻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마귀당 이라고 공격했습니다...' 

그 나이 많으신, 백발이 성성한 그 원로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셨어요. 

'하늘 나라는 회개하는 자만 간다고 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강단에서 내려오셨어요. 

▲비판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잡아야 될 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 심각한 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해요. 
교회가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거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우리는 어떤 죄인에게도 은혜로워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은혜를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고 산거니까 
그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도 당연히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왜 세워졌을까요?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운 거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죄인, 
그런 죄인이라도 구원하려고, 그렇게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도피성이 있는 곳이 가나안 땅이요,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라입니다. 

이 가나안,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나라와 다른 이유는 
도피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 시대에 도피성은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이 사랑 하신 것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을 진짜 바라보는 눈이 뜨일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생명이 되신 것을 진짜 알때, 정말 믿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의 그 사랑이 나를 통해서 흘러나오게 되고 
그렇게 모인 성도들의 교회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저는 굉장히 생각이 굳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좋은 목사가 되려고 했고, 또 열심히 목회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제가 옳다는 생각대로 살았고 
내 생각대로, 내 고집대로.. 그렇게 목회도 하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다음에 
비로소 저 자신의 실상이 보여졌는데 
제 마음이 너무 굳어있는 것입니다. 

정말 성령의 사람은, 완전히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그를 받으시면, 나도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죠. 

주님이 그를 사랑하면, 나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거죠. 
그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는, 제가 싫으면 그가 싫은 거예요. 
제가 옳으면, 다 옳은 겁니다. 
주님도 어떻게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것이 가장 큰 죄요,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 그리고 꼬꾸라신 거예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하고 악한 자구나!' 
그 사실이 그냥 마음으로부터 고백이 되더라고요. 

▲여러분, 혹시 마음이 힘들고, 도무지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마음을 구해보세요.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해 보세요. 

그러면, 그 사람을 위해서 울지 않을 수 없어요. 
내가 그렇게 미워하고, 정죄했고, 정말 죽이고 싶은 것 같은 그런 사람을 
주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는 걸 알게 됩니다. 

이것이 부드러운 마음이에요. 
도저히 받아 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제게도 왜 없겠습니까? 

어떤 때는 정말 며칠이고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때마다 저는 명심합니다. 
만약에 제 속에, 그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저는 영혼이 죽은 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에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서 아주 고단위 항생제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설사를 했어요. 의사 장로님께 의논을 드렸더니 
그 항생제 때문에 제 속에 있는 나쁜 균만 아니고, 좋은 균도 다 죽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산균 제재를 복용하라고 그런 처방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속에 미움만 가득하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게 우리를 죽이는 거예요. 
그 사람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미움만 가득하니까 내가 죽는 거예요. 

사랑이 우리를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생명으로 우리가 영접한 겁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분이 우리를 살리신 거예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증오만 가득하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지켜야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에요. 
교회 안에 정죄하고 미워하고 판단하는 것이 교회에 가득하면 
그것이 교회를 죽이는 것입니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 그것이 가득한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도피성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참 그 어려운 사십년을 지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족속과 무서운 전쟁을 치르고,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주셔서 그들이 광야를 지나 올 수 있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들도 고생했지요. 그들도 죽고 죽이는 싸움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베두인처럼 사막의 아주 작은 어떤 부족으로 남았겠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도 은혜로워야 된다고 한 거예요. 
서로서로 은혜로워라! 
내 가족을 죽인 자라 할지라도 
어쨌든지 그를 살려주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도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도, 말할 수 없는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교회에요. 
여러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온 교우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모든 것을 다 드려 헌신하고, 그렇게 교회를 충성스럽게 받들어 가면서 교회가 위기를 넘어왔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주셨기에 우리 교회가 살아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고 한다면, 우리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들 사이에 은혜로워야 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도피성 교회'가 돼야 하는 거죠. 

우리 사회에, 어려운 교회에, 우리 교인들 서로 사이에 
정말 어떤 죄인이라도 품어서 그를 살려내려고 하는 
'도피성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오늘 아침에 제 사무실에 처음 들어갔는데 
거기에 상패가 하나 있더라고요. 성남시에서 준 상패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말할 수 없는 (코로나로) 어려운 때, 
어려운 사람들, 고생하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돕는 일을 열심히 했다고 
시에서 그걸 인정해서 표창장을 보내 오셨더라고요. 

어려운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바라보면서 도피성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저기 가면 도와줄 수 있어, 저기 가면 살 거야!' 그게 교회인 거죠. 

오늘 우리는 형제교회로 파송선교사를 파송합니다. 
우리 주변에 정말 어려운 교회들이 많습니다. 

파송선교사는, 우리 교회가 도피성이 되자는 거죠. 
어려운 교회들에 도피성이 되자! 

어떻게 해서든지 그 교회가 살 수 있도록 
우리가 그 교회를 어떻게 해서든지 섬기자는 거죠. 

우리 교회는 큰 교회니까 자랑할 거 아닙니다.
우리가 그 교회에 가서, 우리는 큰 교회의 교인이라고 자랑하라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받은 교회일 뿐입니다. 

우리는 더 큰 어려웠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더 큰 은혜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려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삽니다. 

보십시오 성도 여러분 꼭 보십시오. 
우리 교회가 '도피성 교회'가 되면, 우리가 삽니다. 
우리 자신도, 우리 가정도, 우리 교회도, 한국 교회도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려면 온 교우들이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은혜는 예수님 그분으로부터 오는 겁니다. 예수님 그분이 도피성이세요.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주님과 하나 될 때 
우리 속에 설명할 수 없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솟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거죠. 

이제 우리 같이 기도 하십시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정말 사랑하시는 백성인 증거가 있기를 원합니다. 
제가 주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은혜로운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도피성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들어 써 주시옵소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