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러분 오늘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이에요. 요6:18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여러분 바다는 인생을 비유하죠. 시인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우리 인생이 바다를 닮았다고 하죠.
실제로 바다는 굉장히 위험해요. 예측불허라는 거죠. 날씨가 좋아서 항해를 했는데, 갑자기 악천후로 바뀔 때가 있습니다.
기상이 그런 것이죠. 바다는 항상 기상 악화로 인해서 배가 파손되기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배인데 바다에서 좌초하기도 하죠. 재난이 일어난다는 거죠.
16절에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여러분, 날이 저물어 어두워가고 있는데 바다로 간다.. 뭔가 심상찮아요. 본문에 전개상황을 자세히 보면, 조금 무리한 항해를 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하나 더 있어요. 17절, '이미 어두워었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그랬어요.
여기서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는 것은 뭘 강조할까요? 예수님의 부재의 상황을 지금 저자 요한은 알려주고 있는 거죠.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 .. 이게 무슨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주고 있죠.
▲여러분,우리 인생에 가정 불안정한 상태는 언제인가 하면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을 때예요.
무슨 불경기, 아니면 이런 전염병, 여러가지 실패.. 이런 게 아니에요. 인생의 가장 불안 요소는, 하나님의 부재 상황이라는 거죠.
주님은 늘 살아계시지만, 내 곁에 임재의 부재입니다.
지금 제자들과 예수님이 분리돼 있는 거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고 있는 거죠.
분리된 상황이에요. 이때가 위험한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어두웠다고 얘기하는데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뭐냐면, 주님의 부재의 상황이에요.
우리 인생에 가장 위기의 때가 언제냐? 주님이 내 인생 가운데 계시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위기요, 불안정한 때입니다.
이미 어둠이 짙어줬어요. 그런데 주님이 오시지 않는 그 일이 사실은 더 그들을 짓누르는 어둠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부재' 이게 정말 무서운 상태인 거죠. 오늘도 우리의 가정이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어두움 가운데 처해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환경이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몰라요. 제 마음대로 굴러가는 거죠. 하나님의 통치가 없으면, 하나님의 통제가 없으면.. 내 삶이 제 마음대로 돌아가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게 무질서라는 거예요. 무질서! 카오스! 그리고 예측 불허의 상황이 된다는 거예요. 이게 세상의 모습이에요.
근데 그 세상 상황이, 간혹 우리 삶에도 똑같이 재현될 수가 있는 거죠, 주님의 부재시에!
▲우리는 자주 이 하나님과의 분리를 경험합니다. 그때 무엇인가 내가 허공에 붕 떠있는 거죠. 내가 하나님의 임재 없이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살펴봐야 돼요.
그때 비로소 어떤 일이 터지죠? 16절에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드디어 올게 온거에요.
자 여러분 여기에 갑자기 큰 바람이 불은 거에요. 배가 출발할 때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항해하다가, 큰 바람이 갑자기 불어온 거죠. 파도가 내리친 것입니다. 사실 이건 갈릴리 바다에서 자주 일어나는 돌풍이에요.
이렇게 우리 삶에도갑자기돌발상황이 발생합니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렇게 맑던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지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냥 파도가 막 일어나고, 하늘은 깜깜해지는 거죠. 여러분, 바다 한 가운데서 하늘이 캄캄해진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두려울까요?
여러분,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밀어닥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돌발적인 위기가 발생하는 거죠.
코로나 사태도 돌발적이었어요. 갑자기 일어났는데, 전 세계의 모든 상황이 갑자기 다 바꿔져 버렸어요.
여러분, 바다에서 파도가 없기를 바란다면, 그건 순진한 생각이에요. 바다에 나가면 반드시 파도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큰 파도와 풍랑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이때우리가 늘 혼란스러운 것은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우리 성도님인데, 암에 걸려요.
새벽기도, 철야예배에 열심히 나오면, 몸이 안 아프면 좋잖아요. 아이들은 여전히 말을 안 들어요. 직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때가 있어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 뭔가 사업은 실적이 없고 자꾸 부진하고...
▲그때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기적을 원해요. 풍랑 이는,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걷는 기적! 아니면 풍랑이 한순간에 잠재워지기를 원하는 기적!
그러나 여러분, 기적으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오늘 이 본문앞에 무슨 사건이 있는가 하면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걸 제자들이 경험했습니다. 이런 기적이 어디있겠어요? 그 기적의 현장에 제자들이 있었어요. 그 다음에 지금 본문의 풍랑 사건이 일어난 일입니다.
어제의 기적으로 오늘을 못삽니다. 어제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다고, 오늘 그 기적으로 오늘 못산다니까요. 오늘은 또 다른 상황이에요.
어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지만, 지금 풍랑 중에서 지금 제자들이 죽는 경험을 하는 거잖아요. 기적의 유효기간이 금방 지나가요.
우리는 기적을 원해요. 더 큰 기적을 원하죠. 그런데 파도가 일어나자마자 한순간 조금 전에 기적의 체험은 온데간데 없어져요.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파도를 이겨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칩니다. 힘겹게 노를 저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죠.
문제가 일어날 때, 우리가 하는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나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거죠. 큰 파도가 일어나는데 노를 젓는다고 되나요?
우리의 힘과, 노력과, 재주와, 열심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큰 파도가 일어나면, 배는 파도에 의해서 가라앉아요, 주저앉아요. 노를 아무리 저어도, 힘만 빠지고 갈수록 지치고... 갈수록 배는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자 우리가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척척 응답되기보다, 응답이 안 될 때가 종종 있어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때로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적기 때문에, 때로는 잘못 구했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구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이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이유를 뚜렷이 알 수가 없어요. 욥이 그랬죠. 어떤 상태라도 우리의 기도대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내 기도대로 되면, 문제가 다 해결되면,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C S 루이스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언젠가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기도의 응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 결정적인 것은 19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를 갔어요. 꽤 갔어요. 엄청난 노력을 한 겁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안간 힘을 썼어요. 그런데 지쳤어요. 파도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의 한계 지점에 도달했어요.
인간의 노력이 끝난 지점, 그 한계 지점에서 절망을 맛보게 되죠. 그리고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요. 끝인 거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끝이다. 나로서는 아무것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절대적 절망을 느낄 때입니다. 밑바닥에서 절망을 맛보는 거죠.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보면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만난 시점이 다 그 지점이에요.
오늘도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대부분이 그 그 한계상황, 내 힘과 노력으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그 순간에 그 밑바닥에서 비로소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이 나타나 주셨어요.
바로 이때 우리 주님이 짜잔! 하고 나타나셨어요. 우리 예수님은 짜잔을 잘하세요. 극적으로 나타나세요. 아무 때나 찾아오시는 게 아니에요. 아무 때나 찾아오시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보통 때는 안 찾는다고요. 배부르면 안 찾아요. 기도한대로 응답되면 안 찾아요.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그렇잖아요. '확실하게 저를 한번 밀어달라고!'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되면, 우리는 그 다음부터 하나님을 안 찾습니다. 조금만 자기가 뭐 자랑할 게 있으면 하나님을 안 찾아요. 도리어 하나님을 거부해 버려요.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셔요. 예기치 않는 순간에 나타나니까 다 놀란거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문제 많은 우리의 삶가운데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까이 오시면 웰컴 해야 되는데 왜 두려웠을까요? 예수님인줄 알아보지 못했던 거죠.
예수님이 그 밤중에 바다 위로 걸어오실 줄을 상상을 못한 겁니다. 유령으로 본 거죠. 여러분, 예수님과 유령을 구분을 못합니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그 밤에 물위로 걸어오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잖아요. 믿음의 눈을 뜨면 너무도 당연한데, 의심할 이유가 없는데 주님을 유령으로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
오병이어의 기적을 조금 전에 베푸셨던 그 주인공인 예수님은, 충분히 바다 위로 걸어오실 수 있죠. 바람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정확한 순간에 찾아오세요. 당신의 백성을, 고통 가운데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세요. 정확한 때에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가운데 무슨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느냐? 하나님은 타이밍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늦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정확하게 오시는 분이시다! 이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나는 지금 너무 급해서 죽겠는데 주님이 내게 안 찾아오신다고.. 늦으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주님은 정확하게 오시는 분이에요.
여러분 만약에 우리 인생가운데 하나님이 타이밍을 못 맞추신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는 벌써 다 망했을 것입니다.
근데 지금 우리가 여기서 살고 있고,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이 때를 따라 정확하게 나를 찾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 같은데 죽이지 아니하시고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게 하시고 거의 완전히 그냥 박살이 날 것 같은데 박살나지 않게 하시고 *고후4:8~10 나를 건지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함께 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어요. 타이밍의 하나님이세요.
저도 이렇게 돌아보니까, 하나님은 진짜 타이밍의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상황이 끝난 다 끝난 다음에 오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잖아요. 나사로의 죽음! 이미 끝났어요. 장례까지 치렀어요. '이제 오시면 어떡해요?' 라고 마르다가 하소연했어요.
그러나 늦지 않았어요. 부활의 주님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주님은 정확한 때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뢰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늦지 않으시는 분이세요.
여러분 어떤 일이 좀 내 생각대로 안 돌아가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타이밍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훨씬 놀랍게 역사하실 거예요. 늘 안 된다고 막 그냥 야단법석을 떨지 말라는 겁니다.
주님은 정확한 시간이 다가오셨죠. 위기의 순간에 건지러 오신거죠.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풍랑의 위협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겁니다. 도우실 구원자를 위협자로 봤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죠.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을 오해하고 착각하는 겁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근심에 빠져 있으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잖아요.
그들은 근심에 차 있었어요. 주님은 지금 두 제자와 같이 동행하고 있는데 근심에 차서 두 제자가 예수님의 동행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