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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1편 주를 의지하는 자의 기도
LNCK
2022. 3. 3. 07:24
◈주를 의지하는 자의 기도 시31:1~24 시편설교보기 출처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다윗의 상황과 그가 드린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특별히 다윗의 기도의 확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상황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1).
내가 주께 피한다는 것은 다윗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가 있고 본문에서도 반복해서 나옵니다(6절, 14절).
다윗은 좀 더 시적인 표현으로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5절)라고도 말합니다.
굳이 피한다고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내가 피할 만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럼 다윗은 어떤 상황에 있었을까요?
많은 시편에서 시인은 자신의 상황이 무엇이고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보다는,
그런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보고 있고 어떤 마음 상태인지를
주관적인 입장에서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의 경우 신분이 왕이었고 군인이었습니다.
우리 중에 이 입장에 서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느꼈던 괴로움, 외로움 등은
우리가 다른 상황 속에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를 대할 때
우리는 공감하고 동질감을 갖고 삶에 필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31편의 상황도 구체적으로는 무엇이 원인인지 알기 어렵지만,
몇 가지 중요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1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17절)
먼저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부끄러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약간 창피한 감정이나 내적인 당혹스러움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로 공적으로 망신 당하는 일이나 치욕스러운 일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좀더 강하게 말하면 수치, 치욕, 굴욕 당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가 지금 그런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무엇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를 잃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렘 2:36~37).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단순히 나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오는 수치가 아니라
다윗의 신앙이 걸린 문제,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있는 중대한 일입니다.
다윗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곧 그의 원수들에게 있어서는
다윗이 믿는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4절).
다윗이 처한 상황은 어떤 자연재해나 우연한 상황으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마치 사냥꾼이 몰래 설치해 둔 그물에 걸린 사냥감처럼 자신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13절 하)
사람들이 다윗을 넘어뜨리고 그 생명을 빼앗으려고 의논하고 계획을 세웠고
지금 그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이런 일들을 했을까요?
이들에 대해서 “원수”(8절), “대적”(11절), “핍박하는 자들”(15절), “악인”(17절)이라고 말합니다.
6절에서는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바로 앞에 5절을 보면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5절)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섬기는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이 가치를 두는 것은 허탄한 거짓, 거짓된 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다윗의 대적이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을 버리고
아무 의미 없는 거짓을 예배하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다윗의 대적이면서 하나님의 대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즉, 다윗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의인으로서 당하고 있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9절).
그들로 인해 다윗은 심한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이 고통은 육적인 것이며
동시에 영적인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영혼과 몸이 모두 쇠하였다고 고백합니다.
특별히 눈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구약에서 눈이 힘과 건강에 대한 지표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 힘을 잃고 건강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10절).
다윗은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슬픔과 탄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원인으로 “나의 죄악”을 지목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괴롭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의 죄악도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육신과 영혼이 연약해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11절).
대적들에게 욕을 당할 뿐 아니라 특히 이웃에게도 같은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조차 그의 상황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고, 길에서 보는 사람들도 피합니다.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 다윗이 당하고 있는 일을 자신들도 함께 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13절).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두려움에 포위된 상황입니다. 다윗은 지금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잊혀지는 외로움에 대해서 말합니다. 철저히 혼자가 된 것입니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12절).
다윗은 지금 자신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고 말합니다.
마치 죽은 자가 사람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듯이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깨진 그릇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버려집니다.
“그 그릇 어디갔지?”하고 가끔 찾게 되는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거 깨져서 버렸어”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그런 상황에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다윗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다윗을 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이 잘 맞아 들어갔습니다. 다윗은 몸과 영이 쇠하여 가고 있고,
주변에 사람들은 다윗을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마치 죽은 자와 같았고 아무 쓸모 없는 깨진 그릇과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삶에서 이런 큰 어려움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조금씩 이런 경험들을 했을 수 있고
앞으로 그런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약에 의존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형태로 자신의 괴로움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신의 필요를 구했습니다.
◑기도
이런 상황에서 다윗이 구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구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이 기도를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이 기도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기도입니다.
▲1. 공의에 기초한 기도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1절).
다윗이 영원히 부끄럽게 되는 것은 지금 원수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피하는 다윗이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는 다르다는 것이 다윗의 논리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라면 다윗이 아닌 악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17절).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제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3절).
그 이유를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 공의로우신 속성에 합당한 것이고
그 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일관성 있게 일 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평판이 걸린 문제이니 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2. 은혜에 기초한 기도
9절부터 이어지는 기도는 앞의 기도와 다윗의 태도가 조금은 다릅니다.
다윗이 조금 더 낮은 자세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를 구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9절).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해야 하는 어떤 합당한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이 고통 중에 있으니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구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10절), 더욱 낮아진 자세로 구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있고 괴로운 상황에 있는지를 언급하면서 단지 은혜를 구합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16절).
“얼굴을 비추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하심”은 헤세드, 언약에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약속하신 사랑을 지금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공의로 건지소서”가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소서”로 바뀌었습니다.
19절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로운 분이시고 언약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다윗은 그 은혜의 약속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그분의 속성에 기초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 조금 특징적인 것이 있는데,
이 기도에 다윗의 확신이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확신
9~13절의 말씀을 읽어보면 다윗은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할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14절에서 반전이 찾아옵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14절).
견딜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다윗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당신이 내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이 하나님의 편에 서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저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보려고 해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앞의 말씀처럼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원수들의 손 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15절, 8절).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15절).
“앞날”이라고 번역되었지만, 문자적으로는 정해진 시간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정해진 시간, 즉 우리의 인생, 삶, 운명을 의미합니다.
나의 미래 뿐 아니라 나의 과거, 현재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가 보는 상황이 원수의 손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원수들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모든 환경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주권자’라고 말할 때 갖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원수의 손에 있으면서 괴로워할 때에 붙든 생각입니다.
그래서 5절과 같은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5절).
참 당연한 고백이 아닙니까!
이 기도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셨던 말씀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면서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가운데
그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어쩌면 죽고 싶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가운데
그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저 막연하게, 혹은 맹목적으로 그냥 그렇게라도 생각하면 좋으니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 속에서
그 능력과 은혜의 손을 드러내신 것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7절).
하나님은 다윗의 고난을 보시고 그의 상황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관심을 끄시지 않으십니다. 그냥 이제 알아서 살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주목해서 보고 계시고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8절).
다윗의 고난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를 원수의 손에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건져내시고 넓은 곳에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모른 척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 능력의 큰 손을 펴십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는 심판의 손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손입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삶을 통해서 경험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원수의 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에서
더 큰 손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삶을 주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대해서 가져야할 확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