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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0편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
LNCK
2022. 3. 14. 19:28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 시40:1~17 여러 설교 정리
오늘 본문에는 표제어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내용이 있지 않아서 그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여러 성경학자들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로 인해 피난 중에, 또는 그 후에
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가대 지휘자의 인도에 따라 백성들이 함께 불렀던 노래입니다.
시40편은 찬양과 탄원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과거의 고난에서 자신을 구해 주신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와 더불어 회상하며(1~10절)
현재 그의 앞에 닥친 새로운 고난에서 다시 한 번 구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11~17절).
◑1. 다윗이 과거에 자기를 구원해 주심에 감사 (1~10절)
▲1절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절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다윗은 과거에 자신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기가막일 웅덩이'란,
멸망의 구덩이, 파멸의 웅덩이, 절망의 웅덩이를 뜻하며,
수렁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꺼내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상황을 겪었던 적이 있었죠.
다윗도 비슷하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는 말인데,
압살롬에게 왕권을 내주고(수도를 내주고) 쫓겨서 맨발로 피신을 떠나야 했던,
그리고 이제는 자기 목숨까지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던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삼하15:30
그래서 그 때에 하나님께 처절하고도 큰 소리로 기도를 드렸고, :1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석 위에 세워두셨고, :2
자기 발걸음이 더 이상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해 주셨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도가, 때로는 이렇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위 2절을 암송하며 매일 기도하는 성도는.. 또 그대로 응답되어지는 놀라운 간증들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말씀의 약속 그대로 응답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의 상황에서 다윗이 한 일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 계속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1
같은 단어를 두 번 연속해서 쓰는 것은, 히브리어 강조법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몇 단계로 나누어서 표현합니다.
‘귀를 기울이사’ :1
먼저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스쳐가는 소리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가지고 성도의 기도를 듣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1
그리고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면, 이미 <상황 종료>입니다. 이미 응답입니다.
아직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요. 최종 결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죠.
그러나 마음에는 확신이 주어지고,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한 후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그런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엔, 기도를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회개도 필요하고요.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2
그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벗어난 게 아닙니다.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2
이제는 그저 회복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강인한 하나님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연단(담금질) 후에는 철이 더 강해지는 법과 같죠.
▲3절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신자가 병원에서 완치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다든지,
혹은 큰 사고를 당했는데, 기적적으로 자기가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다든지 할 때
저절로 입술에서 새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미리암과 이스라엘이 홍해 가에서 (새)노래를 불렀고, 출15장
장차 천국의 유리바닷가에서도 (새)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계15:3
왜냐면 모두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구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저절로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그 누구보다 노래(시)를 많이 지은 것은,
그가 그만큼,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진 적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무슨 잘못한 죄가 많아서, 이런 고난을 다 겪었고, 거기서 건짐 받아 노래를 많이 지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후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특별히 다윗을 택하여, 그 고생을 시키신 것입니다. 섭리죠.
그 후대와 오늘날 우리가 부를 찬송시를, 그를 통해 짓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 말고도, 많은 찬송시를 지었던 훼니 크로스비 여사,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를 지은 호레이쇼 스패포드 등도 *Horatio Spafford
모두 극심한 웅덩이와 수렁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를 찬송을 짓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시련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4~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4절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5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4절은 시1:1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만하고 거짓에 치우치는 사람을 돌아보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1
이런 '기가 막일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지는' 은총을 받으려면
평소에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의롭게 사는 게 체질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성도는, 5절의 다윗의 고백과 같이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내 삶에 아무 기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내 삶에 모든 것이 기적이다'라고 말합니다. 5절의 다윗이 고백처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는 말처럼, '받은 기적을 세어보십시오!'
우리도 다윗처럼, 5절의 고백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인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6~7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다윗이 기도하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교훈을 깨달은 것입니다.
▲6절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절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제사를 드림이나 예물을 드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루마리 책에 있는 것은 율법과 계명입니다.
7절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볼 수 있으나,
그때 당시 다윗에게 적용하면, 1차적 적용이 되겠지요,
번제와 속죄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루마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 행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7절,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이 구절을 다윗이나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두 다 성경은, 나를 위해, 나를 교훈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라고 받아들이죠.
'내가 왔나이다' 역시, 내가 말씀 앞에 서 있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다음 구절인 8절과 자연스럽게 문맥이 연결됩니다.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8절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9절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절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시인은 1~5절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기적이 셀 수 없이 많고, :5
그래서 자기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2
이어지는 6~10절에서는, 그 이유가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즐기며,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번제와 제사를 드림보다요!
그래서 9절과 10절에 하나님을 찬양하되, 특별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간증'이요, 대중 앞에서 말하는 일종의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면, 자기 속에 그것을 감추어 두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새 옷을 사거나, 새 장난감을 사면 그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듯이,
성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면.. 그것을 사방에 '선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최근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행하신 일들을, 선포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다윗은 지금 닥친 새로운 박해로부터 구원을 호소함 (11~17절)
1~10절이 과거의 회상이었다면
11~17절은 현재의 간구입니다.
-심한 번민 중에 하나님께 탄원하며(11, 12절),
-원수들을 패하게 해 달라고 탄원하며(13~15절)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을 표현합니다(16, 17절).
▲11절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12절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입니다.
밖으로는 수많은 재앙이고, 안으로는 머리털보다 많은 죄로 인한 죄책감입니다.
셀 수도 없는 재난들이 거대한 보아뱀과 같은 모습으로 다윗에게 다가와
다윗을 칭칭 감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머리털보다 더 많다고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강하게 개입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대부분 깊은 회개를 하게 되는데, 내 속에 죄가 얼마나 많은지,
내가 지은 죄가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다윗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러러 볼 수도 없다고 했는데, :12
하늘의 하나님 쳐다보기가 낯부끄럽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자세라 볼 수 있죠.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2
이 표현 역시 진정한 회개에 이른 자에게 나타나는 '상한 심령, 깨어진 심령' 입니다.
▲13절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2절이 진정한 회개에 이른 사람은
13절처럼, 여호와의 은총과 구원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길로 우리 기도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14~15절에서는 이렇게 호소를 합니다.
14절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15절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시편에는 이와 같이 “악인들을 벌을 주시고, 물리쳐 주십시오.”와 같은 기도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 압살롬을 향하여서는 이런 기도를 하지 않겠지만,
그를 도와 모반하는 자들, 자신을 배신한 신하에게는,
얼마든지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죠.
14~15절을 지금의 말로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이
한밤 중에 몰래 다윗의 집알 찾아와서 죽이려하는데
갑자기 집에 불이 환하게 켜지더니, 전국에 내보내는 생방송을 찍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자객들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전국적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망신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윗의 생명을 노리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고난당함은 우리의 즐거움이고, 네가 쫓겨남이 우리의 행복이지”라며 조롱하는데,
그렇게 하고서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건물 간판이 날아와서
자기를 맞추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대적들이 낭패와 수치를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향해서 손가락질하며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비웃던 사람들이,
비웃다가 갑자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것입니다.
시편 34:13에서 다윗은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찌어다'
라며 선포하고 기도한 적이 있는데, 본문 15절에서도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
이렇게 입술로 자기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자들에 대한 '방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방어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기도를 듣고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니가?”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도 있겠지요. 구약에서 '목자'의 캐릭터를 대표하는 다윗이 왜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중성'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도 있고, 목자의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는 '인간적인 진솔한 마음'이 표현된 것입니다. 우리도 다 이렇게 '이중적' 마음이 있습니다.
▲다윗은 오늘의 시편을 이렇게 마무리를 짓습니다. 16~17절입니다.
16절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앞서 9~10절에서도 선포했는데,
여기 16절도 선포입니다.
기도하다가 선포하고, 찬양하다가 선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포도 역시 기도이고, 찬양이지만,
선포는 회중을 향하는 자연스럽고 꾸밈 없는 '간증, 전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회중들과 함께 나눔'입니다.
▲17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찬송가에도 후렴구가 있듯이, 17절은 후렴입니다.
본문의 전체 주제는 '웅덩이와 수렁에서 자신을 구해 달라'입니다. 특히 11절과 13절
그 간구를, 기도를 마치기 전에, 다시 한 번 후렴처럼 재차 노래하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과거에 기가 막힌 웅덩이 빠질 때도 있고,
수렁에 빠져서 질곡과 같은 길을 걸을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건져 올려주셨음을 고백하며,
지금 비록 어려움과 환난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능히 건져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과거의 여러 데이터를 입력하면, AI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데,
다윗은, 과거에도 자기를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면, 미래에도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답은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도 건짐받음' 이었습니다. 결국 압살롬 일당들은 진압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길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기기 막힐 웅덩이를 만날 때도 있고,
수렁에서 나오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사람은,
소망의 하나님께서 소망이 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안전한 착륙이지, 평안한 비행은 아닙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는 사람은, 약간의 긴장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타게 됩니다.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떠 있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배가 크게 흔들리거나 비행기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하면 그 불안함은 더 커집니다.
파선이나 추락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0%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안다면, (자기 남편이 기장, 선장인 경우 더 확신이 크죠)
그런 일이 있을 때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고 멀미를 하게 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절망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환경 자체가 언제나 평안하고 우리가 보기에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언제나 요동치는 것도 아니지만, 항해 때 기상변화로 인한 경로 변경은 수시로 달라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고
목적지까지 반드시 도착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정 중에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늘 평안하고 느긋한 것입니다. 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
이 시의 일부(6~8절)는 메시야적 성격을 띠고 있다(참조 히 10:7~9).
13~17절은 약간만 바뀌어 시 70편으로 다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