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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5편 왕과 신부의 결혼식의 경축시
LNCK
2022. 3. 20. 20:49
◈왕과 신부의 결혼식의 경축시 시45:1~17 여러 설교 정리
본문 시45편은, 왕과 여인과의 결혼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 결혼으로 비유하고 있어요.
시편에 ‘메시아 예언시’가 7편이 들어있는데, 그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의 아가서’라 그래요.
솔로몬과 아가의 결합도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서도 왕과 이 여인과의 결합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간의 결합’으로 노래/상징/예언하고 있는 시입니다.
본문 시편 45편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한 왕의 결혼식을 위하여 지은 노래입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왕의 결혼식 노래가 왜 성경에 기록이 되었을까요?
이 시편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예언적으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도 앞부분 1~8절까지는 신랑인 왕에 대하여
뒷부분 9~15절까지는 신부인 왕후에 대해 노래합니다.
마지막 16~17절은 새 가정을 이룬 왕가(王家)의 미래에 대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과 왕후를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해야할까요?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묘사하였습니다.
계시록 19장 6~9절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따라서 시편 45편은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그리스도인의 결혼’을
예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의 노래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해석할 때
1) 첫번째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며, (1~9절)
2) 두번째는 신부인 교회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10~15절)
3) 마지막 축사 (16~17절)
왕의 모델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처럼 나라를 통치해야 하고,
오늘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1. 왕의 아름다움을 노래함 (1~9절)
▲1절 “내 (시인, 고라자손)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1절은, 축사 또는 축시를 잘 하는 사람이, 지금부터 경축하는 시를 낭송하겠다는 말입니다.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는 앞의 '좋은 말'처럼,
시어로 아름답게 묘사하겠다는 뜻입니다.
▲2절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2~9절은, 1차적으로 왕이신 예수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노래이지만
2차적으로는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성품이요, 자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왕같은 제사장(왕이며 또한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벧전2:9
여기서 “아름답다”는 단어는 외모가 아니라, 성품입니다.
왕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보다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아름다운 마음에서 은혜로운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고 했습니다.
입술에 ‘머금는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물이 흘러 넘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야짜크
그의 입술에 은혜가 가득히 차고 넘쳐, 하는 말마다 아름답고,
듣는 사람들이 위로와 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 등을 가르치실 때 그랬습니다. 그 입에 은혜로운 말씀이 차고 넘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칼빈은 '그러므로'를 '왜냐하면'으로 해석합니다. 원어적으로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 왕에게, 영원한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라고 해석됩니다.
▲3절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주님이 허리에 차는 검은 무엇입니까?
‘말씀의 검.’ 말씀으로 천지를 만드신, 놀라운 권능을 가지신 주님입니다.
왕된 우리 성도들 역시, 좌후에 날선 말씀의 검을 차야 하는 것입니다. *엡6:17
유대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에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악한 영의 시험과 공격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으로 바로 설 때 영광과 위엄을 갖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승리의 주님의 모습을 4절과 5절이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4~5절,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 도다.”
왕이 칼을 허리에 차고 :3, 병거에 올라 :4, 전쟁에 나서는 이유는,
사적인 이익을 취하거나 개인적 원수를 갚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명분이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함입니다.
신약적으로 이 '전쟁'은,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고,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영적전쟁을 뜻하죠.
왕의 입은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왕의 가슴은 온유해야 합니다.
왕의 손발은 공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거짓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마귀의 전공입니다.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새번역) '임금님의 오른손이 무섭게 위세를 떨칠 것입니다.'
왕이 오른손(종종 능력을 상징)으로, 전장을 지휘하는 모습입니다.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그 능력의 주, 승리의 주님을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6절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7절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6~7절은, 왕이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작은 예수'이며, 하나님 나라의 분봉왕들인 크리스천들이 따라야 할 지도력입니다.
이 때, 이 세상에도 현재 천국이 임할 것입니다.
6절에서는 이 왕을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7절에서는 이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를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히1:8~9
3절에도 영화와 위엄은 성경에서 거의 하나님에게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17절에서 만민이 영원히 찬송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본 시는, 이스라엘 왕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야 대망 신앙'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 현실의 왕을 보면서, 미래에 오실 메시야 왕을 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왕이며 제사장)인 우리도, 악을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이 땅의 현실만을 바라볼 때
우린 어딘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삶,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바라볼 수 있다면, 공평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왕인 우리 각자 크리스천들도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지도자가 될 때,
세상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8절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9절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8-9절은 현재 결혼을 앞둔 왕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왕의 옷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고
그가 거하는 상아로 장식된 궁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결혼을 위해 특별히 더 아름답게 꾸민 것이지만,
왕은 항상 이런 것을 누리기에 합당한 존재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고, 장차 성도가 누릴 영광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아름다움 속에 거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히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며 모든 피조물의 찬송을 받으며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왕'이라고 말하는 것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되찾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선포한 첫 번째 말씀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 3:2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이 전파하신 첫 번 말씀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신약에는 ‘하나님 나라’ = ‘천국’이란 단어가 100여 번 나오는데,
이 단어들은 거의 모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1)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더 세상에 머무신 이유도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행 1:3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제자들은 물로 사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의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행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예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본문의 '왕'을 북이스라엘의 예후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주2)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인 시편45편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 좋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밝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 2차대전 후 독일에서 독일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강연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을 하는데,
그 자리에 모인 독일 교회 지도자들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려댔습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당황했답니다, 연설을 마치자, 그들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 독일인들이 어찌하여 파시즘에 기울이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독일 교회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목표를 가져다줄 무언가를 찾고 찾았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치루어야 할 대가 지불이 있습니다...
◑2. 왕후를 노래함 (10~15절)
10절부터는 왕의 신부가 되는 <왕후에 대해 노래>하는데,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 바로 우리에 대한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시45편에서 메시지(설교 주제)를 딱 한 개만 뽑으라면, 이 단락(10~15절)을 선택해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이 단락에서 그 성도의 풍성한 삶을, 단적으로 예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 먼저 신부는, 과거의 아비 집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11절에, 그러면 왕이 신부를 사모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부(성도)의 가장 큰 기쁨은, 왕이 나를 좋아해 주시는 것입니다.
왕이 내 편이 되어주시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렵지 않고 오히려 든든합니다.
12절에, 그러면 신부는, 국내외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면 왕중 왕의 퍼스트 레이디 이니까요.
13절에, 신부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시녀들과 함께요.
신부의 최고의 기쁨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선물이 아니라, 왕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14절에, 그래서 신부는 왕궁에서 살게 됩니다. 신약적으로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임하는 영역)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 45편은, 정말 '시편의 아가서'와 일치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왕후의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이런 풍성한 삶을 내것으로 누리고 있습니까.
요10:10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두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주님만을 섬기겠노라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온전히 서약하고, 주님만을 따르며 살 때,
주님은 우리를 풍성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하시며, 영원한 행복과 영광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10절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0절에서, 왕의 신부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풍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갑니다.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 네 아비의 집.. 즉 세상을 잊어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주3)
그가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후가 되면,
고국에서 가까이 하였던 우상을 섬기는 풍속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에 시집간 신부입니다.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좋아했던 세상 풍속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을 이끌어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주님의 신부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시편 45:10절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새 신부는 과거 자신의 백성과 자기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리랍니다!
주님을 알기 전의 과거 생활, 옛 관계, 세속적 가치, 죄악의 습관을 미련 없이 버리고,
이제 새 신부로서 구별된 신분과 생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결혼식을 주례하면, 서약하는 시간이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반드시 본인이 서약서를 읽고, 꼭 모든 사람 앞에 직접 사인(서명)을 하게 합니다.
왜냐면, 직접 읽고, 서명하고, 비디오로 녹화하면서 결단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서약을 한 후에는 오직 한 사람에게 충성하고, 자신을 정결케 하며 사랑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11절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10절에서 '잊어버리는' 것이 신부의 첫 번째 지침이었다면,
11절에서는 '경배할지어다' .. 이것이 신부의 두 번째 지침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주님께 존귀를 돌리면,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한량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12절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13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12절, ‘두로의 딸’은 두로의 백성들을 의미하며
연이어 나오는 ‘부한 자’와 평행을 이룹니다.
외국인과 내국인들이 하객으로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신부는 원래 그런 존귀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왕과 결혼하여 그와 하나되기 때문에
그 모든 복과 영광이 그의 것이 됩니다. 왕과 연합, 하나됨의 축복입니다.
▲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5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14~15절은 '결혼식 장면'을 묘사합니다.
성도는, 천국에서 주님과 결혼하여 이런 영원한 복락과 기쁨을 주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은 성도를, 단장한 신부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설명하는데,
계시록 21:2~3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3. 시인이 왕과 왕후를 축복함 (16~17절)
왕의 결혼식에서 시인(아삽)은 신랑 신부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주님 예수그리스도와 신부되는 그의 백성의 아름다운 결합 이후 얻게 되는 은총입니다.
▲16~17절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인은, 미래의 후손의 출생과 그들로 인해 왕국이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번성하게 될 것을 예견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고(히 2:10) 이 땅에서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 때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성취됩니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17절)
왕의 이름, 명성, 성품, 인격이 영원히 기억되고 찬송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신랑인 그리스도를 만나 혼인 잔치를 갖고
영원한 나라에서 그분을 찬양하며 함께 할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날에 우리의 모든 눈물이 씻어질 것이고, 우리의 눈이 밝히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 앞에 있는 미래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면, 지금의 삶이 조금은 쉬워질 것입니다.
짐진 자처럼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 있는 자처럼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그의 의를 구하는 모든 세대에서 대대로 일어나게 하시며, 그 이름이 영원하여
모든 세대에 기억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먼 미래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기독교의 계승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8세기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진화론이 휩쓸 때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시기에 유럽에 머물던 기독교가 오늘과 같은 세계 종교로 확장되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20세기를 보내면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첨단 현대기술문명이 발전하였고,
우주로 로켓과 우주탐사선을 띄우는 시대를 보냈지만,
기독교는 더욱 깊이 내실 있게 전 세계의 모든 민족과 나라에 전파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 닥친 기독교에 대한 다양한 공격과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을 지키실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실 것이고,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을 편만하게 펼치실 것입니다.
결국에는 주님께서 승리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부르심 받아,
후세에 계승하고 전파하여, 왕의 이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만세에 기억되며
만민이 영원히 찬송하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
주1)
A. J. 코니어스는 “우리는 천국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면 케케묵은 옛날 얘기 정도로 듣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설교하면 구식 목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근래에는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말씀을 거의 들을 수가 없습니다.
번영, 신앙, 은사, 사역 등은 설교하면서도
성경의 제일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의 나라’는 좀처럼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설교의 주제는 거의 하나님의 나라요, 그것을 바라는 소망이었습니다.
“예수 천당”이 주제였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 갑시다”가 복음이었습니다.
저의 어릴 때 기억으로는, 야외예배 가는 버스에서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불렀습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찬송이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요즘은, 노래방에서 제일 많이 불러지는 가요가 “소양강 처녀”라는데
야외예배 가는 버스에서 이 노래도 나옵니다.
1960년대가 되자 경제 개발과 더불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가 국민적 구호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하나님 나라는 점점 멀어지고 “예수 믿고 부자 되자”, “예수 믿고 병 고침 받자”
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 복음이 아닙니다. 참 복음은 하나님 나라밖에 없습니다.
주2)
시45편에 등장하는 왕은 <북이스라엘의 왕 예후>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3절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4절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5절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이런 내용은 열왕기하 9장과 10장에 나오는 예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악독한 왕 아합과 왕후 이세벨을 심판하시려고 예후를 세우십니다.
예후는 장군이었는데, 쿠데타를 일으켜 아합의 아들 요람왕에게 활을 쏘아 그 염통을 뚫어 죽이고,
그의 어머니 이세벨을 던져 들개의 밥이 되게 하고,
아합의 아들들과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다 죽입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용사, 병거, 화살, 염통,” 이런 단어들이 예후와 관련됨을 보여줍니다.
왕의 결혼식 장면은 12~15절에 나옵니다.
예후는 두로의 딸을 왕후로 맞이합니다.
왕후가 될 신부가 들러리와 함께 왕에게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시인은 왕의 결혼식을 소재로 하여, 왕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왕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모델로 삼아야 함을 설명합니다.
6절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규는 왕의 손에 있는 홀, 지팡이를 말합니다. 이것은 왕의 통치를 상징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는 공평으로 다스리는 정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영원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왕의 보좌가 영원하려면, 정의롭게 통치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론) 하지만 단순히 한 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시로만 보기에는
그 표현들이 과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왕은 은혜로우며 용사이고 악을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매우 이상적인 왕입니다.
역사 상 어떤 왕에게 적용해도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들입니다.
6절에서는 이 왕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7절에서는 또 하나님과 왕을 구분합니다.
3절의 영화와 위엄은 성경에서 거의 하나님에게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17절에서 만민이 영원히 찬송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3)
신명기 21장에 보면 전쟁을 하다가 포로로 잡혀온 가운데
아리따운 여자가 있어서 아내로 삼고 싶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전쟁에서 포로된 자인 이방 여인 중에 아내로 삼으려할 때는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그의 의복을 벗기며
1개월 동안 고향부모를 위해 애곡하게 한 후에 아내로 맞으라. 신21:11~13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의복을 벗긴다.’ ... 이게 뭡니까?
이제까지 네가 살던 그 나라에서 모든 관계를 다 청산하라는 거예요.
모든 신분을 다 청산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뼛속 깊이 남아있는 관계, 아비와의 관계, 어미와의 관계,
한 달 동안 울어라. 그리고 끊어버려라는 것입니다.
신약적 표현으로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