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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3장 5 마음에 있는 바알을 제거하라

LNCK 2022. 3. 21. 14:52

https://www.youtube.com/watch?v=dSWR5ZjWnj0&t=10s

◈마음에 있는 바알을 제거하라            골3:5, 잠11:25           2022.03.18.출처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우리가 가나안의 복을 정말 제대로 잘 누리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되는 것이 '바알 신앙'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고생을 하고 가난에 들어가고나서 
거기서 망한 이유가, 바알신앙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광야 연단을 받는 이유도 
바알의 우상을 버리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제 먹고 살만한 형편이 되면 
그때도 정말 조심해야 될 것이 '바알 신앙'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는 바알종교가 없어요. 바알 신전도 없고.. 
그렇지만 우리 마음 안에 바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말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을 제거하는' 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바알이 뭐냐 하면, "탐심"입니다. 
우리가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하는데 
그 땅의 지체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었어요. *본문 골3:5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이런 것들이 다
육신을 통해서 일어나는 내 죄의 본성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절대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별히 하나를 딱 지목을 했는데 
'탐심'을 지목을 하고, 이것은 우상숭배다.. 이렇게 말씀을 했어요. 골3:5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망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땅의 우상숭배를 극복을 못한 겁니다. 

그게 바알이었는데, 바알의 핵심이 바로 탐심입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안에 탐심이 다 있으실 겁니다. 
돈에 대한 욕심, 특히 요즘 시대는 정말 돈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죠. 

돈만 벌 수 있다면 자기 영혼도 팔 기세입니다. 
그 정도로 돈 돈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탐심)가 해결이 안 되고는 
계속 가나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광야를 쫓겨나가고 
또 정신 차려서, 가나안에 다시 들어갔다가 또 광야로 쫓겨나가는 일만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가나안도 더 이상 가나안이 아니게 되는 거죠.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말은, 탐심은 영적인 일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속에 탐심은 그냥 자연적인 감정이다.. 
누구나 다 돈 좋아하는 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돈에 대한 염려, 돈에 대한 욕심.. 
이게 다 영적인 뿌리가 있다는 거죠. 

이 세상의 영, 특히 거지의 영이, 
바알의 영, 탐심의 영, 세상의 영.. 이것을 우리식으로 쉽게 표현하면 '거지의 영'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가지고 가져도 모자람을 느껴요. 

여러분들이 실제로 여러분 스스로에게 한번 적용해 보시면 됩니다. 
'얼마나 가지면 나는 만족할까?' 

한도 끝도 없어요. 

여러분 중에는 가진 재산이 다 다를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제일 많이 가진 사람, 그 사람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껴요. 
이게 무서운 거잖아요. 

여러분, 음식을 먹는데 어지간히 먹으면 배가 불러야 되잖아요. 
그래야 더 안 먹게 되지요. 

그런데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는데 
먹어도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프다면.. 이건 무서운 거죠. 
그건 절대 정상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돈에 대한 욕심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우선 여러분이 분별해야 합니다. 

탐심은 영적인 문제이에요. 
우리를 끊임없이 더 가지게 만드는.. 어떤 소유도 만족이 안 되는..
그런 무서운 영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제 정신 똑바로 차려서 
탐심을 품으면 안 됩니다. 

저에게도 돈에 대한 욕심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목사님은 돈에 대해 하나도 욕심이 없겠지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돈 좋아요. 돈에 대한 욕심이 있죠. 
돈에 대한 걱정도 있고요. 

그런데 문제는, 탐욕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게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성경에 너무나 명확하게 
주님이 우리가 돈을 염려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돈에 대해 탐심을 가지면, 절대로 주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게 됩니다. 

재산 때문에.. 자녀들과 거의 원수처럼 지내는 교인이 계셨어요. 
당사자들은 절대 해결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아무리 돈이 중요하고, 그 문제 때문에 심각해도 

부모 - 자녀 사이가 원수가 되는 것보다 돈이 더 중요하냐? 
차라리 돈을 손해보고, 부모 - 자녀 관계가 회복되는 게 더 낫지! 
바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여러분 돈이, 진짜 무서운 게, 부모 자녀 관계도 다 깨뜨려요. 
부부관계도 깨뜨려요. 가족관계 다 무너뜨려요. 
건강 다 잃어버리게 해요. 심지어는 신앙도 다 팔아버려요. 돈 때문에! 

한번 이게 돈 문제가 걸리면 
돈 하고 비교가 안 되게 중요한 것들을 다 잃어버려요. 

이게 정상적인 생각입니까? 
완전히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는 거죠. 

서울의 어느 부자동네에 장애인 학교 건축하는 문제 때문에 
엄청난 데모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예요. 장애인 학교가 지역에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 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근데 그분들은 진심으로 그래요. 굉장히 진지해요. 
집값 떨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에요.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어요. 그 교회는 부자 교회였는데 
주님이 '가난한 교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인데도 실제로는 영이 거지인 사람들이었어요. 

왜냐면 계속 더가지고 싶고, 더 가져도 만족이 안 되고 
그래서 계속 더 달라고 하고... 

라오디게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제는 세상 관점으로만 사람을 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저 재산이 많으면 부자지요. 그죠. 그러면 '잘 산다'고 표현해요. 

근데 주님의 눈으로는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보시는 눈으로는, 우리의 영이 어떤 영인가를 보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천지에 다 소유자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자는 부자죠. 

그래서 서머나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는데, 부유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라오디게아 교회는 참 안타깝게도 가장 부유한 교회였는데 
우리 주님은 가난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주님이 보시는 눈에는 어떤 교회일까? 그게 중요한 겁니다. 
개인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우리가 탐심에 정말 사로잡혀 있는지/ 아닌지는 
헌금을 보면 알고, 남을 도와주는 것을 보면 알아요. 

지금 내 속에 내가 바알 우상을 섬기고 있나?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자인가? 
그건 헌금을 보면 알고, 구제해 보면 합니다. 

잠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여기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구제를 하느냐/ 안 하느냐? 라고 말하지 않고 
'구제를 좋아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제헌금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는데 
그걸 좋아하느냐? 하는 거예요. 

만약에 구제는 하는데,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는데 
억지로 마지 못해 하는 사람,
그렇게 그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 
그러면 아직까지 그 마음에 바알이 제거된 상태는 아니에요.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행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 할 때, 
속였습니다. 그 때문에 베드로로부터 큰 책망을 받고 죽어 나갑니다. 
그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이렇게 말해요. 

행5:3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지금 아니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뭐가 있었어요?
돈에 대한 인색한 마음이 있었어요. 

근데 베드로가 뭐라고 말해요?
'사탄이 네 안에 가득하다..' 

여러분, 여러분 안에 이 돈에 대해 인색한 마음, 
헌금하면서 아까운 마음, 
구제하는데 부담스러운 마음..
이런 마음이 들면, 

'사람이니까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 이렇게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사탄, 즉 영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바알도 섬기고 하나님도 믿을 수 있는 줄 알았다가.. 거기서 쫓겨나잖아요. 
가나안의 복을 다 잃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에요. 

저희 교회에서 참 어려운 금융위기때 
그렇지 않아도 교회 건축비 부채가 심각한데 
2008 금융위기까지 닥치면서 
교인들이 헌금할 수 있는 힘이 굉장히 없어졌어요. 

추수감사헌금도 목표보다 적어지고 
건축헌금하는 분들도 적어지고 
그러니 교회가 큰 위기에 봉착한 거죠.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이런 느낌도 들었어요. 
네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뭐였냐면 
'전 교인들에게 이 위기 상황을 알리고 
어떻게 하든지 헌금에 동참해달라고.. 이런 형태로 교인들에게 헌금 광고를 하지 말고 
오히려 헌금이 기쁜 사람만 헌금하게 하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헌금을 해도, 즐겁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받았는데, 이걸 실행하려면, 믿음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실제로 교우들이 헌금을 해주어야 
그해 그해 부채가 해결이 되고 
이자도 갚아가는 문제인데.. 

아니 '헌금이 부담되면 하지 마세요. 헌금이 기쁜 사람만 하세요!' 
그래가지고 만약 헌금이 적게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거예요. 
그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말씀이 깨달아져도,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 둘 사이에 처해 있는 우리의 믿음이 시험 받는데  

내 마음에 바알 우상이 있으면, 절대로 말씀대로 못 살아요. 
(헌금이 적게 들어올까봐) 두려워서! 

우리 장로님들과 그 문제를 논의했는데 
감사하게도 장로님들이 그렇게 하자고 받으셨어요. 

그래서 교우들에게 처음 헌금 광고를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위기에 빠졌고   *2008년 경제위기 직후 2009년초
우리 교회도 재정적으로는 많이 어렵지만 

건축헌금을 벌써 뭐 십년 넘게 하시는 분들도 있으신데 
너무 부담되시면.. 
'힘들다. 언제까지 건축헌금 해야 되냐?' 
그런 마음이 있으면 안 하셔도 돼요. 
그런데 헌금이 너무 하고 싶어서, 헌금이 너무 기뻐서... 그런 분들만 헌금하십시오." 

그리고 주일 저녁 하루를 정해서 
그런 마음이 있으신 분들만 그날 저녁 예배에 나오세요... *그해 건축헌금 작정 하는 날

그 날, 그해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주일 저녁 예배 때, 
마음에 헌금에 대해서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을 때.. 설교하는거 하고 
다들 헌금을 기쁨으로 하려고 하는 분들이 모였을 때.. 설교하는 게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말씀을 준비하는 시간부터, 
세상에 오늘 건축헌금 작정하는 주일 저녁인데 
제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기쁘죠? 

물론 몇 명이 올지는 모르겠어요. 
장로님들이 다 그거 걱정하셨어요. 
'몇 명이 올지 모르겠다...' 

그때 한 삼백 명 정도 순서지를 만드신 것 같아요. 
'한 삼백 명 정도 쯤 오지 않을까?' 

근데 실제로는 한 천 명이 왔어요. 
그게 저희 교회의 건축부채 상환의 시작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자만 갚았어요. 
근데 그 해부터 원금이 상환이 된 거죠.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 때가 2009년 연초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바알 신앙이 떠나는 것이 엄청난 기적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는지/ 아닌지를 여러분이 아닙니다. 
(구제와 헌금이 아깝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 안에, 이 바알우상, 탐심이라는 우상이 
정말 꺾어지고 떠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밤이 되기를 정말 축복합니다.

그건 여러분이 알아요. '오늘 주님이 역사하셨구나!' 
여러분의 마음에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는 거니까요.

이 탐심의 영은, 우리를 영적으로 눈이 멀게 만듭니다. 
맹인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게 만들어요. 

민22장에 보면,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발람 선지자에게 뇌물을 줍니다. 

발람 선지자가 기도해 보고 대답하겠다고 했는데 
기도 하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마라!' 
그렇게 응답받았는데도 몇 번씩 하나님께 또 기도합니다. 
왜요? 돈에 대한 탐심이 있었거든요. 

결국 나중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가라!' 하십니다. 
자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가라!' 이런 응답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 발람에게 '가라, 그래 네가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라!' 
그 말은 발람을 죽이시겠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발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허락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신이 나서 발락에게로 갑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정말 룰루랄라 하면서 가요. 

그런데 나귀가 갑자기 버티면서 안 움직이는 겁니다. 
나귀가 보았어요. 앞에 하나님의 천사가 불 칼을 들고 
이제 발람이 지나가면 그를 치려고 기다리는 걸 나귀가 봤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워요? 나귀가 꼼짝을 못하고 안 움직이는 겁니다. 
발람이 나귀를 때리고 막 야단을 치고 채찍질을 해도, 도무지 나귀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발람은 화가 엄청 났어요. 

'빨리 가야 저주를 하든지 하고 돈을 받을 텐데...' 
그때 나귀의 입이 열려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거죠. 
그래서 짐승이 자기 주인을 책망합니다.  

그제야 발람이 눈이 열려서 
천사가 칼을 들고 자기를 죽이려고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돼요. 

여러분, 탐심이 한번 들어오면 
그러면 사람은 실제로 완전히 영적으로 눈이 멀어버립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분들을 종종 봅니다. 

도무지 말이 안 먹히는 분,
한번 이렇게 돈에 대한 욕심이 딱 들어오면 
꼼짝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 돈에 대한 욕심이 한번 들면, 누가 말릴 것을 또 알아요. 
그래서 의논도 없이 자기 혼자 저질러 버립니다...

그래서 이제 목회하다가 난감한 일은 
큰 어려운 일을 덜렁 저지르고 난 다음에 
그리고 와서 어려움 이야기를 하고, 기도부탁 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아니 왜 좀 사전에 의논하시지... 
결정하기 전에 같이 기도좀 하시고 결정했으면 좋았을 것을요...' 

그러면 '누가 말릴까봐.. 그 결정을 못하게 할까봐.. 미리 이야기를 안했다' 그럽니다. 
본인이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목사님한테, 아내한테 이야기 해봐야.. 분명히 하지 말라고 그럴 거다'
그러면 본인이 저지르지 말아야 되는 거죠. 

그런데 한번 이렇게 돈 욕심이 생기면 
'이 건 하나만 잘되면, 그러면 주님, 5:5로 나누십시다.'  
뭐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거래하는 분들도 간혹 있으세요. 

어느 사모님 한 분이,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서 
금은방에 패물을 구입하려고 갔는데 
뭐 예산이 빠듯하니까, 그 예산에 맞는 것만 구입을 할 수밖에 없는데 

금은방에서야 뭘 사러 온 지 모르니까, 엄청 비싼 패물들을 보여주더래요. 
근데 뭐 살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그래서 뭐 구경하는 거야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건 얼마예요. 저건 얼마예요?' 엄청나게 좋은 보석들을 이렇게 봤어요. 

그리고 그냥 눈요기로, 아이 쇼핑을 한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왔는데 
그날이 수요일인데, 수요일 저녁 기도회 때 말씀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는 거예요. 

계속 보석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입니다.
그냥 잠깐 본 거예요. 살려고 본 것도 아니고...
그래도 계속 보석만 눈 앞에 왔다 갔다 하지 
수요기도회 내내,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후4:4절 말씀이 생각났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4:4

이 세상 신이 이게 바알입니다. 
탐심, 그 자체입니다. 

이게 한번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면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더 이상 비취지만, 자기는 전혀 깨닫지 못해요. 
말씀도 귀에 안 들어와요. 기도도 안 돼요. 
이런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는 겁니다. 탐심이 진짜 무서운 거죠. 

'가나안의 복'을 누리는 비결이 있어요. 하나님이 다 가르쳐 주셨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광야를 지나서 먹고 살만한 가나안 복지를 주셨다면 
그 가나안 복지를 계속 누리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게 뭐냐면 '주라!' 입니다. 주라! 완전히 탐심과 반대 정신이죠. 

탐심은 계속 움켜쥐는 겁니다. 
눅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에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앞에 재물로 귀하게 쓰임 받을 사람이라면 
그러면 뭘 보고 아느냐 하면, '이 사람이 주는 사람인가?' 

'주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누르고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계속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흘려보내고 흘려보내도록 
그를 쓰신다는 거죠. 

꼭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시는 것은 

내가 가지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더 이상 주지 않으면.. 그쳐버려요. 
하나님이 더 이상 그에게 재물을 맡길 이유가 없는 겁니다. 

주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계속 흘려보내는 것도 수고로운 일이죠. 

그런데 그게 너무 기뻐요. 
'하나님 너무 감사하네요. 이렇게 줄 게 또 있네요. 또 줄 게 있네요. 또 줄 게 있네요.' 
이런 사람이 가나안의 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더 이상 탐심이 나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뭘 줄 게 있다고?' 
이렇게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면, 생각을 바꿔보셔야 돼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뭘 줄 게 있다고 자꾸 주라 그러시나?' 

'왜 먹고 살기 힘들게 됐을까요?' 하는 거죠.
왜 하나님은 좋으신 나의 아버지신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내가, 왜 먹고 살기가 힘들게 됐을까요? 

'주라 그러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눅6:38
이 말씀의 사이클에 자기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거죠.

*사이클 : 내가 주면, 하나님이 주시고, 또 내가 주는 일이 반복되는 사이클 

'먹고 살기 힘드니까 사실은 주는 것을 힘써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야죠.

이 주는 것이, 농사를 짓는 농부의 씨앗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농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씨를 심어야 뭘 거둘 것 아닙니까!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농부가 씨를 안 심으면 
그러면 진짜 굶어죽는 거죠. 그래서 농부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씨앗은 안 먹는다고 그러잖아요. 
씨앗은 무슨 일이 있어도, 봄에 심어야 되기 때문이거든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헌금하는 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 
다 영적으로는 씨를 심는 겁니다. 

고후9: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리니'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유 중에, 어떤 것은 먹을 거고 
어떤 것은 심을 것입니다. 다 먹어버리면 안 돼요. 

이미 다 먹으신 분은, 오늘 회개하고, 주님이 정결하게 해주신 것을 믿고 
이제부터 주님이 주시는 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돼요. 
먹는 게 있고, 심을 게 있다는 것을!               

심을 것을 먹어버리면 안되요. 
그건 정말 복이 없게 사는 거고, 다시 광야로 쫓겨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탐심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나름대로 탐심 때문에 뭐 결단도 해보고, 결심도 하고 
또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그게 의지대로 안 됩니다. 

영적인 문제는 내 의지로 해결되지 않아요. 
해결책은 오직 하나! 
세상보다 더 크신 예수님을 진짜 만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이 좋게 느껴지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이 욕심, 인간적인 본능의 욕심 
그걸 마귀가 계속 부추기는 거죠. 그것을 경로로 마귀가 틈타는 거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가 아주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보이게 만들어서 따먹게 만들 듯이 
실제로는 그거 먹으면 정말 영혼이 죽는 건데, 그게 좋아 보이는걸 어떻게 해요.
 그 참 문제인 거죠. 그걸 어떻게 극복하죠? 

예수님을 정말 만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만나면, 그러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버려요. 

삭개오가 그랬죠. 삭개오가 돈 외에는 믿을게 없는 사람이었고 
매국노라는 욕을 먹어도.. 
'거지도 세리가 주는 동냥은 안 받는다'고 할 정도로 
그 정도로 모욕을 받아도.. '돈이면 제일이다' 생각했던 사람이 삭개오인데,

근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그리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누구에게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4갑절이나 다 갚아주겠다고..'

돈보다도 더 좋은 주님을 만난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예수님은 돈보다 더 좋은 주님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문제 앞에서 
내가 진짜 예수님을 만났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돈보다 더 좋아요. 
그래서 더 이상 이제는 돈돈 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 사람은 예수님을 진짜 믿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내가 예수를 믿지만, 여전히 돈돈 해요. 
오늘도 그 문제 때문에 너무 너무 힘들어요. 
그런 분들은 죄송하지만, 아직 진짜 예수님을 만난 건 아니에요. 

여러분을 성령님이 오늘 금요철야에 오게 하신 것은 
돈보다 더 좋은 주님을 만나는 눈을 열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을 기대하세요. 

'나는 여전히 돈이 좋은데..' 이런 마음으로만 앉아 있지 마시고 
'주님이, 내게 돈보다 더 좋은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겠구나.. 
도대체 그런 것은 어떤 세계일까? 
도대체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궁금하잖아요. 

그런 마음이 있으신 분들은, 주님이 다 그 은혜를 주세요. 

빌3:7~9절까지 참 유명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7~9

예수님을 진짜 만나지 못한 사람은, 돈이 너무 좋아요.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데도.. 

돈 때문에 또 계속 걱정 근심 염려가 많고 
그러니까 교회를 와도, 예수를 믿어도.. 늘 돈 돈 하는 거죠. 

돈이 좋아서도 돈이고, 돈 때문에 또 걱정해서 돈이고... 
돈 이상으로 더 좋은 게 없으니까요. 

그렇게 좋을 정도로 예수님은 아직 못 만났으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에 돈 우상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해결이 안 돼요. 
헌금에 대해서 설교를 들어도 
구제에 대해서 말씀을 들어도.. 결국은 순종이 안 됩니다. 

구제나 헌금을 해도 아주 인색한 마음으로 하게 돼요. 
근데 사람이 다 똑같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어떻게 바뀌냐 하면 
이 세상에 유익하던 게 다 해로 여겨지고 배설물처럼 여겨져요. 

사람이 해로운 것을 왜 붙잡겠어요? 
여러분 독사 붙잡고 살고 싶어요? 
독사가 저 멀리 있다고 해도 그냥 기겁을 할 정도죠. 

해로운 것에 대한 반응이 있잖아요. 
오죽하면 우리가 지금 다 마스크 쓰고 있잖아요. 
우리는 해로운 것에 대한 반응이 확실합니다. 

근데 돈욕심이 그렇게 해롭게 여겨져요. 
심지어는 배설물처럼 여겨져요. 

배설물을 가지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오늘 배설물을 통에 담아서 지금 계속 들고 다니는 분 계십니까? 

누가 가져갈까봐, 계속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 있어요?
없습니다. 그게 배설물입니다.

배설물처럼 느껴진다면.. 그러면 된거죠. 
세상 유익, 세상 재물의 욕심.. 다 해롭게 여겨지고 배설물처럼 여겨지면 
그러면 버리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요. 

이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 한 분 이면 충분한 믿음을 가졌던 
사도마을의 고백입니다.

온누리교회에 고 장응복 장로님이라고 계신데, 
9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의사분이십니다. 

진료실도 아주 작고, 병원도 얼핏 보기에는 조촐한 병원인데 
한 30십 여년을 병원에서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시면서 
이분이 130억을 한동대학에 기부를 하시고, 그리고 돌아가신 거죠. 

그런데 이 분이 한동대학에 그렇게 기부하게 된 이유는 
고 김영길 총장님이 한동대학세우실 때 
그 학생들에게 늘 강조했던 것이 "공부해서 남 주자!" 였습니다.

'우리가 제발 좀 공부 제대로 해서,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 되자!' 
그게 그 대학교의 중요한 정신인데, 그분이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 그러면 나는 돈 벌어서 남을 주자!' 
그래서 그분이 이제 돈을 벌어서, 다 한동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을 한 겁니다. 

한동대학교 측에서는 너무 감사하니까, 이 일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데 
장로님은 절대로 알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동대학교에서 고민 고민하다가 
이제 장로님도 돌아가실 때가 가깝고.. 그래서 부탁을 드렸대요. 
'돌아가시면 기부사실을 알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서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죽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알려도 된다!'

그래서 이번에 돌아가시고, 그 사실을 이제 방송에서 
또 신문에서도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사실 은밀하게 섬기는 일을, 남몰래 들키고 싶은 유혹이 있잖아요. 
내가 은밀하게 했는데.. 남몰래 하다가 들켜버렸어요. 그래서 알려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또 싫은 것은 아니고.. 이런 묘한 심정이 있는데 

이 장로님은 끝까지, 
절대로 자기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절대 말을 안 하는 걸로... 

그리고 그래서 이번에 장로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세상에 알려진 거예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있다니까요. 

돈 돈 하는 세상 같아도 
이렇게 하는 분이 있다니까요.. 
그게 정말 놀랍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런 분은 참 별나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주님을 만났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도대체 그런 은혜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여러분이 주님을 정말 만나고자 하는 그 소원과 갈망이 있어야 돼요. 

그 장응복 장로님은 130억 이나 그렇게 기부하셨지만 당신은 차가 없었어요.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시고... 

부인 되시는 권사님이 뜨개질해서 만들어준 옷, 그런 옷을 즐겨 입으시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어려운 환자들이 오면 치료비를 안 받고 

또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직접 왕진가서 그 사람 치료해주고... 
뭐 이렇게 사신 거에요. 

당신 자신으로서는 굉장히 좀 검소하게 사셨어요. 
그런 엄청난 돈을 기부하셨을 분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요! 

▲빌4:11~13절에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느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어떤 처지에서도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도 바울이에요. 

사도 바울은 이제 더 이상 뭘 더 소유하고, 가지고.. 하는 이런 마음이 없었어요. 
어떤 처지에 두셔도 감사해요. 그 이유가 뭐냐면, 
주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에요. 

사람으로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지 안에서 (풍부든지/궁핍이든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늘 사도 바울이 예수님 안에 거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참 잘생긴 목사님 한 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분이 외모 열등감이 그렇게 심했다는 거예요. 

저는 그 목사님이 탈랜트 출신인 줄 알았어요. 
'근데 외모열등감이라니 웬일이야?' 근데 사실 이었어요. 

사실 수술을 하고 나니까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예전에는 사시 였습니다. 
그게 어릴 때부터 자기 열등감이었어요. 
사람들이 놀리고, 친구들이 놀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보고 
그러니까 사춘기를 지나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수술을 못했어요. 너무 가난하니까! 
아버지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찢어지게 정말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게 됐는데, 신학교는 들어갔으면서도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끊어지지 않았어요. 
'왜 나를 이렇게 외모도 이상하고, 이렇게 가난하게 나를 만드셨나? 
이럴 거면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나?'

한번 이렇게 분노가 솟구치면, 강대상이 막 부서질 정도로 손으로 치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음란물 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사모님과 아이들은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어요. 

교인들은 아마 그 목사님의 실상을 잘 몰랐을 거예요. 
당신 자신이 그렇게 고백을 하는데..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근데 이분이 확 바뀌진 역사가, 제가 주관하는 목회자 기도모임에 오셨었어요. 
그날 말씀을 전하신 분이 박보영 목사님입니다. 

그 박보영 목사님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리고 이제 천국 복음 전하며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렇게 주의 종의 길을 가려고 헌신하면서 
가진 재산을 다 나눠주고, 의사 면허 반납하고... 
아내 조차도 그 길을 함께 안 하겠다고 해서 떠나가버리고... 

그러니까 불량 청소년들이나 데리고 공동으로 생활하는 이런 목회를 시작을 한 겁니다. 
정말 잘 나가던 의사고, 부자고 그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부랑아들과 같이, 경기도 안성이라는 곳에서 거기서 목회를 하셨어요. 

그렇게 하는데 한번은 당신의 아들이 찾아왔더래요.
엄마랑 같이 사는 아들이 아버지 보고 싶다고 
주일날에 예배를 드리는데 아들이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얼마나 반갑고 좋은지... 

근데 그때 마음에 그 부랑아들을 내 자녀처럼 삼겠다고, 그동안 데리고 살았는데 
자기 친아들하고 그 불랑아들 하고, 쳐다보는 자기 눈이 달라지더래요.

그때 박목사님 마음에 '이거 큰일이다. 결국 애들도 알지 않겠나?' 
결국은 '자기 아들은 저렇게 좋아하고,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은 사실 다 빈말이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기를 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들에게 '집으로 가라!' 그랬더니
그 친아들이 얼마나 화를 내는지... 그러면서 울면서 가더래요. 

그래도 자기에게 주신 부랑아들, 그 아이들을 낙심시키지는 않아야 되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아버지로서 얼마나 마음에 속상했겠습니까? 

근데 부활주일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연락이 왔더래요. 
가슴이 막 뛰더래요. 아들이 다시 아버지를 찾아오겠다고... 

근데 설교준비가 안 되는 거예요. 아들이 온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마음이 흥분이 되고, 보고 싶고 그런지... 말씀 준비에 집중이 안 돼요. 

그래서 연락을 했대요. '오지 마라!' 
뭐 그런 내용을 간증을 쭉 하셨어요. 

그날 이 (사시) 목사님이 그 이야기 듣고 꼬꾸라진 거예요. 
정말 통곡을 하신 거죠. 

그러면서 간증을 하셨어요. 
'그날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주의 종의 길을 이렇게 가는데 
어떤 사람은 왜 안주냐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떼를 쓰고 원망하는지...'
그것 자체가 너무 하나님 앞에 죄송하더라는 거죠. 

주신 것도 다 버리고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저런 사람도 있는데.. 
그게 그날 다 깨달아진거죠. 
그리고 자기 형편과 처지가 그냥 감사로 나오더래요. 

생각해보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게 실제로 자기 마음에 영이 확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불평과 원망 염려의 그 마음이 떠나고 
감사와 찬송이 나오는  거죠.

사모님도 치유가 됐어요. 
목사님도 사모님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여보 나 용서해줘!' 그렇게 비는데 
그 사모님이 마비가 있었는데 그날 마비가 풀렸어요.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통로가 되려면 
우리 속에 바알이 끊어져야 돼요. 제거되어야 돼요. 

▲근데 말씀해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땅에 있는 탐심을 버리는 것도 어려운데, 죽이라니, 이게 가능하냐?' 

이미 된 일이에요.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 옛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어요. 
그때 그 옛사람 속에 탐심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할 일은 
주님이 나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셔서 
탐심의 종이 였던 나도 이미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여러분,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이 죽은 사람이 영이 살아나는 겁니다. 영이 죽은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사실 지금 엄청난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 
이 사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 영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어요. 그래서 오늘 내가 여기까지 왔어요. 
하나님 이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를 붙잡으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에, 여러분 속에 더 이상 탐심이 역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육신이 있으니까 탐심의 역사하는 거죠. 
그렇지만 내 육신이 죽었다고 고백할 때, 더 이상 탐심이 여러분을 사로잡지 않아요. 
바알이 떠나가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극장이 펼쳐집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극장이에요.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찬양하고 함께 기도할 텐데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제 안에 있는, 이 땅의 지체가 죽음으로 처리되기를 원합니다. 
정말 제 안에 더 이상 탐심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제가 어릴 때 가장 부모님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게, 부모님이 돈 걱정하시는 거더라고요. 
걱정하실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걱정하셨겠죠. 

그런데 어린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돈 걱정하는 게 
그렇게 제 마음이 힘들고 아프더라고요. 
집에서 여러분의 자녀를 마음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탐심이나 염려가 떠나면 
여러분의 가정은 오늘로 확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