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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3:1~16 주의 일을 다시 새롭게 하소서
LNCK
2022. 3. 29. 16:44
◈주의 일을 다시 새롭게 하소서 합3:1~16 021.06.26.출처
*'쾌락주의 관점 (아래에 네모 박스)은 꼭 보세요!
오늘은 하박국 강해 네 번째 시간입니다.
드디어 하박국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내용입니다.
◑1. 첫번째 부분은 <고난의 시대에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입니다. 합3:1~2
합3:1 '이것은 시기오놋 형식에 맞춘 예언자 하박국의 기도입니다.
:2 오 여호와여, 나는 주의 명성을 듣고 두려웠습니다.
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을 이 시대에 다시 새롭게 하셔서
이 시대에 알려지게 하소서. 진노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소서' (우리말 성경)
1절의 '시기오놋'은 시편에 나오는 '식가욘'의 복수형인데,
'감정적으로 들뜬' 이런 뜻입니다. 곡조의 이름, 한 형태입니다.
이런 곡조의 맞춰서 그가 감정적으로 고양된 찬양과 기도를 올린 것이죠.
하박국은 두 번의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두 번의 대답을 들었고
그리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시기오놋 형식으로) 찬양시, 기도시를 올려드린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 본문을 보면서, 하박국은
성전에서 전문적으로 찬양사역을 하던 레위인일 것이다... 이렇게 추정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였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과 악한 세상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느냐?'
이 문제에 관해서 굉장히 고통스럽게 고민을 했던 것이죠.
2절에 '나는 주의 명성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명성이 무엇인가요? '여호와께서 역사 가운데 행하신 일'입니다. :2
애굽의 바로를 징계하시고 홍해를 가르치고 그들을 건너게 하시고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십계명을 주시고
또 요단강을 가르시고, 가난한 땅을 정복하게 해주시고
사사들을 통해서 주변 민족들에게 승리하게 하신
이 모든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
그리고 그 일들로 인해서 열방이 '정말 이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라고 인정하게 된
그 하나님의 명성을 의미합니다.
자 이게 무슨 말인가요?
우리도 하박국과 똑같은 현상을, 인생에서 경험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가 갑자기 좁아지는 때가 있는 거예요.
합 1장과 2장에서는 그의 시야가 좁았던 것이죠.
마치 탁 트인 들판에서는 주변 환경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죠.
그런데 나무가 울창한 미로 속을 지날 때는, 내 주위 전체가 보이지 않고 일부분만 보이죠.
그러다가 그 미로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면, 정말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좁아진 시야로 인해서 '여기에는 더 이상 길이 없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하시면 안 되는 거다..'
'하나님이 역사 경영을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된다..' 이런 원망이 나오게 되는 거죠.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미로의 막다른 골목에서 산 정상으로 들어올리시면
드디어 시야의 전체가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왔던 길, 그리고 내가 앞으로 갈 길과, 출구까지 다 보이는 거예요.
그때 탁 트인 시야를 가짐으로 인해서, 그동안 가졌던 답답한 마음들이 일순간에 다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지만
교만한 바벨론을 다시 또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역사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실 것이다!'
하박국은 이런 미래사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지금은 너무나 좁게 보고 있다가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미래사가 보이니까
그가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역사, 과거사도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합3:3~15 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던 과거사에 대한 찬양입니다.
자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명성을 듣고 두려웠습니다. 겸비하게 된 거죠.
그전에는 '이런 강심장이 있나?'할 정도로, 하박국이 하나님께 막 대들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사, 미래에도 펼쳐질 일들,
그리고 과거에도 이미 펼치셨던 하나님의 구원사를 기억해보니까
하박국은 갑자기 겸손해진 것이죠. 그리고는 두 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첫번째는 '주의 일을 이 시대에 다시 새롭게 하소서!' :2
두 번째는 '진노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소서!' 2b절
저는 본문, 이 하박국의 기도를 딱 읽으면서
하박국의 답답했던 심령과 기도가.. 순간 딱 터지게 되었구나, 해결되었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몇 날 며칠을 기도해도, 몇 달을 기도해도
계속 영원히 답답할 때가 있어요.
나는 땅에서만 외치고, 하나님은 천상에 계시는데
응답이 없어진 것 같은...
그런 하나님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때...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기도가 뻥 뚫리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보좌앞으로 나의 기도가 확 달려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이 하박국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이심전심이 되는 거예요.
자 이 두 가지 기도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1. 첫번째는 '주의 일을 이 시대에 다시 새롭게 하소서' 3:2
개역성경에는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부흥'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런데 두 가지 표현,
-다시 새롭게 한다.
-부흥시킨다.
영어단어로는 revive 라는 단어를 썼는데 다. 똑같은 개념입니다.
여러분 '부흥'이라는 것은 (다시 '부', 흥할 '흥')
과거에 흥했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해요.
오늘날 한국 교회는 부흥이 무엇인지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자
마치 과거에 하나님이 일으키셨던 부흥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 상태가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구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 세대가 다시금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케 하여 주옵소서!
한국 교회가 다시금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우리보다 부흥을 더욱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온전히 찬양을 받으시고
또 인간은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동역의 관계를 이루는 것,
이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온 세상 가운데 알려지는 것,
이것(부흥)을 너무나도 원하는데
하박국이 그 시대 상을 보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이
마치 그것이 진실이 아닌 것처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것이
하박국은 마음이 어려웠던 거죠.
네, 우리의 마음도 이 시대를 보면서, 교회를 보면서,
또 자신의 인생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데
이게 오히려 역방향으로 가는 것 같으면
우리 영혼이 답답한 거예요. 답답한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께 '주의 의를 다시금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2. 두 번째는 '진노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소서' :2b
이 표현이 참 놀랍죠. 진노 와 자비에 동그라미 치시겠어요?
하나님은 공의로, 죄악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또한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죠.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과 고통을 기뻐할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고, 부모님에게 책망을 듣는 것을, 기뻐할 자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회복과 구원과 성장을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라면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인류역사 라는 거시적인 측면,
아니면 여러분 각 개인의 인생이라는 미시적인 측면,
이 두 가지에서
고난과 고통의 문제가 우리에게 찾아오면
일단 사람들은 '악!' 소리가 나게 돼 있어요.
현실이 힘든 건 사실 힘든거거든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게 있다고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여러분 인류사와 개인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관점의 오류를 주의하셔야 됩니다.
제가 오늘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쾌락주의적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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