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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59편 모든 나라들을 조롱하시리이다
LNCK
2022. 4. 6. 18:18
◈모든 나라들을 조롱하시리이다 :8 시59:1~17 여러 설교 정리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표제)
배경은 삼상 19장입니다.
이 때는 사울이 본격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은 시점입니다.
신하들에게도 다윗을 죽이라고 말했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그를 직접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그 밤에 다윗은 도피하고 사울은, 사람들을 보내 다윗의 집을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알아챈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을 창에 내려 도망치게 한 사건이
이 시편의 기본적인 배경이 됩니다.
이 배경은 사무엘상 19장에 언급된 다윗과 사울, 그리고 미갈의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주1)
본문을 읽을 때 의아스런 것은,
다윗은 자기를 공격하는 자들이 분명 사울과 그 신하들인데,
그들을 '모든 나라들(고임)'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블레셋이나 암몬처럼요.
그들과 손을 잡고 내통했다는 뜻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모든 나라들, 열방'을 뜻하는 히브리어 '고임'은
-이방인들 heathen 을 뜻하기도 하며 (비하적 표현)
-메뚜리 떼나, 짐승 떼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비하)
-본문에 '개'라는 표현이 몇 차례 나오는데, 의미상 '모든 나라'와 같은 뜻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긴급한 도움을 간구함 (1~7절)
1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1~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매우 긴급한 도움을 요청합니다.
“나를 건지시고”, “나를 높이 드소서”, “나를 건지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일어나 치려는 자'
여기서 '일어나'(쿰)는 문자적 의미의 '기립'의 의미보다는
어떤 중요한 행동을 하기에 앞선 마음의 결단의 의미를 갖습니다. (창19:14, 35:1, 삼상16:12)
'치려는'은 히브리 원문 중에는 없지만, 그러나 문맥의 의미를 살리려는 삽입입니다.
1절 끝에 나오는 ‘높이 드소서’라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사가브’를 번역한 표현으로
‘대적들이 접근할 수 없는 높은 곳에 둔다’는 의미입니다.
2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
다윗의 원수들(사울, 조력자들, 자객들)의 잔인성을 보여줍니다.
'피흘리기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한 이해 관계나 원한 관계로 인한 싸움의 정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즉 폭력이나 살인이 아예 삶의 방식으로 굳어버린 상태를 나타냅니다.
한편 성경은 한결같이, 피흘리는 데 빠른발을 지닌 자들에게는 파멸이 예비되어 있음을 예언합니다.
(잠1:16-19, 롬3:15, 16)
3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엎드려 기다리고'
이는 야생동물이 사냥할 때의 웅크린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와 같이 대적들이 다윗을 치려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자객들이 다윗의 거처 주변에 잠복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4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다윗은 이런 위험에 놓이게 된 이유에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는 3~4절에서, 이 사실을 세 차례나 강조합니다.
다윗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고
이런 위험에 처할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5 주님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오니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마소서 (셀라)
'일어나 모든 나라들을 벌하소서'
다윗이 자기 대적과 자객을 '모든 나라, 열방'으로 칭한 것은 의아합니다. 그 이유는,
여기서 '모든 나라, 열방'(고임)은
-광범위하게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열방을(창12:2, 사1:4),
-좁게는 이방 백성, 즉 이교도들을 뜻한다.
여기서는 '이교도'를 뜻합니다.
즉 다윗은, 자신의 대적과 자객들을 '이교도'로 심하게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그 행위가 '이방인, 이교도'와 같다는 것이죠.
'이방인, 이교도'는 당시 이스라엘 문화에서 아주 끔찍한 비하요, 욕이었습니다.
6 그들이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다윗은 자신의 대적을, 밤이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들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14~15절에도 비슷하게 반복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삼상19장에는 사울이 밤에 다윗을 죽이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자객들과 그들을 보낸 자들이 밤이 늦도록
다윗에 대한 비방과 저주를 그치지 않았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삼상19:11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다윗에 대한 살의가 극히 잔악한 말로써 표출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래 시57:4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시57:4
'누가 들으리요'
시편 9편과 10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악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75:7, 10, 시92:6)
하나님을 진실로 믿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오판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그들을 '교만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12
악을 행하면서도,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께 처벌받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큰 '교만'입니다.
◑ 하나님을 주목함 (8~15절)
다윗의 기도는 뒤로 갈수록 확신으로 변합니다.
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면서 “누가 듣겠냐”고 비아냥거리지만, :7
다윗은 하나님께 ‘일어나 이 상황을 살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8절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보고 계심을 말합니다.
8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며 모든 나라들을 조롱하시리이다
'비웃으시며'
이 구절은 시2:4절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욥9:23, 잠1:26)
하나님의 이 웃음은 적들에 대한 비웃음입니다. 악인에 대한 경멸의 웃음입니다.
'모든 나라들'
다윗이 자기 대적을 '모든 나라들'로 표현한 것은,
원어가 '고임'인데, 열방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방 heathen, 또는 메뚜기 떼, 짐승 떼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방을 그렇게 취급했으니까요. 여기서는 이방인들, 짐승 떼를 뜻하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9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바라리이다'
이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무고히 자신을 해하려는 대적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을 기다리고, 지켜보겠다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는 불평불만을 하나님께 토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빌2:14
하나님께나 주위 사람들에게나 '투덜거리거나 다투지 말라'는 뜻입니다.
10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 (헤세드)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늘 따라다닙니다.
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11절은 표현이 좀 묘합니다. 하나님이 대적들을 죽여버리시면,
나머지 백성들이 어떤 교훈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다윗은 염려합니다.
대신에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그러니 '본보기'로 살려두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신 '증인'들이 다 죽어버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좀 섬뜻합니다만,
다윗이 무고히 당하는 괴로움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되는 탄원입니다.
일찍이 애굽 왕 바로를 순간적으로 멸망시키지 않고 10재앙을 통해서 서서히 멸망시키심으로써
당신의 능력을 온 세상에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흩으시고'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로 말미암아 정처없이 유리, 방황하게 되는 일이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발생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신28장, 레26장에 예언되었죠.
12 그들의 입술의 말은 곧 그들의 입의 죄라 그들이 말하는 저주와 거짓말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7절에도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그들의 말은 '저주와 거짓말'이었고, 그것은 '교만'이었습니다. :12
다윗을 해치려는 그들이 교만한 것은 '누가 들으리요?' 한 것입니다. :7
자신들이 악행을 저질러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교만입니다.
사울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그의 시신이 벧산 성벽에 못 박혔습니다.
결국 '사로잡힌' 셈입니다. :12
13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어지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 (셀라)
14 그들에게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15 그들은 (개처럼)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저물어 돌아와서'
자객들이 다윗의 집을 저녁에 잠복하기 시작한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객들의 행동을 팔레스틴에 살던 사나운 개들의 야행성 움직임을 묘사하듯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잔악성 혹은 야만성을 강력히 암시합니다.
'개'(칼레브)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대단히 불결한 동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일례로, 사람의 죽은 시체도 먹었으며(왕하 9:36),
성경에는 '개'에 관해서 약 20차례 언급되는데, 반려동물로 키우며 사랑한 예는 나오지 않고
모두 부정적 의미입니다. 삿7:5, 욥30:1, 왕상14:11, 왕상21:19, 시68:23, 렘15:3, 마7:6를 보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개들은, 그레이하운드 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찬송함 (16~17절)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16~17절에서 다윗은, 매우 긍정적으로 시를 끝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악한 자들이 자신을 핍박하여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나의 힘이시여'
이 구절이 9, 16, 17절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도는 힘과 안전함 그리고 자비하심을 찾고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담대하게 신뢰하면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적용
▲1. 누가 나에게 어둑컴컴한 밤에, 자객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 집 근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게 남의 일이면 별 일 아닌데, 나의 일이면 온 몸에 털끝이 곤두서는 일입니다.
꼭 자객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사업상의 이유로, 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서
우리도 다윗처럼, 포위되고, 사방으로 공격을 받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보통 세 가지 반응을 나타내 보이게 됩니다.
1) '개'(본문의 표현)들에게, 자기도 개처럼 같이 으르렁 거리며 싸우는 사람,
2) 그들에게 겉으로 분노와 화를 내색하진 않아도, 하나님께 원망하고 대드는 내성적인 사람
3) 정답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
16~17절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윗은 그 와중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이런 다윗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다윗 속에는 뭔가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다윗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봐, 다윗은 대단한 빽이 있나봐!'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8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며 모든 나라들을 조롱하시리이다
9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10 나의 하나님이 그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하나님이 나의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가 보게 하시리이다
8절에, 하나님이 그 원수들을 비웃으시고, 조롱하신다는 것입니다. .. 이게 다윗의 믿는 구석이었죠.
9절에, 하나님이 자기 요새이시고, 자기는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미 골리앗을 물리친 경험이 있고, 또 여러 차례 승리를 맛 본 경험이 있는 다윗이..
잠시 떨리는 상황이지만.. 결국은 떨지 않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영접하신다고 했는데, '영접하러 나오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자기를 도우시러 나와 주실 터이니.. 확실한 '믿는 구석'을 가진 셈입니다.
▲2.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9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니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그럼 나도, 다윗처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그의 골리앗을 물리친 경험이나, 그 이전부터 출발합니다.
어쩌다가 한 번 반짝 승리한 경험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된 승리의 경험이, 그에게 '승리의 확신'을 준 것입니다...
▲3. 우리는 기도를 '일반적으로, 뭉텅거려' 할 때가 많습니다.
'병이 났습니다. 고쳐주소서, 제가 힘듭니다. 도와주소서!'
그런데 본 시편을 보면, 다른 시편들도 그렇지만,
다윗이 자기를 해치러 온 자객들에 대한 위급한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구체적으로 드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6 그들이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7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15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이와 같이 우리들의 기도도, 가급적 좀 더 '구체적이면' 좋겠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장 생활은 요즘 어떻는지
구체적으로 부모에게 얘기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보통 자녀들은 '학교 잘 다니고 있어!, 직장 다닐만 해!' 하고
짧게 한 마디로 끝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짧게 몇 마디로 끝내는 기도보다는,
다 아시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상세히 아뢰는 자녀를 더 좋아하고 신뢰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그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주1)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등장으로,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 전체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용사에게는 자신의 딸을 주고 세금을 면제해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후 사울은, 백성들의 다윗을 칭송하는 소리를 소화해내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사울은 자신의 맏딸인 메랍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계속 수행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다윗을 죽이려는 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 약속을 어기고 메랍을 다른 사람의 아내로 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다른 딸 미갈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수하들을 시켜 두 사람의 결혼을 부추기며
이번에도 터무니없는 결혼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100개가 결혼 지참금이었습니다.
포피 100개를 얻기 위해서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기대와는 달리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200장을 구해 바쳤고
어쩔 수 없이 사울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자신의 사위가 된 다윗을 향한 적개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사울에게 다윗은 사위가 아니라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대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죽임으로써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삼상 19:5).
요나단은 다윗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 사울에게 변호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은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하나님 앞에 진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