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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편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LNCK
2022. 4. 12. 07:59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7 시2:1~12 여러 설교 정리
시편 1편과 2편을 '하나의 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제 대세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1편에는 표제가 있는데, 2절에는 없고,
1:1절의 '복있는 사람은..'과
2:12절의 '여호와께 피하는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를 수미쌍관법 inclusio 로 보기 때문이죠.
이렇게 볼 때, 2장에서 나타나는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시1:6(마지막)절에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 악인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시1편과 2편은 시편 전체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통치가 영원히 지속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1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며 지킬 수 있느냐고 물으면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2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쉽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게 하셨는데,
그 방법이 바로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의 가르침과 훈련을 잘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편은 1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종에 대한 약속입니다.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대적함 (1~6절)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어찌하여 why'
이 말은 좌절감을 나타내는 의문사가 아니라
이방 나라들의 반역적 행위에 대해 놀라움과 조소를 나타내는 의문사입니다.
시인의 이러한 놀라움의 표정은 다윗 언약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죠. (삼하 7:8-16)
그러므로 이 약속을 굳게 믿었던 시인의 눈에는
지금까지 예루살렘의 왕에게 지배를 받아왔던 이방의 나라들이 반역을 시도하고 있는 사실이
대단히 의외의 일로 가소롭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여기서 열방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었던 이방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넓은 의미로 볼 때는, 이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세상적인 사람들을 뜻합니다.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여기서 군왕들이란 일차적으로 암몬, 에돔, 그리고 모압과 같은 나라들의 왕들을 지칭합니다.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관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죤'은 주권자, 군주를 의미하는 말로서 위의 군왕과 동의어입니다.
'서로 꾀하여'는 문자적으로 '함께 모이다'라는 뜻이죠.
이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서로 연합하여 모의했음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기름 받은 자'는 '메쉬야'죠,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왕을 의미합니다.
이방 나라들은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함께 반역을 꾀하였습니다.
한편 본절의 메시야는, 궁극적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맨 것'과 '결박'은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상태를 의미하며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것이든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귀찮게 여기고
자기들의 육체적인 자유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여기서 '하늘에 계신 자'란 '하늘(보좌)에 앉으신 자'라는 뜻으로
이는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바른 지식으로 말미암아
1절에서 그는 세상 나라들의 반역 행위에 대해 그토록 놀라워했던 것입니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내가'는 원전에 강조 어법으로 나옵니다. 보통은 인칭대명사를 동사에 포함시키나,
여기서는 인칭대명사 '아니'를 써서, '내가'를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저자는 다윗 왕조의 왕을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께 순종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의 지도를 받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종'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종'을 대적하는 행위는,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언행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 언행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면, 신약의 '성령훼방죄'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이 시키신 사역을 (그의 종들을 통해서) 수행하시는데,
그런 사역을 두고서 '귀신이 들렸다, 마귀의 역사다'라고 지속적으로 혹평하는 것은,
신약에서는 성령훼방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훼방한다는 뜻이죠.
그런 일은 매 시대마다 있었는데, 매 시대마다 마귀가 있으니까요. 다윗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시온의 왕의 통치 (7~12절)
1~6절이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의 왕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장면이라면
본절은 세우심을 입은 왕이, 하나님에 의해 자신이 기름부음 받아 셰워졌음을 선포하는 장면이다.
7 내(다윗)가 여호와의 명령 decree 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명령 decree'
왕의 칙령을 뜻하는데, 보통은 한 인물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인준하는 증빙 문서를 의미합니다.
그 명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명령(왕의 칙령 decree) 의 내용은 다윗 언약인 삼하 7:14절과 일치합니다.
다윗 언약에서 다윗과 그의 후손은 '여호와의 양자'로 선택되었습니다.
여기서 양자됨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여받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다윗 계열의 왕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땅을 기업으로 받고
아울러 그의 대적들을 심판할 권세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양자)이었죠.
한편,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된 시온의 왕은 신약 시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들어가, 본절을 인용하며
본절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설교했습니다.
행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1:5, 5:5 참조)
성경은 이중적으로 해석합니다. 그 당대에는 다윗과 그 후손을 뜻하며
이는 동시에 다가올 미래의 그리스도를 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2편을 그리스도에 대한 시로 해석하는데,
이런 그리스도 왕의 통치를 받는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내게 구하라'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기름부음 받은 자의 특권 중 하나입니다. (시20:4, 21:2, 4, 삼하24:12, 왕상3:5).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신 사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는 왕같은 제사장인 신약 성도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벧전 2:9)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선택된 왕의 아버지이신 주 하나님은 온 우주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온 땅을 물려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여기서 아들은 상속자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마 21:38;갈 4:7)
그리고 '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겠다'는 표현은
'그의 통치가 온 세상에 미칠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한편, 이 우주적인 통치는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에게서 실현되었습니다.
따라서 본절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우주적인 통치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 그릇같이 부수리라'
혹자는 '깨뜨린다'는 단어가 파괴적인 용어이므로
이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계시록에서 세 번이나 그리스도의 통치와 관련되어 인용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묘사한 구절임에 분명합니다. (계2:27, 12:5, 19:15).
그리스도의 통치에는 평화적인 요소와 아울러 악한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심판적인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애굽의 바로나 아각 사람 하만 뿐만 아니라,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스토리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질그릇처럼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시1:1절에 나오는 악인들의 결말입니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지혜를 얻으며...교훈을 받을지어다'
이방의 왕들이 시온의 왕 메시야에게 도전하는것은 아주 무모한 짓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저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혜로운 행동에 대해 다음 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성경에서 발에 입맞추는 행위는 종으로 복종하겠다는 의사 표시였습니다. (사 49:23)
또한 손에 입맞추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경배의 표시였습니다. (욥 31:27)
1) 화해의 입맞춤-방탕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2) 충성과 복종의 입맞춤-신하가 왕의 발에 키스하는 것은 동양의 습관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아들에게 입맞춤하는 것은 복종과 충성의 입맞춤인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왕으로 계속 모시겠다는 화해와 복종의 표시로
경의를 표하라고 이방의 왕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이 말은 문자적으로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자로' 해석되는데,
이는 열방의 군왕들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진정한 보호를 받게 됨을 암시합니다.
◑적용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7
시2:7 '내가 여호와의 명령 decree 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성경은 '매 시대'마다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느 특정 시대에만 적용되지 않고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 시2편은 3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윗 시대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다윗 왕과 그를 대적하는 주변국 왕들
-메시야 언약적 관점에서, 기름부음받은 메시야 왕과 그를 대적하는 세상 나라들
-작은 예수인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과, 이들을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의 세 가지 관점입니다.
이 설교는 세 번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야(그 속에 우리도 포함됨)를 '낳았다'고 말씀합니다. *히, 얄레드
여러분이 공원에 가서, 수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거기서 누구를 쳐다보십니까?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수많은 학생들이 강당에 서 있을 때, 거기서 누구를 쳐다보십니까?
자기 자녀만 쳐다봅니다. 그 이유는 '내가 낳았기 때문' 입니다.
'직접 낳은' 자녀와, 그렇지 않은 자녀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산고를 통해서, 우리를 새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정 회심한 성도는, 모두 '낳아진' 자녀들입니다.
시2편에서, 세상 나라와 관원들은 시2:1~2
사실 어마어마한 세속적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게임이 안 되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시듯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9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권세입니다. 힘을 통한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승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녀에게 권세가 있는데, 그것은 열방을 구하는 권세입니다.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자녀에게 특권이 있는데, 그것은 땅 끝까지 열방을 유업을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특권을 받아서 사용하는 일은, 먼저 "구하는" 일로부터 출발합니다.
구하지도 않는데, 그 권세를 받을 수 없고, 그 유업을 받아누릴 수도 없습니다.
이 땅끝을 유업으로 받는 일은, 오늘날의 '선교 명령' 또는 '문화 명령' 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내가 받을 유업'에 눈을 떠야 됩니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로 "유업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기억했다면,
아브라함과 똑같이 우리는, 이 위대하고도 놀라운 언약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그 언약은 바로 본문 시2:8절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그리고 이 사역을 훼방하는 세상 나라, 군왕, 관원들은
마치 철장(쇠막대기)으로 질그릇 깨뜨리듯, 결국에는 다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서, 살과 육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이 세상에 통치를 펼쳐나가시는데,
그리하여 우리 각자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파트너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현지인들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 존귀한 존재라는 자각
<함께하는 세상, 캄보디아>의 레지나 자매는 (한국인)
1인 NGO라 할 만큼 탁월한 활동가였습니다.
한국에서 도시 빈민들을 위해 오랫동안 일하던 그가, 캄보디아로 떠난 것은
그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타케오와 프레이벵 등 캄보디아의 가난한 마을에 들어가
현지인들과 똑같이 살면서,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설립하고,
무력에 빠진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공방을 만들고,
맑은 물 공급을 위해 우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현지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소액대출은행도 운영하고,
농부들을 위해 cow bank도 운영합니다.
저녁이면 함께 지내는 이들에게 크메르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를 가르치면서
삶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현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 존엄한 존재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각임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일을 현지인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결정하고 있습니다.
가슴에 꿈을 품은 한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저는 그를 통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몇 년 동안 추진해왔던 캄보디아 우물 파기 사업의
후속 프로그램을 모색하던 중 알게 된 레지나 자매의 삶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어쩜 그리도 맑은지, 어쩜 그리도 당당한지,
온전히 남을 위해 바쳐진 그의 삶에 ‘거룩함’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빨갛게 그을린 그의 얼굴,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서
나는 그가 하늘에 속한 사람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선교를 '물량주의'로 밀고 나가려고 하려는, 그런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물량주의'로 선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쏟아부을 물량이 없는 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량주의로 선교하지 않고,
참 복음으로 승부 거는 선교사의 예를 발굴하고, 계발, 보급해야 합니다.
복음과 말씀과 자기 삶으로, 자기 주변의 소수의 몇 사람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여러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고,
한 사람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고, 그저 물질만 도와 줍니다.
내가 직접 선교하러 나가지 못하면, 선교지와 선교사를 정해서 기도와 후원으로
역시 '열방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시2:8절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거죠.
2차대전, 한국전쟁, 러-우크라 전쟁에서 보듯이, 보급은 전쟁 승리의 필수 요건입니다.
군수품 보급이 되지 않는 전쟁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의 승리를 기대한다면, 후방에서 기도와 후원의 보급이 마치 생명선과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사에는 내가 전혀 관심이 없고,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녀'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본문의 '이방 나라, 세상의 군왕과 관원처럼' 살 수도 있는데,
성도가 세속적으로 살 때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