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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편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LNCK 2022. 4. 13. 08:19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2        시3:1~8        여러 설교 정리

 

시편 제 3편은 표제가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격은 사건은 사무엘하 15-18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역사적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도임 / 6일전쟁 때 이스라엘의 모세 다얀 장군이 시3편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군인들에게 전쟁을 독려했다는 이야기 ☞  https://blog.daum.net/rfcdrfcd/15973630

 

◑시인의 탄원 (1~2절)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 비해,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자가 많음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나타나는 다윗의 부르짖음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많은지요,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입니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쫓겨다니는 다윗에 대한 당시 백성들의 시선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많은 백성들은 다윗에게 도무지 소생할 길이 보이지 않자 
그가 (밧세바와 범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삼하16:5-8) 


2절 끝에 ‘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1)

 

 

◑시인의 확신과 신뢰   (3~8절)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지금 다윗은 사방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 저기서 화살이 날아옵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방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 방패로 삼았습니다.

 

어떤 자매는, 자기를 공격하는 말, 자기에게 향하는 험담, 부정적인 이야기, 흉보는 말을 들을 때마다

즉시로 이렇게 스스로 크게 선포한다고 합니다. "믿음의 방패!"

엡6장의 전신갑주에 나오는 것 중에 하나이죠. 그래서 그 공격하는 말, 부정적인 말들을

자기가 즉시로 물리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 화살에 맞지 않겠다는 것이죠. 상당한 내공입니다!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줄 확신하는 다윗의 말입니다. .

다윗은 동굴에 피신해서 기도할 때도 '내 영광아 깰지어다'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시57:8

'영광 (glory 카보드)은, - 부, 다량, 무거움 등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고백합니다.

 

같은 의미로 '머리를 드신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실의와 좌절 가운데서 수그러진 다윗의 머리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들어올리게 하시리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여 도망을 할 때 

맨발로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숙이고 감람산으로 올라갔었습니다.

(삼하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본절을 외우며 기도할 수 있겠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3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여호와께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간곡한 기도를 가리킵니다. 
그가 비록 성산 시온산을 떠나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성산이란, 성전이 있는 산, 곧 성전을 뜻합니다. 
구약시대의 성전 신앙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약시대에 성전은, 사실 내 몸이 성전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응답하시는 곳입니다.

구약시대이든지, 신약시대이든지, 성전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신앙입니다.

다윗은 지금 피난을 가면서, 성전을 떠났지만.. 마음으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성전을 더욱 사모하고 있습니다.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법궤를 옮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삼하 15:24-26).

이것은 자기 편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궤의 거처를 바꾸지 않았던 것을 말해 줍니다.

그만큼 성전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든지 응답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4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본절부터, 응답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다윗의 믿음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토록 위급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작전을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삼하15:33-37)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천만인은 실제로 천만 명은 아니고, 수만명 또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당시 거의 모든 백성들이 다윗에게 등을 돌리고 압살롬을 지지하였으므로(삼하15:12) 
본 구절은 역사적인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루터는 자기가 소환되는 보름스 국회의 기왓장이 모두 마귀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보름스 국의의 기왓장이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거기에 몰려온 사람들은 모두 루터를 망하게 하려고 온

사람들이며 세력이 막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담대함은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붙들어 주신’ 결과입니다. :5

잠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본절은 다윗이 급박한 위기 중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소리입니다.(7:6, 6:19, 10:12, 17:13, 44:26, 74:22). 
여기서 '일어나소서'(쿰)라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통치자가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 활동하듯이 
언약궤 위에 강림하여 계신 하나님께서도 일어나시어 
고난 중에 있는 다윗 자신을 도와 달라는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본절에서 '뺨을 친다'는 표현은, 턱뼈를 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를 꺾는다'는 말을, 달리 표현했지만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라는 표현은 '이빨 빠진 사자'같이 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맹수와 같이 달려들어 공격해 오지만, 사실은 아무 힘이 없게 해 달라는 간구이죠.  

 

더 유추하면, 압살롬 일당들이 다윗을 권좌에서 몰아낸 데는

주로 '말로' 백성들의 민심을 자기들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민심을 꼬드기고 유혹한 것입니다.

사실 압살롬이 백성들을 재판해 주면서, 성경은 '그가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삼하15:2~6

 

그래서 본절의 '악인의 이를 꺾으로서'란, 그가 더 이상 말로, 입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지 못하도록 하소서.. 하는 탄원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7절에 동사가 세 개 나오는데 ‘구원’ ‘뺨을 치심’  ‘이를 꺾으심’

이 동사들의 시제는 모두 완료형인데, 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상황이지만,

마치 모든 상황이 끝난 것처럼 보는 관점을 표현합니다.

우리 말로는 과거시제로 번역이 된 것이 그 이유입니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여기서 '구원'은 영혼 구원이 아니라,  2절에서의 구원도 마찬가지고,

다윗이 처한 곤경에서의 구원, 즉 곤경에서의 구출입니다.

그 외 질병에서의 치료를 의미하는 '구원'도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성경에 '구원'이란 말이 나오면, 무조건 '영혼 구원'으로 해석하지 말고,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오히려 그들에게 복을 빌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당시에 당하고 있던 위기와 고난이 
순전히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 닥쳐온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삼하16:10). 

아울러 그를 대적한 백성들에 복을 빌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매우 고상한 성품입니다. 

 


◑적용 / 가족의 배신으로 인한 고통을 당할 때

 

우리가 다윗과 동일한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닐지라도, 유사한 많은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마 가장 근접한 것이라면, 사랑하는 가족으로 인해 겪는 고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부모를 거역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지속될 때,

느끼는 고통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사랑해야 할 부부가 서로 반목하고 싸우고 고통을 더해주기만 한다면

이 또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된다면

그것은 다른 모든 관계의 상함과 비할 수 없이 고통스런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멀리 있기만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의 삶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듯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도 경험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 증거가 아니지만,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외칩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버리셨다('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2)'고 말입니다.

이것은 신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로 고통스러운 비방입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믿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8

 

이 기도는, '하나님이여, 꼭 저희 편을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고

상대편은, 버리시고 벌을 내리소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하지만, 

그 주의 백성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꼭 자기가 주의 백성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압살롬 측이 주의 백성일수도 있다'.. 라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겸손입니다.

 

이런 신앙은, 그가 모반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날 때,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삼하15:25~26 왕이 사독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궤를 다시 도성 안으로 옮기시오.

내가 주님께 은혜를 입으면, 주님께서 나를 다시 돌려보내 주셔서,

이 궤와 이 궤가 있는 곳을 다시 보게 하실 것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싫다고 하시면, 오직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나에게서 이루시기를 빌 수밖에 없소."

 

그러니 지금 다윗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 대적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인..
이런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족 간에 혹은 영적인 가족 간에 분쟁이 생길 때는,

나는 의인, 상대는 죄인... 이런 교만한 공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일지도 모른다.. 라는 겸손한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입을 것입니다.  

 

우리는 피치 못하여 교인들과 다투게 될지라도 '대승적 관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불교용어이긴 하지만

다윗은 큰 그림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든지/지든지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8

어쨌거나 '주의 백성들이 복을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 나아가 이런 말과 자세는, 내가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늘 의롭게 살겠다는 다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것은 기꺼이 징계를 달게 받고.. 그 다음에 회복되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꼭 내편에 서 달라고 떼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과 재판(결정)을 믿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 .. 이것은 유아기적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내 대적의 편일 수도 있다' .. 이것이 장성한 사람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도, 링컨도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살피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압살롬 편이 아니라, 다윗 편에 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 성과, 성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판단, 시중 여론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2

그들은, 밧세바의 일로, 다윗이 이제 천벌을 받아서.. 영영 끝이 나는 줄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겸손을 보셨나 봅니다.

하나님이 의롭게 판단해 주셔서, '저들이 주의 백성이면 저들이 복을 받게 해 달라'는 겁니다. :8

 

우리에게도 이런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너무 자기 중심적인 신앙인이 되지 맙시다.

내게 잘못 한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대역 죄인은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죠. 그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모반을 일으킨 대적들을 '큰 그림으로, 다들 주의 백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뺨을 치시며, 이를 꺾으시기를 바랬지만, 

8절에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해 달라...는 이 기도는, 

 

'내가 이기고/지는 전쟁'..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잘 되는 것' ..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다윗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분쟁이 생길 때,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합니다. 

자기가 지든지/이기든지.. 하나님의 나라, 그 분의 이름이 이기시고, 영광을 얻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의 ‘그러나’
개역개정 성경은 생략하고 있지만, 본래 3절은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영역 성경들은 다 ‘But’이라고 시작합니다.  *히, 접속사 '웨 (와우)'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3

 

‘그러나’는 앞의 내용을 부정하고 상반되는 내용을 전개할 때 쓰는 접속사입니다.

다윗은 ‘그러나 여호와는’이라고 시작합니다.

“너무나 많은 대적들이 자기를 대적하고 비방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3

 

주님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자신을 사면에서 보호하시는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또한 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내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

혹은 내 업적이나 성취가 아니라 내 영광은 주님께만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머리를 든다는 표현은 옛 직분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창 40:13).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왕으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표현은 다 군사적 표현으로 승리를 주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대적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하나님께로 시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자기 대적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대적들은 가족이요, 지인이요, 친구들 아닙니까!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족간에, 교우간에 분쟁이 생길 때는,

사람을 미워하는 시선을 떼서,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이 구절을 암송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그러나’가 가져온 결과를 5~6절이 보여줍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고, 그분의 의로우신 판단에 다 맡겨버리고.. 편히 누워 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자기가 받을 징계도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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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셀라

시편 150편 중 39개의 시편에 68번이 나오고, 하박국서에 3번 등 모두 성경에 71번이 나오는데, 

음악적인 지시어임이 분명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 “쉬어라”, “올려라”의 의미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예배 시에 시편찬송을 하다가 

셀라가 마지막에 나오면 찬송을 멈추고, 중간에 나오면 찬송을 멈추었다가 

다시 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뒤에 중요한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