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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편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LNCK
2022. 4. 19. 09:32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며 :17 시7:1~17 여러 설교 정리
표제에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식가욘”이라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제일 그럴듯한 의미는 “탄식으로 비틀거리다”입니다. 주1)
시7편의 기도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이 탄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 다윗이 탄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베냐민 사람 구시 때문이었습니다.
“구시”라는 인물은 성경에서 시편 7편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베냐민인 구시’라는 인물도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보아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었지만,
귀화하여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2)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베냐민 지파는 사울 왕이 속해 있던 지파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이어서 왕이 되었을 때, 베냐민 사람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는 겁니다.
다윗은 왕이라는 매우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를 모함해서 깎아내리려고 합니다.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에 대한 신뢰(1-10)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나를 쫓아오는(히, 라다프, 추격하는, 박해하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문자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한 원수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 다윗의 명성과 사회적인 지위를 떨어뜨리려고
온갖 거짓된 말을 일삼는 모든 자들을 의미합니다.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사자같이' -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대적을 성난 사자에다 비유함으로써
그가 처한 위험의 심각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이 얼마나 몰인정하며 잔인한 자들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입니다'
여기서 '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네페쉬'입니다.
영어로 하면 me 라고 하지 않고, my soul 이라고 한 것은
이들은 다윗을 핍박하고, 사회적, 정신적으로 생매장하려는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이런 일’ - 이 말은 원수가 다윗을 고소한 내용을 의미합니다.
그 고소가 거짓말이란 뜻입니다.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여기서 손은 행위를 의미합니다(삼상 24:1;26:18).
그래서 손이 깨끗하면 무죄를 나타내며, 더러우면 범죄했음을 의미합니다.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화친(和親)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여기서 '화친한 자'란 언약을 맺은 자, 협약을 맺은 자를 뜻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람에게 배반하는 악을 범하지 않았으며
다만 신실함으로 대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의 원수들이 다윗이 언약을 맺은 자의 재산을 탈취하는 등
배반을 일삼았다고 그를 고소한 데 대항하여
다윗은 전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다윗이 비록 자기 대적일지라도 아무런 까닭없이 약탈하지 아니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물며 어떻게 화친한 자에게 악을 행할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즉, 자기에게 죄가 있다면, 자기는 원수의 핍박을 받아 죽어도 좋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못 받아도 좋다는 말입니다.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과거 개역은 ‘진토(塵土)에 떨어뜨리게 하소서’
'먼지, 진토'는 부끄러움과 죽음의 상징입니다. (욥 31:8, 10, 22, 40)
따라서 본 구절은 극한 수치와 파멸에 빠져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자신의 무고함에 대해 맹세한 다윗은
자연스럽게 원수둘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여기서 '일어나사'는 명령형입니다. *히 ‘쿰’
시편에서 ‘쿰(일어나다)’는 단순히 앉았다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액션을 취하신다는 뜻입니다.
'깨소서’ - 역시 전쟁 용어로 하나님께 전쟁 개입을 요청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잠을 주무시진 않지만
그 정도로 하나님의 적극 개입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이 저들에게 임박하였음을 확신하였다.
따라서 '심판의 날이 주님에 의해 확실하게 정해졌나이다'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이 구절은 많은 군중이 참석하는 법정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7절은 갑자기 전후 문맥이 잘 맞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해석이 어려운 것은
본문의 이스라엘 다윗 왕국 내부의 문제인데, 왜 '민족들의 모임'으로,
그 흐름이 '국제적으로' 넘어가버리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다윗이 계시록처럼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종말적 심판을 예언한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것은 좀 비약적이며
여기서 민족은 '이스라엘의 12지파' 또는 '이스라엘 내 이방인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재판정에, 총회로 다 모였다는 것이죠.
일례로, 기브온 지파는 여호수아 때 이스라엘에 편입된 이후로, 계속 이스라엘로 남은 '민족'입니다.
또한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나오는데, 이들도 이방인으로 편입된 자들이고 삼하20:23
다윗 당시에 '가드 사람 잇대'라는 유명한 장군이 나오는데, 그도 블레셋 사람입니다. 삼하18:2
이런 의미에서 7절의 '민족들의 모임'은 이스라엘 내에 있는 여러 이방민족을 다 포함한, 모임(총회)입니다.
표제에 나오는 ‘베냐민인 구시’라는 인물도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보아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었지만,
귀화하여 베냐민 지파에 소속된 것으로 봅니다. '구시'란 이름이 히브리 성경에 외래어란 뜻이죠.
그러므로 7절에 '민족들의 모임'이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내에 여러 민족을 다 소환한 것으로 봅니다.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다윗은 모든 백성을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판단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의 '의'란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적인 '의'나 순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를 고소할 악인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의로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다윗은 이 기도에서 악인의 제거를 간구하지 않고 다만 악인의 악이 제거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악인이 아니라 오직 악만이 제거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나의 방패는...하나님께 있도다’
여기서 방패는 수비용 무기로서 원수의 공격을 막아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그 마음이 정직한 자였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에 대한 찬양 (11-17)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은...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9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분노'는 당연히 악인에 대한 분노입니다.
다윗은 이 분노가 매일 끊임없이 악인에게 임합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즉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정확하게 임할 것임을 가리킵니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죽일 도구’
문맥상 불화살을 쏘는 기계(틀)을 의미합니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1) 여자가 뱃속의 아이를 잉태하듯 악인은 죄악을 생산한다는 의미와 함께
2) 그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듯 악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원문에는 본 구절 바로 앞에 '보라'(히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조적 표현이죠.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여기서 '재앙'의 히브리어 '아말'은
아무 유익이 없는 헛된 수고를 뜻하며
‘거짓’은 구체적으로는 다윗을 거짓으로 모함한 대적들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은 거짓된 행동이 저들의 우발적인 실수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저들이 헛된 일을 사랑한 결과로 빚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다윗은 악인이 결국에 달려갈 파국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함정은 다른 사람을 빠뜨리기 위해 파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악인 자신이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실례는 하나님의 백성을 전멸시키려 했던 하만에게서 잘 나타자죠.(에7:10)
시편에 특히 이런 표현이 종종 나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죠. 마7:12
시9: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시35:8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
시57:6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시141: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으므로
악을 행한 인생은 결국 그 악으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과응보 라고 하죠.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절박함으로 본시를 시작한 다윗은 이제 찬양으로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의'란 악인의 죄를 참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의인을 끝까지 보호해 주시는 신실하심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적용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17
▲1. 하나님의 ‘의’에 대해 감사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이 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감사할 것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1
하나님은 죄 때문에 매일 분노하십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2
하나님은 악과 죄에 대해,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심판을 준비해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끝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비방, 비난, 험담하는 것은 경쟁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믿는 자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로서,
심판자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똑같이 그들과 함께 누군가를 비방하고 모함하며 살아야 할까요?
반대로 누군가의 비방으로 인해 억울해하고 분해하면서,
원망과 쓴 뿌리를 가지고 참으며 살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의로운신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평안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온 세상의 재판장이 되십니다.
그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언젠가 공의를 행하실 것을 믿고 있다면,
그런 비방과 모함들은 큰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따라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의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짐, 두려움, 분노, 쓴 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로운 심판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의'를 찬양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17
다윗은 구시를 비롯한 자기의 대적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나님의 의'를 믿고, 또한 주장하며,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구시 간에 의롭게 판결해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편 1편에서 7편까지 구절 구절 살펴보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인애, 자비, 긍휼)'이 나온 구절은 딱 2구절 뿐이었고, 5:7, 6:4
반면에 '하나님의 의'가 나온 구절은 10구절에 달했습니다.
굳이 수치로 따지자면, '의'가 '사랑'보다 무려 5배나 많이 나옵니다.
Psa 1: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Psa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Psa 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Psa 4: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Psa 5:8 주의 공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Psa 5: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Psa 7:8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Psa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Psa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Psa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특히 본문 시7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의'가 4번이나 나옵니다.
물론 다윗이 하나님처럼 절대 의롭다는 뜻은 아니고,
적어도 대적인 베냐민 지파 구시보다는 의롭고,
또한 구시가 비난하는 그 내용에 대해서, 자기는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문 8, 9, 11, 17절을 읽어보십시오. 다윗은 승리를 낙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적의 패망도 미리 점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된다는 거죠. :11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백보좌 심판대에는, 아주 큰 대 혼란이 일어나는데,
많이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서 항의, 장탄식, 데모, 변명 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인즉
'나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인줄 그렇게 듣고, 알고, 믿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의로우신 하나님이신줄은 몰랐다'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물론 추측입니다만, 얼마든지 개연성이 높은 추측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더라도,
그리고 지금까지 쭈욱 살펴온 시1~7편까지를 보더라도
다윗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오늘 나도 이렇게 다윗처럼 당당하게 살고,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7:8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3.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분노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1
하나님은 우리 죄 때문에 매일 분노하십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2
오늘 내게 재앙과 징계가 닥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내려주시기로, 날마다 칼을 갈고 계시고,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2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1차영적 대각성 운동을 점화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지론은, 아니 성경의 가르침은
'심판을 전할 때, 회개를 통한 부흥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사랑을 전할 때, 부흥이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둘 다 균형을 이루어야 하겠지요.
어느 목회자가 마태복음을 1장부터 순서대로 설교하다가,
십 몇 장에 가서는, 교인들의 성화로, 결국 순서대로 강해하는 설교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을 정직하게 순서대로 설교해 보니까,
시 1~7편처럼, '사랑'보다는 '심판'이 훨씬 더 많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교하기도 난처하고, 듣기도 난처하더라는 거죠. 거의 매주일 설교마다 심판이 나오니까요...
'이 땅에서 심판을 받는 것이, 영생에는 더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73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죄인이 이 세상에서 심판 받지 않고, 죽을 때도 병도 없이 쉽게 죽는다면,
그의 영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신앙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잘못하면, 그때 그때 즉시로 징계하여 주옵소서.'
왜냐면 그게 누적되고, 심판이 없어서 계속 범죄하게 된다면,
나중에 갚아야 할 죄값이 너무나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아예 빨리 빨리 정산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고, 특히 영생에 유리합니다.
앞서 시6편에서, 범죄하면 대적들이 일어나고
회개하면 대적들이 떠나간다는 내용을 나누었는데, 시6:7, 10절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다윗처럼 대적들이 몰려닥칠 지라도
늘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믿을 수 있는, 의로운 신앙인들이 평소에 되어야 하겠습니다.
...................................
주1)
‘식가욘’이라는 단어는 시편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이곳, 시편 7편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합3:1에 '시기오놋'이 나오는데, '식가욘'의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 단어가 ‘방황하다’, ‘비틀거리다’의 의미에서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은 다윗이 어떤 사건으로 심하게 충격을 받고서 비틀거리는 마음의 상태를 노래한
‘만가(輓歌, elegy) 슬픔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2)
본문의 베냐민 사람 구시와 비슷하게, 다윗을 대적하여 일어난 베냐민 사람 세바
당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다윗에 대항하여 종종 반역을 일으켰나 봅니다.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삼하 20:1-2).
베냐민 사람 세바는 다윗을 대적해서 일어납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던 사울 이후에 왕이 된 다윗에 대해
이런 반역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말들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편 7편은 그런 것에 대해 다윗이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