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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9편 말씀이 내 영혼을 소성시킨다

LNCK 2022. 5. 6. 15:49

 

◈말씀이 내 영혼을 소성시킨다 :7       시19:1~14             여러 설교 정리

 

시편 19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시편입니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자신의 “시편묵상집”에서

“시편 19편은 모든 시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편이고,

세상 최고의 서정시”라고 말합니다.

 

하이든의 고향곡 '천지창조'가 있는데, 그 고향곡의 성경적 배경이 이 19편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시편 19편에서 다윗은 인간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대상이 있다고 노래하는데요.

첫째는 자연만물이고 (일반계시),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별계시)

이 두 대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이 두 대상에 자신을 계시하여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절은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일반계시)

7-14절은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리고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특별계시)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1-6절)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왜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까요?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을 만드신 창조자시기 때문에,

피조물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솜씨를 드러내는 겁니다. 당연한 거죠.

 

혹자는 선포하고 나타내는 주체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라고 말하나(Delitzsch)

오히려 하늘이나 궁창이 의인화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Lange, Briggs, Craigie).

 

성경에서 자연 만물이 의인화된 경우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늘(50:6, 97:6)이나 새벽별(욥38:7), 언덕과 나무들(사55:12),

일반적인 자연(148:3-13, 욥12:7)이 의인화되어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늘과 궁창이 선포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는 곧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한 광대하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하늘은 그것이

아무렇게나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최고의 건축가이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공공연히 찬양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늘'과 '궁창'은 동의어로서 굳이 구분하자면

2절에 근거하여 전자는 낮의 하늘을, 후자는 밤의 하늘을 각기 의미합니다.

결국 하늘은 낮과 밤의 모든 장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포하고'나 '나타내는도다'는 모두 분사형으로 이는 중단 없는 계속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하늘의 선포 활동은 창조 이래로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1절에서와 같이 낮과 밤이 의인화되었으며

1절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늘의 사역이 낮과 밤의 두 차원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즉, 낮은 낮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밤은 밤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낮과 밤의 하늘은 창조 이래로 변화됨이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가 '말하고', '전하니'라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하늘은 옛날 모습 그대로 전승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인간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하늘의 선포나 언어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라

무언의 계시이며 선포입니다(롬1:19).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지금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하늘의 무언적 계시의 소리인 것입니다.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본 구절은 지구상에 사는 어떠한 인간도 자연 계시의 영역안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帳幕)을 베푸셨도다’

다윗은 갑작스럽게 해를 의인화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해는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것들 중 하나이며(1절)

특별히 창조된 하늘들, 곧 천체의 면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는 해가 최고의 신(神)으로 여겨졌으며

그 백성들은 바로 왕을 해가 육화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또한 바벨론에서는 해의 신 '솨마쉬'가 미신적으로 숭배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있어서 해는 신적 존재가 결코 아니었고

다만 하나님에 의해 운행되는 찬란한 피조물이었습니다(창1:17).

 

하나님께서는 해를 위해 장막을 베푸셨습니다.

이는 밤 동안의 해의 거처를 뜻합니다.

왜냐면 다음 절에서 아침에 해가 그 거처에서 나오는 신랑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합3:11).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본 구절은 매일 아침 힘있게 떠오르는 태양의 일출에 대한 시적(詩的) 묘사입니다.

아침 해는 인간에게 항상 신선함과 기쁨과 기운을 불어 넣어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를 신랑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아랍어에서는 해가 여성형이지만 히브리어와 아랍어에서는 남성형이므로

신랑으로 비유된 것 같습니다.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이는 해가 끊임없이 자기의 길을 운행하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장사는 기뻐하는 장사입니다. 여기서 '기뻐하는'이란 말은 해의 밝음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빛과 기쁨은 서로 연관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하늘 이 끝'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 끝을, '하늘 저 끝'은 해가 지는 서쪽 끝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찬란한 아침과 해가 높이 뜬 정오,

그리고 해가 지평선을 지나 서쪽으로 지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5~6

이 점에서 이 시는 시 8편과 대조를 이룹니다. 시 8편은 명백히 밤에 기록된 시이죠.

 

 

◑말씀에 나타난 은혜, 그리고 기도(7-14절)

 

1-6절이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다면,

7절 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나타난 은혜를 노래합니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 - 본절에 와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로 바뀌어졌어요.

'엘'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인 반면(1절),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한편, 본절에서부터 시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으나

앞에 묘사된 자연 계시와 이제 묘사되는 특별 계시 사이에는 유비 관계(類比關係)가 있습니다.

따라서 본시를 두 개의 시편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죠.

 

‘율법’

7~9절까지에서 율법은 6가지 이름으로 달리 표현되었습니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 도, 법

그 표현들은 동의어이지만 한편으로 인간을 위한 율법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율법'(토라)은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기서 ‘완전하여’는 성경의 충족성(充足性)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율법이 인간의 영혼이 구원받고, 소성 refresh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영혼을 소성케 하고’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지어 타락한 모습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우둔한 자'의 히브링 '페티'는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믿는 경향이 있는 순진한 사람을 가리키죠.

그래서 '우둔한 자'는 율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자. 또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가 율법의 지혜를 배우지 아니하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죄를 짓게 돕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가 율법의 지혜를 배우게 되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죠.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기서는 율법이 교훈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교훈'(피쿠딤)은 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눈을 밝게 하도다’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 구절은, 하나님의 계명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인간이 참된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선악을 분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계명은 인간의 영적인 지식을 밝혀 주는 유일한 등불입니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 원문에는 '도'라는 말이 없습니다.

본 구절을 직역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함'이란 율법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왜냐면 여호와를 경외함은 모든 율법이 한결같이 선포하는 대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가장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썩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확실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메트'(*)는 '진리'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율법은 이방 종교의 법 조항들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유일한 진리의 표준입니다.

 

또한 '에메트'는 '신뢰성'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율법은 인간이 믿고 따르기에 완전한 것입니다.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정금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세상의 모든 재물을 상징합니다.

 

'송이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노페트 추핌'입니다.

'송이꿀'이란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친 덩어리 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꿀은 팔레스틴 산지에 혼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꿀은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금이나 꿀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이 그에게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외면적으로는 그의 모든 재산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내면적으로는 달콤한 행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여기서 '허물'이라는 말은 모르고 짓는 죄, 또는 비고의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죄는 미묘한 것이거나 자신의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발견되지 않지만

다윗은 율법의 말씀안에서 이러한 종류의 무수한 죄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다윗은 자기 스스로는 ‘자기 허물’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고의로 죄를 짓지도, 주장하지도 말게 해 달라’고 고백하는데 :13

그것이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짓는 죄,

알고도 짓는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지 우리의 결심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심할지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를 그런 삶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온전히 얹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과거 성경에 '고범죄' (히. 제딤)은

'고의로 짓는 죄', 즉 '알고도 짓는 뻔번한 죄'를 뜻합니다.

한글 '고범죄'는 옛부터 범한 죄란 뜻이고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억제하지 않으면 가장 악한 죄를 범할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장 선한 사람에게도 죄의 성향은 있으며, 말에 재갈을 물리듯이

말씀으로 성도들을 지키지 않으면 곧 죄를 범하게 됩니다.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 이 말은 죄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죄가 한번 행하여지기만 하면 그 죄는 인간을 종으로 삼아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창4:7).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죄가 의인화되어 표현된 것입니다.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입니다’ - '죄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솨'는

'반역죄'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에 대한 반역을 가리킵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며 인간 내부에 심각한 부패의 영향을 미치죠.

다윗은 숨은 허물과 고범죄에서 깨끗하게 되면

이러한 죄악의 심연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 - 이는 기도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말'과 '묵상'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묵상한 것이 그대로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입니다’

이를 다윗이 기도와 함께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다윗이 기도 자체를 하나의 제사로 인식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적용

 

▲1. 발 없는 복음이, 온 세계에 이른다!

(우리 속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에 빗대어)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3~4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대자연과 만물이, 소리는 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시편의 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롬10:18).

 

그는 로마제국 내에 복음이 놀랍게 전파되는 것을 말하면서,

마치 해가 비치지 않는 나라나 지역이 아무 곳에도 없듯이

이처럼 진리의 말씀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을 내다보면서, 시19편을 인용한 것입니다.

 

요즘 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 등 인터넷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 헌신된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교회당에 모아놓고,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에 매치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설교는, 그 본질이 전파 electronic wave 이고, 데이터 data 이니까요.

교회당에서 예배시간에 선포되는 설교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4

 

그런데 교회 예배당 안에서의 설교는, 예배시간이 마치면 없어져 버립니다.

라이브로 듣는 시간이 아니면,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 올려진 설교들은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4

이 말씀이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그의 메시지가 복음을 담고 있고, 하나님께 받은 음성을 담고 있으면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 예배당에서 들려지지는 않는 전파이지만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그 메시지가 필요한 갈급한 심령에게는, 반드시 들려지고, 반드시 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55:10~11절도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대언하고, 전달한다면

그것이 비록 랜선을 통한, 인터넷을 통한 전달이라 할지라도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그 설교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2. 말씀의 능력

 

①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7

 

7~9절까지에서 율법은 6가지 이름으로 달리 표현되었습니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 도, 법

첫 번째로, 말씀은 영혼을 소성 refresh 시킵니다.

 

‘소성’이란 말이 어렵습니다.

-蘇 ‘소생하다’ 할 때 소

-醒 ‘깰 성’ 술이 깨다, 잠이 깨다 할 때 .. 소성이 영어로는 refresh이죠.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돌이킨다,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revive, restore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다 보면, 영혼에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못 받아 의기소침 해지며, 매사가 귀찮고 소극적이 됩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읽는 길’입니다.

물론 그런 영적침체에 빠지지 말아야 하지만,

살다가 영적침체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7   *설교제목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성경책을 계속 읽거나 기름부음 있는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들어야.. 내 영혼이 다시 소성케 되기 때문이죠.

 

②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7b

'우둔한 자' (히. 페티)는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믿는 경향이 있는 순진한 사람을 가리키죠.

그래서 '우둔한 자'는 율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자, 또는 ‘쉬운 사람’을 뜻합니다.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멀리하게 됨을 뜻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랬죠. 잠1:7

 

그러므로 율법의 지혜를 배우지 아니하면, 성도는 시험에 빠지게 되고,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의 지혜를 배우게 되면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죠.

 

③여호와의 교훈precept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8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공동번역)

 

과거에 가정주부는, 쌀독에 쌀이 가득했을 때..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과거에 아저씨는, 자동차에 연료가 가득했을 때..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과거에 자녀들은, 명절 때 용돈을 두둑히 받으면.. 마음이 기뻤습니다.

 

사람은 뭔가 가득차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성도는 말씀으로 가득차야.. 마음이 즐겁고 기쁘게 됩니다.

 

그래서 늘 외우고 암송하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은혜 받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은혜 받은 말씀이 몇 구절 있어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기도하면.. 마음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탱크에 성령(말씀)으로 가득 차는 데서 오는 만족감입니다.

 

④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8b

 

우리는 본질상 모두 진노를 받을 자식들입니다.

우리 영혼은 수많은 병든 자와 눈먼 자들이 거하고 있는 베데스다의 행각과도 같죠(요5장).

 

예수님이 가장 많이 치료하신 병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 이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이 개안수술을 해 주신 게 아니고, ‘영안을 떠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크고 작게, 영적인 눈을 밝게 떠야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 즉 성경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눈(영안)이 더 밝아집니다.

 

우리는 미혹될 때가 많습니다. 사탄이 살아서 활동하기 때문이죠.

실컷 주의 일을 힘들게 했는데, 아무 열매가 없고, 모래 위에 세운 집으로 끝날 때도 있죠.

영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까이 하면, 영안이 열리게 되고, ‘눈이 밝게 되어서’ :8b

나 자신과, 가정과, 공동체를 미혹해서 곁길로 빠지게 하는

마귀의 궤계를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⑤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게 합니다. :9

 

8절의 ‘순결함’이 ‘깨끗함’이라고 한다면,

9절의 ‘정결함’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구약 제사 때, 부자는 소나 양으로 바치고

가난한 자는 비둘기로 바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결’이었습니다. 흠이 있는 제물은 하나님이 싫어하셨습니다.

 

12절에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9

그가 자기 허물을 깨달으며, 자기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가장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썩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⑥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롭습니다. :9b

이 부분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하나님의 재판(판단)은 진실이고, 모두 다 옳습니다’입니다.

세상의 재판은 옳지 않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또 진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결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말씀)이 이러하기에,

그 말씀이 다윗에게 또한 우리에게 어떠한지 10-1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인생에 참 맛을 내고, 더 나아가 영원의 맛을 맛보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생에 변화되게 하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최고로 사모해야 할 대상입니다.

 

말씀의 깊은 맛을 본 사람은

“주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답니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옵니다.

 

▲3. 신앙의 지, 정, 의 모든 영역에서 균형을 이루었던 다윗

 

앞서 시18편에서

다윗은 지적인 신앙, 정적인 신앙, 의지적 신앙을 모두 갖춘 균형잡힌 신앙인이었습니다.

1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 그의 지적인 신앙

그의 시편은 모세오경의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에도 능통했고,

그는 언제나 주의 법과 율례를 강조했습니다. 본문 19편도 확실히 그렇습니다. 특히 7~9절!

 

2) 그의 정적인 신앙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사모한다’는 것은..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뜨겁게 좋아함을 뜻합니다.

‘달도다’라는 것도.. 머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표현입니다.

 

3) 그의 의지적인 신앙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3

 

그는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나라,

자기 의지로, 지키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1

말씀을 나열한 이후에, ‘지킴, 실천, 즉 의지적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앞서 시18:23절에서도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의 신앙은 탁상공론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의지적 신앙, 즉 실천과 행함으로까지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도 지/정/의의 이런 균형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그가 진정 '믿음 있는' 신앙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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