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갈6:14~15, 롬14:7~9 2021.11.15.출처 당신의 구원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설교 전 기도) '주님, 내가 보기에 내가 옳은 것 같고, 내가 열심히 하는 것 같고 내가 잘하는 것 같아도, 주님의 그 밝은 빛 앞에 서게 되면 나는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하나님의 긍휼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긍휼을 입은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그렇게 역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무엇을 자랑하는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그때 당시에 사도바울 만큼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 또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보니까, 참 그 부모님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자녀들이 명문대에 가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저희동네 학부모는, 자녀가 둘이 있는데, 둘 다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니까 그 주위에 있는 수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부러워해요. '어쩌면 그렇게 둘 다 하버드를 갔냐?'
또 제가 미국에 살다 보니까 미국에 살면서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게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비즈니스 하는 분들은 나름대로 '비즈니스가 이 정도 컸으면 좋겠다' 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는 어느 동네에,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그런 집을 샀으면 좋겠다'
또 그보다 조금 낮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승용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정말 좋은 차, 고급 차, 또 희귀한 차.. 그런 차들을 타는 것을 그렇게 원하고 또 그것을 성취했을 때, 그들은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봅니다. 물론 그게 자랑스러워할 그런 이유가 될 수도 있겠죠.
▲근데 사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그때 당시에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 아닙니까? 그렇죠. 우리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잘 압니다.
사도 바울에게 자랑할 것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 그때 당시 명문 중에 명문 학벌 출신이고, 그때 당시에 대법원 판사는 그냥 따놓은 것이고, 뭇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명예, 칭찬, 인정...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인맥, 정말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갈6:14 우리가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진짜 사도 바울의 솔직한 고백인가?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이 말이 정말인가요?
저는 그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정말이라면 왜 그랬을까?'
그것은 오늘 사도 바울이 말하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사도 바울을 그 죄이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자가 없기 때문이죠.
십자가만이 사도 바울을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거듭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울이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 즉 거듭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외 다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거듭나게 하는 것은 그래도 십자가밖에 없지 않냐?'
그래서 고린도전서2:2절에도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다른 것을 아는 게, 내 구원의 도움이 안 된다.. 다른 거 아는 게, 나를 거듭나게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쩌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주제가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시던 어떤 연세가 좀 있는 분이 저희 교회에 오셨는데, 그분이 제 주일 설교를 듣고, 그리고 마치고 친교하는데 제게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30년 넘게 신앙생활 했는데, 이런 얘기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충격받은 건 접니다. '어떻게 30년이 넘게 교회 생활을 했는데, 그런 얘기를 처음 들어볼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데 내가 왜 살아야 되는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고 말할까?' 근데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굉장히 친숙하다고 여기는 것 중에 사실은 우리가 정말 잘 모르는 주제 중에 하나가 저는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가 정말 물어보면, 구원만큼 잘 모르는 주제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구원이 뭐냐고? 그러면 구원이 구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설명하는 사람을, 죄송한데 한 사람도 못 만나봤어요. 구원이 뭔지도 모르는데 구원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해서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구원)라 하라' 근데 왜 '예수라고 하라'고 했죠?
그 예수라는 이름이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부터 구원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로부터 구원! 입니다.
만약에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한다면, 나에게 가장 큰 필요는, 이 죄에서 구원 받는 겁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입니다. 그 의미를 아래에서 3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왜 구원을 잘 모르냐 하면, 죄를 잘 모르기 때문이죠. 그러면 죄로부터의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모를 수밖에 없게 되겠더라고요.
오늘은 제가 그런 얘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이해하려면, 죄를 이해해야 되는데 여러분 죄가 무엇인지 다 아시잖아요.
우리가 아는 죄의 개념은 뭐에요? 과녁을 빗나가는 거죠.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죠.
▲죄에는 3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1) 첫째는 죄의 형벌이죠. punishment of sin 죄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돼 있죠.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6:23
그리고 죄를 지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그리고 결국은 지옥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떨어지는데 ..이게 죄의 형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구원을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이니까요.
그러면 이 죄의 이 속성들 가운데 첫번째가 죄의 형벌인데 앞서 말한 죽음, 불못 이외에도 너무나 많죠. 질병, 고통, 저주, 미움, 다툼... 이 모든 게 다 바로 그 죄의 간접적인 결과들 아닙니까.
2) 두 번째가 죄의 세력이죠. power of sin
그러니까 파워, 죄는 힘이 있죠. 죄를 지은 자를 종으로 부리죠.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종이란 말은 번역이 정확한 건 아니고, 노예가 정확한 번역이죠. 롬6:6등
죄를 지으면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가 끌고 다니는대로 끌려다니면서 죄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는 싫어도 해야 돼요. 이게 죄의 파워, 죄의 세력입니다.
3) 죄의 오염 그뿐입니까? 죄는 우리를 철저하게 더럽힙니다. 얼마나 더럽히면,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세요? '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네 입에서 나오는 것, 네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모든 걸 더럽힌다'는 겁니다.
더러운 생각, 음란, 거짓, 욕심, 시기, 질투, 미움...
과거에 정말 저는 진짜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내 만한 나이에, 내 만한 믿음가진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었을 때 제가 그렇게 정말 착각하면서 살았는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저의 죄를 보여주기 시작하셨어요. 그 죄를 제가 노트에 썼습니다.
한 장 쓰고, 두 장 쓰고, 세장 쓰고, 네 장쓰고, 다섯 장 쓰고.. 저는 정말 너무나 충격받고 믿을 수가 없어요. 이게 다 나의 모습이더라고요. 이게 다 나의 흉악한 죄들이더라고요.
하나님께서 적나라하게 보여주셔서 받아 적다가 정말 저는 죽고 싶더라고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내가 얼마나 죄로 철저하게 오염이 되어 있는지를 그때 깨달았어요.
그 전에는,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나님 앞에 섰더니, 그분의 거룩한 빛 앞에 섰더니 나는 그 자리에서 죽어야 할 놈이더라고요. 이게 바로 '죄의 오염'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란, 죄로부터 구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죄의 형벌과, 죄의 세력과,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게 진정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았다는 거에요. 구원이 끝났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는 그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그러면 이제 죄 안 지으세요?'
저도 죄를 지어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 지을 가능성이 있는 그런 사람들인 거 아시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 즉 하나님과 깨진 관계를 회복한다는 말이지만
그러나 그 나머지 모든 죄의 간접적인 결과들, 즉 죄의 형벌과, 죄의 세력과,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받는 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인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이 오실 때, 죄 그 자체로부터 구원 받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구원은요,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여정"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보면 '구원받았다'고 나오죠.
그래서 가끔 목사님들이 저한테 따져요.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구원받았다'고 하지 않았냐?'
맞아요. 성경을 보면요. 구원은 세 가지 시제로 되어있어요. -구원은 이미 받았다. 즉 과거 완료시제로 쓰였는가 하면, -구원이 현재 시제로 쓰였어요.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지금 구원이 더 가깝다' 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라.. 현재 시제죠. -그런가 하면 구원이 미래 시제로 또 쓰여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 성경이 좀 헷갈리죠? 언제는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가, 언제는 지금 구원을 이뤄가고 있다고 했다가 언제는 또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럼 뭘 믿어야 되요? 다 믿어야 돼요. 구원이 원래 그렇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말씀 그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분이 나의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거죠. 그죠.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죄의 세력과 싸워야 하고 나는 여전히 죄의 오염으로부터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과정이 남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다 끝난 게 아니예요. 진행중이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구원을 달리기 경주에 비유한 거죠. 꼴인 지점까지 가야 되는 거에요. 끝까지 가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구원이 완성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왜 그럼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했냐면, 갈6:14 십자가 외에는, 우리를 죄의 형벌, 죄의 세력,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십자가는 "죄의 형벌"에서의 구원 바꿔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죄의 세력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죄의 오염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말이죠. 어떻게요?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셨습니다. 또 죄의 세력인 죄의 그 권세를 깨부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모든 더러운 오염, 그 오물을 다 뒤집어쓰시고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라고 사도바울이 고백한 거죠.
여러분, 다 아시는 예화인데,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습니다. 판사가 친구인 피고에게 정당한 판결을 한 후에, 그의 벌금을 대신 내주었다는 얘기입니다. 주1)
여러분, 근데 저와 여러분의 문제는 벌금형 정도가 아니에요. 저와 여러분은 사형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형량이 사형이에요.
그리고 판사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그러면 어떻게 하셔야 될까요? '이거는 없던 걸로 무죄!'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러면 하나님이 아니에요. 성경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하셨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사형을 언도하시죠. 당연하죠. 우리는 죽어야 마땅하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옷을 벗으시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내려 오셨어요.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어요.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사형을 당하심으로써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주신 거죠. 죄의 형벌해서!
2) 두 번째는 "죄의 권세"에서의 자유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우리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입니다. 제가 와이프랑 한국 마트에 장 보러 쇼핑을 갔다가, 제가 쇼핑하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마침 그 맞은 편에 호수가 하나 있어서, 제가 아들을 데리고 호수에 가서 아내의 장보기가 끝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호수에 가서 보니까, 어떤 미국의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되어 보이더라고요. 그 아이가 낚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호수에서 낚시를 하는데, 얘가 메기를 한 마리 잡았어요.
그래가지고 이 친구가 그 메기를 가지고 놀면서, 우리가 다가가니까 보여주는 거예요. 자기가 어떻게 하는지.
그런데 낚싯대 릴을 막 감으니까, 메기가 꼼짝없이 끌려 오더라고요. 호숫가에까지 오니까, 줄을 더 당기니까 물 위로 첨벙거리고 올라와요. 메기가 입을 쩍 벌리고, 그 턱에 갈고리가 딱 걸려가지고,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몸부림을 치는 거예요.
제가 쳐다보면서 '야 너무 안 됐다' 그런데요. 이 미국 소년이 그 메기를 다시 풀어주는 거예요. 낚시바늘을 빼지 않고, 그냥 낚싯줄만 풀어주는 거예요. 릴의 잠금 장치를 푼 거죠.
줄만 풀어주고 딱 놔두니까, 메기가 죽어라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막 도망가요. 한참을 도망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거에요.
그런데 이 아이가 그러더니 다시 낚싯줄을 감기 시작하니까 메기가 꼼짝없이도 다시 끌려오는 거예요.
아이는 (잔인하게도) 낚싯줄을 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며, 그 메기를 갖고 놀아요. 그 조그만한 미국 소년이 말이죠.
그때 성령님이 제 마음속에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거죠. '이게 너희들의 모습이다. 죄의 결박에 묶여서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가 시키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의 모습이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요.
'정말 그렇구나.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된게 이런 거구나. 죄가 당기면 끌려가야 되고, 죄가 좀 풀어주는 것 같으면 괜찮은 것 같고..' 이 죄는 정말 무서운 주인이더군요.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죄의 권세를 깨뜨리신 거에요. 그 죄의 사슬을 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죄에서 해방되게 하신 거죠. 그분이 십자가에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래서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게 없다!' 선언하신 거죠.
3) 세 번째는 "죄의 오염"입니다. 구약에서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어요? 죄인이 짐승을 데려와요. 소나 양이나 짐승을 데리고 와서 그 머리 위에 안수하고 죄를 고백합니다. 그 짐승은 죄가 없어요.
근데 죄지은 사람이,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고백을 하면 죄가 그 짐승에게 전가가 되는 거에요. 그 짐승이 내 죄를 뒤집어쓰는 거예요. 그리고 죄 없는 그 짐승을 잡아 죽여요. 피를 뿌려요. 그리고는 짐승을 조각 내서 제단에서 태워버려요.
그 짐승은 아무 죄가 없어요. 그런데 왜 죽었어요? 내 죄 때문에! 내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거에요.
성경의 예수님을 누구라고 합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예수님이 우리 유월절 희생양이 되셨죠.
저와 여러분이 지은 그 모든 더러운 죄와 그 오물들을 다 뒤집어쓰시고 우리가 받아야 하나님의 그 진노를, 다 하나님 으로부터 쏟아부음을 당하시고 그리고 그렇게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예요.
▲요즘 미국의 똑똑하다는 아이들이 대학가에서 하는 질문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좋은 분이라면, 어떻게 좋은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죽일 수 있냐?' 그렇게 물어봐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분이지만 동시에 그분은 결코 죄를 간과할 수 없는 분이고
십자가는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만을 보여 주신게 아니라 그분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철저하게 벌하셔야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만 보여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시는 것이 십자가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난 것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왜요? 그가 가진 학벌, 그가 가진 지식, 그가 가진 인맥, 그가 가진 재산, 그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해줄 수 없잖아요.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내가 어떤 죄인인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밖에 없어요.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이 죄에서, 이 죄의 결과들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죄인이고, 나는 정말 죄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전부에요. 그럴 수밖에 없죠.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의 전부를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의 전부를 다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보배 피로, 저와 여러분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희 교회주변으로 술집들이 있었어요. 그 거리가 홍등가 거리에요. 교회를 오려면 그런 거리를 거쳐서 교회를 갔어야만 했어요.
가끔 저녁에 그 거리를 지나가면, 그 집 앞마다 아가씨들이 길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오빠 놀다 가요!'하는 그런 곳이에요.
하루는 어떤 아가씨가 우리 교회로 뛰쳐 들어왔어요. '자기를 좀 살려달라고, 자기를 좀 구해 달라고'
무슨 사연인가 들어보니까, 이 아가씨가 중학교 때 지방에 살던 집을 나와서 서울에 가서 나쁜 사람들 만나서, 몸 다 버리고 그리고는 그런데 몸파는데 팔려서
거기에서 정말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다가 또 그런 지역에는 '인신 매매'라고 해서, 거기 종사자들을 또 다른 곳으로 돈을 받고 판대요.
근데 팔릴 때마다, 그 몸값이 점점 불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더욱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가 된데요.
그런데 이 아가씨가 우리 교회에 왔을 때는, 몸값이 너무 올라서 자기가 평생 일해도 갚을 수가 없대요. 자기는 평생 그렇게 죄의 노예로 살아야 돼요.
방법은 단 한 가지, 누군가 와서 자기 몸값을 지불해주는 겻 외에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알고 보니까 그 몸값이 우리 죄값이더군요.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값, 몸값을 지불하셨는데 그것을 속죄, 속전, 속량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영어로 랜섬 ransom 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몸값을 지불하시고, 저와 여러분을 사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읽고, 우리가 한번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지 않고는,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저와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전부를 요구합니다. 우리의 부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전부를 사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난 사람, 정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롬14: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듭나고, 그리스도 십자가로 구원을 얻어서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없다, 자기를 위해 죽는 사람도 없다!
만약에 내가 나를 위해 산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못 만났는지도 모르죠.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알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다.' 롬14:8
저와 여러분은 살아도 주의 것, 죽어도 주의 것,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롬14:9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왜 부활하셨어요? 저와 여러분을 그분의 것(소유) 삼으시려고, 죄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죄의 모든 결과들에 대해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켜서 영원히 그분의 것 삼으시려고,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고, 복음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정말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소망이 없고 그렇게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우리 다같이 오늘 이 찬양을 부르며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것입니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의 남은 삶도, 내가 왜 살아야 됩니까? 너무나 간단하지 않습니까.
나를 사셔서, 내 인생에 주인 되신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 그분을 위해서 사는 것, 그게 저와 여러분이 사는 유일한 이유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 찬양 부르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