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K
2022. 5. 27. 16:14
◈남자와 여자를 위한 권면 딤전 2:8~15 2018.11.11.설교녹취
본문은 교회 안에 있는 남자성도, 여자성도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먼저 남자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이 말이 여자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노와 다툼"에 관하여, 특히 남자들이 약하기 때문에
더 주의하라 라고, 교회 안의 남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각처에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각처'는,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말합니다.
즉 각 교회에 남자성도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기를 바란다.. 라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화 anger'죠.
요즘 우리 말로 하면 욱하고 올라오는 것 .. 그것이 분노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강의 다닐 때 통학버스를 자주 타고 다니는데 하루는
제 옆자리에 신대원 졸업반 학생이 앉았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이 학생이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생이에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나오고,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목회자의 소명을 받아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왔습니다.
3학년 졸업반 학생이라서
제가 그에게 '이제 곧 졸업이니까, 전임 사역에 나갈 준비를 해야 겠네요' 라고 얘기했더니
그는 아주 겸손하게 '제가 아직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그러면서 이 졸업반 학생이 맨 먼저 한 얘기가
'제 안에는 아직도 욱하는 것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더라고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자 매뉴얼>에서, 교회의 남자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강조해서 지도할 과제가 "분노와 다툼"이라는 것입니다. *2:8 without wrath and dissension
대다수의 남성 분들은 욱하는 성질이 어느 정도 다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속에서 욱하고 올라올 때, 성령의 도움으로 잘 조절해서 눌러야 하는데
그게 잘 조절이 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경우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가 나서 분노하게 되면, 자주 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2:8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분노와 다툼"은 서로 상관없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 있는 남자들에게, "서로 분노하며 다투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툼'은, 물론 주먹다짐을 한다는 것은 아니겠죠. 주로 언쟁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생각이 다르고, 또 성격이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서로 생각이 다르고,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이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 자신의 입장을 지나치게 고수하려고 할 때
충돌이 빚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서로간에 의견 차이가 있을 때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을 했을 때,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은, 엡4:1~4절입니다.
엡4:1~4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니,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라고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힘써서 지킨다고 말합니까?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서로 사랑가운데 용납함으로 하나됨을 지키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노와 다툼의 그 다음 단계는, 사탄이 참으로 좋아하는 분열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러한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서 기도하는 것이다'
라고 본문 딤전2:8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딤전1:18절에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씀이 앞서 나옵니다. 딤전6:12, 딤후4:7에도 나오죠.
성도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등한시 하다 보면, 그 반대인 '분노와 다툼'으로 인한 분열로 가기 쉽습니다.
또한 '분노와 다툼'으로 가면, 선한 싸움을 못 싸우는 거죠.)
교회에서 남자 성도들은 '분노하거나 다투지 말고 기도하라'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래서 마5장에, '하나님께 나올 때 형제와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오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우리가 주일예배 드리러 오기 전에, 마5:23~24절 말씀에 따른다면
나의 가족이나, 나의 친구나, 나의 직장동료들과 풀어야 할 문제가 있으면
토요일까지 다 풀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겠죠.
물론 그러한 문제들이 매우 복잡다단하고 꼬여 있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말씀이 가르치는 원리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박태준이 朴泰俊이 본 日本 (분노 관련 일화, 스크랩 글)
"분노는 참아 삼기고, 감동은 배워 디딤돌로 삼는다"
포스코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박태준, 포스코 창업자)는 일본에 달려갔다
과거를 잊지 않은 일본인은 아낌없이 한국을 도왔다.
그 '巨人의 時代'를 읽으면
지금 韓·日은 너무 초라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철강인 박태준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책(아마 자서전)에 기록했다.
그는 수영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조선인이란 이유로 야유를 받고 2등으로 강등당한 일,
그리고 미군의 폭탄이 쏟아지던 날 방공호에서 겪은 일이다.
"방공호는 질서가 정연하다.
이 일에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이 나선다.
'젊은이는 안쪽으로 들어가라.
위험한 곳(입구)은 우리가 막는다.
왜 책을 들고 오지 않았느냐? 젊은이는 책을 펴고 공부해라.'
방공호 입구에 천막이 쳐지고, 젊은이가 모인 제일 안쪽엔 두 개의 촛불이 켜진다.
박태준은 수영대회에서 1등을 빼앗겼을 때
"속이 끓었지만 참고 다스렸다"고 했다.
방공호에서 할머니의 질책을 들었을 땐
"식민지 대학생의 가슴으로 들어와 고국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웠다"고 술회했다.
일본이 준 분노는 참고,
감동은 받아들여 조국을 위한 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박태준이 훗날 포스코를 세울 때 '은인(恩人)'으로 부른 일본인이 몇 명 있다.
당대 일본 최고의 사상가(思想家)로 불리던 양명학자 야스오카 마사히로가 그중 한 명이다.
종합 제철소 프로젝트가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에 퇴짜를 맞았을 때
한국은 일본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모든 책임을 어깨에 지고 도쿄로 간 박태준은 야스오카를 가장 먼저 만났다.
그는 일본 정·재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통하는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야스오카는 '과거를 반성하고 한국을 돕는 것이 일본의 국익'이라는 한국관(觀)을 갖고 있었다.
그는 먼저 기술 협력의 열쇠를 쥐고 있던 이나야마 요시히로 일본철강연맹 회장에게
박태준을 보냈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등 정계 거물과의 연쇄 만남도 주선했다.
박태준의 열정에 야스오카의 성의가 더해져
미온적이던 일본 정부와 기업은 열정적 지지자로 변했다.
다른 선진국처럼 만약 그때 일본도 한국을 외면했다면
포스코는 그런 위용(威容)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박태준이 유학시절, 일본에서 받은 수모를
그저 '분노'로만 반응했다면,
그는 일본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 성도들을 향한 권면
2:8절에서 남자 성도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을 준 이후에
그 다음에 2:9~15절까지는, 모두 다 여자성도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먼저 9~10절은 여자성도들의 단장에 관한 말씀입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9절의 시작이 '또 이와 같이'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
이는 8절에서 '남자들이 각처에서 (즉 각 교회에서_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권면을 들은 것 같이
'여자들도 교회에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교회에서 여자들은 단정하게 옷을 입으라..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보기에 민망한 옷을 피하라 라는 말이죠.
예를 들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 할지라도 노출이 심한 그런 옷은 피하라' 뭐 그런 것일 것입니다.
'소박함과 정절로서 단장하라'는 것은,
비싼 옷이나 화려한 악세사리로 치장하지 말라 라는 말입니다.
'아니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비싼 옷을 사서 입고,
비싼 악세사리를 착용하고 나오는 건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사실 성숙한 생각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도 있고, 나의 비싼 옷과 악세사리로 인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는 성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특히 성숙한 성도들은,
늘 지체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들의 단장에 관련해서 '땋은 머리'가 언급이 되었는데요.
특히 초대교회 당시, 이스라엘과 소아시아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땋을 때
금이나 진주로 함께 장식하여서, 머리를 화려하게 번쩍번쩍 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땋은 머리와 관련된 말씀, 비싸고 화려한 것을 피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현대에 '머리를 땋고서 교회에 나오면 죄다'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단장에 관하여, 오늘 본문에서 여성들에게 '이렇게 단장하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자성도들은 화려하고 비싼 옷과 악세사리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으로 단장하라' 라고 10절에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선행'은 상당히 포괄적인 말인데요.
▲이 편지의 뒷부분, 디모데전서 5:10절에 보니까
여성의 구체적인 선행에 대해서 4~5가지 정도를 이렇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딤전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여성의 선한 행실을, 네 가지로 말하는데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
-성도들의 발을 씻기는 것, 이것은 조금 문화적인 것이겠죠.
고대 이스라엘 소아시아 지역은 다 샌달을 신고 다녔고
집에 오면 발을 씻겨주는 관습을 얘기합니다.
-네 번째는 어려운 자를 구제하는 것... 이러한 선한 행실을 말합니다.
즉 여자성도들은 단장을 하는데 있어서, 세상 여자들과 좀 종류가 다른 단장이네요.
이러한 선한 행실로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해라 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여자성도들의 단장을 불에 통과시킨다면
비싼 옷과 화려한 악세사리로 한 단장은 다 없어질 것이고
선한 행실로 자신을 단장한 것은, 아름답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고전3:13
▲2:11~14절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관해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 말씀에 보니까, 먼저 여자들에게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체 순종하라'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배우라'는 것이죠.
교회에서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니까
여기까지는 여성들이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12절 말씀에서는 약간 갸우뚱하는 성도님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여기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모든 가르침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립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모든 가르침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 주일학교를 섬기는 많은 여성도님들,
그리고 청년부에서 순장을 맡아서 말씀을 가르치는 우리 여자 청년들은
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가요? 물론 아니죠.
초대교회 당시에도 보면, 여자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그런 인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가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죠.
초대학교의 지도자 아볼로를 사적인 자리에서 가르쳤던 성경교사가
바로 여자였던 브리스길라였습니다. *행18:26
사실 12절 말씀은 해석하기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 성경을 해석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만나면,
그 구절과 관련된 성경 본문들을 종합적으로 다시 보면서 해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 구절만 봤을 때는 이해하기가 어려워도
모든 성경은 한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일관되게 쓰여진 말씀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어려워 보이는 구절의 해석에 대해서, 우리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1) 일단 초대교회 안에, 브리스길라와 같이 (사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여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12절에서 '여성이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 여성의 가르침은, 교회 안에 있는 여성의 모든 가르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죠.
2) 딛2:3~4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나이가 많은 여성도들이, 젊은 여성도들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교훈할 것을 권면합니다.
3) 그리고 또한 초대교회에서 여자성도들이, 어린 자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권면합니다.
딤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그의 외할머니인 로이스와 어머니인 유니게 에게 있던 그 믿음이
디모데에게 있음을 확신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이는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디모데에게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본문 딤전2:12절에서 '여자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여자가 교회 안에서 감독, 즉 장로교로 하면 '목사, 장로' 직을 받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일은 본문 바로 다음에, 딤전3:1절부터는 '감독(목사)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는데,
3:2절에 보면, 감독의 자격 요건으로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즉 남자를 전제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된다'는 것은, 남자이어야 함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2:12절에서 여자의 가르침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여자가 감독으로서, 즉 교회의 목사나 장로로서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을 수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성목회자 안수 문제는, 오늘날 교계에서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크게 보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논란을 삼을 이유가 많이 없습니다.
일부 교단에서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의 당회장으로서 청빙하는 예는, 아직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설교로 가르치기는 한다 하더라도, 남자들을 다스리는 것은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 문제로 너무 과도한 논쟁을 일삼지는 말자는 뜻이고,
이에 대한 반대의견도,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주장하는 줄 알고 존중합니다/주)
브리스길라가 성경을 잘 가르치는 여성이었지만
교회의 감독으로서, 즉 목사나 장로로 안수받고 공적인 예배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 가르친 교사였습니다. 아볼로에게도 사적으로 성경을 가르친 것이죠.
▲딤전2:12절,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교회의 공적인 지도자로서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목사, 장로 직을 맡아서 교회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감독의 자격을 가르친 딤전3:4~5절에 보면,
남자가 감독으로 임명받을 수 있는 그 중요한 자격 요건 중에 하나가
'교회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녀들을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다스리리요)'
초대교회 내에서 '여성지도자, 여성 일꾼, 여성 동역자'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 여성일꾼들, 여성 동역자들 중에는
감독 즉 안수받은 목사와 장로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성경에 여성 동역자로서 언급되는 인물 중에 뵈뵈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롬16:1절에서 바울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바울은 빌4:2~3절에서, 빌립보 교회의 여성 동역자인 유오디아와 순두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그러나 뵈뵈, 유오디아, 순두게는.. 교회에 다스림을 맡은 감독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감독은 남자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감독의 직, 즉 목사, 장로의 직을 받을 수 없었다 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정의 가장은, 여성인 어머니가 아니라 남성인 아버지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지도하는 감독, 즉 안수 받은 목사와 장로의 역할은 남자에게 맡겼기 때문에
12절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에게 고유하게 맡겨주신 역할이 있듯이
여자에게 또 고유하게 맡겨준 역할에 대해서, 마지막 15 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절의 해석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 무슨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가?'
사실 이런 질문부터 시작해서, 많은 질문이 생기는 그런 구절인데요.
여기서 '여자가 해산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 딤전5:1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젊은 여성)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바라노라' 딤전5:14
이 말씀은, 젊은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잘 이끌어서
그가 어머니로서, 또 그가 안주인으로서 역할을 잘 하여서
본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를 책잡으려고 하는 그런 대적자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2:15절을 이해하면,
'여자 성도들에게 정숙하고 또 절제하고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럴 때 그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는데
여기서 '해산함'은, 단순하게 여성이 아이를 낳는 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포함하여,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까 5:14절에서 봤듯이, 아이를 낳을 뿐만 아니라 잘 양육하는 것까지 얘기하는 것이죠.
이러한 일에 충실할 때,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십자가의 대속으로, 용서받는 의미로서의 구원이 아니라,
여기서는 '건져냄을 당할 것이다. 대적으로부터 보호함을 받을 것이다' 라는 뜻의 '구원'입니다.
즉 어머니로서 아이를 잘 낳고, 또 잘 키우고, 이렇게 가정 일에 충실한 자들 그런 자들은
(교회를 다니고, 교회 일에 충성해도) 대적들에게 어떤 책도 잡히지 않고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 말을 '구원'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구원하다는 헬라어 '소조'라는 말에는 '곤경에서 구출하다'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황선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