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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3장,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
LNCK
2022. 6. 18. 17:31
◈딛3장,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 딛3장 여러 설교 정리
<딛3장의 개요>
1~2절,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
3~7절,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된 삶
8~15절, 구원받은 자로서 바르게 사는 법, 마지막 인사
◑적용 “미래를 내다보는 신앙”
오늘 본문 딛3장의 하이라이트는 3:3~7절, <구원받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변화된 삶>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신앙”에 대해서,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구원의 3시제”가 중요한 것은, 성경에 나오는 구원은
과거적 구원, 현재적 구원, 미래적 구원.. 이렇게 3개가 다 나옵니다.
▲예수 믿기 이전 상태
딛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3절은, <구원 받기 이전>의 상태를 8가지 정도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마치 로마서 1장과 비슷합니다.
롬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리 각자는, 내가 예수 믿기 이전 상태를, 아주 가끔 한 번씩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본문 3절 그대로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현재 지옥’의 살얼음 판 위를 걸어가는 중인 삶이었던 거죠.
그걸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오늘 현재 내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가를, 잘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는,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내 주위의 사람들의 상태를
한 번 직관할 필요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차 타고 다니고, 비싼 옷 입고 다녀서 다들 ‘잘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롬1:29~30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지루하게도 매일 반복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가 구원 받은 자로서 ‘천국 시민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1. 구원의 과거 시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구원의 과거)
‘우리를 구원하시되’ - 영어성경에 ‘He saved us’로 나옵니다.
'구원하시되'의 헬라어 '에소센'은 '소조'(구원하다)의 부정 과거로서
구원이 과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미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서, 과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에 구원을 계속 살아내고, 이루어가야 합니다.
▲2. 구원의 현재 시제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구원의 현재)
딛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가 상속자가 된 것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때부터 현재 – 미래까지 계속 더욱 완성되어져 갑니다.
세 시제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상속자로서 미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난에 동참해야만 합니다(롬 8:36, 37).
구원의 현재시제는, 딛2:11절에 잘 나타나 있는 바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3. 구원의 미래 소망 (이 점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는데, 이 주제는 딛3장에 안 나오고, 2장에 나옵니다)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결교회 holiness church는 ‘4중 복음’을 믿습니다. *Fourfold gospel
한국에는 덜 알려진 CMA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교단도 4중복음을 믿는다고 합니다.
‘4중 복음’이란, 복음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서 4가지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가지입니다.
원래 장로교는 ‘중생(구원)’ 한 가지만 강조하는 전통이, 17세기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존 웨슬리와 감리교가 출현하면서 ‘중생’ + ‘성결’을 강조했습니다.
성결교회는 19세기 미국에서 생겨났는데, 감리교에서 분화된 교단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중생’ + ‘성결’ 에 + ‘신유’ + ‘재림’을 보태서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4중 복음 Fourfold gospel’ 이라고 부릅니다.
오순절교회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역시 4중복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재림의 복음’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너무 ‘재림’에 대해, 기다림이 없고 강조가 없으니까
‘우리가 잘못 됐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갖자’ 하고 일어난 사람들이
미국에서 성결교단을 형성하고, 오순절 교단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19세기 말은, ‘종말론’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성결교가 일어난 시기
왜냐면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인류역사나 성경역사를 ‘6천 년’으로 믿었고,
19세기 말, 그러니 1850~1900년 사이에 ‘세상 종말론’이 크게 유행해서, 6천년이 거의 다 차서,
사람들은 20세기 초에, 즉 1900년대 초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인류역사 6천년의 마지막 피날레 시기로 본 것입니다.
(앨런 G. 화이트 여사는 1844년 10월 22일을 예수님 재림 날짜로 예언했습니다.
물론 틀렸죠. 그녀를 따르던 사람들은 내몰렸고, 그들은 ‘안식교 Adventist’를 조직했습니다.
그만큼 재림에 대한 기대가, 당시에 컸다는 거죠.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서 그녀는 "미국 역사상 100인의 중요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됨)
이 당시에 유명했던 성경구절이 딛2:13절이요, ‘복된 소망 blessed hope’입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데이빗 윌커슨 목사의 설교에 의하면, 자신이 어렸을 때는, (1931~2011)
즉 20세기 초반에는, 순회설교자들이 인도하는 부흥집회가 들판에서 열려서
다들 음식을 싸들고 가서, 천막에서 자면서, 집회를 참석해서 은혜를 받곤 했는데,
거기서도 강조한 복음의 주제 한 가지가 ‘재림’이었다고 합니다.
‘재림을 기다리자’는 제목의 설교를 듣고서, 성도들이 들판에서 통성으로 기도하고, 고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결교단, 오순절 교단은 4중복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중에 하나인 <재림>을 강조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6천년 종말설’이 대세였던 교계 분위기가, 당시 시대 배경에 있었고요.
어쨌거나 1세기 전 기독교인들은, ‘재림’을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던
<재림신앙>이 있었다는 것인데,
오늘날 우리는 <재림신앙>을 너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날 유행하는 세상 사조가 ‘실용주의 (프래그마티즘)’입니다. *Pragmatism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자기는 실용주의 노선을 따른다고 천명했습니다.
출신 배경이 기업인이라서 특히 그러했나 봅니다.
그런데 목회자 가운데도 ‘실용주의’를 따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에 실용주의적 요소도 얼마간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반기독교 사상입니다)
혹시 시대사조가 실존주의, 실용주의 라서, 은연중에 그 공기에 우리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요?
실용주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게 돈 되는 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세계관입니다.
실존주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게 나하고 관련이 있느냐/없느냐?’를 따집니다.
그래서 그게 아무리 중요한 진리라 하더라도,
-그게 돈 되는 일이 아니면,
-나하고 관련이 없으면,
별 볼일 없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종말론, 재림신앙이 무시를 받고 있다”는 논지입니다.
사회 공기air가 실용주의, 실존주의라서, 모두가 그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어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죠.
현실과,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춘 실용주의, 실존주의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재림 신앙.. 그게 오늘 나에게 밥 먹여 주냐?’ 하고 무시해 버리기 쉽습니다.
▲미래에 받을 ‘상’을 기대한 사도바울
목회서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에는,
본문 디도서와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디모데후서에서,
사도바울은 ‘미래적 신앙’을 종종 강조하고 있습니다.
1) 딤후2:3~6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위 구절에 3 인물이 나오는데, 병사, 운동선수, 농부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병사는.. 승리를 기대하고 (대장을 기쁘게 함)
운동선수는.. 면류관(승리자의 관)을 기대하고,
농부는.. 추수를 기대합니다.
나에겐, 이런 “병사, 운동선수, 농부의 기대감”이 오늘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현실주의/실용주의/실존주의에 물들어서
‘천국 상급, 복된 소망, 그런 것이 밥 먹여 주나?’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사도바울은 또 한 가지 ‘미래 소망’을 이렇게 편지로 남겼습니다.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나는 과연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겠는가요?
지금 나를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가요?
바울은 왜 하필 ‘의의 면류관’ crown of righteousness 라고 불렀을까요?
이 면류관은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의로운 삶을 살았던 자들을 위해
특별히 주시는 상으로 봅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선한 싸움을 싸운 자, 달려갈 길을 마친 자, 믿음을 지킨 자가 받는 것이
바로 ‘의의 면류관’인 것입니다.
2000년 경에 중국의 어느 처소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정교회인 셈이지요.
거기엔 ‘책임 집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교회의 장로 같은 직책이었습니다.
그 책임 집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딤후4:7
무슨 뜻일까요?
-개인적으로 죄의 유혹이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정적 죄는 짓지 않았다는 거죠.
-또한 교회를 이끌어오면서, 문을 닫을 뻔한 위기도 있었고, 공안과 지역사회의 핍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처소교회를 문 닫지 않고,
담대하게 계속 지켜왔다는 뜻도 담겨있었습니다.
참으로 멋진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신앙고백할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이런 직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쓸 것입니다.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 결혼 전에 자신을 준비하듯
우리는 신랑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의 삶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4장에서도 그렇고, 이렇게 '종말론'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도 종말을 기다리며 살고, 자기가 개척한 교인들도 종말을 기다리며 살게 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재림을 '복스러운 소망'으로 불렀습니다.
왜냐면, 상받는 날이라서 그렇습니다.
마라톤을 마치는 날이라서 그렇습니다. 달리느라 기진맥진한 선수는 얼마나 그 시간을 기다리겠습니까?
의로우신 재판장이 나타나셔서, 자신을 의롭게 판단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딤후4:8
△정리하면,
신앙에는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현재만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전혀 대비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기 쉽습니다.
요즘 하루 아침에 비트코인(루나 등)이 폭락하여, 자산 가치가 0가 되는 뉴스가 나옵니다.
손실 규모가 40~50조라고 뉴스에 나옵니다. (최고점 대비)
퍼뜩 계산을 해보면, 1인당 4억씩 손해를 본 사람이 10만 명이라는 얘기입니다.
무려 10만명이란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4억씩이나 손해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서는 그보다 더 큰 폭락과 손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산 가치들은, 모두다 “O원”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10만 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죽어서 천국에 가서
그들의 일평생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모든 업적, 인격, 자산들이 “O원”으로 평가될 것이고,
또한 지은 죄로 인해서 “마이너스 무한대의 빚”이 남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예수를 믿고 모두 구원 받은 성도들입니다. 딛2:11, 3:5
그리고 <현재>는 예수님과 함께 된 상속자로서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딛2:12, 3:7
그리고 <미래>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딛2:13, 딤후2:3~6, 4:8
오늘날 우리가 선교지 현지인 신자들을 보면서, 스멀스멀 드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대체로 그들은 우리 한국인들보다 학력이 낮습니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대체로 그들은 한국인들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합니다. 아주 열악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그들은 한국인들보다 피부색이 검습니다. 그래서 무시하기 쉽습니다.
-대체로 그들은 기독교를 믿는 신앙환경에 핍박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천국에 가서,
그들은 나보다, 한국 신자들보다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더 큰 상급을 받는 것은 아닐까요?
왜냐면 그들은, 가난 가운데서도, 핍박 가운데서도, 열악한 사회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진심으로 믿고, 섬기고, 기도하며, 충성했으니까요!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요)
그래서 신앙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의의 면류관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군사가, 운동선수가, 농부가.. 상과 열매를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절별 해석
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은 어떤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세력을 의미한다.
바울은 본절에서 국가의 통치 권력에 대한 순종을 디도에게 권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그레데인들이 로마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 많은 소란과 폭동을 일삼았던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바울은 롬13:1-7에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통치 세력에 순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지상국가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통치 세력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복종해야하며, 그리스도인들은 통치 세력이 결정한 법규에 대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국 시민인 동시에(빌 3:20)
이 땅의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평안한 신앙 생활을 할 수있으며(딤전 2:2)
또한 그리스도의 명령이신 전도의 문을 넓힐 수 있다(벧전 2:15).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여 - 그리스도인들은 시민으로서 화재나 질병,
여러 가지 재난을 당할 때 언제든지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 그리스도인들은 통치 세력이나 이웃들, 심지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조차 '비방과 악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딤전 6:4, 벧전 2:23).
'훼방'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지해야 하며보다 적극적인 복음에의 순종을 필요로 한다.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하라’
그리스도께서는 평생을 온유하신 모습으로 사셨고(사 53:7, 마 11:29)
모세(민 12:3), 다윗(삼하 16:11), 스데반(행 7장), 바울(딤후 4:16) 등은
범사에 온유한 태도로 살았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할 최상의 덕목 중 하나이다(갈 5:23).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개역 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이후에 언급될 진술(3-7절)이 앞서 권고한 덕목들의 이유와 근거가 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에 이교도와 같이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구원받은 자이며
영생의 소망을 가진 상속자이기 때문에 권고한 덕목들을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
‘우리도 전에는’ - '우리'는 바울 자신과 디도, 그리고 그레데 교인 전부를 포함한다.
'전에는'은 그리도인들이 구원받기 이전 상태를 가리킨다(엡 23:3).
‘어리석은 자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에토이'는 '지각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영적 무지를 가리킨다(고전 2:14).
‘속은 자요’ - 거짓 교사나 거짓 종교에 의해 잘못된 길로 인도를 받아 멸망의 길로 빠진 것을 의미한다(벧전 2:25).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인간은 오직 자기 만족과 향락을 추구하는 타락된 상태에 사로잡혀있다.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 구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신앙 고백이다.
본절의 '구주'라는 칭호는 6절에서 그리스도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본절의 '나타내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파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의미하는 바,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시사한다.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하시되’ - '구원하시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소센'은 '소조'('구원하다')의 부정 과거로서
구원이 과거에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완전한 구원의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구원은 결코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의로움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는다(롬4:4, 5, 갈2:16, 17, 엡2:8, 9).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 '좇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는 기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따라 주어진 것임을 의미한다.
'긍휼하심'은 앞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 즉 '자비와 사랑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 용서하시고 호의를 베풀어서 구원을 허락하신 것은
구원이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롬 11:6).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본절은 구원의 수단을 두 가지로 밝힌다.
1) 중생의 씻음. '씻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루트루'는 는 '대야' 혹은 '씻는 행위'를 의미한다.
본절의 '루트루'는 '씻음'특히 종말론적 입장에서 '침례'를 의미한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도래한 새시대에로의 진입 수단이다.
그러나 외적인 물 침례를 통해서 구원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 침례는 단지 '씻음'에 대한 상징직 표현에 불과하다.
그래서 바울은 '물침례'를 상징하는 '씻음'에 '중생의'라는 어구를 덧붙이고 있다.
'중생의'로 번역된 헬라어 '팔링게네시스는 팔린'(다시')과 '게네시스'('출생')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본절과 마19:28에서만 나타난다.
'팔링게네시아스'는 마테복음의 경우 우주의 변화를 나타내나
본절에서는 '영적 차원에서의 거듭남'을 의미한다.
2) 성령의 새롭게 하심.
'새롭게 하심'은 '중생의 씻음'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이다(롬12:12, 엡 5:26, 27).
한편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하심'에 대해 혹자는 동일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혹자는 서로 다른 사건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두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중생'은 새로운 상태나 신분에로의 전이 즉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순간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새롭게 하심'은 전이가 초래한 내적이며 점진적인 변화
즉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성령을...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 본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에 대한 초대 교회의 사상을 반영한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미암아는 ‘디아’ 통하여 through 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은총을 수여하신다.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본절은 '히나'('위하여')로 시작된다.
이는 본절의 진술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궁극적 목적임을 나타낸다.
‘우리로 저의 은혜을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디카이오덴테스)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되다' 즉 '칭의'(稱義)를 의미한다.
'칭의'는 인간의 공적이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성결된 삶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롬 5:20, 벧전 1:15).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은 구원시 본질이자 의롭다함을 얻은 결과를 진술한다.
본절의 '후사가 되게'는 '히나'와 연결된다.
이는 '후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궁극적 목적임을 나타낸다.
'후사'는 '상속자'란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됨을 나타낸다(갈 4:4-7).
후사된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린다(롬 8:17).
그러나 상속자로서 미래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난에 동참해야만 한다(롬 8:36, 37).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 말이 미쁘도다’ - '이 말'은 4-7절을 가리킨다. 바울은 4-7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신실함'을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바울은 본절에서 디도에게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해 강력하게 선포하라고 권면한다.
'여러 것'은 4-7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 즉
1)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4절),
2) 중생과 성령의 새롭게 함(5절),
3)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부어 주심(6절),
4)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함(7절) 등이다.
한편 '굳세게 말하라'는 교훈은 거짓 교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레데 교회는 거짓 교사들이 허탄한 교훈을 전하여 혼란되었기 때문에
디도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확신 가운데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위하여')는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디도가 강력하게 선포해야 하는 목적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 그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하기 위함이다.
디도가 선포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분명히 이해할 때
그레데 교인들은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 거짓임을 알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선한 일을 힘써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 사역을 온전히 이해할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본절의 '이것은'에 대해 혹자는 4-7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라고 주장하며,
혹자는 바울이 이제까지 디도에게 한 권면들 전체라고 주장한다.
두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바울이 디도에게 권면한 윤리적 덕목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말씀에 따라 선행에 힘쓰는 것은
성도 자신은 물론 비그리스도인에게까지 기쁨과 유익을 끼치게 된다.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그러나’ - 본절에서 바울은 앞절과는 달리 금지 명령을 하고 있다.
본절에서 바울이 디도에게 금지시킨 명령들은 에베소 교회의 디모데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딤전1:3-7).
‘어리석은 변론’ - 이는 삶 속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줄 수 없는 논쟁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1)성경에 언급되지 않는 것,
2)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
3) 구원 문제와 신자의 삶에 중요성이 없는 것 등이 포함된다.
‘족보 이야기’ - 이는 어리석은 변론 중의 하나이다.
유대인들은 '족보'를 중시하여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제사장들의 가상적 족보를 만들어
이것을 구원의 조건과 선민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편으로 내세웠다.
이런 유대인들의 자랑과 변론은 초대 교회에 많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으므로
바울은 이런 형식적이고 생명력이 없는 행위들을 어리석고 허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딤전 1:4).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
'율법에 대한 다툼'은 1장에서 언급된 바와같이(1:10-16)
그레데에 살던 유대인들의 거짓교훈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준수, 할례, 정결례 등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으로 서로 다투었고
그 결과 '분쟁'을 초래하였다.
그들은 이런 표면적인 문제를 통해 입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인 것처럼 가장하나
실상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이익과 권력, 명예만을 추구하였으며
결국 그레데 교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피하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이스타소'는 문자적으로 '돌아서다', '따로 서다'는 뜻이다.
이것은 같이 어울릴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디도는 교역자로서
유대인의 의미없는 논쟁에 빠져들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말씀의 사역을 잘 감당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권면해야 했다(마28:20 , 딤전4:11).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단에 속한 사람 - '이단'(하이레티콘)은 본래 '견해', '학파','종파'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단자들은 자신이 견해를 고집함으로써 '분파'나 '당파'를 만드는 사람으로 전락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구별하는 사람'(a divisive person, NIV),
'당파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a man who is factious, RSV)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본 절에서는 당시 그레데 교회의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에 관한 논쟁과 족보 이야기등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1:14)를
주장함으로써 교회의 교훈과 전승에 대립하였다.
‘한 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 '이단에 속한 자'에 대한 교회의 치리 방법은 두가지이다.
첫째, 한두 번 훈계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도록 권면하고 책망해야 한다.
그래서 훈계를 받아들인 자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해야 한다.
둘째,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자는 교회에서 내보내야 한다(벧후2장).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에 존속(存續)하면서 교인들 유혹하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 본절은 이단에 속한 자들의 상태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심하게 왜곡되고 비틀어져서 진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훈계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패하여서'에 해당하는 '여세스트랖타이'는 완료 시상으로 가미 그들이 완전히 타락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죄를 짓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하마르타네이'는 현재 시상으로
현재 의도적으로 바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미 마음이 왜곡된 그들은 현재 훈계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악한 주장만을 고집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정죄하는 입장에 빠지게 된다.
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 '아데마'는 '아데미도루스'(Artemidorus)의 약칭(略稱)인 것 같다.
'아데마'에 대해 신약에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전승에 의하면
'아데마'는 루스드라의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두기고'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바울과 함께 여러번 여행하였으며(행20:4, 엡6:21, 22, 골4:7, 8),
바울이 디모데를 불러오기 위해서 에베소에 보낸 동역자였다(딤후 4:12).
한편 바울이 아데마와 두기고 중 누구를 디도에게 보냈는가에 대하여
혹자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 디모데를 부르기 위해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기 때문에(딤후 4:12).
아데마가 그레데에 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바울이 누구를 보냈는가는 불확실하다.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 '그 때에'는 아데마나 두기고가 그레데에 도착했을 때를 가리킨다. 이는 바울이 그레데 교회에 교역자를 한시라도 비우지 않으려고 하였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레데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있어서 교인들을 유혹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니고볼리'는 그리스의 서쪽에 위치한 '피루스'(Epirus)의 도시이다. 이곳은 '달마디아'(Dalmatia)를 선교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알맞는 곳이었다. 후에 디도가 니고볼리에 도착해 바울과 같이 겨울을 보내고 달마디아로 가서 선교사역을 감당한 것으로 추측된다(딤후 4:10).
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교법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교법사'에 대한 해석은 '세나'가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에 달려있다.
유대인일 경우 '교법사'는 율법을 주해하는 '율법사'를 의미한다.
반대로 이방인일 경우 '교법사'는 '로마의 법률가'를 의미한다.
혹자는 '세나'가 헬라인이라고 주장한다. '세나의 이름이 헬라명이고,
그 뜻이 '제우스의 선물'로서 '제틱도루스'(Zenodorus)의 약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과 아볼로도 헬라 이름을 가진 유대인이었으며,
더욱이 세나가 아볼로와 함께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이며 아가야와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쳤던 사역자였다
(행 18:24-18, 19:1, 고전1:12, 3:4-6, 4:6, 16:12).
한편 '세나'와 '아볼로'는 바울의 파송 명령을 따라 파송지로 가는 도중 그레데를 경유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때 본서를 전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고’ - 본문은 바울이 디도에게 명령한 것이다.
디도는 바울이 보낸 '세나'와 '아볼로'의 모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했다.
초대 교회는 전도 여행을 하는 사역자들의 생활을 책임졌다(롬15:24, 고전 6:6, 고후1:16 , 요삼1:5-8).
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또 우리 사람들도...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 바울은 본절에서 '세나'와 '아볼로'에게 베푸는 경제적인 원조를 디도 혼자서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그레데 교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레데 교인들이 잘 감당하도록 인도하라고 디도에게 권면한다.
교인들은 사역자를 위해서 기도하며(고후 1:11) 헌금을 통해서 사역자들이 말씀을
어려움이 없이 전파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
교인들은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나와 함께 있는 자가...너도 문안하라’
- '나와 함께 있는 자'는 특별히 어느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와 함께 하는 모든 동역자들을 지칭한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문안으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섬겨야 한다.
'문안'은 하나님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게 하며 서로의 믿음을 돈독케 하는 계기가 된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 지어다’ -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은 본서를 마치면서
디도와 그레데 교인들을 위해 축도를 한다.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에는
'아'이 첨가되어 있으나(Hervey), 초기 사본들에는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