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초월하고 변화시키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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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초월하고 변화시키는 복음 창17:7, 고전9:19~23
지금까지 저는 미국 한인교회에서 어린이 사역을 시작으로
오랜 세월동안 Korean-American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땅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섬기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난 세월동안에 정말 행복하고 소망에 찬 시간들도 많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은
교회 안에 젊은 세대들이 계속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인교회만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다른 소수 민족 이민교회들과
미국의 전통교파들까지도 (mainstream denominations) 함께 겪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후손을 축복하기 원하시는 마음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잘 알수 있습니다.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창17:7).
하나님의 계획은 한 세대를 위한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축복은 한 세대의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길' (신5:10b)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고 소망입니다.
이민 1세대는 대부분의 경우,
자녀들에게 좀 더 윤택한 삶과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고향과 직장과 친지를 떠나 큰 희생과 고생을 감수하시며 이 미국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기독교인으로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민교회를 곳곳에 세우시고, 자녀들이 그 교회에서 믿음의 2세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써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그 노력과 헌신과는 달리
어렸을 때는 부모와 함께 주일학교에 출석하였을지언정,
대학교로 떠나고, 성인이 된 후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어두운 이 세상 가운데에 사는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힘 되시고 방패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생각보다 언제나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들의 삶속에서 경험하지 못한채 살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믿음의 대가 끊어질 때 일어나는 더 큰 슬픔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2세에게 태어난 3세, 4세의 어린 영혼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부모 아래 성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어려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Silent Exodus'
즉 한인교회에서 조용히 출애굽하는 차세대를 일컫는 이 현상이
이미 오래 전부터 서서히 일어나고 있어서,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이민교회들이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을 해왔습니다.
교회들은 그 해결책으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여,
수고와 땀의 헌금을 모아 교육관을 세우고,
무리한 예산을 세워서라도 교육부를 담당할 사역자와 영어목회자를 구하는
등의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최상의 시설로 교육관을 지어도 영어권 청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차세대 목회자들은 대부분 한인교회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기에,
이러한 노력들이 차세대사역을 성장시키는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지금 교육부안에서 성장하는 어린 영혼들이
한인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고,
이미 떠난 이들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지난 세월동안 함께한 수많은 1.5세~2세 목회자들,
어린이부터 청년에 이르는 여러 차세대들을 통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들을 이곳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자라면서 가정과 교회에서 경험하는 문화의 차이로 인한 상처와 절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신 분들은 경험하셨겠지만,
이민 1세와 1.5세, 2세와의 차이는 언어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각과 이해, 사상, 도덕, 이 모든 것이 부모 세대와 아주 다릅니다.
그들이 만일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교회에서 자랐다면
이 문화의 차이가 신세대와 구세대의 차이 정도로 받아들여 지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즉 한국과 아주 다른 문화와 전통, 관습을 가진 나라에서
자라는 저희 다음 세대들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아주 다른 두 문화가 공존하는
또 하나의 Korean-American 이라는 아주 특별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모습과 먹는 음식은 한국인 같을지라도,
그 안의 생각과 정서와 문화는 한국인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제가 처음 차세대 사역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만 함께 가지고 있으면
1세와 2세의 문화적이고 세대적인 차이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화라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동일한 복음을 받아드리고, 동일한 말씀을 묵상하고,
동일한 하나님을 섬김에도 불구하고 지역과 생활환경과 value system등의
배경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성경을 해석하는 눈과 신앙생활의 실천,
또한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의 의견과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가족으로,
또한 한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 생기는 견해의 차이와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라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문화가 맞고, 당신의 문화는 틀리다'라고 판단할 때,
갈등은 상처를 낳고, 상처는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더 쉽게 생깁니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가정이나 교회에서 한국인의 전통과 문화가 무엇인지
잘 배우지 못한 경우, 그것이 실제로는 한국문화가 아닌데
한국문화로 오해하여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의 관계가 어려운 한 학생을 심방을 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My dad has such a bad temper. He is soooo Korean."
‘우리 아빠는 아주 나쁜 성격을 가졌어요. 그는 아~주 한국인입니다’
아빠가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사람도, 영국사람도 모두 temper가 있습니다.
또한,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She is so Korean'이라 말합니다.
제 미국친구들이 다 결혼하여 자녀가 있는데,
한국 어머님과는 비교 할수 없을 만큼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러한 성향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한국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하면
이렇게 부모의 모습에서 마음에 안들거나 상처가 되는 것을 경험할 때,
그 모든 이유를 한국문화 때문이라 원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이 가정과 교회생활 가운데에서 쌓이다 보니,
한국사람과 한국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깊어져서,
결국 한인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리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9장에는 사도바울의 이런 고백이 나와 있습니다.
"나는...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것이 다 되었습니다." (고전9:19-22)
사도바울은 베냐민의 자손이며, 바리새인으로써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에 따른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지키고 실천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는 그에게 종교이자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유대인이 아닌 다른 인종,
즉 다른 전통과 문화와 습성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유대인의 도가 아닌 주님의 사랑과 가르침만을 그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복음을 믿은 뒤 더 이상 유대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치 않아서가
아닙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보면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서도 유대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나와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진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때에는 내가 지키고 따랐던 문화와 전통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보여지는 사랑을 전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경험하고 믿고 실천하였던 복음은
참으로 빌립보서 2장6절-9절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땅에 사시면서 세상과 성전에서 소외당하고 외면당하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장애인과, 외국인,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이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율법과 규율을 어기는 행동이
동반될지라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고 깨달은 사도입니다.
어떻게 보면 3년이라는 세월동안 예수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제자들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전통과 규율과 율법보다 더 크고, 더 깊은 주님의 사랑을 믿었기에
그가 다른 문화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문화도 완벽하거나, 정답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러세대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때에,
서로의 다른 문화적 배경, 다른 시각과 의견에 대한 존중함과 이해,
포용력이 없으면, 주님께서 바라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확연히 다른 문화들이 서로 만나는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는
사도바울이 21절에 언급한 'Christ's law, 그리스도의 율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복음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문화 가운데 비성서적인 부분은 개인의 삶속에서
그리고 교회안에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성서적인 부분은 다음 세대들도 실천할 수 있도록
보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 중에는 지극히 성서적인 문화가 이미 전통속에 베어져 있어서
복음을 실천하는데 다른 문화보다 더 빨리 이해되고
더 쉽게 삶에 적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의 문화속에도
이미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복음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중에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부분이 중심이 된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느 민족, 어느 교회보다도 건강하고 은혜로운 교회로 성장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아주 큰 산이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한 수직관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가정안에서 자녀는 부모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여야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의 것과 다를 경우, 그저 뭔가를 표현만해도
'건방지다, 어디 부모에게'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한인교회도 대부분 나이와 지위를 기준으로한 동일한 수직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문화는 많이 다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뜻을 표현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자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도록 가르칩니다.
어른의 first name을 불러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미국의 문화입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어른들과 이러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저희 자녀들은
집과 교회안에서 동시에 다른 경험을 하게됩니다.
나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른을 disrespect, 즉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닌데
그런 오해를 받기에 상처가 되고,
그들이 의사를 표현할 자리가 마련되지 않거나 표현하여도 존중되지 않았을때는
자신을 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또한 상처를 받습니다.
이 부분은 가정과 교회가 함께 노력하고 인내하며 실천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예전에 함께 사역하였던 한 2세 청년을 기억합니다.
그 청년은 재능이 많고 성실하여 어른들과 함께 새로운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했고,
어른들께서는 그 청년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논의에 참여하도록
영어로 모임을 진행하시며 배려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어두운 표정으로 계속 있는 것입니다.
모임을 마친 후 제가 불편한 것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어른들을 보면 부모님 같아 자신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고 입이 열어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다세대가 함께 성장하고 사역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함께 협력하여 젊은 세대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달란트와 경험을 마음껏 사용하고 쓰임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이 부분이 배려되는 모습을 2세대들이 경험한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깨지고
어른들을 통하여 보여지는 사랑에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뿐만 아니라
문화의 차이로 인해 받은 상처가 혹 있었다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될것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주일학교를 섬기기 시작한 초기에 어린이들에게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질문중의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교사가 누구인가?'였습니다.
저는 어린이들의 답이 대학생이나 젊은 청년 선생님중에 한명을 적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리 60세가 가까우셨던
한 권사님의 이름이 제일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영어가 아주 편하시지 않으신데도 오랬동안 교사로 봉사를 하셨는데,
그 분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아이들에게 딱딱하거나, 엄한 모습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정말 말 그대로 할아버지가 손자손녀와 놀아주는 모습으로
아이들의 level에서 대화하시고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중고등부를 위한 교사는 젊은이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생각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분의 나이나 언어, 문화의 장벽을 넘어버린 것입니다.
▲저도 가정과 교회에서 문화적인 차이를 경험하고 자란 1.5세입니다.
지난 17년의 세월동안 한인교회를 위해 열심을 다해 섬기자고 했던 대부분의
차세대 목회자 동료들이 거의 다 한인교회를 떠나갔지만,
다행이 제 안에 한국문화와 미국문화를 동시에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나마저 한인교회를 떠나면 안된다'는 생각에 저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자녀의 교육이나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두는 반면에,
교회안에서 우리의 자녀들과 교육부 사역은 너무도 적은 관심과 적은 support를
받고 있다는것을 계속 경험하면서
저의 마음에서도 차세대를 향한 소망이 점점 꺼져갔습니다.
소망이 없이는 사역을 계속 할 수 없다는 판단에, 한인교회를 떠나기로 마음 먹고
지난 4월말, 저는 이 결정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묻기위해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기도하는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와싱톤 한인교회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성인이 된,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나와 함께 신실히 섬기었던 교사들과
학부모님들의 모습과 기억이 몇 일동안 계속 저의 마음과 생각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기도의 시간을 마친 뒤,
김영봉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1.5세 사역자를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사역에 대한 것인지 김목사님을 통해 들었을때는 마치 하나님께서,
'의경아, 아직 차세대에 대한 소망을 놓지 말아라. 내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느니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와싱톤 한인교회를 통하여서
다음세대를 위한 축복의 약속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와싱톤 한인교회는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이민교회보다도 이미 앞서서
여러모로 차세대를 배려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사역을 할 때에도 진실된 사랑으로 봉사하시는 여러 교사들이 계셨고,
교회 곳곳에서 많은 어른분들이 차세대사역을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셨습니다.
또한, 예배를 위한 powerpoint를 모두 이중언어로 준비하시고,
설교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몇일이나 일찍 설교원고를 마치셔야 하는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매 주말 번역하는 일로 수고하시는 분들의 노고와 배려는
다른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그리고 아직 다른 교회에서는 깨닫지도 그래서 실행치도 못하는,
'1.5세/2세 청년과 어른 돌봄의 사역'을 영어목회가 아닌 한어목회에서 시작하여
주시는 것은 이미 복음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제가 7월사역을 시작한 뒤 계속해서 예전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국교회를 다니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도 있고,
주일에 예배만 드리고 그 이상의 참여는 하지 않고 있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지 않는 청년들의 수도 많은데, 그들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직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직 믿고 있다면,
언어의 장벽이 없는 주위에 좋은 미국교회나 다민족교회에서라도 신앙생활을 하면 좋은데,
제가 그들과 나눈 대화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미국에서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한인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하였고,
한인친구들만 사귄 학생들은 미국교회에 가는 것을 낯설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배우면서 더 간절히 느끼는 것은 차세대를
하나님께로 다시 이끌고 그들이 주님의 제자로서 성장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이민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미국교회는 생각지도 않을 것이고, 다민족 교회도 그럴것입니다.
이것은 저희 와싱톤한인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한인이민 1세 교회만이 이룰수 있는
소명이며 부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의 기도로 1.5세와 2세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나갈 때 따뜻한 눈길과 웃음으로 맞아 주시고,
혹시라도 깜짝 놀라실 정도의 이상한 복장이나 행색의 청년을 만나시더라도
찌푸리지 마시고 관대함과 포용으로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거나 행사를 같이 준비하고 참여할 때에는 많이 불편하시더라도
그들이 많이 배려될 수 준비될 수 있게 협조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영어권 청년뿐만 아니라 20-40대의 젊은 가정을 교회로 더 인도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는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화는 다른 세대입니다.
그들에 대한 배려도 함께 필요합니다.
복음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모두에게 힘겨운 도전이 되고
많은 인내와 참음이 필요하겠지만, 그 열매로 인한 기쁨을 맛보시게 될줄 믿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자녀들로 인해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 부모님들께 말씀드립니다.
자녀를 주안에서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여러분의 기도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모든 사역자들과 교사들의 사랑과 헌신도 헛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잠시 시들어 있을지라도, 분명 하나님의 때에 그들의 믿음이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진심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저희모두가, 와싱톤 한인교회가 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갈라디아서 5:6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와싱톤 한인교회 모든 교인들의 사랑을 통해 표현되는 이 믿음이 복음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귀하게 사용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황의경 목사 설교 2013년 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