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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장 1~11 바산 왕 옥과의 전쟁
LNCK
2022. 6. 25. 06:52
◈바산 왕 옥과의 전쟁 신3:1~11 2017.11.05. 출처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출애굽 2세대 백성들을 교육하는 목적은
출애굽 1세대 백성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세대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불신앙으로 40년 광야 방황이라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출애굽 2세대 백성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이, 신명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2세대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의 전철을 밟지 말고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진입할 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잘 준비하라는 것이, 전체적인 신명기의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은 헤스본 왕 시혼과의 전쟁을 통해서
성도가 영적전쟁에 승리하는 세 가지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신명기 3장을 통해서 성도들이 영적전쟁에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3장은 내용상 정확하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11절은 바산 왕 옥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고,
12~22절에는 요단 동편의 땅을 두 개 반 지파에게 분배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3~28끝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모세의 요청을
하나님이 단호히 거절하셨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 성도는 영적전쟁을 회피하지 말라 *신3:1~11
성도는 “나는 영적전쟁이 싫다! 마귀와 싸우기 싫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전쟁 앞에 회피하는 태도,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요단 동편의 땅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왕은 아모리 족속의 막강한 왕들이었습니다. 이 두 왕에게는 네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두 사람 모두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과 싸워 크게 승리함으로
온 세상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이들은 교만한 마음으로 섣불리 성에서 나와 참전했다가 멸망을 당했다는 사실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은 헤스본이라는 견고한 성 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한 분파
그러나 그는 헤스본 성에서 나와 야하스 라는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쟁을 하다 패배하였습니다. *신2:32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전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교만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바산 왕 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산 땅에는 견고한 성읍이 60개나 있었고, *3:4
그 외에도 수많은 고을이 있었습니다.
군사력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바산 왕 옥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산 왕 옥 역시 에드레이라는 곳으로 나와 *3:1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다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업신여기면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치신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교만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업신여겼고,
이들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견고한 성에서 나와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다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이 패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산 왕 옥은 엄청난 거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3:11절에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지금 오히려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장이 아홉 규빗이요 광이 네 규빗이니라” 침대의 길이만 해도 4m고, 폭이 1.8m입니다.
거기다 침대를 철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아모리 족속(가나안 족속들의 통칭) 중에 특히 르바임 부족은 거인으로 알려져 있고,
혹자는 창세기의 네피림의 후예라고 봅니다. 그리고 10정탐꾼이 보고하기를
‘그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 같다’고 했죠. *민13:33
그래서 그의 침대가 아주 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침상이 옥의 체구에 꼭 들어맞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제왕들은 종종 철이나 동, 각종 보석따위로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의자나
침상을 만들어 사용함으로 자신의 위엄과 권세를 널리 과시하곤 하였기 때문이죠.
본절에서 모세가 굳이 옥의 침상 크기를 언급한 까닭은
장대한 체구를 지닌 거인족의 자손 옥(Og)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 앞에서는 여지없이 패망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례로, 아이들이 팔씨름해서 이겼을 때, 자기 상대가 몸집이 컸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
그리고 본문에 ‘옥의 나라’(Kingdom of Ok)라는 표현도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4, 10, 13절
헤스본 왕 시혼의 땅은 요단 동편의 중부 지역이었고,
그 위로 북쪽으로 얍복 강을 건너면 바산 왕 옥의 땅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얍복 강에서부터 북쪽 헤르몬 산까지가 바산 왕 옥이 차지하고 있던 땅이었습니다.
바산의 땅은 오늘날 골란 고원을 포함해서 광활하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신32:14절에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했듯이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 고기는 보통 맛있는 고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상급의 고기였습니다. *구약에서 ‘기름’은 최고급 고기라는 뜻
여러분, 뉴질랜드에 가면 양고기를 꼭 한 번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뉴질랜드산 양고기는 정말 맛이 좋습니다. 이는 지역에 따라서 고기의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바산 땅에서 사는 동물의 고기와 밀은 최상급 음식이던 것입니다.
예언자들도 ‘바산의 암소’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는데,
암4:1절에 보면 당시 사치하던 여인을 ‘바산의 암소’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바산의 암소와 같은 여자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학대하던 사람들이었죠,
심지어 가정의 가장에게도 “술상을 봐 오라!”고 호통을 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또 사2:13절에도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이사야 선지자는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가 좋다고 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증거들로 볼 때, 바산 땅은 밀도 잘 나고 상수리나무도 좋고
목초가 풍성하고 비옥한 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신3:4~5절에 “그 때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지 아니한 성읍이 하나도 없이 다 빼앗았는데
그 성읍이 육십이니 곧 아르곱 온 지방이요,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이라 그 모든 성읍에
높은 성벽이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그 외에 성벽 없는 고을이 심히 많았느니라”
바산 나라는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는 성읍이 60개나 되었고,
성벽이 없는 고을도 심히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견고한 성읍 1개만 있어도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런 성읍이 60개나 있었다는 것은
옥의 나라가 대단히 부강한 나라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땅이 비옥하니, 당연했겠죠.
그곳에 살고 있었던 바산 거민들도 모두 키가 크고 힘이 센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430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만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산이라는 강대국과 전쟁을 치르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결코 패배할 수 없습니다.
거인 옥이나 강대국 옥의 나라는 하나님 앞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40:15절에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강대국들이 힘을 합쳐도 한 방울의 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통 속의 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섬들은 먼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바산 왕 옥이나
헤0스본 왕 시혼과 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2장에서, 이스라엘은 앞서 헤스본 왕 시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2:30~37
아르논 강에서 얍복 강까지 이르는 헤스본 왕 시혼의 땅을 점령했으니
이제 서진해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태여 북진해서 바산과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진로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산 왕 옥이 먼저, 싸움을 걸어온 것입니다.
3:1 ‘우리가 돌이켜 바산으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에드레이에서 싸우고자 하는지라’
그러자 하나님은 북진하여 바산 왕 옥과 전쟁을 하여 그의 땅까지 차지하라고 명하셨습니다.
3: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들을 진멸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윤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죄악이 관영해 졌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더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데, 그 분량이 가득히 차게 되면 형벌을 자초하게 됩니다.
바산 왕 옥은 윤리적인 이유로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죄악이 관영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죄인들을 징벌하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둘째, 영적인 이유입니다. 바산의 백성들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각종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든지 미혹의 올무
가 될 여지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 올무를 제거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군사적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요단 강을 건너 계속 서진하여
오랫동안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넓고 안정된 군사적 기지가 필요했습니다.
군수물자도 보급해야 했고요.
아모리 왕 시혼의 땅으로 부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북쪽에 있는 바산의 땅까지 차지하라고
명하신 데는 이렇듯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핑계를 대면서 이 전쟁을 회피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모리 왕 시혼의 땅만 점령하면 되지, 왜 바산의 거민들과 전쟁을 해야 합니까?
왜 불필요한 수고를 더 해야 합니까?”라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 할 때 치열하게 영적전쟁에 참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습니까?
아마 누구든 피하고 싶은 일일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편하고 조용하게 신앙생활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살아갈 때 원수를 대적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원수는 사단, 마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가정, 교회, 직장, 사업장, 국가에도 시비를 걸고 믿는 자들을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전쟁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조용히 신앙생활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이리저리 교회를 옮겨본다고 달라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조용한 분위기의 교회를 가도 그렇고 성령 운동을 하는 뜨거운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도 마귀가 여전히 역사하기 때문에 영적전쟁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정, 교회, 직장, 사업장, 국가 할 것 없이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반경 속에서 둥지를 만들어 호시탐탐 성도를 미혹할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둥지는 견고한 진입니다. 성도들은 수동적으로 영적전쟁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마귀가 있는 견고한 진을 파괴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도 복을 받고 교회,
국가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견고한 진이 쉽게 파괴되겠습니까?
유불선 삼교로 점철되어 있던 조선 땅에 기독교가 흥왕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들어와 복음전도 사역이 잘 이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나라 역사에는 갖가지 아픔과 어려움들이 참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마귀의 견고한 진을 깨뜨려 주셔서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번창한 나라, 복 받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가정에도 마귀가 만들어 놓은 견고한 진들이 박살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다 파괴해서 깨뜨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런 것 하고 싶지 않습니다. 광신자처럼 성경공부 하고 싶지도 않고
기도도 적당하게 하고 싶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예배만 드리며 교회를 다니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마귀와의 영적전쟁 앞에 수동적이고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성도입니다.
결코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고 영적전쟁에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요단 동편의 땅을 두 지파 반에게 분배한 것은
영적전쟁에서 ‘이기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3:12~22
성도는 영적전쟁 앞에서 필히 이기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기주의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내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복을 받고 강건하면 그것으로 족하지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성도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신3장:12~22절에는 민수기 32장의 사건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이 모세에게 와서 “우리에게는 가축이 많고
이 땅은 풀이 많고 목축하기 좋으니 이 땅을 주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우리가 차지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서
요단강 동편 땅을 차지하게 해 달라는 요청은 매우 무례하고 안이한 요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들을 향해 ‘어찌하여 다른 지파 사람들을 낙심시키느냐?’고 책망했습니다.
모세의 책망을 들은 지파의 지도자들은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아내들과 양떼와 가축을 여기에 두는 대신에
우리 남자들은 모두 무장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약속했고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요단 서편의 땅을 분배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세는 이들의 제안을 듣고 그 정도의 조건이라면 괜찮다고 판단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너희 두 개 반 지파의 군사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선봉에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사만 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수4:12~13
두 개 반 지파의 군사 4만 명이 정복 전쟁의 선두에 서서 앞서 나가 싸웠습니다.
그리고 정복전쟁이 다 끝났을 때 여호수아는 이들을 돌려보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수22:4~5
이들은 7년 동안 정복전쟁의 책임을 다 하고 평안히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는 요단 동편의 남부 지역을 차지했고,
-갓 지파가 요단 동편의 중부지역을 차지했고,
-므낫세 반 지파가 북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요단 동편의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 매우 중요한 보편적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협력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으로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수1:13~14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 앞서 모세와 약속한 내용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나라에 속한 왕 같은 제사장들에게는
서로 질서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서로 연대해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벧전2:9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한 가정과도 같습니다.
성도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섬기며 살아가는 형제자매요,
하나님 나라의 가족 구성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이 모두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국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각자 자기의 일에만 매진하고 전혀 협력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자기 목소리만 내려고 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망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들이 서로 남의 약점을 공격하고 이기주의적인 태도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면
나라도 망하고 기업이나 사업장도 망하고 가정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든지 이기적인 목적과 의도를 가진 구성원들이 많은 곳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영적전쟁을 해야 할 성도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중요해도 이기주의가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격려하는 내용이 본문 21~2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신3:21~22
여호수아는 신참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광야 40년 세월 동안 지도자로서 훈련을 잘 받아왔고,
후계자 수업도 잘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모세가 죽은 이후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너는 들어가서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선임자가 후임자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 피영민 목사는 이제 3대 담임목사 청빙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굳게 다짐하고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3대 담임목사가 청빙되면 그가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 함구하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회가 선임 목회자와 후임 목회자 사이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성도와 성도 사이에는 협력과 칭찬, 격려가 꼭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기 원했던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반항하지 말라 *3:23~28
모세는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 들어가기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영적전쟁 앞에서 세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가 있을 때, 거기에 반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발버둥 친다고 해서 달아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린 모세의 요구는 본문 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이어지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3;26~27
눈으로 그 땅을 볼 수는 있으나 들어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비스가 산에서 죽었습니다. 느보 산은 비스가 산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고로 하나님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고 불평 섞인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하나님이 나의 가나안 진입을 막으시는 이유는
백성들 때문이라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면 모세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을 예표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구원의 진리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있습니까? 행위로 구원받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어떤 인물입니까? 여호수아의 이름은 예수의 구약식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로 백성들이 가나안 땅(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모세를 막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위대한 복음의 원리를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합니다. 반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성도의 올바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는 말
모세는 바산 왕 옥과의 전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신약에서 영적전쟁에 임하는 성도들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아직 우리는 천상의 ‘승리적인 교회’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직은 지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영적전쟁은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마귀의 세력에 대항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과 회사와 교회, 국가에 세워놓은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책임을 다해 서로 격려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반항하지 말고 순종함으로
늘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