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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5장 1~6 십계명의 해석과 적용

LNCK 2022. 6. 26. 20:05

◈십계명의 해석과 적용            신5장 1-6             2017.12.03.출처

(※맨 아래 ◑3. 십계명 해석의 원리.. 를 놓치지 마세요)

 

오늘부터는 신명기 5장부터 시작해서 십계명에 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4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서언입니다.

 

특별히 신명기5~26장까지는 모세의 두 번째 설교에 해당되고

이것은 율법 부분에 대한 해설, 율법 강해입니다.

 

모세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출애굽 2세대를 위하여

모압 평야에서 율법을 다시 해설하고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율법이 복잡하지만 모든 율법의 핵심은 십계명입니다. *헌법 같은 것

복잡한 율법을 요약하면 다 십계명이요, 십계명은 율법의 요체입니다.

 

십계명이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한 것입니다.

종교에 미친 영향, 윤리에 미친 영향, 법률에 미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막대한 영향인 것입니다.

오늘은 십계명의 서론 부분으로 십계명의 전체적인 관찰과 해석의 원리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십계명이 계시될 때의 상황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십계명은 쉽게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대단히 무섭고, 두렵고, 엄위한 가운데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은 성경에 두 번 계시가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2~17절에 첫 번째 계시가 되었고, 신명기 5장 6~21절에 두 번째로 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9장 9~15절까지는 모세가 십계명을 처음 계시받을 때의 엄위 했던 모습,

얼마나 장엄했는가 그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성결케 하고, 옷을 깨끗이 세탁하고,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고 3일 동안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 기슭으로 인도해서 이스라엘 백성 200만이 다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사면으로 지경을 정해놓고 그 이상으로 절대 올라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상으로 올라오는 자는 사람도 죽게 되고 짐승도 죽게 되니까

절대로 그 지경을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팔을 길게 불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 있다가

산기슭에서 집합을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3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기슭에 집합해 있을 때에

아침에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의 모습을 보면 엄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뢰가 임하고 번개가 치고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게 울렸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부는 나팔소리가 아닙니다.

천사가 부르는지 누가 부르는지는 몰라도

나팔소리가 시내산에 크게 울리자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에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에 시내산에 강림을 하셨습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의 모습은 인간이 보기에 두려운 것들은 다 있었습니다.

천둥, 번개, 구름, 불, 연기가 있었고 온 산도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시내산의 온 산들이 다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산이 어떻게 흔들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산이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께는 일도 아닙니다.

포항에 지진이 났을 때, 경기도 판교에서 집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묵었던 숙소가 흔들렸습니다.

처음에 생각하기를 건물이 부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포항에 지진이 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포항에 지진이 나도 서울까지 흔들리는데

하나님이 강림하시는데 시내산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강림하심으로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고 나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습니다.

이때 모세가 말을 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부르면 하나님은 "나 여기 있다"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한번 말씀을 하십니다.

“모세야 저 백성들이 네 말을 잘 모르고 경계를 넘어오다 죽을 수가 있으니까

너는 다시 한번 내려가서 절대로 정한 경계를 넘어오지 말라고 얘기해라

왜냐하면 내가 공격해서 죽일까봐 그렇다"고 하자

 

모세가 듣고 내려가 백성들에게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귀하게 보시고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 강림하신 중에도

두 번씩이나 모세를 통해 지경을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산으로 부르시고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 가운데서

십계명을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십계명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음성으로 직접 들려주신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너는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지니라,

너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지니라, 너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킬 것이니라’

이것을 하늘에서 음성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들었고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 그 엄위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의 말씀 하시는 음성을 모세가 듣고, 그 들은 것을 우리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말을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말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말은 하나님이 진노하시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이날을 ‘총회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18장 16절에 그 날을 ‘총회의 날’ (The day of the assembly)이라고 불렀습니다.

 

모세는 다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민법, 종의 율례, 토지 율례에 관한 각종 율례를 주시고 다 받고 내려와

그 모든 율례를 다 기록하고 언약서를 만들어서 피를 뿌려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는 언약의 식사를 함으로써

출24장의 "시내산 언약"을 체결한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는데

모세는 이렇게 시내산을 8번이나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등산을 못 하면 모세도 못 하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성도들과 함께 시내산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자정에 그 근처에 도착해가지고 밤 2시에 시내산 등반을 시작하였습니다.

왜 2시에 가야 하냐면 새벽에 해가 뜨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새벽 2시에 비몽사몽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시내산을 모세는 무려 8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2,285m

 

또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40일 40야를 금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돌비와 성막에 관한 자세한 계시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이 처음에는 하늘의 음성으로 들렸고

두 번째는 모세가 40주 40야를 금식할 때에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두 돌비에

양면으로 기록을 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두 돌비를 가지고 내려오는데 산 아래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모세의 형님인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것이 너희를 인도해 낸 여호와라’(출 32:4)해서는 사람들이 금송아지 근처에서

술 먹고 뛰고 놀고 한 것입니다. 모세가 그것을 보더니 화가 나서 두 돌비를 던져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모세가 한 성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두 돌비를 깨뜨려버리고

우상 숭배한 3천 명을 레위인들을 통해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갑니다.

 

또 다시 모세는 40주 40야를 금식하면서 ‘이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도고기도’ (Intercession)를 하였습니다.(출 32:11~14)

 

모세의 도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용서를 해주시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내가 너희와 함께 가지 않고 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자 모세는 다시 장막으로 가서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너와 함께 가겠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돌비를 깎게 하였습니다.

 

두 돌비를 깎은 모세는 또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가 깎은 두 돌비 양면에다가 십계명을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받을 때에 쉽게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이라는 ‘말씀들’ (word)이 모세에게 쉽게 온 것이 아닙니다.

 

불과 몇 달밖에 안 되는 시간동안 모세는 40일 금식기도를 2번이나 하고

(*신9장에 세 번 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두 번입니다. 신9:25절이 세 번째 40일로 보이나

사실은 9:18절의 두 번째 40일  금식을 다시 언급한 것임) 

시내산을 8번이나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받은 것이 십계명입니다.

여러분 인류에게 십계명이 오게 될 때 그 상황이 이렇게 어려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십계명을 계시하실 때의 상황은 첫 번째 계시하실 때와는 매우 다릅니다.

첫 번째처럼 그렇게 어렵고 엄위한 상황이 되풀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모세가 받은 십계명을 설교한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십계명과 두 번째 십계명은 내용이 동일하나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첫째로, 4계명 즉 ‘안식일을 지키라’고 할 때 그 동기가 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출20:11절에서는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셨으니,

인간도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것이고,

 

신5:12~15절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동기가 구원의 동기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두 번째로 열 번째 계명의 순서가 다른 것입니다.

출20:17절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이웃의 아내나 종이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내용이 후에 나옵니다.

 

그런데 신5:21절에서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내용이 먼저 나오고,

‘이웃의 집이나 종이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내용이 후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광야 40년 방황기간에 집이나 소유나 종은 탐하지 않았지만

대신에 이웃의 아내는 사람들이 많이 탐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순서가 40년 뒤에 바뀐 것입니다.

 

제가 거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십계명이 인류에게 올 때의 상황은 쉽게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법과대학 출신인데 학교에 다닐 때 법철학 교수가 1교시에 들어와서는

“법은 어디서 왔는가”하고 질문하였는데

학기 말이 돼서는 “법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하고 끝나버렸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게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은 시내산에서 온 것입니다.

모세에게 주신 이 십계명이 모든 인간의 법에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2. 십계명에 관한 전반적인 관찰 (네 가지 질문)

 

▲첫째, 십계명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가? 네 가지로 불립니다.

 

1) 십계명은 ‘말씀’ (Word)입니다.

일반적으로 십계명을 영어로 ‘열 가지 명령들’ (Ten Commandments)라고 번역하지만,

본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 가지 말씀들’ (Ten Words )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합니다.

 

신명기 4장 13절과 신명기 10장 4절에도 단순하게 ‘십계명’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로 볼 때 “열 가지 말씀들”이 맞습니다.

히브리어로 에세르(עֶשֶׂר)는 10이요 다바르(דָּבַר)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바르의 복수인 데바림(דְּבָרִים)으로 말씀들이라고 쓰였습니다.

 

히브리어로 ‘다바르’라는 단어는 의미가 엄청나게 풍성한 단어입니다.

킹제임스 성경(KJV)에만 85개의 다른 단어로 번역이 될 정도로 풍성한 단어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말씀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실 때에 빛이 있었습니다.

복잡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말씀대로 그대로 된 것입니다.

 

또 ‘다바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실려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 때도 말씀으로 언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단순히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이 실려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2) 십계명은 ‘증거’ (Testimony)입니다.

신4:4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증거하신 것과”라고 했습니다.

또 출31:18절에도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고 했습니다.

 

‘두 증거판’ (Two Tablets of Testimony)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 (Testimony)는, 믿으면 믿고 안 믿으면 말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엄숙한 선언’ (Solemn declaration)인 것입니다.

이 증거는 내가 목숨을 걸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단어가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법원에서도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에 “나는 위증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하고 그리고 입증을 합니다.

그런데 선서한 후에 위증을 하게 되면 그것은 위증죄가 되어서 벌이 더 큽니다.

그러므로 증거라는 것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가 벌을 받겠습니다”라는 엄숙한 선언인 것입니다.

 

3) 십계명은 ‘언약’ (Covenant)입니다.

신4:13절에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했습니다.

언약이 곧 십계명이라고 한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언약을 맺을 때 어떻게 맺는가 하면 먼저 짐승을 쪼개 놓습니다.

그리고 언약 맺는 당사자가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 '이것을 어기게 되면 너나 나나 이 쪼개진 짐승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언약은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언약은 목숨을 걸고 맺는 맹약이요 절대로 변경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언약의 내용은 복잡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잊어버렸다고 말할 수 없고, 몰랐다고 말할 수 없도록 언약의 내용은 간단하고 명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몰라서 간음했다거나 도적질을 했다고 핑계 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명령하는 내용을 다 요약하면 ‘십계명’입니다.

성경 66권에서도 하나님의 도덕적인 율례를 다 요약하면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도 십계명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하나라도 못 지키면 다 죄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다 죄인입니다. 우리 가운데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면 십계명을 못 지키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죄인은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못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존재로는 골백번 믿어도 죄를 용서 받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대신 갚아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선지자로부터 신약의 사도들에 이르기까지 전한 명령의 요체인 것입니다.

 

윤리적인 명령과 도덕적인 명령의 핵심은 십계명이고

언약적인 명령의 핵심은 ‘이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으라’인 것입니다.

이 언약은 영원히 변경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4) 십계명은 ‘도덕법’ (Moral Law)입니다.

십계명은 율법의 다른 영역 즉 의식법이나 시민법과 구별하여 도덕법이라고 부릅니다.

 

십계명의 도덕법이란,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의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기준입니다.

죄가 뭡니까? 십계명을 어긴 것이 죄입니다. 의가 뭡니까? 십계명을 지킨 것이 의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기준은 죄와 의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십계명만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워도 내가하나, 남이하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다 그것이 죄입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을 도덕법이라고 하는 것은 의의 분명한 기준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도덕법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담도 십계명을 아는 것입니다. 아담이 도적질 하는 것과 살인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다 압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살인했을 때 자기가 죄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다 도덕법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1689년에 「침례교 런던 신앙고백서」(19장 2항)에 보면 ‘인간의 마음에 처음으로 기록된 그 동일한 율법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의의 완전한 규율로 계속해서 존속하게 되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형식으로 전해주셔서 두 돌비에 새겨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 안에 새겨진 법을 사람들이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십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명백한 법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마22:37~40절에서 예수님은 도덕법을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둘째, 십계명이 두 돌비에 기록된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첫 돌비는 하나님이 직접 돌비도 마련하시고 십계명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돌비는 모세가 깎아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돌비가 두 개고 양면으로 하나님이 직적 기록하셨다는 사실이 성경에 13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출32:15~16절에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하나님은 두 돌비에 기록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기록하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신약시대를 예언하면서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십계명을 기록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렘31:3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돌비에 기록하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기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 속에 십계명을 기록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이 십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아무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을지 몰라도 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복을 받는 것은 우리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따라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사랑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존중하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럴 힘이 없다면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를 믿기 전에 주일날 예배 나오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그게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에 예배 안 드리고 어떻게 일주일을 삽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저는 그것이 기적이라 생각합니다.

 

두 돌비에는 무엇이 기록되었습니까?

전통적인 견해로 1~4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계명(대신계명)이 기록되었고,

5~10계명은 사람을 향한 계명(대인계명)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학자들은 좀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옛날 종주권 계약문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왕하고 신하하고 계약을 맺을 때 문서를

2부로 작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왕이 갖고 하나는 신하가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돌비가 2개이고 양면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각각 하나에 십계명 전체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두 부를 만들어서 하나는 하나님이 보관하고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견해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언약궤 안에

두 돌비를 다 보관하게 하셨는가? 이것을 설명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돌비에는 1~4계명, 두 번째 돌비에는 5~10계명으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전통적인 견해로 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십계명은 어떻게 배열되는가?

일반적으로 십계명의 순서는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계명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인데

 

개신교와 동방정교는 1~10계명 배열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는 다릅니다.

 

그들은 1계명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1, 2계명을 합친 것을 1계명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 순서가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로마가톨릭과 루터교는 1~2계명을 합쳐서 1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눕니다.

그래서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가 9계명,

‘네 이웃의 집이나 소유나 종들을 탐하지 말라’ 이것이 10계명이라는 것입니다.

 

1~2계명을 합한 것은 어거스틴인데, 그것을 합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가톨릭의 십계명을 보면 1계명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고 했고,

2계명의 내용은 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1계명 안에 2계명의 내용은 당연히 암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면 우상은 당연히 만들지 않는 것과 같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음성으로도 들려주시고 손으로도 직접 기록하신 십계명을

단순히 내포 혹은 암시의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계명은 1계명, 2계명은 2계명 분명하게 말해야지

그것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구교인 로마가톨릭은 자꾸만 상(像)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2계명을 문자 그대로 못 박아 놓지 않았기에 상(像)을 많이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개신교의 십계명 구분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의 십계명과 같이 명확하지 않은 십계명은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십계명을 분류할 때 어떤 학자들은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대신계명에 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인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도 부모도 인간이기에 대신계명으로 들어 갈 수 없고

대인계명으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가 저는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넷째, 십계명은 신약시대에도 타당한가? 십계명의 모든 내용은 신약에 반복되었고 재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20세기 세대주의 종말론이 너무 만연해서 십계명을 율법으로 치고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면서

십계명을 갖다버리는 ‘율법 폐기론’ 경향이 너무나 강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도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약에 십계명 전체가 다 반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제4계명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신약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어느 신약에 도둑질해도 된다고 되어있고, 간음해도 된다고 되어있고,

우상숭배를 해도 된다고 되어 있습니까?

 

이처럼 십계명은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타당한 도덕법이고

‘항존법’ (Standing Law)인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계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켜 행할 때 인생이 복 되게 되는 것입니다.

 

 

◑3. 십계명 해석의 원리

 

십계명 해석의 원리에 관해서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인 Ezekiel Hopkins라는 사람이 쓴

<십계명 해석의 10가지 원리> 「An Exposition of the 10 Commandments」(1690) 책에서

가장 탁월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 성경의 모든 명령은 십계명의 범주 안에 모두 다 요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긍정적인 명령은 부정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부정적인 명령은 긍정적인 측면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하라는 긍정적인 명령은

부모를 해치거나 불순종하지 말라 (그러면 벌 받는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부정적인 명령은 항상 적용되지만, 긍정적인 명령은 해당하는 시간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는 24시간 적용되지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안식일에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십계명은 외적인 행동뿐 아니라, 내적인 생각이나 동기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찌니라’는 계명은 내적인 원인 없이

미워하고 분노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어떤 죄를 금지하면 죄로 이끄는 분위기도 ‘간음으로 인도하는 음식이나 환경’도

금지한다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첫 돌비(1~4계명)의 계명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로 지니지만,

둘째 돌비(5~10계명)의 계명은 첫 돌비의 계명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라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렇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첫 돌비의 명령과 둘째 돌비의 명령이 충돌되면

첫 돌비의 명령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고 하면 부모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여덟째로, 둘째 돌비의 수행이 위급한 경우에는, 첫 돌비의 명령도 예외를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 죽어가는 환자가 있으면 의사는 주일을 지키느라고 환자를 죽일 것이 아니라,

주일 예배를 못 드리더라도 환자를 살리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홉째로, 계명이 금하는 것은 그 증세도 금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라 하면 교만한 눈, 교만한 말, 교만한 걸음도 금한다는 것입니다.

 

열째로, 십계명은 모두 연결된 하나의 고리와 같아서

하나만 범해도 모두 범한 것과 같은 죄책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노력해서 천국에 가려면 십계명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지켜야 하는데

그런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꼬리를 내리고 이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십계명은 거룩한 법이로되 나는 다 못 지키니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관련글 : ‘완전하라’의 의미 https://blog.daum.net/rfcdrfcd/15976649

 

 

결론

 

십계명은 구원을 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계명을 택함 받은 성도들의 심비(心碑)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십계명을 강해하는 동안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새겨지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