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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8장, 광야 40년의 불순종과 진입 준비

LNCK 2022. 6. 29. 15:01

◈광야 40년의 불순종과 가나안 진입 준비       신8장      여러 설교 정리

 

 

신8장은, 설교가 꽤 자주 되어지는 본문에 속합니다.

총 20구절 중에, 메시지가 될 만한 두 세 구절을 뽑아서 설교하기란,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8장 전체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신8장이, 신명기 34장 전체 중에서, 그 일부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서, 그 해답을 얻고자 성경을 읽으면,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어렵습니다.

   

▲회고

신명기 전체가 사실은 '광야 40년의 회고'라고 볼 수 있는데,

앞서 1장에서는 호렙산에서 ~ 가데스 바네아까지

2장에서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 세렛 시내까지

3장에서는 요단 동편의 정복 등 .. 여행 경로를 회고했다면,

 

본문 신8장은, 지난 40년의 이스라엘의 신앙상태, 영적 상태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회고하면서, 광야 40년의 평가, 내린 결론이 뭐냐?

한 마디로, '불순종'이었다는 거죠.

이것은 우리가 신약성경 등을 통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고전10:1~11

 

그럼 지난 40년을 회고할 때, '불순종'만 있었느냐?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연단' 시키셔서,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신명기 8장의 전체 제목을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가나안 진입 준비(연단)" 이렇게 잡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8장 전체를, 딱 한 줄로 짧게 요약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다가 정한 제목입니다.

 

참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입니다.

'불순종'하면.. 바로 '멸망, 징벌' .. 이렇게 연결되어야 문맥이 자연스러운데,

'불순종' .. 그런데 '연단과 준비' .. 이렇게 연결됩니다. 

 

이것은 비록 불순종하더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고쳐서 쓰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절별 해석 및 적용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지켜 행하라’ - 4:1, 40, 5:1, 33, 6:1~3, 8:1, 26:16등 신명기를 위시하여

모세 오경에, 아니 신구약 성경 전체에 수 백 번 나오는 말인데... 너무 많이 나와서 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행할 필요 없고, 행할 수도 없다)

뭐 이런 구절은 로마서 중심으로 1~2구절만 나옵니다. 

우리는 성경에 1~2구절 나오는 것을 붙들고, 수 십~ 수백번 나오는 구절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1절은, 가장 근본적으로 40년 전에 호렙산에서 선포된 십계명을 행할 것을 명령한 것을 뜻합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번성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며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뜻합니다.

 

지금 신명기 정황에서, 백성들의 과제는 '가나안 진입'입니다. 

가나안 진입의 관건이 무엇입니까? 칼과 무기와 군사력이 아닙니다. 

'지켜 행하라'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지켜 행하지' 못하면, 그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 들어갔어도 거기서 쫓겨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그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거기서 쫓겨나 있습니까?

'지켜 행하라'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는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지켜 행하지 못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구세대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 광야

40년 동안의 유리 방황 끝에 모두 죽고만 (민14:26~35)점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 세대들은 들어갔죠.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얻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20일이면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왜 40년동안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을 바로 앞에 두고, 가나안 원주민들이 무서워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불평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냥 불평한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는 그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대놓고 하나님 얼굴(이름)에 먹칠을 하고 멸시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라’는 제3계명을 무시하고,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과 모습을,

하나님을 거역한 반역 사건으로 여기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그들이 어떠한 역사를 경험했습니까?

400년 넘게 종살이 했던 애굽에서, 10가지 놀라운 이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이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애굽과 신처럼 추앙받았던 바로왕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았습니까?

 

앞은 홍해바다요, 뒤에는 애굽의 군대로, 앞뒤가 막혀 죽을 위기에 처한 그들에게,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메마른 땅을 걷도록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닷속에 모두 수장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광야길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교제하시며, 언약을 세우시고,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세우도록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늘 함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을 축복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끼시고 사랑해주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무섭다는 이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그냥 거부하지 않고, 악한 말로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해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컬은 것입니다. 3계명 위반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명기-회고의 목적입니다.

 

△‘시험하사’ - 원어 '나사'는 '증명하다', '꾀하다'는 뜻으로,

이는 올무에 빠뜨리기 위한 악의적인 유혹이 아닌

더 큰 믿음의 단계에 진입하게 하기 위한 선의의 테스트 test를 가리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잭 푸닌의 명 설교 하나님은 테스트 하십니다를 참조하세요. 강추!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백성들이 떡(먹고 사는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길 때까지

그들에게 계속 만나를 먹이셨다는 뜻인데요... *만나를 주신 목적 / 론 솔로몬을 참조하세요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이 말은, 40년간 의복이 절대 낡아서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 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 매년 한 뼘씩 키가 성장하는 아이들 옷은 어떻게 입힐 것인가요?

옷의 싸이즈가, 아이들 몸에 맞게 매년 기적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단지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내는 40년동안 닳아서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은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신발도 원활하게 공급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이 의복과 신발을 모자람 없이 공급할 수 있었던 까닭은

출애굽시 상당한 양의 의복 및 가죽과 털을 공급해 주는

많은 소와 양을 몰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출12:35~38)

 

이것 역시 광야의 더위와 추위로 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섭리에 의한 결과였습니다.

 

아래 구절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충분한 가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유목민이었습니다.

가축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들의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민20: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민20:19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신3:19 ‘너희에게 육축이 많은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육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라’

(모세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에게 했던 말)

 

우리는 출애굽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 해서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몰아오신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의 백성들은 고기를 통 못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들은 40년 내내 광야에서 목축 생활을 하며 살았고,

육류가 먹고 싶었으면 얼마든지 잡아 먹으면 되었습니다.

사실 광야에서도 그들은 번제나 제사를 드렸는데, 그때도 짐승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양털과 가죽으로 옷을 지어입고, 신을 만들어 신는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8:4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고난을  통해  훈련된다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 1절에서 나온 설교 주제의 반복으로, 40년간의 광야 생활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신 여러 가지 은혜를 회상(2~5절)한 목적이

백성들로 하여금 그분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려는 데 있음을보여 줍니다.

 

위 본문을 잘 보십시오.

명령을 지켜(말씀을 행함) = 그의 길을 따름 = 경외함 입니다.

그저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몸의 훈련'을 시키는데, 40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골짜기에든지 샘이 흐르고’ -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지내온 메마른 광야와는 달리

가나안 땅에는 식수(食水)와 용수가 풍부함을 뜻합니다.

 

‘분천’ 이란 땅속에서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샘을 의미합니다.

 

사실이 그렇든지 / 아니든지에 불구하고, (3천5백년 전 가나안은 지금과 달랐고, 요단강변은 정글이라 함)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복지와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물만 풍성하면, 가나안은 정말 농사가 잘 되는 땅입니다. 왜냐면 일조량이 너무 풍부하기 때문이죠.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갈릴리 호수 부근, 팔레스틴 북부 지역, 레바논 등지에서는

비교적 풍부한 철광석이 발견되고 동광(銅鑛)이 있었던 흔적도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사해(Dead Sea) 지역은, 각종 광물질과 자원이 무진장으로

가라앉아 있는 인류의 마지막 보고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7~10절은 '가나안 복지=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1. 끝까지 가 보기 전에는 모른다 (속단과 판단을 미루세요!)

 

사자성어에 '새옹지마'라는 이야기를 다 아실 것입니다. '변방 노인의 말'에 관한 이야기지요.

그 교훈은 '끝까지 가 보기 전에는 모른다, 처음에는 불행인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행운이 되었다'는 거죠.

 

지금 본문의 광야 이스라엘이 꼭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또 성경에 그런 예가 여럿 나오네요.

 

광야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그 후 38년 동안 광야를 맴돌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 길이요,  신1:2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요단 동편 입구)까지는 거리로는 약 130km정도인데 
1주일이면 족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리 멀지 않는 길을, 많이 돌았다는 뜻이죠.

 

그럼 만약 호렙산에서 가나안까지 족히 20일 걸린다고 볼 때,

20일 만에 산뜻하게 가나안에 들어갔으면 .. 다 좋았을까요?

40년의 광야 훈련 안 받고, 20일만에 가나안으로 직행해서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가나안 안에서 또 얼마간 훈련 받았겠지요.)

 

그러나 지금 따지려는 것은, 비록 40년을 광야에서 맴돌았지만,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훈련/연단/성숙하게 되는 기간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택한 백성은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 쓰시지, 내다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 잘못해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그것을 훈련과 연단의 기회로 삼게 하신다는 겁니다.

한 번 쓰러지고 넘어졌다고 해도,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엎드러졌고, 자녀들인 2세대가 연단을 받고서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단체전'으로 보면, 결국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자녀는 거의 일심동체로 보는 거죠.)

 

1) 지금 본문의 광야 이스라엘이 그랬다는 거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위 구절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너희들이 벌 받아서, 큰 고생하고 아주 큰 대가를 치렀지?' 하며

꾸짖는 투가 아닙니다.

 

'너희들이 불순종해서 광야 38년을 맴돌았지만, 너희들이 낮아져 겸손하게 되었으며,

너희가 만나를 먹고 훈련을 받으며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로 변화되었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대학입시에 재수 한 번 안 하고 척척 붙어서 잘 된 사람들도 많지만,

대학입시에 낙방해서 재수를 하고, 삼수를 했는데.. 나중에 더 잘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스라엘이 재수인지, 삼수인지, 38수인지.. 어쨌거나 결국은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이 영원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나 자신이든지, 우리 주위에 다른 사람이든지,

누가 한 번 넘어지면...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지...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더 잘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2) 다윗이 인구조사를 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백성들 7만명이 역병으로 죽었습니다. 삼하24:15

이때 갑자기 역병으로 치는 천사가 다윗의 눈에 보였습니다. 아마 현현한 천사로 봅니다. 

다윗은 거기,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립니다.  삼하24:18

그런데 거기가 나중에 '성전 부지'가 됩니다.

 

다윗의 교만의 범죄로, 하나님께 단을 쌓고, 회개하며 예배를 드리다가

(한 차례가 아니라, 그 후로 계속 드렸겠죠) 그 자리가 성전을 짓는 기초 부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3)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다윗이 범죄하여 관계한 밧세바 사이에 낳은

솔로몬이 나중에 다윗을 이은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윗의 수많은 아들들 중에, 솔로몬은 왕위 계승 서열로 따지면, 꼴찌가 되어야 마땅했죠.

그런데 정말 '먼저 된 자 나중되고, 나중 된 자 먼저되고' 말았습니다. 마20:16등

 

4)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12:31

 

물론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 창기나 세리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설령 그가 창기나 세리라고 해도...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5)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나가서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가,

집에서 착실하게 일을 했던 그의 형보다, 성경은 더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본문의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결정적인 반역을 통해서,

그 정탐꾼들이 탐지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40년을 방황하는 징계를 받았지만,

그게 우울한 스토리로 결말지어진 게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 가운데서, 거기서 또 꽃이 피고, 웃음 만발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더라는 거죠.

-구름 기둥과 불기둥과 만나.. 이 기적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가지 계속 되었고요. :3

-본문에도, 너희 옷이 헤어지지 않았고, 너희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4

 

6)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는, 처음에 그들은 모두 끝장 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그들은 바벨론에 가서도.. 정말 너무나 잘 적응하고 지내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까지도 하나님이 함께 동행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7)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났을 때,

다들 '이제는 끝장이다!' 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웬걸, 교회가 사마리아 등 이방으로 전파되고, 안디옥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나중에는 에베소 교회)

이방 지역에서 교회는 더욱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주제는... '끝에 가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고쳐서 쓰시는 주님의 언약적 사랑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주님께 찬양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유보해야 된다는 것이죠.

천국에 갈 때까지는.. 아무 판단도 해서는 안 됩니다.

 

고전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2. 풍요 → 교만 → 망각의 싸이클을 깨는 사람

 

본문 신8:11~20절까지는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풍요롭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 그 계명을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는 모세의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자발적 청빈'을 실천함으로써, 자기 영성을 지키려는

경건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제가 유학하던 1990년대 미국 신학교의 분위기는, '경건할 수록 낡은 차를 탄다'가 대세였습니다.

목회자나 선교사가 '교회 헌금 받아서 좋은 차를 탈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학교 교수들은, 신학교에 낡은 중고차를 끌고 다니며 출퇴근 하고,

사모님들은 집에서 그래도 근사한 차를 몰고 다니고 그랬습니다.

신형 새차를 몰고 다니면, '경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였죠.

'왜냐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너 혼자 부유하게 살 수 있느냐?'는 신앙적 질문이었습니다.

 

A : 감리교 신학교에는 윤성범 학장님이 계셨습니다.

신학생들이 그 집에 방문해 보니, 

한 겨울에 불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층 서재는 참 추웠습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올라오시더니 '춥지 않냐?'하시면서 지나가는 말로

'선생님(학장님)은 평생 불기 없는 서재에서 공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정신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B : 또한 여름에 목양실에 에어컨을 안 켜는 목사님도 있다고 합니다.

다른 병이 있어서 안 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목사님 말로는, '날카로운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더위를 참는다는 것입니다.

 

C : 어떤 목사님은, 교회가 크게 성장했지만,

가끔 시장에 가서 칼국수를 사서 드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부러 전철을 타고 이동할 때도 있고,

길거리에서 파는 제일 싼 혁띠도, 가끔씩 사서 띠고 다니신다고 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배고플 때 시절을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그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시장에 나가서 가끔 칼국수를 사서 드신다는 것입니다.

 

D : 30년 전에 신학교에 다닐 때, 어떤 목사님이 신학교 부흥회에 강사로 오셔서

하셨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통장에 1천만원 이상 저축하지 않습니다'

잔고가 1천만원이 넘치면, 언제나 남을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청빈하게 살겠다는 각오로, 자기 신념을 오래도록 지켰고,

그러는 사이에 그 교회는 많이 부흥했습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부유하게 되면,

거기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고 했는데,

 

위에서 거론된 네 분의 목사님들은,

부유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많이 애를 쓰신 분들이요,

오늘날 우리의 사표가 되십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 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1절부터~20절까지는 ‘두렵건대 잊어버릴까 하노라’ 가 그 주제입니다.

가나안 땅의 풍족함에 도취된 나머지

하나님까지 망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이는 많은 역경과 시련을 통해 성도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각종 부귀와 영화, 명예 따위로 성도를 유혹하다가,

마침내는 멸망케 하는 사단의 시험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한편 여기서 '마침내'란 '너의 종말에'(at your latter end)란 뜻인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은 시련이 끝나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 백성이 오직 당신만을 섬기며 살 수 있도록 모든 복된 여건을 조성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끝내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할 때에는

결국 스스로 비참한 삶을 자초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4:25, 6:14).

 

‘다른 신들을 좇아 절하면 멸망할 것이라’ - 십계명 중 1~3계명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그 땅의 우상 숭배죄에 빠져 들게 된다면,

결국에는 그들이 쫓아냈던 가나안 족속들과 똑같이,

그들 역시 비참하게 쫓겨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죄악이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너희도 멸망하리니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 가나안 족속이 진멸당해야 했던 이유는

결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독단적인 편애나,

혹은 가나안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증오 때문이 아니었다.

 

가나안 족속은 오직 그들 스스로 쌓은 관영한 죄악때문에(창 15:16)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이스라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쫓겨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본절의 메시지를 통해 분명히 확인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다 간과치 말아야 할 사실은 가나안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채찍'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