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신19:1~21:9)까지는 6계명과 관련된 규례와 법도를 말씀드렸습니다. 6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하는 계명이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규례와 법도는 제7계명과 관련된 것입니다.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하는 계명명입니다.
7계명은 사람의 성적인 순결성을 보호함으로써 가정을 지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항존법인 것입니다. 가정을 보호하고, 사람의 성적인 순결성을 보호하는 것이죠.
신21장은 가정과 관련해서 세 가지 법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포로 된 여인과의 결혼의 문제 Marriage -장자에 대한 상속의 문제 Inheritance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는 문제 Rebellion
위 세가지 경우 중에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케이스는 '포로된 여자 가운데 사랑하게 된 대상이 있는 경우, 결혼의 문제인 것입니다.
◑1. 서론적 관찰
21:10~1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련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If~ 는 10~11절이고, '만일 포로된 여자와 결혼의 경우가 생기거든' then 은 12~13절에 나옵니다. '그럴 때는 이와 같이 행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법도'입니다. 주1) '법도'
전쟁에 관한 규례와 법도는 신20장에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의 본문은 신20장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신21장 중간에 별도로 다뤄지고 있는가요?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신20:1절도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이렇게 시작되고 본문 신21:10절도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이렇게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동일한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왜 이 두 가지가 구별이 되어있는가, 본문이 따로 떨어져 있는가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포로된 여인과의 혼인문제'는 제6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 여기에 관련된 법도가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문은, 제7계명 간음하지 말지니라 ... 하는 계명과 관련된 법도이기 때문에 제7계명을 다루는 신21:10절 이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혼인의 신성함, 가정의 신성함을 보호하기 위한 그런 법도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서 남성들이 행한 가장 큰 악행가운데 하나는 포로 된 여인들에 대한 성적인 학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전쟁시에 한국 여자들을 위안부로 사용한 것은 일제 시대가 끝난지 지금 76년이 지난 지금도 다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그런 문제인 것입니다. 끊임없이 뉴스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악행 때문인 것입니다.
이 법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리 전쟁 포로 된 여인에게라도, 그런 악한 행습을 행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여인은, 포로 된 경우라 할지라도 존엄과 경의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죠. 포로된 여자라고 할지라도, 존엄을 지켜주고 경의를 가지고 대해야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남성들이, 포로된 여인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오직 결혼 언약을 통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의 아름다움과 정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그 정신이 대단히 고귀한 것입니다.
시119:172절에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라' 그랬습니다.
주의 모든 계명, 규례, 법도가 다 의롭고 정결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여성을 포로라 할지라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포로된 여인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오늘 본문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2. 이 법도는, 어떤 케이스에 적용이 되는 것인가요?
먼저 21:10절에'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여기서 말하는 적군은, 가나안 7족이 아닌 적군들입니다.
가나안 7족에 관해서는, 다 진멸하라 하셨으므로 *신7:2~3 전혀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7: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그러니까 가나안 7족과는, 어떤 혼인관계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본문 21:10 나오는 적군은 가나안 7족이 아닌, 가나안 땅에 바깥에 사는 이방 족속들입니다.
그들과 전쟁 하게 되는 경우에는, 신20:10~14절의 '전쟁의 규례'에 의하면 먼저 평화를 선언하고, 그들이 평화로 화답을 하면 그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고 이스라엘을 섬기게 하되
만일 평화를 싫어하여 싸우려고 하면 그 성읍을 에워싸고 칼날로 남자들을 다 쳐 죽이고 오직 여자와 유아와 목축과 탈취한 것은, 취하여 누리라고 말씀하신 경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포로로 탈취한 여인들가운데 아리따운 여자가 있어서 이스라엘 남자가 그 여자를 보고 연련 great desire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죠.
이런 경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남자에게 비인간적인 겁탈이나, 혹은 추행이나, 혹은 성폭행.. 이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포로에게라도 그런 비인간적인 짓을 하지 마라 ... 하는 말씀이에요.
오직 결혼언약을 통해서, 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남자가, 포로 된 여인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죠.
이렇게 이스라엘 남자가 포로 된 여인을 사랑해서 그 여인을 취하고 싶다고 할 때, 취해야 될 행동은 무엇인가요? 12~13절이 그 내용(아래)입니다.
◑3. 포로된 여인을 아내로 삼기 위해 취할 행동은 2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준비 단계이고, 다른 하나는 완성 단계입니다. 준비 단계는, 12~13a절 까지인데 이스라엘 남자가 할 일이 있고, 포로된 여자가 할 일이 있습니다.
▲1. 먼저 이스라엘 남자가 해야 될 일은 그 여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라는 거예요. 그 여인에게 우선 보호를 제공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을 보호해줄 아버지도 없고, 왜냐면 전쟁에 나가서 죽었으니까요. 남편도 없고.. 전쟁에서 죽었죠. 남자들은 다 죽이라고 했으니까요.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서 죽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보호자가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선 결혼하고 싶은 이스라엘 남자는 그 여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보호를 해주라 .. 하는 말씀이에요.
최소한 1개월 이상을 보호를 하면서, 존엄과 경의를 가지고 그 여자를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준비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함부로 그 여인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죠.
준비단계를, 뭐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 달 이상 거치라는 말씀이에요.
유대인 랍비들은, 1개월간 자기 집에 보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완전한 결혼언약에 들어가기 전에, 1개월의 시간적 공간을 갖게 하는 이유는 만일 그동안에 남자의 마음의 변화가 생기거나, 아니면 여인에게서 어떤 결정적인 문제점이 발견되면 결혼을 포기할 수도 있는 시간적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 여인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정욕에 이끌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랍비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개월동안 여인을 자기 집에다 데려다 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 여자의 성격도 알 수 있을 것이고, 행습도 알 수 있을 것이고 또 행하는 그 품행을 보면, 다 그의 장단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 랍비들이 생각했다는 겁니다.
▲2. 남자의 집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동안 여인은 세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21:12~13절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라 -포로 된 의복을 벗으라 -그 집에 거하며 자기 부모를 위해서 1개월 동안 애곡하라
만일 이 세 가지를 거절한다면, 그 여자는 이스라엘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고 오직 여종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이 세가지는 모두 상징적인 행동으로서 자기의 고향과 부모를 떠나서, 이스라엘 남자의 아내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확실하게 선언하는 것이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이제부터는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 할 때에 그걸 흐리멍텅하게 선언해서는 안됩니다. 확실하게 선언을 해야죠.
그러니까 이 여인도 이 세 가지를 통해서 확실하게 과거의 자기 고향의 종교와, 과거의 고향의 모든 행습으로부터 나는 확실하게 단절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의 아내로 살아가겠다... 그래서 세 가지를 행하는 겁니다. 그게 싫으면 종이나 노예로 팔리는 것입니다.
1) 그럼 먼저 '머리를 밀라' 여자가 머리를 민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머리를 밀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모세의 율법에는, 머리를 미는 경우가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나실인이 서원을 마치는 경우에, 머리를 밀었습니다. 민6:18 주2)
나실인이 자기가 서원한 기간을 마치게 되면, 그는 머리털을 모두 밀고 (그동안에 얼마나 길게 자랐겠어요)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라 ... 그러니까 다 태우라는 얘기죠. 민6:18 그렇게 해서 나실인 서원을 마치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머리를 밀었죠.
-또 하나는, 레14:8~9절에 있는데 문둥병에 감염되었다가 치료 받은 경우에는, 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진으로 돌아와서, 바로 자기 집, 즉 자기 장막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장막 밖에 7일 동안 거하면서, 모든 털을 밀고, 옷을 세탁하고, 몸을 씻어야 그래서 칠 일이 지나서 정하게 되어서, 자기 장막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문둥병에서 '네가 나왔다' 하는 것을 이제 제사장의 선언하게 되면, 진 camp 안으로 들어오고 진 안으로 들어와서는 7일 동안 머리털을 다 밀고 거하다가 7일이 지나면 그 다음에 자기 장막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포로 된 여인이 머리털을 미는 경우는, 후자의 경우와 비슷한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이, 그 부정한 질병이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상징으로 머리털을 미는 것처럼, 포로 된 여인도 '이제는 나는 이방 종교의 모든 부정함을 깨끗이 제거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살겠다..' 하는 확고한 결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손톱을 벤다'는 의미도, 이게 손톱을 깨끗하게 다듬는다는 말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어쨌든 머리털을 미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방 종교와의 부정함과 단절한다... 하는 상징입니다. (머리털을 미는 것과 같은 의미죠)
그러니까 내가 과거에 살던 종교와, 과거의 나의 생활 행습과는 완전히 단절하겠다..라는 의미죠.
2) '포로의 의복을 벗으라' 하는 것은 그 여인의 신분이 이제부터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도 과거의 옛 의복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
성경에, 신분, 지위 등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은 의복을 벗고 새로 갈아입는 것으로 상징됩니다. 의복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죠.
군인은 군복을 입고, 의사는 가운을 입고 의사가 병원에서 예비군복이나 입고 돌아다니면, 누가 의사인줄 알겠어요. 가운을 입고 돌아다녀야 의사인줄 아는 거죠.
또 스튜어디스는 제복을 입고, 조종사도 제복을 입고 그래야죠. 죄수는 죄수복을 입는 것입니다.
죄수가 거기서 명품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무슨 죄수가 되겠어요? 또 남자는 남자 옷을 입고, 여자는 여자 옷을 입고... 그러니까 옷이라는 것은, 성별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혹은 경제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과거의 이방 종교, 이방 나라의 의복을 다 벗어버리고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그 신분 지위가 바뀌게 되었다..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남편될 남자의 집에서, 자기 부모를 위해서 일개월 동안 애곡하라 그랬어요. 참 이것도 생각해보면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어요. (물론 하루 종일 우는 것은 아니겠죠)
자기 부모를 위해서 울어라는 거죠. 아버지는 전쟁에서 죽었을 것이고, 또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면, 남의 집에 여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뭐 나이가 많으니까, 누가 아내로 삼을 이유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까 어머니는 여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여인이 이스라엘 남자의 아내가 된다고 하는 것은 사실 감정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에 대한 예의도 갖추고, 이제 아버지를 죽인 족속의 남자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우는 거죠.
또 어머니를 종으로 삼은 족속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위해서도 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참 큰 단절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룻기에 나오는 룻의 결단처럼 자기 부모, 자기 민족, 자기 종교에서 완전히 떠나는 마지막 단계가 자기 부모를 위해서 한 달 동안 우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준비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그럼 준비 단계를 마치고, 완성 단계는 뭐냐? 13b절입니다. 이 모든 준비단계를 마친 후에는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라'
여기서 '그에게로 들어간다' 하는 의미는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라 하는 의미가 아니라 결혼 언약적인 관계로 들어간다는 것이죠.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될지니라' 하는 혼인언약의 관계로 들어간다..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결정적인 문제가 없는 한, 이혼은 하지 않겠다.. 라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4. 포로된 여인과 결혼한 후에, 이혼은 가능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혼 문제에 관해서는 신24:1~4절에서 앞으로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포로된 여인과 결혼한 경우에 이혼의 문제, 그 법도는 무엇인가? 그것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은 이혼을 원하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혼을 어떤 경우라도 원하지 않으시죠. 원칙상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마19:6 그것이 하나님의 근본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짝지어 주어서 한 몸이 되었는데, 한몸이 된 걸 나누면 죽지 않느냐? 이런 의미죠. 한 몸을 나누면 (각각 반 쪽은 둘 다) 죽는 거죠. 이혼을 원하시는 경우가 없다.. 이게 하나님의 근본적인 원리인데
그런데 마19: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이 강팍하므로 너희 아내를 버리도록 허락하였으나 처음부터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혼을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에, 모세가 허락한 경우가 있다... 하는 얘기죠.
어떤 경우에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지는가요? 어떤 경우에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는가요?
신24:1절에는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는 경우' .. 이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치되는 일' 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신24장 강해를 할 때,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21:14절에는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랬어요. '기뻐하지 아니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단순히 뭐 일시적인 감정으로 좀 기쁨이 사라졌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심각한 언약 위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않게 된 경우'인 것입니다.
아내가 과거의 종교행위를 몰래 은밀하게 시행하고 있다던가 그러면 이스라엘 남자가 같이 살 수가 없는 거죠.
결혼을 하고 다 이렇게 단절을 했는데 몰래 가서 향불을 켜고, 귀신에게 절하고 있다던가 그러면 그것은 심각한 언약 위반이에요.
또 아니면 성적인 부정이 발견되었다든가..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언약 위반의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에라도 두 가지를 유념하라고 했습니다.
1) 하나는 그 마음대로 가게 하라.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14),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가게 하라는 말씀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가요? 남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혼소송을 하겠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자가 그냥 살고 싶으면 놔두라는 거예요. 그 여자가 가려고 하면 가게 하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혼 문제에 관해서, 이스라엘 남자는 능동적, 적극적인 입장이 되지 말고 수동적, 소극적인 입장이 되라는 말씀이죠.
남자가 먼저 '이혼하자'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여자가 가려고 하면, 가게 하라' :14 이게 표현이 참 가만히 생각하면 의미심장하죠.
신약성경 고전7:15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역시 신약의 성도들도 불신자인 배우자가 신앙문제로 이혼하고자 할 때에 성도들은 수동적인 입장이 되라는 거에요.
적극적으로 '뭐 너는 예수 안 믿고 불신자니까 내가 이혼해야 되겠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거죠. 그러니까 '믿지 않는 배우자가 갈라 서려고 하거든 갈라 서게 하라' 고전7:15
이렇게 이혼문제에 관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능동적, 적극적인 입장이 되지 말고 수동적, 소극적인 입장이 되라 .. 하는 것이 구약에도 그렇고, 신약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대로 가게 하라,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신21:14, 고전7:15
2) 또 다른 하나는, '그 여인을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진이라' :14b
인간적으로 치사함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방 여자지만 자기 아내로 삼던 여자를, 이제 이혼한다고 해서, 종으로 갑자기 삼고, 종으로 팔아먹어서 돈을 자기가 챙기고... 이런 치사한 남자가 되지 마라... 그런 얘기죠.
끝까지 자기와 살던 사람으로서 예를 갖춰라 ..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1) 이 법도는 '인간의 성은, 순결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과 함께 결혼의 신성함, 가정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법도인 것입니다.
가정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또 인간의 성은, 가정 안에서 보호를 받아야 된다.. 하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2) 아무리 전쟁 시라도, 무력과 힘을 가진 군인들이라 할지라도 약한 여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노리개로 삼는 일은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 중의 악이라는 말씀이죠.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약한 나라에 가서 경제적으로 약한 여자들과 결혼을 해서, 성적인 만족감을 취하고 자녀까지 낳고 살다가 그들을 버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연락을 끊고 ... 이렇게 사는 것은 악 중의 악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죠. 과거에 월남에 가서 그 짓하고, 필리핀에 가서 그 짓하고 그래서 '코피노' 이런 단어도 나오고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이게 얼마나 큰 악입니까. 그 아이들이 다 제대로 자라겠어요?
아버지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가서 연락을 끊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버지를 보고 싶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이 그립다.. 합니다.
이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우리나라가 국가예산을 써서라도 이런 사람들을 구제해줘야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지고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고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 우리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참 치사한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3)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남편의 가족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 친정 식구만 챙긴다... 이런 것은 오늘 본문의 정신으로 볼 때는 결혼의 준비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결혼한 것 같은 ...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의 가족들, 시댁 식구들 중에 얼마나 고통도 많이 주고 그러니 며느리 입장에서 싫은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남편의 가족들이 내 가족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런 걸 꼭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그런 의미가 내포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4) 마지막으로 이혼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적극성을 띠지 말아야 하고 사람의 마음이 강팍해져서 이혼을 하는 경우에라도 돈 문제로 너무 치사하게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보면 뉴스에 많이 나오죠. 이혼하는데 얼마를 내가 받아야되겠다... 신성한 결혼을 대하는 태도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로 갈라서더라도,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헤어져야죠.
이혼이 무슨 이게 그 돈벌이하는 수단이 되고, 돈 챙기는 수단이 되고.. 이것은 참 인간적으로 너무 너무 치사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의 삶의 한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지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1) '법도'는, 하나님의 항존법인 십계명을, 구체적인 케이스에 적용하는 판례 Case law인 것입니다. 문체는 'If~ then~'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법도'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인데, 영어성경에서는 주로 'judgment' 로 번역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법도' 또는 '판단'으로 주로 번역했고, (*규례로 번역한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시119:137절에,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여기 나오는 '주의 판단'이, 바로 '하나님의 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항존법을 구체적인 경우에 적용하는 'case law'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주2) 나실인이란, 일정 기간 동안 자기 몸을 구별해서 여호와께 드려진 사람입니다. 물론 삼손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산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1년, 2년, 이렇게 일정 기간 동안만 나실인으로 보통 서원을 합니다. '그 기간 동안 나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겠다' 이게 나실인 입니다.
서원한 기간 동안에는 세 가지를 하지 말아야 되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되고, 즉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아야 됩니다. 또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지켜야 되는 것이 나실인의 서원입니다.
그런데 이 서원한 기간을 마치게 되면, 그는 머리털을 모두 밀고 (그동안에 얼마나 길게 자랐겠어요)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두라 ... 그러니까 다 태우라는 얘기죠. 민6:18 그렇게 해서 나실인 서원을 마치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