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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6장 신명기 두번째 설교의 마지막 마무리 메시지
LNCK
2022. 7. 23. 04:23
◈신명기 두번째 설교의 마지막 마무리 메시지 신26장 여러 설교 정리
신5장부터~26장(본문)까지 진행되어 온 모세의 두 번째 고별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모세는 신5장에서 십계명을 전달한 후에,
6장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원해서 기꺼이 십계명을 다 지키려 한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모세는 본문 16절에도, 마치 수미쌍관법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26:16
모세의 두 번째 설교가 5~6장에서 시작해서, 26장에서 끝난다는 증거입니다.
참고로 세번째 설교는 (27~30장)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때는 축복이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온다.
그래서 축복과 저주에 관한 주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언약에 대한 상벌 규정이죠.
그 외 31~34장은, 모세의 마지막 축복과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요> 신26장은 세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첫 소산물을 드리라 (1-11절),
-제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에 관한 규례를 언급하고, (12-15)
-그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자세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합니다.(16-19절)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1~11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한 후에 농사하여 첫 수확을 얻었을 때
이를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릴 것과
그 때 드릴 신앙 고백을 규정하고 있으며,
12~15절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표로>
소위 구제의 십일조를 *레27:30-34참조
제3년에는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도록 한 것과
그 때 드릴 신앙고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6~19절은 <그럴 때 받는 은총>을 모세는 설교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모세 오경에서 처음 언급되는 것이 아니지만
고별 설교의 결론적 주제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즉 전반부(1~11절)는,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의무와 사랑,
후반부(12~15절)는 이웃에 대한 성도의 의무와 사랑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을 동시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맏물을 드리라 *26:1~11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가나안에서의 십계명의 규례들을 가르쳐 준 후에
모세는 마지막으로
모든 소산의 첫 번째 것을 여호와께 드릴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앞서 모세는 보리의 첫 수확을 드리는 초실절(유월절)과,
주식인 밀의 첫 수확을 드리는 칠칠절(오순절)과
모든 실과의 첫 수확을 드리는 수장절의 규례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16:1~8 유월절 (초실절) 규례
*16:9~12 칠칠절 규례
*16:13~17 초막절 규례
어떻게 보면, 16장에 이은 반복된 설교이지요.
모세가 16장에 이어서, 반복해서 26장에 말씀한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절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본문 이해를 위해서 다른 각도에서 보면)
모세는 지금, 과거 우리 나라에서 40년 전에 부흥회 할 때, 마지막 날에 부흥사가 꼭 헌금 작정 시키듯이
신명기의 하이라이트 설교를 마치면서
헌금 (헌물) 이야기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왜 모세는 '전문 부흥사'도 아닌데, 헌금으로 결론 지을까요?
헌금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만큼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만큼 드려서 기쁜 일이 없습니다.
지금 모세가 설교 막바지에, 헌금 얘기로 설교를 마무리 짓는 것은
모세 자신이나,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하나님을 사랑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그러니 설교자나, 듣는 회중이나 '헌금' 때문에 시험들 이유가 1%도 없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야 40년을 마무리 하는 시간입니다.
신혼부부로 치면, 결혼한지 40년만에 '내 집 마련'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다들 흥분했을 것입니다.
마치 군대에서 말년 병장이 제대하고 귀가를 기다리듯,
이스라엘이 지금 가나안에 들어갈 날만 학수고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헌금이 안 들어온다고.. 다들 고민하는데,
그만큼 우리 신자들의 사랑이 식었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면.. 더 많이 못 드려서 안달이 나겠죠.
▲하필 왜 '맏물'일까요?
왜 모세는 하필 수확물 중에 '맏물'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을까요?
'맏물'에 담긴 여러 가지 고상한 이유가 있겠지요... 존경, 충성, 헌신의 의미로
수확한 소산물의 첫 수확물(맏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세속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맏물'을 안 드리면요, 나중에 못 드리게 됩니다.
아예 처음에 딱 헌물로 떼 놔야지... '중간 물'이나 '끝 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중에 드릴 게 없어서.. 못 드리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헌금을 드리는 성도/ 못 드리는 성도의 차이가 바로 '맏물'입니다.
'맏물'을 딱 떼 놓지 않으면... 며칠 지나면 나중에 '없어서' 못 드리는 것입니다.
드리고 싶어도 못 드리는 거죠. 돈이 없으니까요.
요즘 여름 휴가철입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름에 휴가를 떠나는 경우가 대세로 자리잡은지 오래 됐습니다.
좀 주님을 잘 섬기려는 사람은,
휴가비로 책정한 비용가운데 10%를 '맏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조금 절약해서 자면 되고, 조금 덜 비싼 것 먹으면 됩니다.
12절에, '셋째해 십일조는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이렇게 네 부류의, 가난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레위인은 지금이나 옛날 그 때나,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는가 봅니다.
(이스라엘 신자들이 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내가 벌어서 내 돈 쓰는데 누가 뭐라 그러냐?'는 생각을 하면.. 보통 신자이고,
내 주위에 있는 레위인, 객, 고아, 과부를 생각하며,
내 것을 그들과 나눠쓰는 성도야 말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본문을 굳이 적용한다면,
1~11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고
12~15절은, 내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구제금인 셈입니다.
제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요.
그래서 장성한 자녀들 가운데,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자녀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녀가 있는데... '맏물'의 차이입니다.
그러니 월급 받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하나님께 드리고,
또 부모님 몫으로 '맏물' 중에서 떼 놓는 자녀는.. 5계명에 순종하는 자녀이고,
'맏물'을 드리지 못하면.. 부모 공경도 못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에 부모에게 '맏물'을 드리라는 얘기는 없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것이죠)
▲여러분, 교도소에서 누가 가장 행복할까요? 그런 얘기 들어보셨나요?
교도소 전도 하시는 분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교도소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사형에서 무기수로 감형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일단 사형을 면했으니.. 그게 그렇게 기쁘고 즐겁다고 합니다. 무기수인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구원, 나의 생명을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주시고,
나를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과하게 하시며,
결국 가나안(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맏물'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2. 하나님도 사랑하지만, 이웃도 사랑하라 *26:12~15
네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네 주위의 레위인, 객, 고아, 과부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십일조의 종류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해서 다른 백성들이 십분의 일을 정기적으로 드리는 정규 십일조(민18:21-24)
둘째는 유대인의 7대 절기 때 필요한 경비와 성소를 보수하는데 드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절기 십일조(신12:5-19)
셋째는 본문 신26:12절에 기록된 구제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삼 년에 한 번씩,
레위인이나 고아나 과부 등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목적에서 거두는 것입니다.
이 구제 십일조는 ‘제 삼의 십일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규 십일조는 매년,
절기 십일조와 구제 십일조는 절기-절기-구제-절기-절기-구제 이렇게 드린 거죠.
그러니 이스라엘은 사실상 10의 2조를 매년 드린 셈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헌금 드리지 않고,
또 주위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복 받기를 기대한다면... 그건 날강도이든지, 아니면 착각이 도를 지나친 것입니다.
간혹 헌금 드리지 않아도.. 물질의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아닙니다.
모세가 지금 설교 막바지에 헌금 얘기를 하는 것은,
헌금을 내라는 얘기가 아니라,
마음과 뜻을 다해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라.. 입니다. .
그러면 꼭 give and take 목적으로, 내가 헌금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련히 안 갚아 주시겠습니까!
▲옛날에 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차 손님들을 초대하여 우유를 대접할 예정이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지금부터 미리 우유를 짠다면 (과거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담아 둘 데가 없을 것이며, 또 우유가 부패할 우려가 있다.'
'차라리 우유를 소의 뱃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손님을 초대하는 날에, 한꺼번에 짜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암소 어미와 새끼를 붙잡아 각기 다른 곳에 매어 두었습니다.
송아지가 어미 젖을 못 먹게 한 것이죠.
그리고는 한 달 뒤에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맞이하고,
소를 끌어다가 젖을 짜려 했으나,
소젖을 오래 안 짠 탓으로 젖이 말라붙어서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손님들은 성내기도 하고 비웃기도 했습니다...
지혜 없는 사람은 이와 같아서
구제를 행하고자 하는 경우에, 흔히 이와 같이 말합니다.
“재물을 크게 모아놓고, 그 다음 한꺼번에 구제해야겠다.”
그러나 재물을 많이 모으기도 전에, 도둑에게 뺏긴다든가, 사업이 망한다든가,
그런 화를 면한다 해도, 문득 죽게 되어서 구제할 겨를이 없어지든가 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우유를 한꺼번에 짜려 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3. 지켜 행하라 *26:16~19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모세가 신명기에서 '제2의 율법'이라고 후대 사람들이 제목을 붙일만큼,
길게 율법(규례와 법도)을 다시 설명한 이유는,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마무리 메시지죠!
바꾸어 말하면 '마음속으로 믿어라'라고 한 것이 아니죠.
그런데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마음으로 믿고' 있고, '행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행함으로 믿는 것은 '행위구원론'으로 여깁니다.
신명기에서 '행하라', 또는 '행하고'라는 구절을 대충 찾으면 40번이상 나옵니다.
성경 전체에서 찾으면 아마 셀 수 없을 것입니다.
16절에도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데도 우리는 '행함'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듣고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 쉽고 편리하게 끝내버립니다.
특히 성경을 조금 공부한 분들은 '율법을 주신 목적은 (행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 큰 목적은 버리고)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라고 주신 것이다. 율법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하기 위해 주셨다,
율법을 한 개 어기면, 모든 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라는
로마서의 서너 구절 때문에,
성경 전체에서 수 백 번 강조하는 '행하라'는 말씀을, 폐기처분 시켜 버렸습니다.
나라마다 교통법규를 제정한 이유는, '지키라'는 목적이지,
'그걸 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위함이다'.. 이런 식의 엉뚱한 궤변을 따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법은 '지키라'고 만든 것이 첫번째 목적이지,
죄가 뭔지 깨달아라고 법을 제정한 것은, 부차적 목적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만> 공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율법폐기론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계명, 규례, 법도를.. 가르치지도 않는 것입니다.
도덕법을 제외한 시민법, 의식법이 신약에 폐지되었다 할지라도,
그 정신, 그 신념, 그 의미는.. 신약에서도 계속 유효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초실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키지는 않아도,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습니까.
로마서에서 바울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너희가 율법을 행할 수 없는 것을 깨닫기 위함이다'
라고 말씀한 목적은
'은혜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그 은혜로 너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한 일종의 서론이요, 예를 든 것이지... 그게 율법을 주신 '큰 목적'은 아닙니다.
율법을 주신 큰 목적은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로마서 후반부(10장~)나, 그의 모든 서신서들에 보면
율법의 도덕법을 실제로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믿으면 된다, 믿으면 그것으로 끝!' 식으로 기록한 서신서는 한 권도 없습니다.
율법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은 '내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10:13
우리를 불편하게 하려고, 기강을 잡으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규례와 법도를 열심히 가르치고, 또한 배워서 힘써 지켜 행해야 하겠습니다.
구약에 오경 말고도, 역사서, 성문서(시가서), 예언서 등이 34권 더 나오는데
그 주제가 바로 이것이죠. '율법을 지켰더니 흥했고, 행복했으나
율법을 불순종했더니 망하고, 끝장 나고 말았다' .. 그 사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율법의 규례와 법도를 가르친다면, 설교할 게 너무너무 많습니다.
성경 66권 1189장이 다 하나님의 율법, 규례와 법도입니다.
그런데 율법폐기론 신학이 선입견처럼 머리에 박혀 있어서, '이신칭의'만 가르치려 한다면
성경을 가르칠 게 별로 없습니다. '이신칭의'와 그 외 모두는 '율법' 이렇게 나눠버리면,
우리는 성경 1189장 가운데, 아마 1180장 이상을 잘라내 휴지통에 버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66권, 1189장을 모두 가르치고 배우는 'Back to the Bible' 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실질적인 신명기의 마지막 메시지(본문)에서, 지켜 행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16~18절).
그러면 너희가 행복해지고 복을 받는다는 것이죠(19절).
그리고 다음 장부터 '상벌 규정'이 나옵니다.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끔찍한 벌을 받는다는 거죠. *27~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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