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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7장,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노니

LNCK 2022. 7. 25. 19:43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노니            신27장                여러 설교 정리

 

신명기에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다'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11:26. 30:1, 19

본문에는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다'는 표현은 없지만, 내용적으로 그와 똑같은 말씀입니다.

 

<신27장의 개요>

 

본문 신27장에서부터 30장까지는 모세의 제3차 고별 설교입니다.

 

제3차 설교의 첫 장인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사역을 성취한 후

그 땅에 정착했을 때 거행해야 할 두 가지 의식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에발산에 석회를 발라 그 위에 율법의 내용을 새긴 돌비와 돌단을 건축하며

감사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1-10),            *27:1~10 에발산에 세워진 제단

 

-또 하나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가 각각 반씩 나뉘어

서로 마주 보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서서,

그리심산의 지파들은 율법을 순종할 때는 복을 받고,

에발산의 지파들은 불순종할 때에 저주가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11~26절)

 

그 저주를 받는 12가지의 사례가 본문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소위 ‘세겜의 12저주’라고 함. 저주를 선포한 에발산이 세겜 지역에 있으므로

 

▲신명기는 종주권 조약 형식

신명기는 종주권 조약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데, 거의 대부분 신학자들이 동의 합니다.

종주권 조약이란, 고대 제국의 왕이, 봉신국과 맺는 계약인데,

 

그 계약을 잘 지키면, 제국의 왕이 신하국가를 잘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고,

그 계약을 어기면, 거기에 따른 책임과 징벌이 따른다는 내용을

<계약 사항>으로 문서화 한 것입니다.

 

*종주권 조약에 따른 신명기 해석                  주1)

 

여기서 문제는,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또는 우리 신약 성도들과)

종주권 계약을 맺으셨느냐? ..입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봉신국(신하 국가)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도 볼 수 있으며

-반대로, 하나님이 무슨 독재자, 강하게 억누르는 군주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가 ’종주권 조약‘ 형식을 도입해서 기록된 것은 맞는데,

그럼 이렇게 기록된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입니다.

당시 고대국가들은 ’종주권 조약‘을 모르는 백성들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대부분 나라들이, 강한 나라의 봉신국으로 살고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아무리 <언약>에 대해서 설명해도,

백성들은 그게 뭔지.. 모호하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같았을 것입니다.

 

참고로, ‘언약’이란 다른 말로 ‘계약’인데,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문서화된 계약’을 언약 covenant 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당시 대부분이 무학, 문맹) 가장 알기 쉽게 <언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종주권 조약’의 형식을 빌려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종주권 조약의 핵심이 뭡니까? 상벌 규정입니다.

-계약을 잘 지키면, 통치자로부터 보호와 혜택을 받고

-계약에 불성실하면, 통치자로부터 징계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신27~30장에 걸쳐 두루 나옵니다.

이것은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의 3번째 설교에 해당되기도 하죠.

 

 

◑그런데 <상>보다는 <벌>에 관한 규정이 더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가 그렇겠습니다만,

지금은 신명기를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신27~30장의 모세의 세 번째 설교 중

여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저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가 ‘축복’입니다.

 

저주라는 단어가 축복보다 네 배나 더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신27장에는, 15절~26절까지 12번이나 ‘저주’에 관한 선포가 나옵니다.

축복에 관한 선포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신28장에는, 1~14절까지가 ‘축복’ *14구절

15~68절까지가 ‘저주’의 선포입니다. *54구절

절 수로 치면, ‘저주’가 ‘축복’보다 약 4배 많이, 또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말씀을 듣고 싶은데,

사실 신명기 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하면 엄격한 ‘상벌 규정’에 의해, 징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에서도 ‘아들일수록, 사랑할수록 더 징계한다’고 하십니다. 히12:6~8

구약도 아닌데, 신약인데.. ‘아들을 채찍질’ 하신답니다. 히12:6

 

그래서 우리는 설교를 통해 열심히 가르치고/듣고/배워야 할 내용은

-어떻게 하면 저주와 징계를 받지 말 것인가?

-어떻게 하면 언약을 잘 지킬 것인가?

 

이런 내용을, 정말 ‘축복의 메시지’보다,

분량적으로 네 배를 더 많이 가르치고/듣고/배워야 됩니다.

*꼭 네 배라는 뜻은 아니죠. 그만큼 많이 해야 된다는 뜻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롬8:13

그런데 오늘날 많은 (가라지) 신자들이, 육신대로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죽음’과 같은 징계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기 삶에 지금 뭐가 잘못 되었는지를..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면 교회에서 ‘축복과 사랑의 메시지’를 워낙 자주, 많이 듣다 보니까

(예를 들면, 네 배가 아니라 일곱 배 이상으로)

하나님은 그저 마음씨 좋은 산타클로스 같은 분으로, 늘 덕담만 해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대의 많은 신자들이

실제로는 엄청난 징계를 받으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인생이 그런 것이겠지...’ 하고 그냥 꾸욱 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이,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받은 저주와 징계라는 사실을 아는 신자들은

20%나 될까요?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상’보다는 ‘벌’을 받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는 ‘상’보다는 ‘벌’에 관한 규정을, 4배나 많게 기록해서, 경계하신 것입니다.

 

 

◑‘상벌 규정’을 두신 것은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뜻

 

오늘도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6, 7, 8, 9, 10계명을 어기는 일들이 있어도

하나님은 강력하게 막지 않으십니다.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죠.

 

오늘도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혼외 관계로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철벽같은 저지선을 세워주지 않으십니다.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 범죄할 때도,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때도, 바울(사울)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도

그들을 극구 막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심판은 하시죠.

 

자유의지는 그만큼 고귀한 것이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만 맡기거나 주시는 것입니다.

높고 거룩하고 고귀한 천사들에게도 이것을 주시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이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언약을 잘 지켜서... 복을 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어겨서... 저주와 벌과 징계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내가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힘써 섬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밟는 땅을 내가 네게 주리라’고 하셨는데,

오늘도 나는 자유의지로, 30걸음 전진할 수도 있고

60걸음 밟을 수도 있고, 100걸음 전진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나에게 (내 자유의지에) 달린 일입니다. *나는 선수이고, 주님은 코치 역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들 중에 주중에 비교적 한가한 분들이 많습니다.

평일에 내가 주님 주신 사명을 위해, 뭔가를 할 수도 있고,

그냥 한가하게 TV뉴스, 신문이나 보면서 소일할 수도 있습니다.

내 자유의지에 달린 일입니다.

 

내가 헌신한다고 해서, 주님이 당장 하늘에서 복주머니를 던져 주시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범죄한다고 해서, 주님이 당장 하늘에서 막아주시거나, 내리치시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내 자유의지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시고,

나중에 심판의 시간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자유의지를 오늘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 싸움을 매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주의적으로 '억지로, 강압에 못 이겨서'

언약(신약적 용어로 '계명')을 지킨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고요,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언약(계명)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죠.

 

오늘날 신자들은 기독교를 '마음으로 믿는 종교'로 여깁니다.

'믿음이 곧 순종'이라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삭을 바치는 순종을 했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언약을 배반합니다. 그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관련글 : 선택과 결단이 나를 바꾼다 

                  현명한 선택 / 젠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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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종주권 계약 Suzerain Treaty        /  데이빗 파슨의 <신명기 1> 중에서 

 

신명기에 나타난 가장 재미있는 한 가지 특징은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이 어려운 낯선 단어 Suzerain Treaty여러분에게 비호감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단어는 여러분이 아마 듣지도 못했을 것인데,

이것은 옥스퍼드 사전에도 나오고또한 고대 역사에서 자주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 영토가 확장되고그러면 그 나라와 조약을 맺는데,

이 조약을 종주권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수즈레인 트리티

 

종주권 계약정복한 왕이 정복된 나라와 맺는 조약입니다.

간단히 말하면조약은 하나의 협정이며,

종속국이 이 협정을 지키기만 하면정복국이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줍니다.

하지만 만약 종속국이 이 조약을 지키지 않는다면종주국이 그들을 징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자료들 중에이러한 종주권 계약의 예들이 많이 출토되는데특히 애굽의 것이 많습니다.

애굽이 다른 나라를 정복했을 때바로 왕은 정복당한 나라와 종주권 계약을 세웠습니다.

그들이 적당한 자치권과 자유를 여전히 유지하도록 보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가 규정한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조약에는어떤 분명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신명기의 구조가

바로 고대의 이러한 종주권 계약과 그 패턴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애굽 대학 교육을 받은 모세가당시의 이런 조약들을 반드시 보았을 것이고연구했을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종주권 계약의 형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 언약을 제시하고 있어요. *백성들이 이해하기 쉽지요

 

한 마디로 말하면,

지금부터 하나님은 너희의 왕이시고너희는 그의 백성이며,

이것이 바로 그분이 너희와 체결한 조약이고,

너희는 이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표에서고대의 종주권 계약의 형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1) 먼저는 <짧은 서문>, 1:1~5

 

이것은 바로 왕이헷족속이나 어느 한 나라와 세운 조약이다’ .. 선언하는 거죠.

 

2) 다음으로는 짤막한 <역사적 배경 소개>인데, 1:6~4

왕과 이 백성이왜 서로 이 조약을 세우는지를 설명합니다.

 

3) 역사적 배경을 진술한 다음전체 조약의 <기본 원칙>을 열거합니다. 5~11

이 기본 원칙들은모든 세부 조약의 기초가 되는 셈입니다.

 

4) 다음으로는 조약에 명시된 <상세한 행위 규범>입니다. 12~26

왕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5) 다음으로는 <상벌 규정>을 명시합니다. 27~28

종속국 백성이 만약 조약을 잘 지키면정복국 왕이 어떻게 대우할 것이며,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또한 어떻게 되는지를 명시하였습니다.

 

6) <신들을 불러내어 그 앞에서 서명> 30:19, 31:19, 32

그 다음은목격자들을 불러서 조약에 서명하게 하는데,

보통은 그 조약을 증명해 줄 존재로신들을 찾아서 부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을 불러내어보통 종교 의식으로 이 조약을 증명합니다.

 

7) 다음은 <계약 연장 조항>입니다. 31~34

만약 정복국의 왕이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때를 대비해 계승자의 이름을 쓰고속국은 여전히 그에게 충성하기로 서약합니다.

 

종교의식을 치르고모든 조항을 쓰고왕과 새 백성 쌍방 모두가 이 조약에 동의한다고 싸인 하면,

이 종주권 계약이 체결된 것입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고고학자들이 고대 조약을 발굴했는데,

뜻밖에도 신명기의 구조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애굽 역사를 공부한 모세가이러한 형식의 언약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로 알려주었고백성들은 그걸 쉽게 이해했습니다. *당시 통용되던 방식이었으니까요

 

백성들은이제부터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행위 규범을 응당 지켜야 하며,

우리가 그의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평안 무사할 것입니다..를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만약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징벌하실까요?’

그건 징벌 규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신명기의 기본 법규는 십계명이며, *헌법에 해당상위법

그리고 또한 그걸 바탕으로 한상세한 율법이 있지요.

 

그럼 징벌은요?

만약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면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징벌했을까요?

 

하나님이 두 가지 징벌을 내리겠는데,

하나는 자연 재해이고다른 하나는 사람에 의한 재난입니다.

 

1) 자연 재해 방면에서는만약 너희들이 조약을 지키지 않으면

하늘에서 비를 내리지 않을 것이다..입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은지중해와 아랍 사막 사이에 있습니다.

날씨는 하나님이 장악하고 계신데,

서풍이 불면지중해의 수분을 가져 와서약속의 땅에 비를 내리게 합니다.

 

반대로 만약 동풍을 일으키시면사막의 뜨거운 바람을 가져오는 것이지요.

오늘에도 이러한 바람이 부는데이를 함심(건조한 열풍)’이라고 부르지요.

함심이 부는 곳은모조리 메마르게 되어 사막으로 변하지요.

 

하나님이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첫 번째 징벌이다.

만약 너희가 계속해서 조약을 지키지 않으면

하늘에서 비를 내리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엘리야 시대 때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상벌의 방식입니다.

 

2) 만약 자연재해의 징벌이 효과가 없으면하나님은 더욱 치열한 방법을 취하시는데,

이제는 사람의 손을 빌어 선민이 공격당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아마 알아차리지 못했을 텐데요,

성경을 자세히 보면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동쪽에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오게 하실 때,

같은 시기에 서쪽에서 다른 한 무리 사람들도같은 땅으로 데리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들은 지중해의 크레타 섬에서 온 사람들이고그들을 블레셋이라고 불렀습니다.

 

(전에 성경에서 이 점을 알고 계셨던 분은손들어 보세요.

하나님은 그들을 동시에 데리고 들어오셨습니다다만 소수 사람뿐이군요.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아모스 9장에서 하나님이 아모스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내가 너(선민)를 애굽 땅에서블레셋 사람을 갑돌(크레타/그레데)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9:6, 2:23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시에이스라엘의 제일 큰 적도 함께 같은 땅으로 들여보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중간 산지에서 살게 했고,

블레셋은 해안 평지에서 살게 하였는데바로 오늘의 가자 스트립 지역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팔레스타인들은자신들 스스로 블레셋(팔레스타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 민족을같은 땅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너희가 나의 명령을 지키면 평안 무사할 것이고,

아니면 내가 블레셋을 일으켜너희를 공격하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간단한 원리이며이 모든 것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아마 아주 기이하다고 느낄 것이며심지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두 나라를 이 좁고 긴 복도같은 땅에서서로 바짝 붙어서 살게 하셨는지요?

그래서 그 중 한 나라로다른 나라를 징벌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사실 하나님의 의도는거기에 있는 원주민을 쫓아내시려고,

그들의 적(선민)을 데려오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약속의 땅에는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주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들인데그들은 일찍부터 그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더러, ‘거기 사람들을 쫓아내고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절별 해석 ...........................................................................................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모세가...장로들로 더불어...명하여'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로 제도는 하나님의 뜻을 회중 전체에게 매우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통신 체계이기도 하였다 (출12:21-28).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명령'

이 말에 대해서는 세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본절 이후에 나오는 모세의 분부

곧 요단 강을 건넌 후 돌에 율법을 새기는 일과 제사를 드리는 일,

그리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일 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Lange).

 

2) 단지 27, 28장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3) 돌에 율법을 새기는 것(2, 3절)을 모든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하여

'온 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세 견해 중 어느 것을 택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본서 전체의 정황으로 보아 3)이 보다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 모세가 이 말을 할 때 이스라엘은 아직 모압 평지에 진치고 있었다(1:1, 5, 34:1).

따라서 당시 백성들의 눈에 요단 강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작 때

'홍해'라고 하는 고비를 겪고서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듯이(출14, 15장),

본 절은 언약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또 하나의 고비가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 - 이스라엘이 츨애굽한 때는 B.C. 1446년 아빕월

(종교력 제 1월, 태양력 3-4월)이다(출 13:4).

그리고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최초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는

B.C. 1405년 아빕월이다(수 4:19, 20).

 

따라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생활했던 기간은 약 40년 가량이었음을 알 수 있다(민 14:33, 34).

한편 여기서 '날'(욤)은 '바로 그날'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때', '즈음', 연후'(창 2:4, 민 3:1, 전 12:3) 등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큰 돌들을 세우고' - 율법을 기록하기 위한 기념비적인 큰 돌들이 많이 세우라는 뜻이다.

오늘날과 같은 책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는 돌에다 기념비적인 사건이나 법을 기록하여

여러 지방에 세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는 습관이 성행했었다(수7:26, 8:29, 24:26, 27, 삼상7:12, 삼하18:17).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1902년 몰간(M.J. Morgan, 1857-1924,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이

수사(Susa)에서 발굴해 낸 함무라비 법전(Hammurabi's Code)이 있다.

아무튼 팔레스틴에는 돌이 많았으므로, 그러한 돌비를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석회를 바르라' - 이는 글자를 새기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석회(시드)는 내구성(耐久性)이 강하지 못하니 이것을 발라서 만든 돌비는

후손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수정된다.

 

돌이나 건축물의 외벽 따위에 석회를 발라 그 위에 각종 문양이나 글을 새기는 기법은

고대 애굽에서 성행하던 양식이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체류 당시 이 기법(技法)을 배웠을 것이다.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율법의 모든 말씀' - '율법의 모든 말씀'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 세 견해가 있다.

 

1) 단순히 본장 15-26절에 언급된 축복과 저주의 말씀만을 가리킨다.

2) 신명기 율법을 가리킨다.

3) 모세 율법 전부를 가리킨다.

여기서 세번째 견해에 대한 유대 랍비들의 견해를 따르면,

모세 율법의 총 항목수는 613개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많은 돌비에 여럿이 기록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하튼 중복된 모세 율법의 모든 조항까지 다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세 율법의 핵심되는 조항 전부를 다 기록했다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 위에 기록하라' - 이는 혹자들의 주장처럼 돌 위에 먼저 율법을 기록한 후

석회를 바른 것이 아니다. 이는 돌에 먼저 석회를 바른 후 율법을 그 석회 위에 기록한 것이다,

그래야만 글자를 새기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이처럼 돌에다 석회를 바른 후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는 이 의식이 지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이는 광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권이 분명히 임한다는 사실을

가시적(可視的)으로 포고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 의식은 향후 가나안 땅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 돌들 위에 새겨진 율법의 준수 여부에 따라

그 흥망성쇠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실감있게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가나안 본토를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말로서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나안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경에서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출 3:8, 민 13:27, 렘 11:5, 겔 20:6),

이 표현은 가나안의 별칭(別稱)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표현이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 '젖'은 우유나 버터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소나 양 등 가축들에게서

실제로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

또한 '꿀'은 가나안의 토산품이 될 정도로 야산과 나무그리고 꽃 등에서

많이 채취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싯 14:8, 삼상 14:25, 대하31:5).

 

그렇다고 이 표현이 결코 1차적인 자연 조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일부 비옥한 지대를 제외하고는,

사실 물이 넉넉하지 못하고 기온차가 심하며 곳곳에 불모지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이 표현은 그 땅의 언약적 위치를 드러내는 말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복스럽고 살기 좋은 땅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임하는 곳이야말로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표현은 하늘 가나안, 즉 성도들이 훗날 죽음을 통과하여 영생을 누릴

신천 신지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을 연상시켜 준다.

 

‘네게 말씀하신대로 하리니' - 이 부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일찍이 B.C. 2,000년경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었다(창 12:7).

그런데 B.C. 1,400년경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 정복함으로써 (수 12장),

이 약속은 약 600년 만에 그대로 성취되었다.

 

한편 이러한 당신의 신실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1)하고

친히 언급하신 적이 있다.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 에발 산(Mt. Ebal)은 이스라엘이 저주를 선포하도록 되어 있는 산이다(13절).

그런데 율법을 기록할 돌비와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단(5, 6절)을

이 저주의 표상인 에발 산에 세우도록 한 이유는

아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초래될 저주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며

죄와 저주가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속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Keil).

 

'에발 산'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11:29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사마리아 사본(Samaritan Codex)은 여기 '에발 산'을 '그리심 산'으로 대체시켜 놓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성산(聖山)인 '그리심 산'을 부각시킬 목적에서

자의로 변경시킨 것일 뿐 고대의 여타 모든 히브리 사본에는 '에발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단 곧 돌단을 쌓되' - 율법을 새긴 돌비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인간을 찾아오시는 것에 대한 상징이라 본다면, 제단을 쌓는 것은

인간이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지니라' - '다듬지 않은 돌로 쌓으라'는 말과 함께

자연석(自然石) 그대로 제단을 쌓으라는 뜻으로,

이는 곧 외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신경을 쓰는 일 없이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함을 교훈해 준다.

 

철연장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준(準)무기이다.

따라서 그같은 부정한 도구로써 구원의 단이 될 여호와의 거룩한 제단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유사한 규례는 출 20:25에도 나와 있으니 그곳 주석도 참조하라.

 

‘번제를 드릴 것이며' - 번제는 죄의 속죄 및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와

그분께 대한 온전한 헌신, 봉사를 상징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후 먼저 이같은 제사를 드리는 것은,

곧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가나안(7:23-26)에 대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가나안에서의 모든 죄악을 제거한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결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 것임을 다짐하는 의미를 지닌다.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또 화목제를 드리고' - '화목제'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과 인간 간의 상호 화목과 친교를 간구하는 제사이다.

 

따라서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화했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

먼저 이러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자못 의미깊은 일이다.

즉 이는 곧 이스라엘이 그제라도 광야의 어려움을 딛고서

끝내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을 의미한다(3절).

 

‘거기서 먹으며...즐거워하라' - '화목제'(和睦祭)는 번제와 달리 희생물의 기름진 부분만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레 3:3-5), 나머지는 제사장과 경배자가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기쁨을 나누는 제사이다(레 7:15-17, 30-34).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마치 2절의 말씀을 4절에서 다시 확인시키듯, 3절의 말씀을 본절이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명백히 기록할지니라' - 여기서 '명백히'는 '뚜렷하게 새기다'는 뜻의 '바아르'와 '자세히'란

뜻의 '야타브'가 합쳐진 말로, 누구나 알아볼 수있게 뚜렷하게 기록하라는 강조적 의미이다.

이처럼 율법을 기록하라는 말이 3절에이어 재차 그리고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음은

돌비에 새겨진 율법을 백성들이 그대로 심비(心碑)에 새겨 철저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시사해 준다.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 1~8절까지의 모세의 지시는 '장로들'(1절)이

이스라엘에게 전달하였으나, 본절 이하의 전달 사항은 '제사장들'이 맡았음에 유의해야 한다.

당시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집전할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10:8, 21:5, 민 6:23-27).

아마 이러한 까닭에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일에는 제사장들이 동참하게 된 것 같다.

 

‘잠잠히 들으라' - '잠잠히'에 해당하는 '사카트'는 특히 '주의를 기울이기 위하여

조용히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모세는 이 말을 하면서 40년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불신앙적 거역 사건들을 염두에 둔듯하다(민11:1-9, 12:1-16, 16:1-35).

 

즉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방자하고 분요하기 짝이 없었으며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 매우 강퍅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같은 지난 과오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조용히 삼가 겸손해질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자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미 출애굽 초 시내 산에서의 일이었다(출 19:5, 6).

따라서 본절은 이제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정식 백성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껏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아 오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26:18,19).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여호와의 말씀' - '말씀'(words)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원어는 '다바르'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콜'은 '글'(word)보다는 '소리'(voice)라는 뜻이 강하다(KJV, RSV).

그러므로 우리는 본절에서 이스라엘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오셔서 친근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복종하여(솨마)' - 원뜻은 지식적으로 '알아듣다', '경천하다', '이해하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앎이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그로부터 '순종하다'(30:2)란 뜻이 파생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게 해 준다.

 

명령과 규례' - '명령', '규례', '법도' 등과 같은 말은 대개 두 단어 이상이 한 구절에

동시에 사용되어 뜻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으로 많이 사용된다(10:13, 창 26:5, 민 9:3, 대하 7:17, 스 7:10).

 

그러나 본절의 두 단어를 굳이 구분한다면,

'명령'에 해당하는 '차와'는 십계명과 같이 의무 이행이 강조되는 '핵심적인 지시 사항'을 의미한다(5:31).

반면 '규례'에 해당하는 '호크'는 수행할 명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은 '법규'를 의미한다(4:1).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른 후,

그곳 세겜 땅 북쪽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축복과 저주의 의식'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기 6지파씩 양편 산에 갈라서서 축복과 저주를

각기 선포하는 의식인데, 수 8:30-35에서 그대로 실행되었다.

한편, 그리심산과 에발 산이 왜 축복과 저주의 산으로 각각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요단을 건넌 후에' - 2, 3, 4절에 이어 본장에서 벌써 네번째 언급되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그만큼 요단을 건너는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을 시사해준다.

 

‘시므온과...베냐민' - 모두 야곱의 정부인(正婦人)인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후손이다.

그러나 그중 레아의 막내 아들인 스불론의 지파와 서모(庶母) 빌하를 범하였던

장자 르우벤(창 35:22)의 지파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축복하기 위하여' - 야곱의 정부인에게서 난 아들들이 이처럼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에 대하여 카일(Keil)은 '적자(嫡子)가 서자(庶子)보다 신분이 높고,

축복이 저주보다 품격이 높은 만큼 적자가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하였다.

 

‘그리심 산' - 사마리아 성읍 부근에 위치한 오늘날의 '예벨 엣 투르'(Jebel et Tur)이다.

남북으로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특별히 그리심 산(Mt. Gerizim)이 축복을 선포하는

산으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르우벤...납달리' - 전술한 것처럼 르우벤과 스불론 외에는 모두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와 실바의 후손이다.

르우벤과 스불론이 여기에 속하게 된 이유는 아마 르우벤은 서모 간통 사건으로 인한 장자권

박탈 때문이었을 것이고(창35:22, 49:4, 대상 5:1), 스불론은 레아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창 35:23)이었을 것이다.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 혹자들은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을 축복받은 지파들로,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을 저주받은 지파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에발 산에 서게 될 지파들 중에도 단, 아셀, 납달리 지파처럼

야곱의 축복을 받은 지파들이 있으며

그리심 산에 서게 된 지파들 중에도 시므온, 레위와 같이 야곱의 저주를 받은 지파도 있기 때문이다(창 49:1-27).

 

따라서 축복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저주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을

거역하는 자들을 각기 상징할 뿐으로 이해함이 좋다. 한편 에발 산(Mt. Ebal)이 특별히

저주를 선포하는 장소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레위 사람' - 여기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모든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약궤를 메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중앙 부분에 서서 모세의 말을 전달받아 양편에

갈라 서 있는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레위 제사장'(9절, 수 8:33)을 가리킨다.

 

‘큰 소리로...이르기를' - 혹자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양편 산 중턱에 운집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들릴 수 있었겠는가 라는 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한 정밀 조사 결과 양쪽 산의 음향 효과가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 여러 사람이 외칠 경우 충분히 들려진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은밀히 세우는 자' - 십계명 중 제 2계명(5:8-10, 출 20:4-6)을 은밀히 범하는 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은밀히'에 해당하는 원어 '바사테르'는 '은밀한 장소에'(KJV, in a secret place)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은밀한 장소'로 꼽을 만한 곳은 어디이겠는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골방이나 비밀 장소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는 역시 사람의 마음 속을 꼽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자기 마음 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 숭배이다.

 

‘모든 백성은...아멘 할지니라' - '아멘'(amen)이란 말은 본래 '확실하다', '신실하다'는 뜻의

'아만'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장이나 대화의 끝에서 사용될 때 '과연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경홀히 여기는(칼라)' - 원뜻은 '가볍다'로, 곧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히 여기는 것(잠 12:9), 절하(切下) 평가하거나 모독을 주는 것(사 16:14),

그리고 지독히 경멸하는 것 따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이처럼 업신여기는 것은

곧 자신의 근본(根本)을 망각한 행동일 뿐 아니라,

급기야는 부모를 통해 그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하는 짓거리이다(21: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고

권면하였다. 출 20:12 주석 참조.

 

‘저주를 받을 것이라(아루르)' - 기본형은 '아라르'로 '버림을 받다'란 뜻이다.

즉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다면, 버림을 받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임을 잘 증거해 준다(Calvin).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객이나 고아나 과부' - 가난하며 약한자, 그리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는

구약 시대의 3대 약자들이다(14:29, 16:11, 14, 24:21, 26:12, 13).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 사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란 아무도 없다(롬 3:1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출애굽의 영웅 모세도, 그리고 성군(聖君) 다윗도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던 죄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짐짓 범죄치 아니하려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창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