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지금 교인 중에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야고보서는 불신자나 초신자를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 받은) 기존 신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중요 그러므로 칭의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칭의 받은 후에 삶의 열매인 행함을 강조하는 거죠.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1절에 보면 '아브라함도 아들을 바치는 행함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았다' 라고 예를 들었어요. 근데 이상한 주장 아닙니까?
왜냐면 성경을 좀 아는 분들은 로마서 4장, 갈라디아서 3장을 읽어 보면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을 <이신칭의의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구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대표적인 예로, 아브라함을 들었단 말입니다. 근데 오히려 야고보는, 그 아브라함을 똑같이 예로 들면서 <이행칭의의 대표로 즉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논지를 펴고 있습니다. 약2:21
그러니까 동일 인물 아브라함에 대해서 두 사도가 정 반대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이 부분을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게 만들어 주겠다' 라고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창15:6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가 믿음을 가졌을 때, 그것을 의롭다고 여겨 주셨어요.
그리고 결국에 이삭이라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은, 믿음의 결실이었던 거죠.
근데 하나님께서 또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을, 나에게 번제로 죽여서 바치라고 하셨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인 거죠.
아니 그 아들을 통해서 수많은 뭇별과 같은 자손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 아들을 죽이면, 그럼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잖아요.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아~ 내가 아들을 바쳐도, 그 아들을 다시 살려서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실 거야'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순종의 실천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창22장의 아들을 바치는 사건이에요.
그러니 바울은 창15장을 예로 들어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 이신칭의, 초신자 본문의 야고보는 창22장을 예로 들어 행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온전함, 성숙
그러니까 창22:12절에 나오는 말씀이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왜 '이제야' 인가요? 창15장과 22장 사이는, 굉장히 긴 기간이거든요. 몇 십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지만 그렇게 그 하나뿐인 아들까지 내어 드릴 때 '진짜 네가 나를 신뢰하는구나!, 네 믿음이 이제 정말 온전해졌구나!' 라고 인정해 주셨다는 거죠.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지만 아브라함의 신앙은, 창15장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것 같지만 인생 여정에서 그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어요. 창15장에서. 그런데 창22장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내용을 보면 그가 부부간에 잘못 합의해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잘못된 자녀를 낳기도 했으며
'우리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과연 자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이렇게 중간에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었다고요.
그러니까 그의 믿음이 처음부터 뭐 완성형 이어서 쉽게 결실을 거둔 게 아니라
중간에 그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도와주셔서 그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결국에 믿음의 결실인 이삭을 얻은 거죠.
근데 그런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 결국 그의 믿음은 정점에, 완성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2
그렇습니다. 믿음생활, 신앙생활은 천국을 향해가는 순례자의 긴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으니까 나는 교리상, 믿음의 공식상, 이제 천국이 보장된 거야!'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내 맘대로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가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영어 구문으로 표현하자면 not A but B .. A는 틀렸고 B만 맞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고요. *믿음과 행함
not only A but also B .. A뿐만 아니라 B도 맞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라는 얘기를, 24절에서 야고보가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 믿음만 강조했고,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했던 사도바울!
근데 그 사도 바울도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얘기를 했어요. 바울이 언제 그런 얘기를 했을까요? 여러 번 했어요.
고전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우리가 아는 바울이, 그 바울이 맞습니까? 바울이 행위구원을 얘기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죠. not A but B 가 아니라 *믿음과 행함 not only A but also B 라는 거죠. 처음 믿을 때는, 믿음으로 칭의를 받는 거고요, 칭의 받은 후에는, 행함으로 즉 순종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바울도 결국엔 야고보와 똑같은 얘기를 한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라면 완벽해진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이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면 그렇게 변화 되지 않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또는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하게 살면 그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야고보서를 보면서. 진짜 하나님의 생명(믿음)이 내 안에 있으면 그 생명은, 반드시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는 거죠.
예수님이 요15장에서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셨잖아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그냥 붙어있기만 해도 그 생명의 영양분이 공급되니까, 자연히 자라서 포도 열매를 맺게 되어있다는 것이죠.
'내가 막 열매를 맺어야 돼!' 애를 써서 맺는 게 아니잖아요.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께 맞대어 있기 때문에, 생명의 결실을 거두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22절에서 또 눈 여겨 볼 것은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된다" '완성'이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살펴보셔야 됩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2b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온전해진다'는 말이고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 perfect, complete 라는 단어로 번역했는데요. 완전하다, 온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이죠.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면 이게 어린묘목 일지라도 사과나무인 것은 맞죠.
그러나 이 사과나무가 잘 자라서 사과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진정한 존재의 완성을 이루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똑같이 권면했어요.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work out your salvation
아니 구원은, 내가 이루는 게 아니라, 그 분이 이루어 주시는 것인데 '너희가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씀이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핼쓰장에 가면 work out 한다는 말을 쓰는데, 자기 몸을 '만들어간다' ..는 뜻입니다.
그러면 빌2:12절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그 구원을 네가 만들어 가라'는 뜻입니다.
이미 주신 구원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 갑니까? 삶의 성화의 실천으로 그것을 이루어 가라는 말씀을 하는 거죠!
아까 사과의 어린 묘목이 심어졌어요. (칭의의 구원) 그때까지 완전한/성숙한/장성한 자리에 이르기까지 점점 자라가야 하는 거죠. (성화의 구원) 이제 그 묘목이 완전히 성장해서, 온전한 사과 열매를 맺는 거죠. (구원의 완성)
또 가령 이런 거죠. 결혼도.. 뜨거운 연애가 전부가 아니며, 한 번의 결혼식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두 사람이 매일 진실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면서, 결혼을 work out 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혼과 가정을 점점 더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거죠. 사실 이게 진짜 결혼의 핵심이고 소중한 거죠.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몇 개월에 걸쳐서 자기들의 결혼식으로 얼마나 화려하고 멋있게 만드느냐.. 거기에 온갖 집중을 하지만
그러나 인생의 연륜이 있는 어르신들은 매일 매일 부부가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이것이 (화려한 한 번의 결혼식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책임지기 위해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 계시는 거잖아요. 우리의 신앙생활이, 주님과의 결혼 생활이.. 그렇게 work out 점점 만들어져 가야 하는 것이죠1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과 과거에 한 번 연애만 하고, 결혼식만 하고 지금은 마치 이혼한 관계처럼.. 그 결혼 생활을 work out 즉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진정 회개를 통한 칭의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진정한 칭의가 있었지만, 실족한 것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탈선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다시 트랙으로 돌아와서, 이미 받은 '칭의 구원'을, '성화 구원'을 통해 매일 온전히 이루어가서 '구원의 완성'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내용을, 야고보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