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9:15~23 구름기둥과 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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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9:15~23 구름기둥과 불기둥
LNCK
2022. 9. 13. 16:03
◈구름기둥과 불기둥 민9장 15-23 2017.03.05.출처
민9장에서는 유월절 기념 명령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 되심을,
불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인도자되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1-5절은 하나님의 유월절 준수 명령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에 대해,
6-14절은 2차 유월절 규례에 대해,
15-23절은 불과 구름 기둥의 인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민수기 9:15절에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성막을 세운 날은 출애굽을 시작한 지 제2년 1월 1일입니다.
사람들은 성막을 세우며 하나님께 준비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성소에 들어온 모세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셨고,
드디어 성막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똑같은 하나의 기둥인데 색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존재하고, 밤에는 색이 변해서 불기둥이 되는 식이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때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함께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과 약 39년을 함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4:5~6절에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본문은 신약시대를 향한 예언을 다루고 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고,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게 하고,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신다는 것은...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어주시는
신약시대를 향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나타난 성막 위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예표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나타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인도(Guidence)와 보호(Protection)가 실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수기 9장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이때 처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이미 경험한 바 있습니다.
출13:21~2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민9장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출14:19~20절에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애굽의 모든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좇아올 때에
이스라엘 진 앞에서 행하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진영 뒤로 가서
애굽 군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서서 애굽 군대에는 어둠을 주고,
이스라엘 진영에는 광명을 주어 홍해를 무사히 건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예표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 사이에 하나님의 사자가 계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는 구약시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사이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대로 구름이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임재의 가시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멈추면 유진했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 존재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은 단 1초의 공간도 없이 계속된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민9:15~16절에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에는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의 색이 밤낮으로 바뀔 뿐이지
구름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난 적은 단 1분 1초도 없었습니다.
▲1.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성도와 교회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는 시간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으시는 시간이 있으십니까?
결코 없습니다. 1분 1초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밤은 불안한 시간입니다. 밤이 되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자기 전에 꼭 기도하고 잠드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들이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리에 손을 얹고 평안히 잘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밤은 두려움, 떨림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욥4:13~14절에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가 했던 말입니다. 잠들지 못한 밤은 얼마나 적막합니까?
남들은 다 자고 있는데 혼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새 본 적이 있으십니까?
생각이 많아지고 두렵고 떨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시간 속에서도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121:4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6절에도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은 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지 않으시는 시간이 없습니다.
낮의 구름기둥은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첫째는 태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태양의 자외선이 얼마나 뜨겁습니까? 피부암이 생기기도 하지 않습니까?
구름기둥은 성도의 ‘보호막’(Screen)이 됩니다.
시105:39절에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또 고전10:1절에도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아래로 지나갔습니다. 늘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2. 둘째, 여행할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Navigation)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구름이 가는 방향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이 구름을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사랑의 구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랑의 구름 아래 거하면서 그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고 살아가고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58:11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1년 365일 24시간 1분 1초도 쉬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사람이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본문 민9:17절과 2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머무르면 유진했습니다.
이는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하면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오래 머무르게 될지는 예측이 불가능했습니다.
이틀이 걸리기도 했고, 어떤 때는 한 달이나 일 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했습니다.
성도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인생사는 살아가는 사람의 손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전7: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사람의 사는 날 동안에는 형통한 날도 있고, 곤고한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형통한 날이 지나치게 즐거워할 필요도 없고, 곤고한 날에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형통한 날이 있는가 하면 곧 곤고한 날이 되기도 하고,
곤고한 날이 지나가면 형통한 날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심으로써
사람으로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절대로 점쟁이나 무당들을 찾아가는 일들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을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구름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요? 네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항상 바르다는 확신입니다.
시107:7절에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생각에는 북쪽이 맞는 것 같아 보여도
남쪽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그 길이 바른 길이라 믿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성도는 하나님의 구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항상 주목하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밖에 나가서 눈을 들고 구름을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영적인 구름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항상 주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어떻게 살필 수 있을까요?
먼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성령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방향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환경이 허락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하신 내용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 그리고 환경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과 환경입니다.
이 세 가지가 일치하는 방향이 하나님의 구름이 인도하시는 방향인 것입니다.
환경이 허락지 않는데 가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성경의 내용과 어긋나는 길로 가려 하면 망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그 길도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두 가지만 일치하고 한 가지만 달라도 그 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닙니다.
선지자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다시스로 갔습니다. 주1)
3) 셋째, 성도는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름을 뒤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13:21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앞에서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딱 한 번 뒤로 가신 적이 있었는데
애굽의 군대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앞에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 있는 구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름보다 앞설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름을 살펴서 구름을 뒤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4) 넷째, 성도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구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하루 만에 떠오를 수도 있지만,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일 년이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사람들은 금세 지루해 합니다.
왜 구름이 떠나지 않느냐면서 모세를 재촉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구름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11일이면 도달할 거리를 왜 이렇게 오래 걸리게 하시느냐며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유가 어떻게 됐든 성도는 인내심을 가지고 구름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행진했다가는 광야에서 햇빛에 노출되어 목말라 죽게 되고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없이 광야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봐야 길을 잃고 방황하다 멸망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야 합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28:16절에도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온의 기초돌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급하지 않게 됩니다.
흠정역(KJV) 성경에 보면 서두르지 않는다 shall not make haste 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성급하게 행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조급하게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름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인내심을 갖고 따라가야 승리하는 인생이 되는 줄 믿습니다.
◑3.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 <목적지가 분명하다>
하나님은 성도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지도 않으시고, 광야에서 굶주려 죽게 하시지도 않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셔서 결국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짓지 아니한 집에 거하고, 파지 아니한 우물물을 마시게 될 것이고,
심지 아니한 과실을 먹을 수 있게 하리라” 신6:11등
하나님이 지시하신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입니다.
구름이 떠오르고 머무르는 것은 모두 여호와의 명령에 기초합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37:23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우리가 걷는 인생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모두 주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야 할 길을 모르고 무조건 가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고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신1:2절에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하룻 길이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가나안 땅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까지 11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왜 1년의 시간이 걸렸을까요? *신2:14참조
구름이 그렇게 인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불평과 반역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차로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를 가면서 세 곳을 지나쳤습니다.
① 첫 번째 장소는 ‘다베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머물며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에 불을 내리셨고, 화재가 일어나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② 두 번째 장소가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을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기 떼를 보내어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에 내린 메추라기 고기를 먹고 이를 쑤시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③ 세 번째 장소는 ‘하세롯’입니다. 이곳에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흑인 여자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형인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고 나섰습니다.
가족들끼리는 비난하거나 비판하기보다 위로하고 세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정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면 어디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흑인 여자를 아내로 삼은 모세를 향해 아론과 미리암이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려 7일 동안 진 밖에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 곳을 지나는데 1년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주2)
그리고 도착한 곳이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한 모세는 이스라엘 12지파별로 한 사람씩 뽑아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보고자들은
모두 저들은 덩치가 큰 거인들이고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며 다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밥이라고 선포하며
가나안 땅을 취하자고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고 10명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부정적인 소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죽었다고 통곡하며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조리 진멸하시려 했지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죽이지 않는 대신 광야에서 38년을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출애굽한 지 40년 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불순종하고 반역하고 패역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들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단 1분 1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도의 인생길은 광야와 같다고 했습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비록 허물이 있고 죄가 있어도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가는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잠시 여행을 나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들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일, 속상한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이 세상의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일에 목숨 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 지나갈 세상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성도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영원히 거하지 않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 중에 100년 후에도 이 자리에 앉아 계실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있으면 목적지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요14: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성도의 목적지는 아버지 집입니다. 예수님은 그 곳을 나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이 성도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설령 허물이 있고 죄가 있고 반역하고 패역해도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1분 1초도 떠나지 아니하시고 성도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 아버지의 집으로 우리를 확실히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성도 개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앞길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면 재앙을 당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구름이 머물면 우리도 머물고
구름이 떠오르면 우리도 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구름을 잘 살피면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윤형주 장로님이 부른 ‘바람아 구름아’라는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산 넘어 산이 있다 해서 산 넘어 산을 찾았더니
저 먼저 가던 흰 구름이 앞서고 뒤서고 부르네
외나무 다리 건너가면 우리가 찾던 그곳일까
흰 구름 타고 오고가는 바람아 바람아 묻는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구름을 따라가는 인생입니다.
구름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 계신 곳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나그네 길,
하나님의 구름 따라가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선지자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앗수르가 원수국가이다 보니 그 곳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욥바 항구에 나갔는데
마침 그 곳으로 가는 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배 시간 맞추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한 달에 한 두 번 있을 배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어 다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은 요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착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은 맞아 떨어졌지만,
말씀과 성령과 어긋났고, 결국 풍랑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름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주목하고 살펴야 합니다.
주2)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이라’ 신2:14
출애굽 40년 여정 중에
시내산에 머물렀던 기간이 약1년
시내산~가데스바네아 여정이 약1년
가데스 바네아~가나안(세렛 시내) 여정이 약3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