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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1:1~15 불평과 원인과 결과

LNCK 2022. 9. 15. 09:37

 

<민수기 11장의 개요>                                            민수기설교모음    

 

1. 다베라에서의 원망과 징계 (1-3절)                       ☞11:1~35 악한 말

2. 만나로 인한 불평 (4-15절)           *현재 페이지 + ☞11:4~6 만나를 주신 목적 

3. 모세의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16-23절)      11:11~35 질투심이 없는 모세

4. 70인의 장로를 세우심 (24-30절)                         ☞11:24~30  시기심을 극복하면 성자

5. 메추라기 공급과 징계 (31-35절)                         11~25장 은혜를 모르는 백성

 

 

 

◈불평과 원인과 결과            민11장 1-15             2017.03.19.출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 구글 검색창에 ‘Complaint’(불평)라는 단어를 쳐보니

불평을 다루는 문서가 무려 2억 개가 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참으로 ‘불평의 시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불평이라고 해서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불평이 있을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 여러 가지 잘못된 부분들이 개선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불평은 사소한 불평이거나 혼자 중얼거리는 수준의 불평이 있을 수 있고,

반면 자타에 해를 끼치는 불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불평은 정당하고 유익한 불평도 아니고,

자타에 큰 해를 끼치고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킨, 대재앙의 원인이 된 불평입니다.

이런 형태의 불평은 타락한 인간 본성, 즉 죄성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14장까지 계속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11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을

39년이란 세월이 걸려서 가게 된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민수기 1~10장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율법을 받았고,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고, 성막도 건설했으며, 인구조사도 마쳤고,

레위인도 조직되어 행진이 가능한 질서를 모두 다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11일 동안 이동하기만 하면 가나안 땅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1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9년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40년 광야생활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백성들의 불평입니다.

 

민수기에서 불평은 여러 가지 죄 중 하나인 ‘a sin’이 아니라 ‘the sin’(바로 그 죄)입니다.

민수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죄가 ‘불평의 죄’입니다.

 

민11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불평의 영이 일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 불평의 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11장을 보면 백성들만 불평한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인 모세도 엄청나게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불평에 관한 세 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불평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1~3절에서 시작되고, 4절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악한 말로 여호와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의 진 끝을 여호와의 불로 사르셨습니다.

화재가 나기는 했지만, 대화재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평도 큰 불평이 아니라 작은 불평이었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도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기도로 불이 꺼지게 되었고, 그 곳을 ‘다베라’(Burning)라고 불렀습니다.

불타는 곳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4절 이하는 기브롯 핫다아와라는 곳에서 했던 불평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Graves of Craving)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탐욕으로 인해 불평하다가, 무덤에 들어가게 되었던 거죠.

 

민수기 11장에 나오는 불평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비이성적, 비논리적이라는 것입니다.

4~6절에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애굽에 있을 때는 공짜로 정력에 좋은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예로 생활하고 있었으니 돈을 내고 먹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지금은 만나 외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보이면 괜찮은 조건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은 만나 밖에 없는 것을 두고 불평했습니다.

 

이들의 불평을 보면 과거생활에 대한 향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불평을 하는 것일까요?

그 때는 정력에 좋은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지금은 단지 그런 것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신세가 비참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평은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제정신의 말이 아닌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불평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언뜻 들으면 광야노중에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이 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애굽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채찍으로 다뤄지는 노예생활을 했던 곳이고,

아들을 낳으면 무자비하게 나일 강에 던져 죽이던 곳이었습니다.

그 곳이 뭐가 그리 좋았다는 것입니까?

 

핍박과 고생이 극심하여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곳입니다.

그 모든 고통을 잊어버린 채 공짜로 먹던 생선, 외, 수박, 부추, 파와 같은 것만 떠오른다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불평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여러분, 매일 학대를 받으며, 아들을 잃고.. 정력에 좋은 음식들을 공짜로 먹는 때가 좋겠습니까?

자유로운 상태에서 만나를 먹고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디에 투표를 하시겠습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입니다.

 

이들 불평의 핵심은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혹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나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광야에서 만나가 보이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르고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7~8절에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만나는 백성들의 혹평을 들을만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기름 섞은 과자가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시편 78:24절에 “저희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만나는 하늘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비 같이 내려 풍성하게 먹이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만나를 다양하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나는 건강에도 좋은 음식이었습니다.

만나는 완전 천연 건강식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만나를 혹평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쁜 것만 떠올리는 사람은 현재의 좋은 것만 보이고,

과거의 좋은 것만 떠올리는 사람은 현재의 나쁜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과거의 좋은 것과 현재의 나쁜 것을 비교하면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백성들의 불평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불평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4절에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12:3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중다한 잡족이 함께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아니라 많은 민족들이 함께 출애굽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백성들이 먼저 불평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울면서 불평에 동조합니다. 전염된 것입니다.

 

이것이 ‘백성의 온 가족들’(10절)에게, 지도자 모세(11절)에게

빠르게 불평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사람의 불평이

이스라엘 백성의 온 가족들과 모세에게까지 불평이 확산된 것입니다.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 취한 것을 두고 미리암과 아론이 불평을 했고,

미리암은 이 일로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3장으로 넘어가면 가나안 땅을 탐지한 열 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의 정탐꾼이 불평의 보고를 내 놓자

백성들이 이들의 말에 전염되어 같이 불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결국 14장에 이르러 38년 광야생활의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불평은 강한 전염성을 갖고 있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주변 사람 몇 명에게 찾아가 불평을 시작해 보십시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불평이 전염되는 것을,

건전하고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금방 불평하는 일에 합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집안에서 한 사람이 불평을 시작하면, 가정 안에 불평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금세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불평은 재앙을 초래합니다. 그리고 불평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재앙을 당하게 만듭니다.

 

▲셋째로, 불평은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불평은 전체를 보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만 보게 만듭니다.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불평했다고 생각하지만, 불평의 양이 가장 많은 사람은 놀랍게도 지도자 모세입니다.

모세가 가장 많이 불평했습니다. 가장 강한 불평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입니다.

모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저 역시 목회자로서 회개를 많이 하였습니다.

 

11~15절이 모세의 불평입니다.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불평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나를 죽여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머리가 아주 비상합니다. 하나님이 죽이지 않으실 것을 알고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런 전법을 사용했던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이 다섯 구절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나’입니다. 무려 2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자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을 이겼고, 지팡이 하나로 홍해 바다를 갈랐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자기 연민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기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불평하는 사람들은 가족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고,

국가에서도 국정 운영의 전체적인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자기 밥그릇만 생각하기에

철저하게 자기중심성을 갖고 일하는 것입니다.

 

 

◑2. 불평의 원인은 무엇인가?

 

불평에는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탐욕으로 인해 불평하는 사람들,

10절에 보면 기뻐하지 아니한 모세가 불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밖에 못하십니까?

복을 주시려면 똑바로 주시지, 나로 지도자가 되게 하셨으면 모두가 평안할 텐데, 왜 그러십니까?”라고 불평합니다.

 

또 12장에 구스 여인을 취한 모세를 향해 미리암과 아론이 불평한 이유는

시기심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원인들을 한 데 묶으면 한 마디로

‘불신앙’(Unbelief)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세 가지를 불신앙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를 불신앙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출애굽하게 하신 이유도 복을 주기 위함이셨고,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는 것도 복을 주기 위함이셨습니다.

저주를 주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민10:29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이어지는 32절에도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두고 기복주의라고 비난합니다.

신령한 영생의 복, 영원한 복을 등한시하고, 현세적 복만 구하는 것은 확실한 기복주의입니다.

그러나 복을 주시려는 섭리를 갖고 일하시는 하나님께 복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기복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 믿게 하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그런 하나님을 향해 섭리를 불신앙하고 불평 불만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욕하는 셈입니다.

“하나님, 내게 복을 준다고 하시더니 이게 뭡니까? 이게 복입니까?

하나님이 이것 밖에 못 하십니까?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식의 불평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Power)을 불신앙하는 것입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을 때가 훨씬 좋았다!”

라는 식으로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개월간이라도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하셨는데,

몸을 단장하고 고기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에 대해 불신앙의 말을 합니다.

 

21~22절에 “모세가 가로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 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모세는 말도 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지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을 잠자코 보라. 너는 내 말이 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명하셨습니다. :23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앙한 것입니다.

 

31~32절에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메추라기가 떨어지는데 백성들의 진 사방으로 걸어서 하룻길(약 20킬로)이나 되는 면적에

높이 2규빗(90cm) 만큼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서 메추라기 떼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나서 고기를 거두는데

제일 적게 거둔 사람이 10호멜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1호멜은 당나귀 한 마리에 실을 수 있는 무게입니다. 그러니까 10호멜은 엄청난 양입니다.

하나님 주신 메추라기 고기를 엄청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평을 늘어놓았던 백성들은 떨어진 메추라기를 먹고 이를 쑤시다가

탐욕으로 인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고기를 다 씹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불신앙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Promise)을 불신앙하는 것입니다.

11일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백성들은 이를 참지 못하고 3일 만에 불평을 시작하였습니다.

 

민10:33절에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일만 참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짓지 아니한 집에서 살고, 네가 심지 아니한 나무의 과실을 먹고,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의 물을 먹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이곳에 11일이면 입구인 가데스바네아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약속의 내용이 가까운 미래에 영광이 있다고 하시면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일주일 후에 계좌로 입금될 100억 원의 돈이 있다면 기분이 어떠세요?

엄청나게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100억 원이 생길 것을 생각하면

오늘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더라도 불평이 나오겠습니까?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금식을 해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있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는데, 불평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는 성도들의 시선을 빼앗아 현재의 고난만 보게 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미래의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영광이 오겠습니까? 그것은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크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미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인내하며 그 날을 기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고난이 조금 있더라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불평하는 원인은 모두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앙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복 주시려는 섭리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그 능력으로 나를 천국에 가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섭리, 능력,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불신앙에 따른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3. 불평의 결과는 무엇인가?

 

불평의 결과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재앙입니다. 1절에 기록된 불평이 사소한 것이었기에

진 끝에 화재가 나는 것으로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3절에 이르면 심히 큰 재앙이 임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에서의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78:29~31절은 그 때 임한 재앙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먹고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찐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하나님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살찐 자,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죽이심으로

그곳을 ‘탐욕의 무덤’이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축복의 상실입니다.

하나님의 재앙을 경험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실 복을 받지 못하면 재앙 못지않은 엄청난 손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재산을 10억을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20억 들어올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큰 손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불평을 해도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모세는 그렇게 많은 불평을 했어도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불평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많은 복들을 상실케 합니다.

마땅히 받을 수 있는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죽은 사람들은 장수할 수 있는 복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불평하지 않았다면 장수의 복을 누리며 가나안 땅을 속히 차지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의 불평은 하나님의 복을 상실케 했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모세가 지옥에 가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복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불평하는 습관만 고쳐도 더 기쁘고 풍성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불평에 따른 두 가지 결과는 재앙과 축복의 상실입니다.

 

결론

 

구약시대의 가장 위대한 위인인 모세와 같은 사람도 불평의 죄에 빠졌으니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불평의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인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때론 불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는 불평의 죄를 대단히 중요한 죄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복을 상실케 하시지만,

그것으로 관계를 끝내는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불평할 때마다 재앙을 내리시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불평에 따른 대가로 재앙을 경험케 하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푸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가 비록 많은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모세가 이 백성들의 짐을 홀로 지고 가기 어렵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장로 70인을 세워서 짐을 나눠지게 하셨습니다.

 

민11:17절에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불평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는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징벌을 내리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성신을 부어주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해도 복을 주시고 설령 불평을 했을 때에도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70명의 장로들에게 성신을 부어주셨습니다.

 

25~29절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 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가로되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신약시대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이 구약시대에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70인 장로들에게 성신이 임하니 예언을 한 번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엘닷과 메닷이라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성신이 임하자 예언을 하더니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성신이 임하면 예언을 하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비범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성신을 부으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성신을 부어주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모두 성령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불평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불평할 것들이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에 감사가 넘쳐나 재앙이 떠나가고

하나님 주시는 복으로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늘 성령충만하여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