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민10:11~12
가데스 바네아까지 가는 도중에 세 곳을 지나쳤습니다.
마치 크레센도 처럼, 백성들의 불평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① 첫 번째 장소는 ‘다베라’입니다. *민11:3, '불붙음'이란 뜻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머물며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원망 이유 성경에 안 나옴)
아마 시내산에서 1년 가량 머물다가 광야 여정을 시작했으니, 또 행군이 힘들었겠죠. 집 떠나면 고생이죠.
하나님은 진 끝에 불을 내리셨고, 앞으로 '원망' 때문에 큰 징계를 당할 것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베라의 경고를 듣고도.. 원망의 죄에 계속 빠지고 말았습니다.
② 두 번째 장소가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민11:35 '욕망의 무덤들'이란 뜻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을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기 떼를 보내어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에 내린 메추라기 고기를 먹고 이를 쑤시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불신, 원망, 불평이 점점 더 커지다가
오늘 본문 민13~14장에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결국 활화산처럼 분출하게 되고,
그 결과 38년의 광야 생활 뺑뺑이가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③ 세 번째 장소는 ‘하세롯’입니다. *‘하세롯 - '울타리', '마을' 등의 의미
이곳에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했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 곳을 지나는데 대략 1년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주1) 그리고 도착한 곳이 본문의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민32:8 ‘너희 조상들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냈을 때에 그리 하였었나니’
▲본문의 배경 가데스 바네아는 *가데스는 'holy', 바네아는 뜻이 분명치 않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으로 뼈아픈 장소입니다.
민13: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32:8엔 '가데스 바네아'
(이 가데스 바네아가 바란 광야에 속해 있으므로, 본문의 배경을 바란 광야로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일어난 10정탐꾼의 부정적 보고와, 백성들의 불신, 원망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늘 용서해 주시던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용서해 주셨지만, (그래서 다 죽이지 않으셨지만)
징계와 더불어 용서해 주셔서, 정탐 기간 40일이, 40년 광야생활로 연장된 것입니다.
민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불평한 백성들의 4가지 큰 잘못
정탐한 날 수인 40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40년간 광야 훈련을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좀 과하시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숙의 기간'을 주셨습니다.
38년이 필요하니까 주신 게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것을 주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38년의 디스플린, 징게를 통해서,
성숙해 진 자들은, 그들의 자손 출애굽 2세대 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세대는 자기 시대적 사명을 감당했다고..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죠. ☞광야 여정은 영적 성숙
어쨌거나 이들이 이렇게 중징계를 당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 무엇보다도 '불신'입니다.
기독교는 한 마디로 '믿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백성들에게 불신앙이 전염병처럼 퍼져서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14:1~4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결국 이것은 '구원 받기 이전이 더 좋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격 자체를 불신하는 것이죠.
'하나님, 당신 자체를 못 믿겠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인도해 낸 이유도 못 믿겠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든지.. 광야에서 죽든지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요!'
믿음으로 구원 받는데.. 백성들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출애굽 해서 홍해에서 세레를 받았고,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의 말씀을 따라서
진에 머물 때마다 틈틈이 모세로부터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지만..
그들은 아직 성숙되지 못하여서, (단 시간이긴 하나) 불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또 울며 돌이킵니다. 그래서 또 회개합니다
14:39~40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그러니 이들이 완전히 불신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 미성숙해서, 짧은 시간이긴 하나, 불신앙적인 언행을 하고 말았고..
아내가 남편 God 을 믿지 못하고
자녀가 부모 God 를 믿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크게 상처를 받으신 하나님은
이번에는 좀 강력한 중징계를 내리셨는데.. 그것이 38년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화(성숙)의 훈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어요. 히11:6
히브리서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말 그대로 믿음의 사람들이었죠.
본문의 백성들은, 그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 나는 '믿음'이 있습니까?
▲2. 부정적인 태도
31절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사실 이 10 정탐꾼들의 말이 일리가 있죠.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계산해서 빠뜨렸어요.
과학은 똑똑하지만, 하나님을 계산해서 빼놓습니다. 믿음은 비논리적인 것 같아도, 하나님을 계산의 중심에 둡니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의 패배를 선포함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이 역사 하시고자 하는 문을, 자기들이 다 닫아버렸어요.
신1:27절에 보면 '그들이 장막 중에서 원망했다'고 돼 있어요. 장막이란 각각의 집을 뜻하죠. 그러니 집집마다, 자기 텐트에서 수근수근한 거예요.
열 지파의 리더들이, 다 집에 가가지고 자기 장막 근처의 이웃들에게 수근수근 하고, 그 소리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간 것이죠. 불평과 원망의 바이러스를 다 퍼뜨린거에요. 보통 나쁜 소문이, 좋은 소문보다 10 배나 더 빨리 퍼진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힘을 싣기 위해서, 가나안 성의 견고함을, 그 거인들의 장대함을 더 부풀려서 얘기했겠죠.
각 지파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리더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백성들 전체로 이 부정적인 절망 바이러스가 번졌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나쁜 쪽으로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시험들게 만들었어요.
신1:28절에 보니까 '우리의 형제(10정탐꾼)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였다'고 했는데 거기서 '낙심하다'는 히브리어는, '마음을 완전히 붕괴시켰다'는 뜻입니다.
아니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백성들의 두려운 마음을 강하게 일으켜주지는 못할망정 이제 막 약속의 땅에 진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백성들을 이렇게 마음을 무너뜨려서 주저앉혀 버리다니... 이게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영적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영향력을 이렇게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엄히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바로 이 비겁한 10정탐꾼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축복은 확신하면서 그 앞에 있는 작은 장애물들을 보고, 자기만 도망가는 게 아니라 다른 백성들도 다 도망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이 약한 소자를 한명이라도 실족케 하는 자, 시험 들게 하는 자는.. 그 죄가 가볍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몸에 매고, 바닷물로 가서 빠져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부정적인 영적 리더십들을, 그렇게 강하게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라, 수천 수만 명의 운명을 같이 끌고 들어가니까
자기가 믿음이 없어서 망하는 건 좋은데 자기와 자기 지파까지 다 같이 시험에 들게 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셨겠어요.
32-33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나안 땅에 거인들이 있었을까요? 물론 블레셋에도 조금 있었고 가나안 땅에도 조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과장을 주목하십시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이 “모든”이라는 단어를 과장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신장이 장대했을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렇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거인들이 몇 명쯤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거인 몇 명 있는 사실을 가지고 과장해서 모든 백성이 다 거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도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고,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일단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말은 쉽게 믿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이 상당한 과장법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언제 교인들에게 여론조사를 다 했겠습니까?
여론조사하면 일반적으로 6대 4, 혹은 7대 3으로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하는 일은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이처럼 과장법을 악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낙망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이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자신들이 메뚜기 같다는 자기 비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
자기를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있지도 않은 사실까지 사실인양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메뚜기처럼 생각하는지 알게 뭡니까?
그런데도 이들은 남의 생각을 자기가 아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과장이요, 자기 비하요, 한마디로 불신앙입니다.
신앙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왕에 신앙생활하면서 부정적인 태도로 하지 마시고,
밝고 진취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밝고 진취적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주신 천국의 비전이
50캐럿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애가 있고 어려워도 넘어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3. 두려움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가나안이 '저주받은 땅' 이라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 그래놓고 이제는 '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했습니다.
처음에는 거기서 따온 큰 포도송이 들을 보면서 '얼마나 축복된 땅인가!' 그러다가 '아~ 저렇게 큰 포도를 먹고 사는 민족들은, 얼마나 장대한 거인들일까. 우린 다 죽었구나!' 이 생각을 하는 거예요.
두려움은 축복도 저주로 바꾸어 보이게 합니다. 이렇게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문제를 확대 해석합니다. 완전히 상대를 과대평가 합니다.
민13:32b '(우리가)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이것도 과장입니다. 평균적으로 키가 큰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가 미국 이민 갈 때, 미국 사람들은 다 전봇대처럼 크다 그러더니 가보니까 저보다 키가 작은 사람도 많아요.
브라질 사람들은 다 호나우도 처럼 축구를 잘 하는 줄 알지만 한국 사람보다 축구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국 사람은 다 태권도 잘 합니까? 몇몇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죠.
그런데 문제는, 마귀는 항상 작은 문제를 크게 확대시키는데 선수입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너무 문제화시켜서 끙끙대고 있다면, 그건 마귀의 덫에 걸린 것입니다. 문제를 부인하라는 게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돌면서, 열 명의 정탐꾼들은 계속 '아낙 자손이 크다'는 큐티만 한 것 같아요.
'크신 하나님'을 묵상한 게 아니라, '크신 아낙자손'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실제보다 더 커게 보일 수밖에 없죠.
33절에 보니까 이들 아낙자손들은 '네피림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네피림은 창6장에 나오는, 홍수 전에 존재했다는, 전설의 거인족들입니다. 용사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낙 자손이 이 네피림의 후손이었다'는 성경적, 고고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이 10정탐꾼들의 말에만 등장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마 10정참꾼들이 자기들 말에 힘을 싣기 위해서 '저들은 전설의 네피림의 후손들이야!' 라면서 이야기를 부풀린 거예요.
신1:28절에 보면 '또 그들의 성곽이 하늘에 닿았다'고 말합니다. 가나안이 요새화된 곳이 많긴 했지만, 가장 요새의 벽이 높았던 여리고 성도 그 높이가 십 미터도 채 되지 않았어요.
그걸 가지고 '하늘에 닿았다' 그러면 이들은 자신들의 과장법으로 그들의 비겁함을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걸 백성들한테 퍼뜨려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니까 참으로 나쁜 지도자들이죠.
애당초 웬만큼 믿음이 꽤나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웠을 것이고, 정탐꾼으로 내보냈을 것인데... 참으로 결과는 참담합니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문제를 확대 해석하는 그들은 자기들은 '형편 없다, 별 볼일 없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13:33절에 기가 막힌 말을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여기서 '메뚜기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왔죠.
여러분 믿음이 떨어지면 자존감도 같이 떨어져요. 내 안에 계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자기가 너무 초라해 보여요. 그러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보면, 상대가 금방 그걸 알죠.
그러므로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는 말이 사실 맞았을 거예요. 10정탐꾼들,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말이 그대로 응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마귀가 우리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상대와 마주해도 결코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담대합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을 작게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작게 보고.. 그러면 대적도 나를 우습게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한 용사라고 스스로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가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합니다.
△참으로 불신앙적인 슬픔입니다. 이들은 울면서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죽을까봐, 우리 처자가 죽을까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면 두려움을 물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도 생애 중에 죽을 고비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도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시편 27:1절에도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다윗은 적극적으로 두려움을 밀어냈습니다. 시편 27:3절에서도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딤후1:7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가 내가 이러다가 망하면 어떡할까? 내가 이러다가 병들면 어떡할까?
이러다가 우리 자식들이 잘못되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지라도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두려움의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도에만 가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는 금이 많은 나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인도를 가기 위해서는 육로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해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배로 인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여
스페인 국왕에게 배와 선원을 지원해 달라고 8년 동안을 졸랐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배를 타고 먼거리에 나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바다 끝에 있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콜럼버스의 생각은 어리석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간신히 스페인 국왕을 설득하여 항해를 시작했을 때도, 선원들이 매일 같이 두려워하며
콜럼버스를 설득했습니다.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 10월 12일의 하루 전인
11일까지도 선원들은 두려움에 떨며 되돌아가자고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을
항해기록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앞에 당당히 맞선 콜럼버스는 결국 신대륙을 발견하는 신기원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용기만이 경계선을 넘어서 축복으로 나아가는 비결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반항 정신
때때로 아이들이 가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부모들에게 반항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은 가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결정적인 악행입니다.
14:4절 말씀을 보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그러자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고 14:9절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가자고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반항인줄을 안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세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며, 메뚜기 의식을 갖지 말자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밥입니다. 밥은 먹는 것이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우리가 왜 메뚜기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잡수시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거울'이 되어서,
오늘날 우리는 본문을 통해, 불신 - 부정적 태도 - 두려움 - 반항 정신 등을.. 멀리해야 되겠습니다.
(나중에 민25장에 모압 여자들과 음행 사건도 나오지요)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열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와 백성들의 불신, 그 영적 의미 (신약적 의미)
신앙생활을 종종 <천로역정>에 비유합니다.
천로역정이란.. 천로, 천국가는 길에 여정이다.. 라는 뜻입니다. *天路歷程 (지날 력)
결과적으로 본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천로역정에서 성공하지 못했어요.
본문의 주인공 출애굽 1세대들이, 천로역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천국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에서 그것을 "불신 - 부정적 마인드 - 두려움 - 반항심" 등으로 살펴보았죠.
여기서는 보다 영적으로 "아낙 자손 - 마귀들"이란 이유로 .. 살펴보겠습니다.
1세대들이 가나안(천국)에 들어가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
거기에 무혈입성을 하는 게 아니라, (요3:16절과 사영리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안 나옵니다)
거기에 '거인들-네피림의 후손이라고 소문이 난-아낙 자손'이 떡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정탐꾼들은 아낙 자손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그 아낙자손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었던 곳은 바로 '헤브론'입니다.
민13:32b '(우리가)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
헤브론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도, 처음부터 당장 점령하지는 못했죠.
헤브론을 남겨두고, 다른 땅들을 먼저 점령한 것은,
역시 그곳에 장대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나안 남부지역을 다 점령하고 (수10장)
그 다음에 가나안 북부지역을 다 점령하고 (수11장)
그때까지 미점령지로 남겨 두었던 헤브론을, 갈렙이 나서서 자원해서 점령하게 되는데요... 수14:12
▲가나안 정탐은 하나님의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래 플랜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바로 약속의 땅으로 바로 진격해 들어가는 거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단 정탐꾼부터 보내봅시다' 하게 된 거죠. 신1:22
약속의 땅을 정탐하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불신의 눈으로 정탐하면, 비전을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에 압도되어서 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12정탐꾼을 보내신 것입니다.
모세가 보낸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에 순종해서 보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실한 비전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그 땅은 한 사람이 들고 가기에는 무겁고
두 사람이 나무에 꿰어서 메고 가야하는 묵직한 포도를 생산하는 복된 땅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 천국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아주 극상품 포도열매가 맺히는 곳이란 곳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1세대처럼, 우리는 그곳을 차지하려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크고 장대하게 보이는 거인 아낙자손(마귀)과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신약적/복음적/영적인 해석입니다.
본문은 그저 우리에게 '부정적 사고를 버려라, 악담을 그쳐라, 반항정신을 버려라' 등의
윤리적 교훈만을 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신약 성도인 우리들이 (현재+미래) 천국에 들어갈 것인가?
(현재+미래) 천국에 들어가려 할 때, 그건 무혈입성이 아니라
거인 아낙 자손같은 마귀가 .. 그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신자들은 스스로 메뚜기 컴플렉스에 빠져서, 울고불고 '내가 이럴려고 예수 믿었나?' 하게 된다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시시한 것을 놓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고전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은 눈으로 본적도 없고
귀로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마음으로는 생각 할 수조차 없는 지복(至福)의 장소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을 살아가며 조금 괴롭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마어마한 축복을 예비해 두셨다는 사실로 인해 용기를 가지십시오.
성도들은 지금 잠깐 쓰러져 있어도 망하지 않습니다.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우리 앞길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나안 땅, 지복(至福)의 땅을 바라보면서 늘 용기를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천국에 대한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부족했습니다.
12정탐꾼들이 40일 동안 탐지한 후에 돌아와서 모세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 내용이 27절입니다.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두 사람이 포도송이를 나무에 꿰어서 메고 왔습니다. 에스골 골짜기에서 메고 왔는데,
에스골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포도송이’라는 뜻으로, 포도송이가 워낙 커서
동네 이름을 ‘포도송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비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은
틀림없이 축복의 땅이요, 부요의 땅이요, 풍요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음을
이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확인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천국 같은 가나안'을 다 믿었던 거예요.
그러나 28절에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이들이 말하는 요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천국/가나안은 분명히 크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있을 '전쟁을 대비하라'는 것이죠. 그 목적으로 12정탐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천국(가나안)을 향해 가는 우리 신약성도들도, 그야말로 천로역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장애도 거치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사람은 장애가 있어도, 방해요인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뚫고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지,
장애도 없고 방해도 없고 환란과 근심도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1차 선교여행을 할 때에 루스드라에서 큰 환란을 당했습니다.
유대인 불신자들이 와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유대인들이 끌어다가 성 밖에다 내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다시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본문으로 치면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합니다.
참고로, 20세기에 출현한 종말론 '환란무통과설'은, (대환란 전에 휴거된다는 설)
그런 의미에서 비성경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하겠지만,
환란과 장애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환란과 장애물을 뚫고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의 지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달리기를 하던 사람이 저 멀리에 있는 50캐럿짜리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장애물에 걸려 조금 넘어졌다고 해서 그 다이아몬드를 포기하겠습니까?
반드시 다시 일어나서 그 다이아몬드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천국은 50캐럿 다이아몬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대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장애가 있다고 할지라도 주저앉지 마시고, 다시 일어서 달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0 명의 정탐꾼들은 현실을 보는 똑똑한 눈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는 믿음의 눈이 없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함께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를, 계산에서 빠뜨린거에요. 그러니까 셈이 제대로 되질 않아요. 답이 나오질 않아요.
불신이란,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축복을 확인하라고 보내니 가나안 땅 정탐꾼들끼리 이 불신의 눈으로만 해석하니까 오히려 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신앙의 결과는 – 죽음
불신앙의 보고를 했던 정탐꾼 10명을 하나님이 즉각 죽이셨습니다. 민14:36~38절에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롬6:23절이 생각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하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이들이 어떤 재앙으로 죽임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이 내린 재앙으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10명의 보고를 따른 백성들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모세야, 나는 이들을 전염병으로 모조리 죽이고 새롭게 크고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패역한 말을 하는 백성들을 죽이시려면 모세에게 물어 볼 것도 없이 10명을 재앙으로 죽이시듯 단번에 죽이실 일이지, 왜 하필 모세에게 자신의 뜻을 보이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들을 모조리 죽이실 뜻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도자 모세에게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민14:15~1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시도록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되면 안 된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도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기도였습니다. 엄청나게 논리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수긍하실 수밖에 없도록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용서받았을지라도, 죄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는 법입니다. 나무에 못을 박은 후 뽑으면 못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듯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죄에 대한 댓가는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 14:26~45 죄의 결과 / 론 솔로몬
다윗 역시 밧세바와 간음한 이후 시편 51편을 통해 반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칼이 다윗의 집안을 떠나지 않고서 죗값을 다 치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 짓고 또 용서받으면 되지 하는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죗값은 다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죄를 사하셨지만, 그들이 했던 불평의 말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다 죽게 만드셨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 있던 남자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20세 미만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광야에서 죽었고,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40년 만에 장정 6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40년은 매일 장례식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 왜 40년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너희 죄를 사하셨지만 너희는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서 다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판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그제야 “우리가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취하겠습니다! 전쟁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이미 때 늦은 후회에 불과했습니다. 버스는 이미 떠난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가나안 복지(현재 천국)을 누리고 있습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면, 오늘 현재 가나안 복지(현재 천국)를 누리지 못하면,
죽어서도 가나안 복지 (미래 천국)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엎드러진 출애굽 1세대 백성들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전10:5
이 스토리가 오늘 나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나는 오늘 '가나안'(현재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특징은..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것입니다. (소득에 크게 관련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이미 가져오셨고,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현재 천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내가, 그 현재 천국(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즉 이런 거죠.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천국에 못 들어갈 것이요)'
오늘 내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 평화, 행복, 안정, 사랑을 주는 사람입니까?
자기가 천국생활, 가나안 복지를 사는 사람은.. 그게 흘러 넘치니까.. 저절로 주위로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