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9장 20~23절, 은총을 입은 자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20∼27절 말씀까지 계속 되어 집니다.
▲20절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다니엘은 어떻게 기도를 했습니까? 제일 먼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곤궁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예루살렘 성 및 성전의 재건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내 죄와." 먼저 다니엘은 자기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은 메대 사람 다리오 왕 때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른 두 총리와 방백들 가운데 몇 사람이 다니엘을 고소하기 위해서 그를 고소한 꺼리를 엿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니엘에게서 아무런 틈과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다니엘은 의롭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자백했다고 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바르게 살아온 다니엘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 놓고 볼 때에 자기도 역시 죄인인 것을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심정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대신 자복했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적인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는 하나님께 간구를 했습니다.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다니엘은 하나님께 시온 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그러니까 기도하던 바로 그때에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는 뜻입니다. 21절 이후의 말씀이 그때에 이루어진 일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1절 ‘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과연 하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기도할 때부터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응답해 주셨습니까?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다니엘은 천사 가브리엘을 가리켜서 "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 천사를 사람이라고 칭했을까요?
8:15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다니엘이 이 이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천사 가브리엘이 사람의 모습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빨리 날아서." 사람은 날 수가 없지만, 천사에게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기 위해서 지체하지 않고 빨리 날아왔습니다. 그것이 언제였습니까?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을 하던 바벨론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성전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다니엘은 제사를 드리는 시간을 기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저녁 제사 시간은 오후 세 시였습니다. 오후 세 시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지요?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시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로 단번에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천사 가브리엘은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에 다니엘에게 날아왔습니다.
22절 말씀에서는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날아온 목적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2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다니엘은 7장에서 네 짐승에 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8장에서는 수양과 수염소에 관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몇 백 년 뒤에 되어질 예언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명석한 다니엘일지라도 그것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기 위해서 날아왔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이상들이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만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도 지혜와 총명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3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기도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그때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이미 하나님은 다니엘의 간절한 마음을 아시고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19절에서 "지체치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던 대로 하나님은 지체치 아니하셨습니다.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니엘에게 날아온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10장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이상 가운데 천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고넬료야! 너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너는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서 그곳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오도록 해라."
또 행12장에 보면 헤롯이 베드로를 감옥에 가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쇠사슬을 풀어주고, 옥문도 열어주었습니다.
이렇듯 성도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응답으로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천사보다도 훨씬 더 귀하신 분이 우리와 늘 함께 계시니까요.
성삼위 가운데 한 위이신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늘 내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도 해 주시고, 우리가 힘들 때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 인도해 주십니다. 이제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천사가 따로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은혜 은(恩)에 사랑 총(寵)입니다. 다니엘은 크게 은총을 입은 자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고, 또 사도 요한처럼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다니엘의 나이가 80대가 훨씬 넘었습니다. 외모로 보아서는 아무런 볼품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금식까지 했습니다. 많이 말랐을 것입니다. 옷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또 몸에는 재를 무릅쓰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외모에는 전혀 볼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에 나오시면서 여자 분들은 화장도 제대로 못하셨지요? 아마 남자분들 가운데는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신 분들도 없지 않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을 깨우면서 달려나온 우리의 작은 정성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들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크게 은총을 입은 자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 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하나님은 지극히 사랑하시는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그 민족의 앞날에 대한 이상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 시간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크게 은총을 입은 자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 가지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이 시간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모두 드릴 수 있는 복된 아침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단9장 24절, 70 이레가 지나면
(※‘70 이레’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명을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70 이레의 예언을 주셨습니다. 성경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에 속합니다.
그러나 22절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70 이레의 예언을 깨닫게 하시려고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70 이레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잘 깨달아 알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네 백성과." 다니엘의 백성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들입니다.
다니엘은 7장과 8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상들을 보았습니다. 7장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사자와 같이 생긴 짐승, 곰 같이 생긴 짐승, 표범 같이 생긴 짐승,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주 무섭게 생긴 짐승을 보았습니다.
이 네 짐승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그리고 로마였습니다. 이들 네 나라들은 모두 이방 나라들입니다.
8장에서는 다니엘이 두 짐승을 보았습니다. 수양과 수염소입니다. 수양은 메대와 바사이고, 수염소는 헬라 제국을 의미했습니다. 역시 이방 나라에 대한 이상이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오늘 본문에 나타난 70 이레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 곧 유대인들을 위하여 주어진 말씀입니다.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여기서 "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니까, 이곳을 "거룩한" 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70 이레로 기한을 정한 것은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한 것임을 먼저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이레라고 하는 말은 우리 나라 말로 무슨 뜻입니까? 이레는 칠일, 곧 한 주간을 뜻합니다. 그래서 70 이레라고 하면 마치 70 주를 뜻하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레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원래 뜻은 단순히 일곱이라는 수치를 가리킬 뿐입니다. 70 번이 일곱이면 모두 몇입니까? 490입니다.
그러니까 490 일이 될 수도 있고, 490 주가 될 수도 있고, 490 달이 될 수도 있으며, 490 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서 490 년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됩니다.
본문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기도를 하게 된 시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밤에 잠이 안 와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까?
9:2의 말씀을 보십시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고서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70 년이었습니까? 오십 년이나 백 년으로 하지 않고, 70 년으로 정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을 방황했습니다. 사십 년 동안 방황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사십 일 동안 그곳을 정탐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인 열 명은 이스라엘 회중에게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벌로 그들이 정탐했던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토록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70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것도 그 수치에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70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겠습니까?
대하36:20-21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 년을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땅은 황무해서 "안식년을 누림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안식년은 토지를 육 년 동안 갈고 일년 동안 쉬는 것을 뜻합니다.
레25:1∼4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칠 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넘어가서 레26:34∼35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
6년을 경작하고 일년을 쉬도록 되어 있는 안식년의 규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대로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레26:43입니다.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들이 살았던 가나안 땅은 안식을 누린 것입니다. 그러면 70 년 동안 안식을 한꺼번에 누린 것이 몇 년의 기간에 대한 안식입니까? 490 년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 동안 70 이레, 즉 490 년이 흐르기까지 안식의 규례를 지키지 못해왔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70년 동안 이스라엘 땅이 안식을 누리도록 황무케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오늘 본문에서 과거의 그 기간에 해당되는 만큼 70 이레로 이스라엘의 앞날에 대한 기한을 정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중간에 70 년이 있고, 그 앞에 70 이레와, 그 뒤에 70 이레가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70 이레는 490년으로 해석을 해야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70 이레의 기한, 즉 490 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은 6 가지를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세 가지의 부정적인 요소가 사라지고, 그 대신 세 가지의 긍정적인 요소가 오게 됩니다.
우선 이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70 이레에 대한 예언을 받은 지도 이미 2천 년이 더 흘렀건만, 어떻게 490 년으로 모든 역사가 설명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2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70 이레는 세 시기로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25절에 있는 대로 "일곱 이레와 62 이레," 이 둘을 합치면 69 이레가 지나갑니다.
69 이레가 지나가고 나면, 27절 말씀에 있는 대로 마지막 한 이레가 나옵니다. 그러나 26절 말씀에 보면 69 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계산되지 않은 중간 부분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 중간 부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차차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70 이레가 지나고 나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세 가지 부정적인 요소>가 사라집니다.
첫째는 "허물이 마치며" 여기서 말하는 허물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70 이레가 지나고 나면 저들은 자신들이 배척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죄가 끝나며"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통해서 다른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오히려 이방 나라들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방신들을 문란할 정도로 섬겼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하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70 이레가 지나가면 이러한 죄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셋째는 "죄악이 영속되며"입니다. 유대인들이 그 동안 하나님 앞에서 행해온 모든 불의한 일들도 사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했으니까 죄악을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70 이레가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다 영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70 이레가 지나면 이상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사라지고, 그 대신 <긍정적인 세 요소>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더 이상 이 땅에 불의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이상과 예언에서 말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그때는 성취될 것입니다.
셋째는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옛날에 기름부음을 받는 직분에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인정치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70 이레가 지나고 나면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받들어 섬기면서 그 앞에 저들의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상에서 언급한 여섯 가지가 이루어지는 것은 70 이레 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이 마쳤습니다. 죄도 끝났습니다. 죄악도 영속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매순간마다 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모시고 경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구속의 은총을 노래하면서 감사와 감격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단9장 25-26 마지막을 사는 지혜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천사 가브리엘은 먼저 다니엘에게 당부했습니다. 주의를 집중해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잘 듣고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죠.
다니엘은 기도 가운데 주로 두 가지를 간구했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조국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70 년 동안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재건토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70 이레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니까, 다니엘은 먼저 주의를 집중해서 들을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주어집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
70 이레가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입니까?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입니다.
그러니까 70 이레가 아직까지는 시작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이 말씀을 받았을 때는 주전 500년대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서 2장에 기록된 대로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의 중건을 명할 때가 주전 400년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1백년 뒤에 70 이레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여기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의 뜻이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언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공생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때까지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합치면 69육십 구 이레입니다. 이것은 몇 년을 뜻하지요? 483년을 뜻합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이 떨어졌을 때가 주전 44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0세에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후 26년경이었습니다. 이 두 기간을 합치면 대략 69 이레가 됩니다.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7 이레 동안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면서 겪었던 많은 곤란을 볼 수 있습니다.
도비야, 산발랏을 위시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공작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첫 7 이레가 지났을 때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드디어 중건이 되었습니다.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여기서 "거리"는 사람이 사는 주거지 사이로 난 길을 가리킵니다. 도시가 다 이루어졌음을 뜻합니다. "해자"는 도랑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에는 겨울철에만 비가 옵니다. 더운 여름철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날씨가 건조합니다. 그래서 수로를 만들어서 비가 올 때 한 곳에 모아서 그것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 식수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의 모습을 이제는 제대로 갖추었다는 말씀입니다.
▲26절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62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25절에서는 예루살렘 성이 중건되고 난 뒤에 62 이레가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왕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그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 바로 얼마 뒤인 3년 뒤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또 없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승천을 가리키는 줄 압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 나라로 가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자기들 후손이 그 피 값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대로 죄 값을 받은 것입니다. 주후 70 년에 로마의 장군 디도와 그의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훼파시켰습니다.
"그의 종말은." 여기서의 "그"는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로마의 장군 디도와 그의 군사들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완전히 황폐해지도록 철저하게 파괴를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 엄청난 유대인들이 살육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벽에는 돌 하나라도 돌 위에 남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마24:1-2에서 예수님은 이 사건을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헤롯 성전을 가리키면서,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감탄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다시금 황폐해짐에 따라서, 유대인들은 그때부터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천 년 동안이나 나라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스라엘은 다시금 회복되었죠. 이것을 보면 마지막으로 남은 한 이레가 곧 시작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69 이레부터 마지막 한 이레까지 그 중간에 공백기가 있습니다. 그 공백기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며, 부활하신 뒤에 승천하시며, 또 다시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이 파괴되는 것 등 이런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공백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7절에서 말씀하는 마지막 한 이레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이레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벧전4:7-11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단9장 27 마지막 한 이레
27절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다니엘서에 나타난 70 이레는 세 시기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첫 7 이레, 그 다음으로 62 이레, 그리고 나서 마지막 한 이레입니다.
첫 일곱 이레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예루살렘이 중건됩니다. 25절에 기록된 대로 그때는 ‘곤란한 때’였습니다.
느헤미야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중건할 때 반대자들의 핍박을 많이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처음 7 이레 동안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에 의해서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은 다시 중건이 되었습니다.
그 뒤 육십 이 이레가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십니다.
62 이레가 지나고 마지막 한 이레가 될 때까지의 공백기에 26절에 있는 말씀대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끊어져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는데도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후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땅에 사십 일을 계시다가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한 그 죄 값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읍과 성소가 로마의 장군 디도와 그의 군인들에 의해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이레가 27절에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한 이레 동안에 일어날 사건이 본문에서는 세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여기에서의 그는 작은 뿔의 실체인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많은 유대인들과 더불어서 한 이레, 곧 칠년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이레의 절반은 얼마입니까? 삼년 반입니다. 삼년 반이 지나고 나면 적그리스도는 언약을 파기하고서 유대인들을 핍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적그리스도가 마치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종국은 어떻게 됩니까?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적그리스도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으로 세상이 끝나는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지막 한 이레에 되어질 첫째 사건이 무엇입니까? 적그리스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그"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 한 이레 동안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70 이레의 예언은 24절에 있는 말씀처럼 유대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많은 사람"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적그리스도는 장차 많은 유대인들과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8:23에서도 이미 보았습니다만, 적그리스도의 그림자가 되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궤휼이 많은 사람이었죠. 그는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도 미리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유대인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에 기습을 했습니다.
그는 10만에 가까운 유대인들을 죽이고 5만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노예로 팔아먹었습니다. 그 실체가 되는 적그리스도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먼저 유대인들과 언약을 맺을 것입니다. 아마도 적그리스도는 종교의 자유를 그 언약 속에서 보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심하고 그 언약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곧 자신의 본색을 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두 번째로 일어날 일입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삼 년 반 동안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폭풍전야의 평온함일 뿐입니다. 그 이레의 절반이 되면 적그리스도의 마각이 드러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제사와 예물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것이니까, 첫 이레 즉 삼 년 반 동안에는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이 되며 또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와 예물이 드려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 년 반이 지나고 나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일어날 일은 무엇입니까?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미운 물건은 가증스러운 것으로서 우상이나 이방 신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의 숭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살후2:3-4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마지막 한 이레의 후반에 가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대신 하려고 들게 될 것입니다.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날개를 의지해서 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이니까요. 보통 날개라고 하면, 몸통이 아닌 어느 한쪽 부분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장차 성전의 한쪽 부분에 자기 모양의 우상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숭배토록 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옛날에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 모양의 금 신상을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서 절하도록 만든 것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지붕 위에 십자가가 있듯이, 장차 적그리스도가 성전 꼭대기에 날개가 달린 자기 모양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천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서 엎드려 절하도록 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아무튼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숭배를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24:15∼17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핍박이 영원토록 계속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해진 때 안에, 즉 삼 년 반 동안에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만 끝나고 나면 예수님은 구름 타고 다시 오십니다.
마24:29-31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우리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날, 믿는 자들은 홀연히 그 몸이 변화해서 공중에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악인들은 그들을 위해서 예비된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에 던지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먼저 이미 정해 놓은 기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입니다. 황폐케 하는 자, 곧 적그리스도는 무한정 택한 백성을 괴롭힐 수는 없습니다. 정하신 기간 안에서만 이루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이 차면, 적그리스도는 그를 추종하는 자와 함께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믿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몸은 순식간에 변화할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에서 예수님을 반갑게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주와 더불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살전4:13∼18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 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시간 우리 주님의 위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시련이든지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까? 그저 골짜기에 가리어서, 앞에 있는 산모퉁이에 가리어서 그 너머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가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우리 눈앞에는 우리가 짐작하지도 못했던 축복과 영광이 우리를 반겨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시고 믿음으로 모든 시련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고 조금만 더 인내하셔서, 시련 너머에 있는 찬란한 영광을 다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