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슥11장, 목자도 타락하고, 양떼도 타락하다
LNCK
2022. 12. 3. 08:38
◈슥11장, 목자도 타락하고, 양떼도 타락하다 여러 설교 정리
본 장은 일단 ‘내용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뭔 말인지 알아야 하는데요,
성경번역도 성경마다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5절과 4절.
본문에 참 목자와 악한 목자가 교차되어 나옵니다.
참 목자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스가랴이고,
악한 목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죠. 관원,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내용파악을 위해 일단 <줄거리>를 요약해 봅니다.
1~3절, 북방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악한) 목자들의 통곡소리가 나는구나.
4~6절, 여호와가 스가랴에게 1차 말씀
‘너는 잡아먹힐 양떼를 살찌워라.
악한 목자들이 양을 사고팔아 부자되고, 그들은 양떼를 아끼지 않는구나.
나도 그 악한 목자들처럼, 이 양떼인 백성들을 이방 왕에게 내어주리라’
7~9절, 스가랴가 여호와의 말씀을 실행에 옮김.
그래서 양떼를 치는데, ‘은총’과 ‘연합’이라는 막대기 2개를 구함
(공동번역은 각각 ‘귀염둥이’, ‘단짝’으로 번역)
스가랴가 양을 치는데, 목동(조수)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셋을 내보냄.
하나님을 대행하는 스가랴가 양떼들에게 경고함
나는 양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를 못 치겠으니,
죽고 싶으면 죽고, 사라질테면 사라져라.
남은 놈들은 저희끼리 잡아먹든 말든 마음대로 하여라." 9절
10~11절, 스가랴가 ’은총‘(귀염둥이)라는 막대기를 부러뜨림
이것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과 맺으셨던 계약을 파기함을 의미.
12~13절, 스가랴가 목자 직 포기,
그래서 자기 품삯을 달라고 하니, 고용주(지도자)들이 은 30개를 줘서
성전 금고에 둠
14절, 스가랴가 남은 막대기 ‘연합’(단짝)을 꺾음.
유다와 이스라엘의 형제 의리가 끊어짐을 의미
15절, 여호와가 스가랴에게 2차 말씀
본 절은 번역이 몇 갈래로 나뉘는데,
-스가랴야, 다시 양떼의 목자가 되라 (공동번역)
-스가랴야, 악한 목자들의 기구를 빼앗아 목자가 못 되게 하라(개역)
-스가랴야, 네가 악한 목자 분장을 해라 (새번역)
16~17절, 내God가 양떼를 아끼지 않는 악하고 못된 목자를 일으키겠다.
그리고 그 악한 목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위의 줄거리를 압축해서 <주제>를 뽑아보면 2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양떼를 하다하다 결국은 버린다는 경고. 언약의 파기
-하나님은 악한 목자들을 심판하심
그럼 이 예언이 실현되는 시기는
-그때 당시 시대에도 ‘작게’ 이런 일이 일어났겠지만
-약 5백년 후인 예수님 배척과 AD 70년 성전파괴
-또 앞으로 완전 미래 종말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겠죠.
‘악한 양떼’와 ‘악한 목자’의 악순환이 반복 계속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제대로 되어야 하는데,
양쪽 다 엉망진창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종말에는 이런 암울한 상황만 있는 것일까요?
또 100% 그렇지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부흥의 역사, 물이 바다 넘침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해지는, 땅 끝까지 복음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겠지만
또 한쪽에서는 양떼로 타락하고, 목자도 타락해서
결국에는 하나님이 악한 목자가 세워지도록 방치해버리시는(16~17절)
그런 역사도 일어나는 거죠.
꼭 종말 때뿐만 아니라, 매 시대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적용
▲1. 악한 목자는 양떼를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4~5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대조영>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가 멸망하자
유민들을 잡아서 당나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 앞잡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한때 고구려의 권력자들인 것입니다.
유민들을 잡아서 당나라의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먹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다른 나라에 자기 백성이 팔려 가는데도, 악한 목자는
그것을 팔아놓고서는 부자가 되었다고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고파는 자들은 이방인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합세한 것입니다. 이완용, 을사오적 같은 자들이죠.
이런 지경에도 목자들이, 양 떼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땅 백성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시지 아니하리라’
지도자도, 백성들도 다같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믿어도, 개인주의적 신앙에서 못 벗어난다면,
그는 ‘거짓 목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본문의 거짓 목자가, 양떼를 돌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개인/가정/은퇴 후 장래를 돌보다 보니까.. 양떼에 소홀한 거죠.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써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가정이 잘 살고 있는 것은,
독실한 장모님의 기도 때문이라는 일종의 감사의 글이었습니다.
90세를 넘기신 장모님께서
날마다 자기 가정을 포함해서, 모든 자녀들의 가정을 위해
매일 몇 시간씩 기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장모님을 두신, 복된 사위님이 되시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평생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오신 장모님/권사님이
90세가 넘어 그토록 오래 드리는 기도가
자기 자녀들만 위한 것이라면.. 충격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세계평화와, 세계복음화와, 남북의 통일과,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도 기도하시겠지요.
내막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러나 만약 이럴 것(개인주의 신앙)이라고 가정할 때,
일평생을 주를 위해 헌신하신 권사님의 기도가
아직도 자기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충격입니다.
신앙이 성숙되면,
그의 신앙연조(연령), 또는 직분에 상관없이,
그의 기도와 관심이, 자꾸 넓어집니다.
그가 아무리 인지도가 높은 목회자라도,
90%이상 관심이, 자기 교회라는 바운더리 안에
수 십 년 동안 계속 머물고 있다면,
차라리 교세가 얼마 안 되어도,
사회의 약자들과, 북한의 동포들과, 세계 복음전파에 대해
자기 관심을 갖고서 기도하고,
성도들이 그 길로 가도록 인도해 가는 목자가
하나님 보시기엔, 더 성숙한 목자일 것입니다.
▲2. 사람들은 거짓 목자를 좋아하고 따릅니다
렘5:30-31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는데,
악하고 거짓된 목자에게로, 악한 양떼들이 모이는 것이죠.
본문 슥11장은, 전체 주제가, 목자(백성의 지도자)도 타락하고,
양들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거의 악순환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대로 내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악한 데로 계속 굴러가도록 방치하시는 것입니다. 손 놔 버리시는 거죠.
종말의, 최후의 심판 직전 모습이죠.
16절에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이렇게 나옵니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하나님이 그런 악한 목자를 일으켜 세우시나요?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의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죠.
방치하시는 것입니다. 막지 않으십니다. 내버려 두십니다. 유기하시는 거죠.
왜냐면 그 전에, ‘은총’이라는 막대기도 꺾여졌고,
‘연합’이라는 막대기도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이 파기되었음
△오늘날 신천지 등 이단들이 막강한 물질을 동원하고, 인원을 동원함을 봅니다.
어떻게 참 진리가 아닌데, 이단의 가르침을 갖고도
저렇게 ‘부흥’(?) 할 수 있을까? .. 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단에 안 가봐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마 ‘기복주의’를 강력하게 전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투자(헌금)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배당금(축복)을 생각하노라면.. 투자 원금이 아깝지 않은 거죠.
악한 목자 아래로, 악한 양떼가 모여든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스가랴를 보내서, 그 가련한 양떼를 위하여 은총과 연합으로 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 목자를 내 보냅니다.(8절) 예수님의 성전청결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목자도 손을 들고 맙니다.
그리고 은 삼십을 받고, 목자 일을 관둬버리는데,
이는 예수님이 은30세 팔릴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참 목자, 선한 목자는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목자는 양떼를 잡아먹는 목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자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이런 모습은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른 목자는 배척을 당하고, 거짓 목자는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참 목자를 거부하면, 남은 것은 심판과 멸망 뿐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저주와 심판밖에는 없습니다. (16~17절)
AD 70년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죠.
그 일은 1948년까지 무려 2천년 가까이 지속된 저주였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선교단체 라든지, 교회 공동체라든지..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있죠.
잘 생기고, 능력 많고, 재능 많은 인재들은
하나 둘 차례로 떠나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끝까지 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성격이 모질거나, 능력이 없어 무능하거나, 재능이 전혀 없는...
쉽게 말하면, 좀 뒤떨어진 루저들이 남아서,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거죠.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비천한 자들을 쓰신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와서 깨닫는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이런 부족한 사람들이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부족함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을.. 고쳐서, 채워서, 만들어서 쓰신다는 거죠.
각각 너무나도 부족한 우리들이 분명한데,
턱없이 부족한 우리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들 한 가지씩 장점들이 있습니다.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각자가 지니고 있는 한 가지씩의 장점들을
한 곳에 다 모아서, 주님은 온전한 지체를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고전1:26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29
그러므로 너무 유능하고 적합화된 사람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런 사람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가 거기 오래 붙어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나 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말 유능하고 적합한 사람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교만하고, 잘 나고, 가룟유다 같은 거짓된 목자를
만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참고로, 본문에 ‘은총’과 ‘연합’이라는 두 막대기가 나오는데,
에스겔서에도 두 막대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본문의 두 막대기와는 직접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겔37:16~17 '네 손에 막대기 둘을 잡아라
한쪽 손에는 북이스라엘, 한쪽 손에는 남유다 라고 쓰고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라
다시는 너희가 갈라지지 아니하고, 한 체제
하나님의 은혜 중에서 정말 세계에 빛을 발하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시23편에도 두 막대기가 나오지요. ‘지팡이와 막대기’입니다.
아마 목자들은, 두 막대기를 가지고 양을 쳤나 봅니다.
손이 두 개이니, 한 손에 하나씩 잡았나 봅니다.
에스겔서에는 두 막대기를 연합시는데,
스가랴서에는 두 막대기를 각각 분질러 버립니다.
이렇게 다른 것은
에스겔서는, 바벨론 포로 후에 남북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을 예언했고,
스가랴서는, 그 후에 또 다시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배척할 것을 예언하기 때문이죠.
◑해석
14장으로 구성된 스가랴의 전반부인 1-8장에는
8개의 환상과 금식에 대해 증거합니다.
후반부인 9-14장은 겸손한 왕이자 참 목자이신 메시아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복된 미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그 중에서도 후반부의 9-11장은
메시아가 오실 때 복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아를 배척하게 되는 내용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 11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목자와
하나님께서 배척하시는 거짓 목자를 서로 대조하여 보여 줍니다.
▲1-3절은 거짓 목자에게 유혹되어 바르게 인도함을 받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심판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3)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목자들’은 문자적으로는 양 떼를 치는 사람들을 뜻하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지칭합니다.
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들보다 가진 것도 많고, 누리는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모든 것, 그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영화로운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쓰러진다고 합니다.
또 ‘어린 사자’는 갓 태어나거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미 사자의 도움이 필요한 크기가 아니라,
스스로 사냥이 가능한 ‘젊은 사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사자가 부르짖는 이유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단의 자랑’은 요단강이 범람하여 생기는 비옥한 농토를 의미하거나,
요단강 근처의 빽빽한 숲을 지칭합니다.
어디에든지 간에 거기에는 곡식이나 풀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 있을 겁니다.
그런 동물이 있어야 사자가 잡아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토지가 사라지고, 숲이 사라지면, 초식동물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자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악한 지도자들에게
정말 감당할 수 없을 고난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포로에 돌아와서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성전을 다 지은 후에라도
성전 자체에만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를 배척한 벌(4-14절)
4-14절은 참 목자이신 메시아가 당할 수난과 행적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스가랴)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잡혀 죽을 양 떼’는 장차 사람들에게 도둑질을 당하거나,
빼앗겨서 도살장으로 끌려갈 양 떼를 뜻합니다.
본 절에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고 하는 것은
스가랴가 그 불쌍한 운명에 처한 양떼들을 돌보라는 명령이죠.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말입니다.
(5)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양 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백성을 마치 물건처럼 거래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말씀하십니다.
‘사들인 자들’, ‘판 자들’, ‘목자들’입니다.
‘사들인 자’들은 양 떼를 돌보고,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위해, 또 도살하기 위해 사들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시리아 제국이나 바빌로니아 제국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모든 세력을 뜻합니다.
그들은 남의 나라를 짓밟고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고,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판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의 압제를 당하고, 포로의 상태가 되도록
원인제공을 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고서도 단지 자신들의 소유가 늘어난 것에만 만족했습니다.
‘목자들’은 유다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고,
바른길을 제시하지 못해서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사람이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7-8)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아무도 양 떼를 돌보려고 하지 않으니,
‘내(메시아)’가 양 떼를 먹이겠고 말씀하십니다.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막대기(원리)가 ‘은총’과 ‘연합’이라 하십니다.
‘은총’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께 나아오면 받아주시는 사랑을 의미하고,
‘연합’은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약 200년 전에 무너진 북이스라엘도,
여러 나라로 흩어진 사람들도 함께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을 뜻합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세 목자’를 제거하였다고 합니다.
‘한 달’은 아주 짧은 기간을 뜻하고,
‘세 목자’는 유다의 마지막 세 왕,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의미,
또는 기름을 부어서 세우는 세 직책, 왕, 선지자,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아무튼,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왕도 없었고,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싫어했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을 미워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목자들을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
(9-10)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내버려 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서로 잡아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은총’이라는 막대기는 꺾어버리신다고 하십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목자의 보호에서 벗어난 양은
기갈하여 죽든지, 맹수의 먹잇감이 되든지 할 것입니다.
참 목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은총과 연합으로 양 떼를 먹였습니다(7절).
그러나 양 떼의 세 목자는 참 목자를 배척하였습니다(8절).
이에 참 목자는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꺾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참 목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30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참 목자가 자신의 품삯을 달라고 하니까, ‘은 30개’를 주었다고 합니다.
참 목자는 아무리 자기 백성들을 품으려고 해도, 품안에 있으려고 하지 않고,
끊임없이 악한 삶을 사니까, 속이 상해서 “내 품삯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품삯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이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품삯으로 은 30개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었습니다.
참 목자의 수고를 형편없이 여긴 것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말씀은 가룟 유다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연합’이라는 막대기도 꺾으셨다고 합니다.
▲악한 목자의 멸망(15-17절)
15-17절은 양 떼를 삼키고 멸망시키는 악한 목자의 등장과 멸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6-17)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악한 목자는 없어진 양들에 관심이 없고,
양들이 흩어져도 찾아 모으지 아니하고, 다쳐도 치료해 주지 않고,
튼튼한 양은 먹이를 주지 않아서 야위게 만들고,
살이 잘 오른 양은 잡아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목자가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팔이 마른다고 하는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오른쪽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은 판단력과 통찰력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와서 한참 성전을 건축 중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참 목자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예배당을 갖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좋은 믿음을 갖는 것이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과 메시아의 관계를 ‘양과 참 목자’로 표현합니다.
양은 목자의 돌봄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면, 언제나 맹수들이 득실대는 황량한 들판을 직면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양임을 잊지 않고, 목자 되신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며,
목자의 음성을 듣고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단락 출처,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