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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對 임마누엘

LNCK 2023. 6. 9. 10:47

청천벽력 대(對) 임마누엘_ - YouTube

◈청천벽력 對 임마누엘           사36:1~21           2018.09.10.

사36:21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삶을 살아오시는 중에 청천벽력 같은 사건과 소식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분은 
아마 없으리라고 여겨져요. 
남편이 풀이 죽어서 들어와서 왜 그러냐 다그쳤더니 
15년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답니다. 
아이들은 아직 중고등학생들인데 이게 웬 청천벽력입니까. 

어느날 머리가 하도 아파서 병원에 가봤더니 
뇌종양 말기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집니다. 

십억 계약 건만 철썩같이 믿고, 빚을 내서 공장을 풀가동하며 물건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지해왔습니다.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이게 말이 됩니까? 

청천벽력은, 다리에 힘이 풀어지게 하고, 털썩 주저앉게 합니다. 
그런데 청천벽력의 문제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이 
그 벼락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청천벽력의 대부분은, 우리 삶 안으로 들어와서 지배자처럼 군림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삶은 이제 청천벽력이 떨어진 그 순간 이후부터는 
청천벽력의 내용에 의해 지배되면서, 유린당하고, 피폐하게 됩니다. 

그 뒷수습을 하는 일, 그 여파에 노예가 되어서 
지치고 힘든 동행을 시작하게 되는 거예요. 

청천벽력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뜻밖의 끔찍한 사건과 사고의 소식들.. 

혹시 이런 청천벽력, 그 예방이 아예 불가능할까요? 
청천벽력이 주어질 때에 극복과, 
혹시 가능하다면 그 예방까지 
본문 말씀을 함께 보면서 해법을 한번 찾아봅니다. 

▲본문의 배경은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의 침공을 저지해 보려고 하던 
히스기야 왕은 결국 앗수르의 1차 침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막대한 양의 은과 금을 조공으로 바치고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평화약조를 받고 위기를 모면합니다. 

근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렇게 평화약조를 하고 돌아간 산헤립이
그 약조를 깨뜨리고, 유다가 아직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는데  
재차 침입을 합니다. 

남유다의 성읍 46 개를 파죽지세로 점령하면서 온 국토를 유린하고 
아직 1차 침입 때의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국토를 황폐케 하면서,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2차 침입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침공이에요. 
막대한 조공의 은과 금을 바쳤기 때문에 
어쨌든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상황에서 당한 
뒤통수 맞는 침략입니다. 그러니까 청천벽력이지요. 

특별히 선민들에게 있어서, 
히스기야가 조공을 바치고 앗수르와 평화협정을 맺은 것처럼 

내 손으로 이루어낸 끝, 
내 머리로 만들어낸 결말은.. 아직 끝도 결말도 아닙니다. 

선민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서 끝나고 매듭되지 않는 한 
절대로 최종적인 매듭이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계속 분화되는 활화산과 같은 것이에요. 

이렇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마무리되기 전에 
내 손으로 마무리를 지려고 할 때 
그러한 삶이 스타일을 유지할 때 
모든 일을 내 손으로 결말을 내려고 할 때 (히스기야가 돈으로 문제 해결)
청천벽력의 확률이 급상승하게 됩니다. 

▲우리는 앗수르의 2차 침입의 결말을 압니다. 
이번에는 대응이 달랐어요. 

누구에게 손을 뻗고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유다 백성들이 잠잠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사36:21 
  
그리고 다음 장에 나옵니다만, 
히스기야 왕 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고 
결과적으로 15만5천명이 
하나님이 매듭지으시는 손을 대심으로써 자멸해버리고 맙니다. 

근데 본문을 보면, 앗수르의 야전군 사령관 격인 랍사게가 
유다 대신들과 히스기아왕과 유다백성 그리고 심지어는 여호와하나님까지도
모욕하고 조롱하면서 유다백성들에게 도발하는 내용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랍사게가 도발하는 말을 하는 그 자리가, 2절에 보면,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 사36:2

그런데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십니까? 
이사야7장에 보면, 북왕국과 아람이 연합해서 남유다로 쳐들어옵니다. 

그때가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 아하스 때에요. 
이때 아하스 왕이 걱정이 태산같아서, 북왕국과 아람 더 북쪽에 있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에 대한 확증적 표시를 주기 위하여 
그때 언급한 말씀이 '임마누엘' 입니다. 
그 자리에 바로 '윗못 세탁자의 밭 큰 길'입니다.

사7: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러니까 랍사게가 유다 백성들과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이사야가, 선왕 아하스 왕 시절에 임마누엘 에 대한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최소한 10년이 지난 시점이었죠)

그래서 '임마누엘' 과 '청천벽력'이 같은 자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사7:3, 36:2

▲자 이제 선민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청천벽력을 맞이했습니다. 
청천벽력을 맞이하고, 청천벽력을 이끄는 랍사게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이사야가 동일하게 임마누엘을 성경상 처음으로 언급해서 
선민에게 은총으로 알려줬어요. 

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선민에게는 항상 어마어마한 축복이고 
동시에 어마어마한 시험입니다. 왜 그러냐?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면, 이건 쌍방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면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응답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임마누엘이 성립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려는 응답이 없으면, 
임마누엘의 은총이 성립되지 않는 거죠.
남녀 관계를 생각해봐도, 이건 자명한 이치죠!

청천벽력을 어떻게 예방합니까? 
임마누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응답해서 
나도 '하나님과 함께 하려는' 분명한 믿음의 태도를 취하면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임마누엘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요? 
지금 앗수르의 2차침입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남유다의 과제는, 청천벽력이 떨어졌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선민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활성화 시키기만 하면 
청천벽력이 제 아무리 대단한 사건이고, 변고라고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이기고, 
우리를 불행에 빠뜨릴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을 보니까 결과적으로 18만5천이 자멸합니다. 
임마누엘이 활성화된 거예요. 

임마누엘이 활성화되는 과정 중에 
오늘 본문에 보인 아주 특징적인 내용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뭡니까? 

그렇게 랍사게가, 온갖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고 분통이 터지고 
주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나게끔 하는 모든 말을 다 하고 있는데 
그러나 21절에 보면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니라' 

히스기야가 이제는 임마누엘을 활성화시키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래서 1차침입 때는,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쳐서, 항복해서.. 앗수르를 막았죠.
그때는 임마누엘을 활성화 시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2차 침입 때는, 임마누엘을 활성화 시키는데 
그 증거는, 백성들에게 '잠잠하라'는 명령을 내린 겁니다. 

선민에게 있어서 특별히 잠잠하게 되는 상황, 잠잠하는 상황 
이것은 성경에서 아주 특별한 역사가 있는 상황이에요. 

출14장에 보면, 앞에는 홍해 입니다. 
뒤에는 바로가 화가 나서, 모든 애굽군대를 다 몰고 
지금 쇄도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이제 다 죽게 생겼다' 이러고 있는데 
모세가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14:13~14

▲이렇게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않기, 
가만히 서서 보기, 가만히 있기!
이게 성경에서 계속해서 선민들에게 요구되는 상황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함께하심, 즉 임마누엘이 실제로 활성화 되기 위해서! 

그래서 수6장에 보면, 여리고성을 일곱 바퀴를 돌 때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지시한 거예요.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수6:10

왜 선민에게 이처럼, 위급하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취하는 침묵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 침묵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실제로 활성화 되게끔 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7살 미만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 집이, 아파트 윗층에 이사왔어요. 
하도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니까 
아래 층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못 견뎌서 올라오셨습니다. 화가 잔뜩 나셨습니다. 

'아니, 도대체 살 수가 있어야지,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냐?' 
막 대문을 열고  소리 지르고 있는데, 

마침 퇴근해서 집에 있던 아빠가, 그 할아버지를 응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때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데, 
쿵쿵거리고 뛰어다니던 삼형제가 쪼르르 나와서 
아빠 뒤에 딱 숨어가지고... 침묵합니다

눈이 동그래 가지고, 아빠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봅니다. 
일은 자기들이 벌려놓고, 아빠 허리 뒤에 숨어 가지고, 
할아버지가 소리 지르면서 삿대질을 하면, 
아이들은 눈만 똥그래가지고 한 마디도 안 하고, 아빠 옷만 꼭 붙잡고 서 있는 거죠.
침묵가운데 지켜보는 거예요. 

지금 출애굽 백성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아빠에요. 
그러면 우리 아빠 뒤에 서서, 아빠 옷 붙잡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는 거에요. 침묵하면서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보인다면, 잠잠한 게.. 그 특징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안 보이시면.. 길길이 날뛰게 되는 거지요.

▲앗수르 왕 산헤립과 야전군 사령관 랍사게가 
18 만 5 천 명을 이끌고 온 상황입니다. (위 예에서 아래 층 할아버지)

그리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 아빠입니다. 

그 18만 5천 대군을 맞대면 하고 계신 분은, 우리 아빠이기 때문에 
삼 형제인 우리는 잠잠한 겁니다. 

청천벽력 같은 내 몸의 건강진단 결과도.. 아래층 할아버지예요. 
그러나 내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 내 몸에 청천벽력 같은 건강 문제 상황을 
내 아빠인 하나님께서 맞대면 하고 계실 때 
나는 잠잠한 겁니다. 

중요한 점은, 일곱 살 이하의 삼형제가 
아빠를 실제로 자기 아빠로 알아보고 있듯이 
우리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정말 우리 아버지로 보고 있느냐? .. 하는 겁니다. 

너무 간단한 거잖아요. 
정말 하나님이 우리 아빠라고 믿는다면 
청천벽력을 맞대면 하고 계신 하나님을 보면서 
나는 그저 잠잠하게 된다는 겁니다. 

정말 내가 나설 것이 아니라, 
아빠이신 하나님이 나서고 계시는 상황을 보고 있으면 되는거에요. 
그게 잠잠함으로 나타나는 거죠. 

▲온 세상에 청천벽력은 다 나빠요. 아주 나빠요. 
근데 단 하나의 좋은 청천벽력이 있는데 
그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는 청천벽력입니다.

좋은 콜레스테롤 과 나쁜 콜레스테롤이 있는 것처럼 
이 단 하나의 청천벽력 만은 좋은 청천벽력 이에요. 

그래서 우리 삶에 나쁜 청천벽력이 주어지면 
그게 우리 마음을 꽉 지배하게 되지 않습니까? 마치 앗수르 침입처럼요.

그러면, 우리 마음에서 이 나쁜 청천벽력들을 
좋은 청천벽력으로 때려 부셔야 돼요. 몰아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보입니다. 잠잠하게 됩니다.
내가 잠잠하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맡아서 
그 상황을 다 책임지시며 이끌어 가십니다. 

세상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 청천벽력 중에 
'내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보다 더 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없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내가 죽은 게 네가 나와 함께 죽은 것이다. 내 안에서 너도 죽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나의 죽음의 청천벽력>은 

이 세상의 모든 무서운 청천벽력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들어올 때 
그것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 

그것을 내 마음에서 몰아내게 하는 유일한 좋은 청천벽력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복음입니다.

지금 사업이 아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서, 이젠 파탄에 이를 지경이 됐어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나와 함께 죽었는데' 라는 
청천벽력을 알려주십니다. 

믿음이 뭡니까? 
회사가 도산할 것 같은 이 청천벽력보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 이라는 소식을   (*같이 부활하기 위한 죽음이죠)
더 큰 청천벽력으로 듣는 것이 이게 믿음이에요. 

지금 회사가 도산할 판인데 
'내가 죽었다!' 라고 믿음으로 여기는 거예요.

'내가 죽었다' 하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리 사업의 도산이라도..

그런데 '내가 죽었다'는 이 사실을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가 믿지를 않아요.
여전히 내가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계속해서 나쁜 청천벽력들을 보내셔가지고 
자기 죽음의 상황을 겪게 하심으로써,
그 일을 통해 제발 좀, 임마누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선민이 되기를 바라시는 거죠.

신자들이 '내가 죽었다'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거에요. 
여전히 내 자아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청천벽력의 삶을, 하나님이 끊임없이 주시는 거에요. 앗수르를 보내십니다.  
그 자아를 죽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 거죠. 
  
▲주님이 죽으셨어요. 믿음이 뭡니까? 
우린 자꾸 믿음을 일회성 결단과 신앙고백이라고 생각을 해요. 
아니에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건이, 나의 죽음 이어서 
내가 세상에 대해서는..
 
내 몸까지 포함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은 자'라는 의식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가.. 믿음입니다. 

요3: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들려야 하리니 
나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광야에서 모세가 들 때 '쳐다보라' 그랬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립니다. 
놋뱀이 장대에 매달려 들리듯이.. 

그 '예수님을 쳐다본다'는 게 뭘 뜻하는 겁니까 왜 쳐다봐요? 
그 쳐다보는 걸 '믿음'이라고 했어요. 근데 그 믿음이 뭐예요? 

그 십자가에서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의식을 갖는 게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나의 죽음 이라고 고백하는 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은 청천벽력이지요. 
이 세상에 대해서 내가 죽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청천벽력이 주어지더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내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앞에서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근데 안 믿으니까... 
돈이 없는 청천벽력, 건강이 망가진 청천벽력,
자식에게 문제가 생긴 청천벽력, 남편이 직장을 잃어 버린 청천벽력...
이런 것들이 주어지는데 '내가 죽었다'는 청천벽력을 믿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의 무서운 청천벽력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내가 어떻게 해결하는 과정 중에 
내가 해결하는 주체가 된 상태에서 
하나님도 한 방편과 수단으로 동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활성화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임마누엘 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청천벽력을 보냄으로써 
내가 완전히 살아있는 이 체질이 죽어 없어지게 되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살아갑니다.
계속해서 '십자가에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게 되는 
'이 세상 모든 상황에 대해서 나는 죽은 자'.. 라는 의식을 갖게 되면 

여러분 신비합니다. 내가 죽은 그 현장, 
내가 죽었다는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보게 됩니다. 
나와 함께 해 주시는, 살아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연합해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만 살아 있는 겁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살아계신 하나님만 보이는 거예요. 

내가 몸이 아프다. 내가 암에 걸렸다. 내가 실패했다. 사업이 망했다. 
이게 아무리 큰 문제라도, '내가 죽었다'는 청천벽력 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이 좋은 청천벽력을 믿으세요.  
그러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보일 것이고 
그러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움직이실 것이니까 
그 과정에서 나는 입다물고 침묵하게 되고
앗수르의 군대는, 하나님이 물리쳐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다는 이 좋은 청천벽력이 
내 마음을 지배하는.. 은총 중에 최고의 은총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들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