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자기 나름대로 유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사가 있는 한, 유교는 든든히 서 갈 거고요. 또 나무아비타불 주문이 외고 목탁을 치는 불교는 그 이미지로 계속 유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무슬림은 하루에 5번 메카를 향해서 큰 인사를 드리면, 그 종교가 계속 유지가 됩니다.
가톨릭은 엄청난 문화유산이 사람을 감동을 시켜서 그리로 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신교 경우에는, 가장 좋은 것을 붙잡았습니다. 오직 말씀! 그것은 불멸의 가치죠.
그런데 "말씀"이라는 것은, 사실 그 대응된 실체가 있어야 말씀입니다. (탁자 위의 컵을 들어 보이며) 가령 '컵'이라고 말할 때, 만약 컵이 실체가 없다면, 그건 그저 (허무한) '소리'에 불과하죠.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회가 그 '말씀'에 대한 '실체'가 없습니다. '사랑'이 제대로 사랑되려면 '실체'가 있어야 되는데, 실제로 있냐 말이에요... 그냥 공허한 소리로 끝나고 말죠. 그것을 실제로 누리고 느끼고 사느냐 말이에요.
성경 말씀에 있는 모든 것이 특별히 성경의 추상명사는 거의 다 하나님에 관한 건데 그건 실재가 없으면 허무한 소리입니다. 실재가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실재가 되려면,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만 드러나야 되는 거예요.
'이대로 가면 개신교가 있어야 될 이유가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을 제가 <개신교 500주년> 되던 2017년에 참 기대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준비했는데
아무것도 되어진 게 없고, '종교개혁 5백주년 기념 세미나' 몇 번 하고,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종교 유적지 한번 갔다 오고 끝이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위기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1907년에 성령강림운동은요, 성령께서 임하는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날 적에 '아, 회개가 실재구나!' '하나님의 백성은 진실이야 된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씻을 방법이 회개구나'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모든 추상 개념이 실제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 당시 한국교회에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소리'가 아니죠. '실재'가 있었고, 그게 나타나 보여졌습니다.
그때부터 사실은 그게 어렵고 힘든 일제 36년을 견뎌내는 힘이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다음 세대에 전수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수 못한 그 일로, 한국교회가 이렇게 추락하고 앞으로는 더 절망적인 상태까지 드러나며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