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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증거자 다니엘

LNCK 2023. 7. 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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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증거자 다니엘      단5:22~28      2008년 설교스크랩

서론

다니엘에게 바벨론은 이방나라였지만 
다니엘은 그곳에서 정치적으로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출세했고 사회적으로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왜냐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렘29:7 

이 말씀대로 다니엘은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도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공헌은 정치적, 사회적 공헌이 아니라 
바벨론에 “하나님 말씀”을 증거한 영적인 공헌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과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의 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 살면서 바르게 살고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이는 것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면 예수를 증거해야 됩니다. 
우리 입술로 예수를 증거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사람이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의 사명은 바벨론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how) 
증거 하느냐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사회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증거 함으로써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복음증거 방식은 설교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것으로 
여섯 가지로 간단하게 나누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예절 바르게” 증거했다.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공손하고 조용하며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무례하게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단1장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 궁중에서 궁중교육을 받으면서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왜냐면 왕의 진미와 포도주는 우상에게 바친 다음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관장에게 그것을 구하는데 건방지거나 불쾌하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공손한 자세로 예절바르게 구했습니다. 

1:12절에 “청하오니(Please)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소서” 이렇게 워낙 겸손하고 예절바르게 요청하니 
환관장이 그 요청을 들어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건방지고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됩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접근해서도 안됩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위엄있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예절바르고 공손하게 전해야 됩니다.

2장에서도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하지 아니하면 
바벨론의 모든 박사와 술객을 죽이겠다는 느부갓네살 왕의 불호령 같은 
명령에 대해서도 다니엘은 겸손하고 공손하며 예절바르게 반응했습니다.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 2:15~16

다니엘이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십니까?”하면서 왕께 구하기를 
“왕이시여 내게 기한하여 주시면 내가 기도해서 그 꿈과 꿈의 해석을 알아 
왕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이처럼 워낙 경우가 바르고 공손했으므로 
느부갓네살 대왕이라고 해도 감히 젊은 다니엘을 업신여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예절바르고
공손한 태도를 가지고 살고 복음도 그런 태도로 증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확신을 가지고” 증거했다.

1장에서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그의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뜻을 정합니다. 
그리고 환관장에게 “청하오니 열흘 동안 나와 내 친구들이 
채식을 먹고도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얼굴색이 더 좋은지 아닌지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나는 열흘 후에 나와 내 친구들의 얼굴이 
저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 얼굴보다 더 좋을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조금도 의심없이 말했습니다. 

2:45절에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과 그 해석을 보인 다니엘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라고 확신있게 말합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이것은 내가 아마도 잘 모르는데, 
이것을 내가 해도 되는 것인가, 아닌가 모르지만 한마디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이것은 내가 옳은 것이라고 확신합니다.”하고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니엘은 확신 했습니다. 

반면에 바벨론 박사들의 대답은 “안된다. 못한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2:11절에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없나이다. 못하나이다. 모르나이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있나이다. 확신하나이다. 이것이 옳으니이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천국이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습니까?”
라고 물으면 “천국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습니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해야 됩니다.

5장에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 25년 뒤 왕이 된 벨사살 왕이 나옵니다.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 쓰는 그릇으로 술을 마십니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씁니다. 

그러자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고 7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8절에 “때에 왕의 박사가 다 들어 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는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박사들은 읽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다니엘은 자신 있었습니다. 
17에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다니엘처럼 복음을 증거할 때에 
확신있게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럴걸, 어쩌면 그럴지도 모를걸, 혹시 그럴지도 모를걸.” 
“Maybe, Perhaps”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절대 확신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복음만이 사람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유일한 진리임을 
확신하고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고 영생얻어 
천국에 갑니다. 확실합니다. 믿으십시오.”하고 확실하게 말하면 
“저 사람이 뭘 믿고 저렇게 확실하게 말하나? 교회에 한번 가봐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사람들의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확신 있게 증거 하는 증인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용기있게” 증거했다.

다니엘은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처해있던 위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최고 독재자를 섬기던 종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나 벨사살의 권력은 무제한이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것으로 일만 명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분 바쁘면 풀무불을 7배나 뜨겁게 해 거기에 사람을 던지고, 
사자를 길러 굴에 넣어두고 맘에 안드는 사람은 거기에 사자밥으로 넣는 
잔인한 독재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런 엄청난 독재자를 향해서 
듣기 싫어하는 진리를 가감 없이 증거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편안한 마음으로 다니엘서를 읽지만, 다니엘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을 거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2장에 보니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어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였습니다. 그런데 금왕국, 은왕국, 놋왕국, 철왕국이 
그만 날아오는 돌 하나로 인해 망해 버리고, 
돌왕국이 태산을 이루어 영원한 왕국이 되더라고 다니엘이 꿈을 해석해 줍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왕국이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해도 
영원하지 않고 망할 것이라는 것을 증거한 것으로 
느부갓네살이 듣기에 기분 나빠하면, 다니엘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4장에 보니 느부갓네살이 또 꿈을 꿨습니다. 꿈에 이상을 봤습니다. 
꿈도 개꿈, 악몽, 잡몽 등 여러 종류의 꿈이 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그림이 명확하고(clear) 
잊어버리려 해도 잊어버려지지 않고 
10년 전에 꾼 꿈도 지금 꾼 것처럼 새로운 영몽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다음과 같습니다. 
4:10~15절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더라 

내가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천사의 일종),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느부갓네살이 그 꿈을 꾸고 다니엘에게 해석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왕이시여 그 나무는 왕입니다. 
왕이 그처럼 높아지고 왕의 나라가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왕을 심판하셔서 왕이 그만 어느 순간 꺾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들짐승과 함께 거하고 소처럼 풀을 먹으며 
정신이 이상해져 7년 동안 미친 사람처럼 될 것입니다.”라고 해석해줍니다. 
다니엘은 독재자 앞에서 이처럼 용기있게 진실을 말했습니다.

▲5장을 보면 벨사살 왕이 하나님의 성전그릇으로 술을 마실 때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씨를 쓰는데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네”는 세어본다(count)는 뜻으로 
하나님이 당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니 오늘 밤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데겔”은 저울에 당신을 달아보니 당신은 바벨론 왕으로 
함량 미달인 존재이고 
“우바르신”은 나라는 망하여 두 나라로 나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왕의 나라는 하나님이 나누어 메대와 바사 두 나라에게 나누어 줄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니엘이 벨사살 왕 앞에서 그대로 가감없이 
증거했으니 이것은 목숨을 내걸고 한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해석한 대로 벨사살 왕은 그날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벨사살왕을 마지막으로 망해 버리고 
결국은 메대와 바사 두 나라가 바벨론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왕들의 죄까지 용기있게 지적했습니다. 
4:27절에서 느부갓네살 왕을 향해서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나님이 왕을 심판해서 7년 동안 미친 사람처럼 될 것이지만 
왕이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이 왕을 평안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죄를 짓지 말고 죄를 속하시라는 말입니다.

또 다니엘은 벨사살 왕의 교만과 거역을 지적했습니다. 
5:22~23절에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처럼 다니엘은  용기 있고 담대하게 증거 했습니다. 

▲제가 대전에 있을 때 한 여자가 자기 어머니도 집사고 자기도 집사로 
모태신앙인데 나이 30살에 유방암 3기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부인이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도 집사고 저도 집사로 모태신앙인데 왜 죽는지 
모르겠습니다. 죽는 것은 겁이 안나지만 내가 왜 죽는지 이유나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의 엄마와 너를 보건데단 한 명도 전도하지 않았다. 
그러니 세상에 놔둬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 
그래서 내가 데려다가 천국에 쓰려고 그런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회개하고 “아버지 이제는 내가 예수 증인된 삶을 
살겠습니다.”하고 기도했더니 가슴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더랍니다. 
그러더니 유방암 3기가 깨끗이 낫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십시오. 전도하지 않으면 나처럼 이렇게 하나님이 데려가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용기 있게 증거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동정심을 가지고” 증거했다.

다니엘은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친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용기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례하고 가혹하며 정죄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무례하게 나오는 사람은 좋게 보면 용기 있는 사람이지만 
나쁘게 보면 가혹한 사람입니다. 

가혹하고 무례한 짓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인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4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큰 나무의 꿈을 듣고 얼마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했다 그랬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것을 보고 
“다니엘아 네가 마음에 번민하지 말고 나한테 진실을 얘기해 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진실을 얘기해 준 것입니다.
“벨드사살(다니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4:19

지금 다니엘의 입장에서 보면느부갓네살은 유다를 멸망시킨 왕이요 
자기를 포로로 잡아온 사람이요 유다백성을 수없이 죽인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을 쳐서 심판하신다 할 때 
속으로 잘됐다고 할만도 한데, 다니엘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원수가 망할 때 좋아하지 말고, 다니엘 같은 동정심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은 “그 꿈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진심어린 동정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향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눅23:34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악에 대해서 저항해야 됩니다. 
악은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회적인 악에 대해서도 저항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연애를 거부한다고 데모를 하며 
플래카드에 “동성연애자들은 지옥에서 불타 죽을 것이다
(homosexuals will burn in hell)”라고 써서 들고 다니면서 데모를 합니다. 

동성연애가 옳은 일이 아닌 것은 알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저렇게 잔혹한 표현을 써서 데모를 하면 
사람들이 매우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도리어 기독교에 대해서 저항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동정심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는 친절이 있어야 됩니다. 
친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향해서 
참된 관심과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전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 사람이 나의영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구나”하고 
마음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친절이 있고 동정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건설적으로” 증거했다

1장에서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가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우린 절대 
못 먹습니다. 알아서 하시오. 줘도 안 먹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환관장의 입장도 이해했습니다. 
“환관장도 왕이 시키셔서 하는 일이니 우리가 안 먹으면 
당신 목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안 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열흘 동안만 이것을 제하고 한번 시험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얼굴이 나빠지면 그때는 우리가 먹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흘 동안 채소만 먹어도 우리 얼굴을 하나님이 좋게 
해주시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건설적인 제안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안 자체가 건설적이고 피할 길을 주는 제안이므로 
환관장이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4:27절에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렇게 피할 길이 있으니까 나의 진언을 
왕이시여 들어주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자세로 복음을 증거해서는 안됩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은 모든 기원이 마귀입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이고 파괴적인 하나님이 아니시라 
건설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말 한마디라도 부정적인 말, 파괴적인 말, 
안된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해서 “마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며 
구박하면 남편은 더욱 집이 싫어지고 멀리하게 되며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결국 이혼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보다는 “여보, 오늘도 약주를 드셨어요? 
얼마나 속이 공허하면 약주를 드시고 그래요? 
내일 아침 북어국 끓여 드릴 테니 푹 주무세요.”라고 부드럽게 얘기하십시오. 

그러면 남편도 교회 나가 달라진 부인의 태도에 감동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지옥 갑니다. 당신 속에는 악령이 들어있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죄를 용서받는 길이 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성령 받는 길이 있습니다.”라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말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신문 방송에서 쓰는 언어들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언어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 마인드 구조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계속 읽으면 우리 생각이 긍정적이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있으면 내려놓으시고 
모든 언어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또 우리 모든 태도가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증거했다.

다니엘이 증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장에 사람이 뜨지 아니하고 하늘에서 뜨인돌 하나가 날아와 
신상을 쳤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뜨인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입니다. 

또 3장에 풀무불 속에 세 사람을 던져버렸는데 
보니 네 사람이 풀무불 속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 네째 사람이 바로 성육신하기 이전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9장에도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가 끊어질 날이 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메시야가고난 받을 날이 올 것이다며 
칠십 이레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는 그리스도 중심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이게 전도합니다. 그런데 실컷 밥 사주고 세상 이야기,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돌아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해야 됩니다.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친할 수 있다고 말해야 됩니다. 

즉, 예수 믿어 받은 복이 사죄(Forgiveness)와 칭의(Justification)와 
화목(Reconciliation)인 것입니다. 
사람이 죄사함 받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힘입음입니다. 
사람이 의롭다함을 입어 천국 가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힘입음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 화목하는 것은 예수 이름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증거 해야 됩니다.

결론

다니엘이 이처럼 증거를 해서 바벨론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다니엘의 증거로 인해 동방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마2:1~2절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람들이 무슨 점성술, 마술가라고 말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드디어 베들레헴에 나셨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동방 바벨론에서 온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귀환하지 않고
남아있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보기도 합니다)

12:2절에도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 가운데도 깨어 영생을 얻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의 증거로 몇 명이 믿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증거로 최소한도 동방에는 영생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증거하는 말씀이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성결교회에 가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결교회 목사님도 저를 몰랐고 
저도 그분을 몰랐지만 저를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왜 저를 초청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프랑스에서 목회하실 때 
우리 교회집사님을 통해 저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은혜를 받아 
한번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해 저를 강사로 모신 것입니다. 

제가 양수리 수양관에서 몇 년 전에 한 설교가 
프랑스 파리까지 가서 그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 언제 어떻게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처럼 예수 증인으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