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자기 일에 즐거워 하는 자

LNCK 2023. 8. 7. 16:06

[2020년 11월 22일]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자 - YouTube

◈자기 일에 즐거워 하는 자    전3:16, 빌2:13        2020.11.22.

영국의 런던에 있는 성 토마스 성당 공사를 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주 유명한 얘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공사 현장에, 성당을 설계하고 감독하는 감독이 방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감독관이 지나가다가 일하는 사람 하나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뭐하고 있습니까?'

'보면 몰라요? 돌을 다듬고 있잖아요.

난 지금 돌을 다듬기 위해서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고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뭐하고 있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돈 버느라고 하루 종일 여기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저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고, 만부득해서 하는 일이고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는 여기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라는 자기 긍지를 말하고 있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사람 됨에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보람의 길은

1)첫째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이런 말을 쓰죠. '용도폐기'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지금 쓸모가 있나? 용도폐기된 것은 아닌가?'

혹시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내가 정말 이 세상에 지금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 용도가 있느냐?

쓰여지는 만큼의 보람도, 가치도 있는 건데요.

그러니까 일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이 나의 삶의 가치를 평가해 주기 때문에

일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2) 둘째는 일을 즐겨야 합니다.

의미를 알고, 목적으로 알고, 일이 노동이 아니라 취미생활로 즐기는 것입니다.

이건 플레이입니다. 노동이 아닙니다.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저는 한 60년 동안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지금도 차를 운전하고 다니다. 보니까

많은 목사님들, 교인들 가운데서 제게 물어봅니다.

'목사님, 운전하는 것 피곤하지 않습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그때 제가 말합니다. '이건 노동이 아니거든요. 이건 드라이브거든요.

이건 플레이거든요.'

똑같은 차를 운전하는데, 이걸 즐기는 사람은 드라이브고, 플레이고

또 한 사람은 이건 노동입니다. 힘든 노동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이것을 즐겨야 하는 것이에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즐기는 거예요.

공장에서 일을 할 때도 즐기는 것이에요.

특별히 공부할 때, 공부를 즐겨야죠.

이것이 삶을 바로사는 길입니다.

3) 세 번째로, 그것은 칭찬과 인정을 구하지 않는 겁니다.

일을 하든, 뭘 하든 간에

남이 뭐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잘했다고 하든, 못했다고 하든 상관없어요.

성공했다고 하든, 실패했다고 하든 상관없어요.

나는 나대로의 생을 즐기고 있는 거예요.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에요.

아무 평판도 구하지 않는 것,

즉 사람들의 칭찬,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 사람들이 평판하는 것, 다 상관없어요.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에요.

나는 이 일을 하지만,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

어떤 수고에도 (칭찬이나 성공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세..

바로 그것이 인생을 바로 사는 길입니다.

▲마22장에 보면, 아주 귀한 포도원 농부 비유가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추수철이 되어서 아주 급하게 추수를 해야 되는데

장터에 나가서 일꾼을 구합니다.

일꾼을 모아서 들여보내는데 성경에 보면 제6시, 제9시, 제3시로 나오죠.

이걸 우리 시간으로 바꾸면 아침 9시, 12시, 3시, 오후 5시 입니다.

사람이 부족해서 (최고의 품질을 위해서, 포도를 며칠 만에 다 따야 됩니다)

주인이 나가서,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저녁에 모든 일꾼에게 임금을 주게 됩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주었어요.

이 사람은 1시간밖에 일 안 했는데, 1데나리온을 주었어요.

또 3시간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

주인이 품삯을 이렇게 주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은 '서너 데나리온을 받겠지' 라고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똑같이 1데나리온이에요. 그러니까 주인을 원망합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왜 똑같이 주느냐?'

그때 주인이 대답합니다. 유명하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너와 나와 약속한 것이 한데나리온 아니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남의 얘기하지 말어! 그건 내 마음이고,

네 것은, 너와 나와 약속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교훈이 뭡니까?

1) 첫째는 일하라!

모든 사람은 일하라

2) 두 번째는 때가 늦었고, 기회를 놓친 사람도 일하라.

젊은 사람도 일하고, 지금 숨 넘어가기 직전에 사는 사람도 일하라!

누구나 다 일하라... 이게 주님의 뜻이에요.

3) 그런가 하면, 아무 대가도 바라지 마라.

주인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계산은 끝난 거다.

이걸 잊지 말아요. 그런 고로 일 자체가 은혜요,

은사로 주신 기회이기 때문에,

일할 때도 은혜로, 일 끝낼 때도 은혜로!

그것이 인간의 기본자세다.. 하는 말씀입니다.

▲요5:17절에 보면 예수님 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창조하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당연히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존재 이유입니다.

창조원리 자체가 그렇습니다.

노동에는 신학적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다음에

우리 사람들을 놀고 먹게 만든 것 아닙니다. '다스리라' 그랬어요.

그것도 일이에요. 일하도록 만들었어요. *'다스린다'는 뜻

☞왜 일해야 하나?http://blog.daum.net/rfcdrfcd/10660113

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의 일환으로,

우리가 창조의 역사를 대행해서 일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죄를 지었잖아요.

죄를 지은 다음에 달라진 게 뭐냐?

일이 달라진 게 아니에요. 일이 힘들어진 거예요.

농사를 하는 게 달라진 게 아니에요. 농사에 잡초가 나는 거예요.

그게 달라진 거예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일이 힘들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원래 여자는 아이를 낳게 되어 있어요. 해산은 큰 축복이에요.

그런데 타락 이후에, 해산에 수고가 있게 되었어요. 이게 달라진 거예요.

여자가 됐으면 애를 낳는데, 이것이 얼마나 힘든 게 낳느냐,

감사함으로 낳느냐.. 그 차이가 있는 거죠.

▲제가 소망교회에서 목회할 때 40이 넘은 처녀 하나가 결혼을 했어요.

내가 결혼주례를 해 주었는데, 큰 근심으로 하는 말이

'결혼까지는 했는데, 제가 애를 낳을 수 있을까요?'

그랬는데 애가 생겼어요. 그렇게 자랑스럽게 배를 내놓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내가 아이를 가졌다고..'

병원에서 '산모가 너무 나이가 많으니까,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 했대요.

그러자 산모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선물인데

어떻게 받는 선물인데, 내가 이 해산의 고통을 마다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연 분만 했어요.

그다음에 그 애를 데리고 와서,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수고.. 이게 고통입니까, 아니 이게 저주입니까?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산의 일을 고통이 아니라, 축복으로 여겼다는 거죠)

그런 고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노동 자체가 자유요,

-그 속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가담하는 축복된 은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일에 대한 사도바울의 신학적 이해는 더욱 중요합니다.

노동은 특권입니다.

'일을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시오, 일을 하도록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요, 기회를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했 듯이

'씨를 뿌리는 자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요.

거두는 자도 하나님의 축복이요

물을 주는 자도 축복입니다.

일 자체와 추수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가 가는 길입니다. 그 자체가 은총이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그렇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받아서 주의 사도가 된 다음부터

그의 일생 전체가 (고생의 일을 많이 했지만)

은사요, 은혜요, 축복이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빌2:13~14절은 제가 좋아하는 요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참 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세요.

밖에서는 우리가 하는 것 같으나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일을 향해서 소원이 있어요.

여러분, 자식을 키워 보죠. 자식을 낳자마자 어떻게 됩니까?

소원을 가집니다. '이렇게 되라!'

저는 아들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어요.

제가 고향 이북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요셉도 고향을 떠나서 애굽에 가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다음에 그 모든 가정을 구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 아들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어요.

'네가 가문을 일으켜라, 네 고향을 회복하라!'

그런 의미로 그저 누가 뭐래도 '요셉'이라고 지었어요.

그런 소원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실 때 '소원을 두고 행하시나니' 빌2:13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있어요.

우리 자신은 우리에게 실망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아요.

우리는 낙심하는데, 하나님은 낙심 하지 않아요.

우리는 쓸모없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쓸모없는 사람이 없어요.

다 필요한 대로 쓰시고 계시단 말이에요.

그것이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뜻이에요.

내가 볼 때는 쓸모가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꼭 필요한 거예요.

나를 쓰시는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

그래서 사도마을은 말합니다.

'너희 믿음과 봉사 위에 내가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리라' 빌2:17

일을 할 때 이런 마음으로 해세요.

'일을 하다가 내가 이대로 죽어도 좋다'

'전제와 같이 드려지더라도 나는 기뻐하리라'

그 얼마나 통쾌한 말입니까.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이런 마음으로 해보았습니까?

온 정력을 다 쏟아버립니다. 이제는

'내가 여기서 죽고 끝나도 좋다' 그런 마음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자의 자의식입니다.

그래서 본문 성경은 말합니다.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 전3:22

하나님이 주신 일, 하나님이 함께하는 일, 하나님의 큰 뜻이 있고

경륜이 있는 이 일에, 그 뜻을 알고 행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결혼하셨습니까?

잘했다고 생각합니까, 실패했다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살면서도

'저 사람 만난 건 내 일생의 실수라고..' 그러고 산다고요.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다. 이런 미련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을 바꾸세요. '저분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복이다.

이분과 함께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내가 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최고의 특권이다' 그런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라면, '내가 여기서 전제로 부음이 되고

생을 끝낸다 하더라도 유감이 없다..' 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왜요? 할 일을 다 했으니까.

큰 은총 속에 살았으니까.

오늘 본문에서 그래서 말씀합니다.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 전3:22

확장하면,

자기 가정에, 자기 환경에, 자기 건강에, 자기 나이에,

자기 형편에,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

작가 샤를롯데 케이슬 이 <기쁨의 옆자리>라는 유명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삶 중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습관을 가져야 한다.'

 

여러분, 아무리 어렵지만, 그 속에도 찾아보면 기쁨이 있어요.

한 끼의 식사를 하면서도 하염없는 기쁨이 있어요.

그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왜요? 이런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치유의 은총이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로 내가 먼저 기쁨을 발견하고

내가 먼저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 남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야, 남을 충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지도 말고, 실망하지도 마세요.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하루하루 경험하지 않습니까.

내가 행복해할 때,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내가 기쁘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가 있고

치유의 은사를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 고로, 내게 주어진 일, 자기 일을 기쁘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자기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일'을 저주처럼 생각하고

과거에 지은 무슨 잘못된 내 죄로 말미암아, 오늘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아주 흔히 듣는 못된 이야기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이게 바로 우리의 잘못된 세계관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오늘 내가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그 은총 속에 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에게는, '일' 자체가 은총입니다.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일이나, 큰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가담된 것이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에 내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로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일이든지, 큰 일이든지, 궂은 일이든지

무슨 일이 주어질 때마다.. (불평의) 말을 하지 마세요.

그만큼 나는 삶의 존재의 의미가 있으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