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과 순종
2023-11-26 [2023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26] 조정과 순종 - YouTube
◈조정과 순종 요14:21 2023-11-26 설교 녹취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시리즈 설교) 26강
◑도입
하나님께 우리를 '선교적 교회'로 강력하게 인도하고 계시고요.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과 본질이 '십자가 복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의 삶은, 결국 선교적 삶으로 열매를 맺어야 되고,
선교적 삶을 살려면 '십자가 복음의 삶'이 반드시 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실제로 '십자가 복음의 삶'을 사는 자리로
강력하게 인도하고 계시고
우리 모두가 훈련 받고 그렇게 서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계시고
교회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돕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말씀 묵상을 통해 사람과 동행하는 삶" 시리즈를 쭉 살펴보고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 묵상을 할 것인가?' 라는 부분을 살펴보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과 정기적인 만남의 시간이 필수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서 묵상 해야 한다.
-깨닫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묵상 노트에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붙잡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주시하여 본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맞추어 삶을 조정하고 순종한다. (오늘)
바로 이 부분을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은 "조정과 순종"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를 정확하게 분별했으면,
우리는 그것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와 농담 하기 위해서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헨리 블랙가비의 목사님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책에 보면
그 책도 포도나무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한 두 번 읽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가 닳도록 그 모든 내용을 숙지해서
실제로 그렇게 살도록 강력하게 우리 훈련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사용하고 있죠.
여러분 다 그렇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려면, '십자가 복음의 삶'이 기초가 돼야 합니다.
그 책에 보면 여러 가지 귀한 부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에도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저는 저자의 이 말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제 삶에서 하나님이 그동안 해오신 부분들이
더 선명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한 한 민족을 일으켜 세우신 계획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오신 거였어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찾아오셨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말씀하신 그 일을 지금 실현하러 오셨어요.
이와 같은 그 큰 사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그 분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맞추어,
내 삶을 조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제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에 맞추어
자기 삶을 조종하고 순종하는 것에는 힘쓰지 않고
더 많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리석은 것입니다.
◑1. 두 가지 행동 - 조정과 순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성경을 통해서 주로 말씀하시고,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뜻을 보이시면
우리는 하나님께 반응해야 합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면, 매우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께 반응 하되, 어떠한 상태나 위치로의 반응이 아니고,
보다 근본적으로 인격체 되신 하나님께로 반응하는 겁니다.
우리는 진리에 반응해야 되는데, 성경에서 진리는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진리가 인격체라는 거죠.
아울러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하려면, 반드시 행동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행동이 없는 반응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요. 큰 감격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결단하고 헌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넘어질 지라도, 결단하고 헌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감동이 몰려오고, 결단 하고, 마음속으로 헌신할지라도
행동으로 그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완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감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응하되, 반드시 행동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믿음만 하더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되잖아요.
성경에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반복해서 나오죠.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셨죠.
▲제가 처음 교회에 개척할 때,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인도해 주셨어요.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방향으로 나가는데도
교회가 잘 채워지지 않거니와 *축복의 메시지와 거리가 머니까
오히려 시험 들어서 성도들 중 반쪽이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상황이 닥쳤어요.
그래서 제가 집중적으로 '하나님 알기'를 구하되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의 책을 보고, 테이프를 보면서
깨달아디는 대로 삶을 조정하고 정리해서, 또 성도들에게 나누고 가르치면서
집중적으로 주님을 따라갔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성도들이 제 뒤를 바짝 따라올 줄 알았어요.
제가 처음 개척 1년 동안은, 성도들이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었어요.
소위 말해서 제 코가 석자 였어요.
제 자신이 주님을 더 알기를 집중적으로 구하고, 기도하고, 배우고, 돌이키고...
깨달은 내용들을 정리해서 전하고...
그 당시 얼마나 빨리 하나님이 인도하셨던지
그 당시에 공예배를 네 번 드렸거든요. 주일낮, 주일밤, 수요일 밤, 금요일 밤.
근데 이 4번 예배 중에 한 번만 빠져도
그 다음 시간에 오면 '제 설교 내용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하는 거예요.
그만큼 주님이 빨리 인도하셨어요.
그래서 집중적으로 주님을 따라가면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면서
저는 성도들이 내 뒤를 바짝 따라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한 1년쯤 지나서 성도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돌아봤어요.
그랬더니 제 눈에 보이는 성도들의 모습은,
출발 점에서 아직 한 발짝도 떼지 않고,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는 모습이 제게 보였어요. *'축복'이 아니니까
제가 너무 너무 낙심이 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열심히 메시지를 전했는데...
아직 출발 점에서 시작도 안 했어요.
그 가운데서 제가 계속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주제로 메시지를 전해 나가면,
성도님들과 갭만 더 커질 거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거죠.
제가 너무 낙심이 돼서 하나님 앞에서 낙심하고 있는데,
주님이 저에게 깨닫게 해주셨어요.
그게 뭐냐 하면 '네가 전하는 것은 이정표와 같다' 라는 거죠.
옛날에 시골에서 한양에 과거시험 보러 올 때, 과천 고개를 넘어오는데
"여기로 가면 한양입니다. 이제 한양입니다" 라는 팻말이 있어요.
보니까 감격이 되고 눈물이 나요.
근데 그 이정표를 따라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한양에는 못 가는 거거든요.
실제로 제가 그 당시에 설교할 때, 어떤 성도는 예배시간마다 울었어요.
은혜 받고서 눈물 줄줄 흘리면서 설교를 들었어요.
근데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격이 돼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때로는 결단 할지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궁극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실 포도나무교회에 지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분들도
교회에서 나눠지는(가르치는) 대로 적극적으로 배우고 따라와야
조금씩이라도 실제로 깨닫게 되고, 비록 반복적으로 넘어질지 몰라도
다시 일어나서 주님 앞에서 다시 걸어가기를 시도하고, 그러면서 자라나는 거지...
설교 한 번 듣고, 그냥 (잠시) 감동만 받고 돌아가면
갈수록 갭은 커질 것이고, 나중에는 무슨 말인지 조차 모를 겁니다. 순종의 행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또 똑같은 설교하시네'
실제로 그 실체는 전혀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비판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말씀하시면
내가 반응을 보여야 되는데,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할렐루야!
반드시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모든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반드시 대가 지불이 요구됩니다.
여러분, 히11장에 보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믿음으로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지 쭈욱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라합 쭈욱 나옵니다.
그들의 일생을 한 번 보세요. 공통적인 한 가지가 뭔지 아세요?
그들은 하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 했어요.
대가 지불 없이, 행동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자기 삶에서 놀랍게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자기 삶 속에, 그리고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근데 대가 지불은 원치 않습니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축복.. 예스!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 할렐루야!
대가 지불.. 노 땡큐!
대가 지불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다는데요.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가 지불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권으로 여깁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헌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부분을 기도 하게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를 통해서 너무나 놀라운 일들을 하나 하고 계신 것을 감사하면서
그 일을 위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특권인가를 인식 하며
감사하면서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그것이 우리의 특권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단톡에) 올린 글 중에 또 하나가 있어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요.
재키 플린저의 얘기예요.
<재키 플린저의 추룡> 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왔는데, 그 분의 얘기예요.
그분은 영국 분인데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처녀로서 홍콩으로 왔어요.
*Jackie Pullinger 1944년생, 22세로 1966년경 홍콩에서 단독 사역 시작
지금은 홍콩이 중국으로 다시 귀속 됐잖아요. 그때는 영국령이었죠.
영국이 홍콩에 대해서 1백 년 동안 영국이 다스리도록 계약할 때
어느 한 지역은 빼 놨대요. 이름을 '월더 시티'라고 호명했대요. Kowloon Walled City
실제도 '시티'만큼 큰 지역은 아니고, 한 블럭 정도 되는 구역이에요.
여기는 영국 총독의 어떤 행정력도 통하지 않는 거예요.
중국도 여기 당연히 안 미치고, 홍콩의 어느 지역인데, 영국 총독의 관할권이 지배 안 해요.
조차권 계약에서 빠졌기 때문에. (*과거 군사기지)
그래서 여기는 온갖 종류의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했죠.
마약 중독, 매춘, 갱들의 난동, 그 위상 상태도 열악했고,
밖에서 범죄하면 이 구역으로 도망가면, 영국 경찰이 여기 못 들어갔어요.
거기는 관할 구역이 아니었으니까요.
근데 그 젊은 영국 아가씨가 그곳으로 사역하러 들어간 거예요.
거기 가서 마약 중독자들, 은퇴한 창녀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했어요.
그리고 정말 많은 열매를 하나님이 맺게 하셨거든요.
그게 <재키 플린저의 추룡>이라는 책입니다. *당시 22세로 시작
또는 <재키 플린저의 장벽을 부수고>
그 분이 이렇게 하다 보니까, 또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 하시니까
세계 여기 저기서 이렇게 강사로도 많이 섰어요. 정말 귀한 분이에요.
한국에도 왔었는데요. 그러면 이제 사람들이 그런다는 거죠.
"플린저 자매님, 결혼도 못하고..." 약간 좀 이렇게 동정 하는 차원에서 말을 하죠.
그러면 한국에서 그 분이 그런 말 하는 것을 제가 직접 들었어요.
자기는 이게 특권 privilege 이라는 거죠.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시고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할 게 별로 아무것도 없는...
그러다 보니까 대가지불도 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먹고 살만 하고...
저는 이런 교회에서 단 하루라도 목회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한 성질 하잖아요.
제가 스스로 제 마음이 볶여서 죽을 것 같아요. 그런 데서는.
그게 무슨 신앙 생활이에요? 그게 무슨 크리스천의 삶이에요?
거기에 무슨 인생의 의미가 있고, 목표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고, 삶의 목적이 있나요?
그렇게 하다가 천국만 가면 되는가요? (*간다는 보장도 없어요)
천국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곳입니까?
저는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주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고,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보이시고...
우리가 기쁨으로 그 일에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참여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특권이 되는... 그게 우리의 신앙 생활에요.
주님이 그렇게 우리 가운데 행하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포도나무 지체들이여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반응해야 되는데
그건 대가 지불이 요구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아주 뛰어난 책에서
행동을 두 가지로 나눴어요.
이건 그분이 참 잘했어요.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자' 단순하게 이렇게 말하고 그치지만,
그분은 '조정과 순종'으로 디테일하게 나눴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조정이 먼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조정이 먼저 있어야 비로소 순종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정이 먼저 없으면, 순종이 가능하지 않다는 거예요.
'조정'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조정하는 거예요.
'순종'은, 우리가 삶을 조정하면,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환경을 인도하세요.
그럼 그 구체적인 인도에 내가 순종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조정이 먼저 있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순종이 비로소 가능해요. 할렐루야!
그래서 조정은, 여러분이 순종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준비시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방법에 맞추어
여러분의 삶을 조정하고 나면
여러분은 이제 순종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평소대로 삶을 영위하면서, 당신이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성경 전체를 볼 때 사실입니다.
◑2. 조정
조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맞추어 내 삶을 조정하는 겁니다.
제가 이해하기 쉽도록 제 예를 들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이 저는 목회자로 부르셨어요.
하루는 학교 다녀와서... 그 당시 우리가 사당동에 살았는데
우리 형제들이 쓰던 방이 있었어요.
그 방에 벽에 십자가가 걸려져 있었죠.
그 십자가 앞에 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엎드렸어요.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저를 복음사역자, 목회자로 부르신 것을
뚜렷하게 알겠더라고요. 전혀 예상치 않았는데...
'어?'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부르 셨을 때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 삶을 목회자로서, 주의 종으로서 하나님께 영원히 드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삶은, 그 하나님과 그 부르심에 맞추어
그 자리에서 영원히 조정되었습니다.
자 보세요. 제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간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 다음날 신학교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고3때니까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바로 신학교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집이 무척 가난했기 때문에, 제가 그래서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고요.
그 기간 동안에 또 병역 의무도 마치고, 합해서 은행근무를 5년 했고요.
나중에 하나님께서 저를 미국으로 공부하라고 하도록 인도하셨을 때에
제가 직장을 사표내고, 미국 신학교에 공부하러 유학가게 된 거죠.
그러니까 실제로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신 그 일을
구체적으로 순종해 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부르시던 그날,
제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추어 이미 <조정>되었습니다. *고3때
저는 그 이후로 저의 부르심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일주일 동안 어떤 이유로 의심했던 적이 있었는데
세상에 어떤 삶의 의미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 후에 다시 회복도 되었습니다만
그래서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 조정돼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저는 제게 맡겨진 일은 충실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제 삶의 모든 부분이 이 목표를 위해서
숙직 하면서도 공부를 하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영어도 배우고 기도하면서 조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을 때 그때 조정이 안 됐다면
나중에 순종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을 조정하되, 어떤 상태나 어떤 목표를 향해 조정하는 게 아니라
진리이인 하나님께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을 때,
저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목회를 위해... 제 삶이 조정된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 부르신 하나님께... 제 삶이 조정된 거죠.
이 둘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내가 만약에 목회를 위해 조정 되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기 쉬운가 하면, 목회자로서 목표를 세우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그 일을 위해 준비하고, 그걸 위해 기도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겁니다. *목표 지향이 아니라 '하나님' 지향이 정답
△과거에 저희 교회에 한 지체가 있었어요.
그분이 교회에 나오게 됐는데, 저한테 개인적 직접적으로 하는 말이 뭐였냐면
이 교회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과, 자기에게 주신 비전이 일치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을 하나님이 여기로 보내셨으면
그럼 자기는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일에 한 부분으로 드려지도록 부르신 거잖아요.
근데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비전에는 관심 조차 없었습니다.
비전이 같기는 같은데, 자기의 비전을 추구하는 것이고요.
교회는 자기 비전을 실현하는 발판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끝끝내 자기 비전(야망)만을 찾는 거죠.
오늘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다고 그러면서
그와 비슷하게
자기가 세운 목표, 자기가 세운 계획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 배후에는 개인적인 야망이 살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께 조정되어지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들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죠.
하나님이 앞서 가서 일하실 때, 순종하는 자리로 나가는 거죠.
▲1. 조정은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조정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환경, 우리의 인간 관계, 우리의 사고 방식, 우리가 선호하는 것,
우리 행동,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개인 생활, 가정 생활, 교회 생활, 직장 생활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따라 우리의 삶이 조정 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조정의 종류는 많습니다.
이 말은 모든면 에 다 조정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이 부분 중에서 어느 특정 부분을 조종하라'고
말씀, 감동주시는 부분을.. 조정한다는 말인데, 그 범위는 광범위한 거죠.
△그런데 '조정'에는 하나님께 동의하는 게 포함됩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가 포함됩니다.
회개의 첫 단추는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삶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게 회개의 첫 단추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책에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씀을, 당신의 일상생활에 사용하시는 예 중에 하나입니다.
당신이 매일 읽는 말씀의 차례가 시37편에 이르렀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전에도 시37편을 수차례 읽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읽어가던 중 21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며'
당신은 이 구절에 마음이 쏠립니다. 당신은 그 구절을 다시 읽고 묵상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꾸었으나 갚지 못한 빚을 기억해 냅니다.
당신은 그 말씀이 당신에게 해당됨을 깨닫습니다.
성령님이 방금 그 말씀을 통해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진리에 맞부딪쳤습니다.
당신은 이제 빚지고 갚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눈에는 악인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성령님은 이 구절이 적용되는 당신 삶의 (과거의) 특정한 사건에
당신의 관점을 집중시키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죄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 분만이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방금 성령님을 통해, 성경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장애물이 될 만한 어떤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일단 말씀하시고 나면,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신은 그 진리로 당신의 인생을 <조정>시켜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 당신은 이렇게 조정해야 합니다.
먼저 당신은 그 진리에 동의해야 합니다.
즉 '꾸고 갚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인이다'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거죠.
당신은 당신의 기억에 떠오른 그 사건에,
그 진리가 당신에게 특별히 적용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악인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동의'부터 회개가 시작되는 겁니다)
당신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꾸는 것과 갚는 것에 대한
당신의 이해, 생각, 가치관을, 하나님의 뜻에 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조정입니다.
이렇게 '조정'은 회개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가, 바로 나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 조정할 때입니다.
블랙가비 목사님도 참 잘 표현 하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낼 때가 되었을 때
그 타이밍에 모세에게 찾아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가,
하나님의 그 일을 이제 시작하시려고 하시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가,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 분의 말씀으로 조종할 때입니다.
이때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가 순종해야 할 때다' 라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뭐라고 말했냐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가
우리가 그 하나님 말씀에 맞추어, 우리의 삶을 조정해야 할 때다' 라고 말했습니다.
'조정'이 먼저 되어야, 나중에 '순종'이 가능합니다.
▲아까 제가 제 얘기를 드렸는데요, 이어서 계속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를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신 걸 뚜렷하게 알았는데요.
제가 만약에 그때 제 삶을 조정하지 않고
'뭐 때가 되면 하나님이 제 길을 여시겠지' 하고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면
그 때는 제게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지나 갔더라면, 미국에 공부하러 가는 길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고요.
전혀 생각지도 못 했을 것이고요.
그러면 제 인생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에서는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 때
우리는 그걸 그냥 환경이 열릴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거나
그때까지 (하나님의 말씀, 뜻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는, 하나님이 움직 이실 때
내가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반복적으로 이 일을 경험 하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미국에 갈 때도 그랬고요.
제가 지금 교회를 섬기면서도 자주 겪는 일인데요.
'하나님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예를 들면, 제가 목회자로 부름 받았어요. 그때부터 제 삶이 조정되었어요.
직장도 다녀요. 그러나 내 삶은 분명히 조정 돼 있어요.
또 기회되는대로, 준비하고 기도하고...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선교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영어를 공부하는 중에
전혀 예상치 않는 과정에서 미국 유학을 말씀하시고
환경적으로 불가능한데,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항상 예스라고 말씀하시고
그러면서 유학의 길을 길을 여신 거였거든요.
▲자 그러면 이렇게 삶을 조정해서 나가는데 다음 단계는
그분이 역사하셔야만 됩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근데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할 게 없는데
우리가 조정 되어서 주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주시해 볼 뿐만 아니라
주님께 은혜를 구하고, 또 보여주는 대로 준비하며 깨어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실 때, 전혀 갈 수 있는 상황이 안됩니다.
그 길이 열려있는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여러 번 반복적으로 경험한 게 뭐냐면
이렇게 준비하고 기다리는 거 외에는,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막상 하나님이 길을 여시면,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제 발뒤꿈치에 연기나도록 막 달리게 되더라고요.
막상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매우 바삐 움직여 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매우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3. 순종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삶을 하나님께 조종 하셨으면
이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삶이 조정 되었다. 할지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의 책에 이어서 이렇게 나옵니다.
「이것으로 당신이 해야 할 할 일이 모두 끝났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빚을 갚기 전까지 당신은 하나님의 눈에 악인으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순종이 들어와야 할 자리입니다.
빚을 갚음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과 보다 더 온전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계시된 진리를, 즉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이해와, 하나님과 당신과의 관계에 묶어 놓으십시오」
제가 이 설교를 그 당시에도 했을 때
어떤 분은, 이 설교를 듣는 중에, 자기가 빌리고 갚지 않은 빛을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셨어요.
적금을 넣어 가고 있었는데요. 이자 손해를 보고 적금을 해지해서
그 빚을 갚았어요.
조정은 순종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럴 수 있어요.
갚기 원하는데 갚을 돈이 없다고요?
조정부터 하셔야 돼요. 동의부터 해야 돼요.
그게 죄이고, 그런 자기는 악인인 것을 인정해야 해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죠.
그리고 알바를 뛰든지, 지출을 줄이든지 해서 갚을 돈을 모으는 거죠.
그런 의지와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구하게 되면 주님이 도우시는 거죠.
조정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순종이 가능하다니까요.
▲1. 순종 하지 않는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죠.
예수님께서 말씀에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해 지은 집의 비유입니다.
둘 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모래 위해 지은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안 들은 사람으로 생각하는데요. 아니요.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둘 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듣고 순종한 사람이고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듣고 순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근데 그 구절을 보시면, 시제가 과거형이에요.
'지었다' '무너짐이 심했다' 이게 다 과거형이에요.
뭘 알 수 있냐면, 예수님이 그 비유를 말씀하시기 바로 얼마 전에
이스라엘의 큰 홍수가 있었던 것 같고요.
그 홍수로 인해서 모래 위에, 그 당시 가난하니까 그냥 아무데나 대강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그 수많은 사람들은 그냥 홍수 때문에, 휩쓸려 떠내려가서
집이 무너지고 재산 피해가 있었고, 심지어 인명 피해도 있는 그런 일이 닥친 것 같아요.
시제를 과거형으로 쓰신 것을 봐서,
예수님이 이 말씀을 통해서, 그걸 지금 상기시키신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거 아세요? 모래 위에 집을 지어도 보통 때는 그대로 남아 있어요.
언제 무너진 줄 아세요?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야 무너져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아도
보통 때는 멀쩡하게 남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그 허술한, 겉만 번지르했던 신양이 드러나고 마는 거죠.
▲2. 순종의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것을 잘 볼 수 있는 구절이 신명기 30장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하는 구절입니다.
신30:15~18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택하는 길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두 번 다 가장 먼저 나오죠. 왜요.
이게 가장 핵심이니까요. 이게 되어야 나머지가 가능하니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단 말은 우리가 잘 하는 데
신명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죠.
우리가 순종의 문제가 있다면 사랑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반대로 순종은 사랑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기도 하는 등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겁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여기에 보십시오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느니라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 계명을 안 지킬 것이라
내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고
내 계명을 안 지키는 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 명확합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면 어떻게 할 거라고요.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 하실 거라고요.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 하셨어요.
근데 우리가 순종할 때, 그 사랑 안에 머물게 돼요.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흥청망청 살아갈 때도
아버지의 사랑은 변치 않았어요.
그러나 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 가운데 있지는 않았어요.
순종할 때,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와서 나와 거처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거라고 이렇게 말씀하죠.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