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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세가지 통로

LNCK 2024. 11. 1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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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세가지 통로           창15:1~6           2012.08.31.설교문 스크랩

 

오늘은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주 꿈을 회생해야 합니다.

오늘 밤 (철야)에 오신 분 중 꿈이 있는 분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빛이 다릅니다.

 

우리는 꿈을 따라갑니다. 꿈이 없으면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꿈은 아주 중요합니다. 꿈은 미래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꿈꾸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모두 꿈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에 꿈 이야기가 많습니다.

계시록도 밧모섬에서 요한이 보았던 꿈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도 모두 꿈을 꿨습니다.

 

사도행전도 환상, 꿈, 예언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꿈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은 모두 꿈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꿈꾸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은 꿈꾸는 자여야 합니다.

행2:17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을 꾸리라’

*꿈, 환상, 예언은 사실상 같은 의미, 모든 세대가 예언한다는 의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신자의 꿈은 자신이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창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래서 꿈이나 환상은, 그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분명한 경우,

계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공동체에 대한 마스터플랜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설계도를 먼저 주시고 그 꿈을 향해서 가고

꿈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은 열두 형제가 있지만,

그 형제 가운데 가장 다른 인생을 살게 했던 확실한 꿈입니다.

 

요셉이 꿈 때문에 미움을 받았지만,

그 꿈이 성취되었을 때 형제들을 다 먹여 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라와 열방까지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됩니다.

꿈을 좇아갔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밤에 여러분의 꿈이 활활 타오르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창세기 15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꿈을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어서 약속받았던 자식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현실은 꿈에서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더는 자식을 기대할 수 없어서 상속자를 엘리에셀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꿈이 보이지 않으면 현실에 집착하게 되고 철저하게 현실주의자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엘리에셀이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팔레스타인의 깜깜한 밤하늘에 쏟아질 듯 한 수많은 별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주 시청각적이십니다.

 

예수님도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며 시각화하고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가끔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에서 다른 각도로

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익숙한 곳에서는 잘 못 보던 것이 여행이나 다른 곳에서 보면 통찰력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에 갇혀있는 아브라함을 바깥으로 이끌어 내셔서

하늘을 보게 하시고 비전을 열어주셨습니다.

 

1절을 보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환상 중에 말씀이 임했습니다. 여기서 환상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비전, 꿈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들을 보게 하시고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엄청난 비전을 주십니다.

지금 자식이 없어서 자신의 종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하는 나이가 든 아브라함에게

믿을 수 없는 비전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비전이 일어날 때 특징은

현실적으로는 믿기지 않고 계산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계산이 가능하고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꿈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있는 선을 훨씬 넘어선 세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28:18~20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한 지상명령을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예수님이 주신 비전인데

모든 민족이라는 단어는 갈릴리 촌사람인 제자들에게 와 닿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가 몇 개가 있고 주변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신 이 비전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별처럼 창대하겠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비전, 환상, 꿈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수단을 동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도저히 못 깨달을 때, 또 못 깨달을 기묘한 일들,

이때는 하나님도 비상 수단을 동원하시는 거죠! 또한 긴급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셨던 사도행전의 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비전도 어마어마한 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꿈을 주시고 일을 하십니다. 항상 꿈이 먼저 갑니다.

그런데 이 꿈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먼저 내 인생에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꿈이 발생하고 일어나게 됩니까?

 

◑1. 첫 번째는 <믿음을 통해서 꿈을 꿉니다>

 

살다 보면 현실에 부딪혀서 꿈이 부서지고 사라질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하게 됩니다.

실패의 경험을 자꾸 하다 보면 낙심되고, 낙심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존감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자존감이 무너져 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치료해야 할 부분 중에서 자존감의 영역이 아주 중요합니다.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면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비관적이고 부정적이게 됩니다.

 

그러면 늘 불안하고 두려움이 엄습해 오니까 소극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믿음의 삶과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무너진 상태는 생각이 몹시 가난해집니다.

꿈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생성되고 자라가게 되는데

생각이 무너지게 되면 모든 가능성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이때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실패했어도

실패에 짓눌리지 않고 낙심과 절망의 마음을 밀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낙심을 몰아내고 낙심의 자리에 꿈이 시작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생각이 풍성해지고 여유로움이 생기게 되고,

그 생각 안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신감을 갖게 하시고, 생각 안에 희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 안에 계속적으로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안에 믿음의 작용이 계속 일어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상황은 힘들어도

의욕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실패의 반복으로 오는 낙심 때문에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나님과 연결할 줄 압니다.

하나님과 연결될 때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크기는 믿음의 크기입니다.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크기는 내가 믿는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바라보게 되면 우리 믿음의 세계는 그만큼 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 의해서 생각이 주장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기로 세상을 바라보고

계산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스케일이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12년 전 제가 시드니에서 목회할 때       *2000년 경

교회는 부흥되는데 장소를 옮겨 다녀야 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도심지 강가에 있는 큰 공장을 7백만 불에 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인 사회에서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해본 적이 없고

이민자들도 모아놓은 돈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도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저에게 그 돈이 그렇게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7백만 불이 꼭 손에 잡히는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그 건물을 계약했다고 하니까

주변에서는 진짜 큰 사고를 쳤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우리 안에 믿음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는데, 허가 후에 다시 보니 건물이 작아 보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오면 어떡하느냐’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기쁜 마음을 주시지 않고 새로운 곳,

더 큰 곳이 있으니 내려놓으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확신이 왔을 때 당회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제직회, 공동의회에서 통과를 시키고 새롭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계획하신 3만 평, 천백만 불 짜리 땅을 주셨습니다.

한인 타운과 가까운 도심지에 큰 땅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넉넉하게 사고 남을 돈을 주셨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진 것은 없는데 하나님이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믿음의 훈련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크신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함께 자라가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면 좀 허황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믿음 안에서 경험하다 보면 우리 나름대로 영적인 계산법이 생기게 됩니다.

 

일을 할 때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비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안 되는 이유가 먼저 떠오르면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될 것이라는 확신과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믿음의 사람입니다.

 

어떤 일이든 100% 다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100% 다 안 되는 일도 없기 때문에

내가 어떤 반응을 하고 확신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1%의 가능성을 보고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90%의 가능성이 있어도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커져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좋았는데 갈수록 믿음이 쪼그라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삶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되면서 관념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론을 따지고 공부하면서 머리는 커지는데, 관념적이게 되고 믿음의 연습이 없습니다.

 

믿음을 현실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지식은 이론으로만 남아서 내 안에서 냉동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얼려진 상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에서 믿음이 계속 연습한다는 것은 모험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모험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저돌성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호주에 가는 것이 모험이었습니다.

언어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재정적으로도 도와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그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곳에서 믿음의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중에서 최고의 신학교가 바로 ‘광야 신학교’라고 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도 돈이 없어서 학비를 제때 낸 적이 없습니다.

기댈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기도밖에 길이 없어서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나라 60~70년대에 기도원이 많이 생겼는데

그때는 모두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때입니다.

어려운 형편에서 끝까지 기도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커질 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꿈을 심어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머리로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현실 세계 안으로 나를 밀어 넣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기대감이 충만하게 일어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믿음은 꿈이 자라게 하고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소망을 가지게 되는데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는 <성령이 우리에게 꿈을 갖게> 하십니다.

 

성령은 꿈을 일으키는 영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2:17

 

오순절 사건 이전의 신자들은 잠자는 거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주어졌을 때 그들은 깨어난 거인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꿈을 일으켰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공동체에는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자 남종, 여종, 아비, 자녀 할 것 없이

모두가 할 것 없이 꿈을 꾸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에서 일어난 일은 꿈입니다.

성령은 꿈을 꾸게 하시고 미래를 보는 미래지향적인 공동체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은 역동적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가만히 있지 못하게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 영어로 'Acts'입니다. 성령은 역동적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꿈을 주시고 미래를 보게 하십니다.

성령의 사람들이 모이면 일이 일어납니다. 성령은 꿈만 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에 생명을 걸게 만드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으로 춤추는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앉아서 왕년에 열심을 내었던 이야기꽃을 피우는 교회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예측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환상과 꿈과 예언을 해주실 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베드로마저도 성령을 체험했지만, 성령이 이끄시는 것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집에 가라고 하셨지만 주저했습니다.

성령으로 꿈을 가진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자꾸 나를 미래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는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공동체는 조용하고 현상유지만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끊임없이 꿈을 주시고, 꿈이 사라지지 않고 식지 않게 하시고,

꿈이 더 강렬하게 하시고, 달려갈 수밖에 없이 흥분되게 됩니다.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꿈을 품은 사람들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공동체가 되기 원합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친히 움직이는 역사가 있기 원합니다.

 

조직의 틀 안에서 돌아가면 소망이 없습니다.

어느 부서에 눈치 보고 사람들의 평가에 귀 기울이고

쓸데없이 자존심 싸움하는 곳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예측 불허의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영감이 떠오르고 가슴이 불탑니다.

 

성령의 사람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정적이지 않고 동적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세계제국의 모든 힘의 패권을 가진 로마의 가이사 앞에

나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마침내 로마로 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꿈이 일어날 때 현상유지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기대할 때 한계를 돌파하고 장애물을 통과하지 우선멈춤은 거부합니다.

 

사도행전 1: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거침이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에게 꿈을 주시면 장소적, 공간적인 한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꿈을 가진 사람은 사고의 폭이 넓습니다. 한계와 고정관념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일도 행하실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 성령이 임하시기 원합니다. 나이와 성별, 학별, 직분과 상관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꿈은 모든 카테고리를 넘어섭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예측 불가능한

교회가 되는 일에 여러분이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 <기도를 통해서 꿈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자체가 꿈꾸는 행위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생각은 무정란과 같습니다.

무정란은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생긴 꿈이나 생각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의 생각은 그냥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 속에 꿈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말씀을 품고 기도하다 보면

그것이 내 안에서 꿈으로 바뀌는 순간이 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와 닿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을 붙잡고 빨리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시간은 말씀이 꿈으로 전환되는 시간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동안에 다시 희망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꿈이 마치 현실 속에서 잡힌 것처럼 다가온다면 응답된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내 안에 갈망이 생깁니다.

 

기도할수록 갈망이 강해지고 꿈이 확대되고 확신하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절망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할 일이 있어도

기도하다 보면 사라지게 됩니다. 기도가 절망을 밀어냅니다. 그것이 기도의 위력입니다.

 

응답되고 안 되고는 나중의 문제이고, 기도하는 시간에

세상으로 받았던 좌절과 낙심과 절망감으로 쪼그라들었던 가슴이

활짝 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이미 응답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꿈을 불어넣어 주시고 자신감과 확신을 주실 때

그 꿈은 이미 현실이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도하다 보면 겁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기도가 살아있다면 인생은 전성기입니다.

내 안에 불가능의 벽이 허물어지고 철옹성같이 나를 붙들고 있던 이성의 세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원하시고

우리의 꿈과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솟아오릅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소원이 있어도 강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강한 소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 속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소원과 갈망이 불타오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거룩한 소원을 가지지 않는다면

인생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엉뚱한 곳에 인생을 낭비하게 되고 엉뚱한 비전이 나를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꿈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구하는 것을 얻습니다. 기도한 것을 이룹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얻지 못함은 우리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남에게 나누고 싶은 인생을 살고 싶다면 강한 열망과 수고로 기도해보십시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도 책임지는 인생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꿈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낙심하고 절망하고 고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때로는 교회 다니는 분이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괴로운 사정을 털어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때 기도의 사람은 나도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시고 꿈의 사람으로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절망을 물리치고 가슴이 뛰도록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 주변의 문화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바꿔놓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뜨겁게 기도를 유지하는 사람이 청춘입니다. 기도가 뜨거우면 언제가 피가 뜨겁고

미래가 밝고 눈이 어두워지지 않습니다.

늙지도 않고 생각이 아름답고 언어가 살아있고 살맛이 납니다.

 

▲좋은 꿈을 꾸고 이루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기도를 쉬지 않을 때

하나님은 더 큰 꿈을 우리 안에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 꿈을 가진 여러분을 통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신다면 먼저 우리 안에 기도가 일어나게 하시고

기도 안에서 꿈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성령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셔서

꿈과 환상을 일으키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실패와 좌절을 겪는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꺾이지 않고 끊임없이 꿈이 재생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성령으로, 기도로 꿈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시고 거룩한 도구로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믿음과 성령과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꿈이 일어나는 밤이 되길 바라고

여러분에게 예측 불허의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기도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원하고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