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새벽을 노래하라
◈어둠 속에서 새벽을 노래하라 막5:25~34 2011.12.16.설교문 스크랩
(※여기 나오는 혈루병 여인의 '믿음'은,
병을 고침 받는다 라는 믿음도 당연히 있었지만,
더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꼭 고침 받는다'도 믿음이지만, '주님이 선하시므로 무슨 응답을 주셔도 좋습니다'가
진짜 믿음입니다. 여인은 그 진짜 믿음, 절대 믿음을 가졌는데, 병까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나옵니다.
12년 동안 불치병을 앓았는데 짧은 세월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데 뒤에서 옷을 살짝 만졌는데 병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기서 이 여인의 믿음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는 체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연인은 병 낫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당했고 가진 것을 다 허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었다면 희망을 품었을 텐데 노력했지만,
병은 갈수록 더 심해져 갔습니다. 1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혹시 1달 정도 병석에 누워본 적이 있습니까? 1달도 아주 깁니다.
중증을 1년 동안 앓는다고 해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6개월이라도 아주 힘듭니다.
그런데 12년이면 웬만하면 체념할 것입니다. 삼세번, 칠전팔기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12년 동안이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면 이미 몸보다 마음이 더 망가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의사를 만났고, 많은 시도를 했고, 백방의 노력을 하고, 온갖 약을 다 썼지만
듣지 않으니 ‘나는 이제 죽는구나, 불가능하구나.’ 생각하고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상태로 체념이 찾아옵니다.
▲체념은 아주 무섭습니다. 체념이 찾아오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게 되고
살 의욕이 없고 죽고 싶습니다. 여인은 이렇게 될 수 있는 충분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체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4절을 보면 예수님의 일행은 어머 어마한 무리였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군중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이 밀려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픈 몸이고 예수님은 지나가는 도상이라 잠깐 꾸물거리는 사이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릴 수 있어서
여인은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모든 것을 뚫고 예수님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체념하지 않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이 연말에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떤 분은 기도하기도 지쳐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체념하지 않고 구한다는 생각으로 나오신 줄 믿습니다.
믿음은 체념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향숙 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장애인 올림픽위원회 위원, 대한장애인협회 회장,
열린우리당 비례대표제 1번으로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태어난 지 1년 6개월 만에 소아마비에 걸린 중증장애인이고
학교에 다니지 않은 무학력자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분이지만
국회활동을 할 때 국회가 주목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특별히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체 중증장애라서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활동하기가 굉장히 불편한 분입니다.
어릴 때 학교는 못 갔지만, 하나님이 말씀은 몰라서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2살 때까지 혼자서 집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목사님이 휠체어를 선물로 주셔서 혼자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삶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자신이 장애인이라 위로해주는 것이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지상에서 자신의 달란트를 어떻게 펼치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만 하고 목사님들도 지상에서 삶이 힘드니까
천국에 소망을 두라는 설교만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하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이 분은 책을 일만 권을 읽었고 십 대 때 성경통독을 33번을 하고
그 뒤로도 수도 없이 읽어서 세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의 별명이 ‘만리장서’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읽고 인생의 가치관과 인생의 틀이 잡히면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체념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당당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비관하고 체념하고 자신에 대해서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인생이었지만
목사님이 전해준 성경책 한 권을 통해서 인생이 바뀌면서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에서 중요한 정책을 세우고 장애인을 위한 국제적인 회의에도 다니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체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이 반복되면 체념하고 낙심합니다.
그래서 맥스 루케이도는 “믿음이란 어둠 속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새와 같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새벽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새처럼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체념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기대했습니다.
믿음은 기대하는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했습니다.
그런 적극성이 결국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 여인은 강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출발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에는 항상 기대가 있습니다.
부흥도 잘 될 거라는 기대가 있는 곳에 임합니다.
기도제목이 생겼다는 것은 내 안에 기대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기도제목을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분명한 기대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경 바디메오에게 “너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평생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실컷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기대가 있는 사람은 정확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오늘 밤에도 분명한 기대감을 가지고 오신 분은 그것을 얻고 돌아갈 줄 믿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12년 동안 중증으로 누워 있었지만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나을 것 같은 기대감이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이 여인은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결혼도 서로 서로의 기대와 기대가 만나야 합니다.
한 사람이 부모에게 떠밀려서 선보고 결혼해도 결혼생활이 잘 이루어지기 어려운데,
양가가 다 떠밀려서 결혼한 사람들은 금방 헤어져 버립니다.
믿음은 소원과 열망의 기대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흥분이 일어나고 주위의 환경과 여건에 상관없이 기대하게 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죽을병도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믿음이 떨어지면 기대감이 없고 죽을 것 같이 살아갑니다.
이 세상을 보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뭘 할 것 같지만
멀리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곳에 이성적인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소원이 불길 같이 일어나서
믿음으로 기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삶의 기대감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은 것이
주님을 만난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보통 젊은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조그만 구멍가게를 해도 기대감으로 합니다. 자신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나아가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대하는 사람의 기도 수첩은 빽빽합니다. 기대감이 많은 사람은 기도가 깁니다.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도할 것이 없어서 5분이면 끝납니다.
그런데 기대하는 사람은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라는 말씀 때문에 열방을 밟으면서 기도하니까 기도가 길어집니다.
베르디는 85세에 아베마리아를 작곡했습니다.
괴테는 80세에 소설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5세에 베드로 성당의 공사를 완공했습니다.
경영학의 대부인 피터 드러커는 90세가 넘어서도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에 대한 책을 아주 많이 냈는데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은 어떤 책이냐?’고 물으니
90세가 넘었는데도 ‘다음에 지을 책’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골다 메이어가는 72세에 수상이 되어서
80세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는데, 8년 동안 백혈병을 앓고 있으면서 수상직을 감당했습니다.
성경에도 갈렙은 85세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땅을 정복해서 나누고 있는데
자신은 아직 정복하지 않은 땅을 정복하겠다고 험한 족속들을 향해서 진취적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믿음은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가장 긍정적인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남들은 웃긴다고 할지 몰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쉽게 희망을 꺾고 접습니다.
아무리 봐도 기대할 것이 없으면 기대할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안 좋은 상황에 매이지 말고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마침내 승리할 줄 믿습니다.
좋은 지도자, 뭔가를 이룬 지도자들의 특징은 늘 기대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들은 조용히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녹슬기를 원하지 않고 달아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대감과 소망과 소원과 꿈이
늘 일어납니다. 오늘 혈루증 여인도 기대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 세 번째는 최소한의 믿음만 있어도 역사 한다는 것입니다.
28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대단한 일을 해야 나을 수 있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손만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완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최소한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역사는 내 편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이라서
고압선에 가까이만 가도 접선이 되어버리듯이
하나님의 거대한 능력에 연결선 끝이 약간만 닿아도 이루어집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믿음을 쌓거나 직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손만 닿으면 낫겠다’는 작은 믿음만 있었는데도 위대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흐를 수 있다면 일은 일어납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과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바디메오가 눈을 뜨고 문둥병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사도행전에서도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스쳐 지나가며 말했는데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면 작은 믿음이라도 10년, 20년, 30년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한순간에 끝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것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렸을 때 쳐다보니까 낳았습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쳐다보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쳐다만 보는 것인데도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열고 기대와 소망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지 모릅니다.
오늘 이 밤에 그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있을 때 모세가 지팡이를 휘두른 것밖에 없었는데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도 여리고성을 돈 것 밖에 없었습니다.
혈루증 여인도 손만 닿으면 나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 간절함이 그를 살렸습니다.
옷을 만지는 일은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손만 닿았는데 나았습니다. 조금만 주님께 마음을 내밀고 주님과 관계된 일,
기뻐하시는 일을 무조건 한번 해 보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주 작은 순종을 할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4. 네 번째는 믿음은 인생을 한순간에 바꾼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믿음의 행위였지만 12년의 고통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원을 결정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꿔놓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대를 해야 합니다.
430년 동안의 히브리 노예생활이 하루아침에 끝났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한순간에 나았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긴 고통과 방황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그런 일을 자주 봤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아주 크기 때문에
역사 하시려고 하면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약점으로 고통만 하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30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주님의 옷깃을 만졌는데 주님의 능력이 나갔습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그 주님이 역사 하시면 근처만 있어도 은혜가 임합니다.
은혜가 넘치는 곳에는 근처에서 구경만 해도 은혜를 받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120명이 다 좋은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곳에서 함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조그만 기대감으로 나아갔는데
한순간에 인생이 변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주목할 사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제자들에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지만 제자들에게 의도성을 가지고 물으셨습니다.
지금 야이로 회당장의 딸이 죽게 되어서 급하게 가는 길에
이 여인이 끼어든 것인데, 조용히 옷에 손을 댄 이 여인을 구태여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게 될 상황 속에 촌각을 다투고 있는데 주님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계시다가, 결국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전갈이 오게 됩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시는데
시간을 끌다가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급한데 긴급하고 절박한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신 것처럼
주님은 딴청을 피우실 때가 있습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이 고난을 당하고 친구들에 둘러싸여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전혀 나타나지 않으시고 침묵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굉장히 느림보 걸음으로 걸으실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불을 토하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속도를 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려고 애를 쓰는데 나만 힘들고 하나님은 느긋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급해서 발을 동동 굴려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통치되고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시간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급해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을 기다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내 임의로 움직이려고 하면 실수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이스마엘을 낳아서
그 고통을 온 세계가 지금까지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조급했습니다.
구약에서 사울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임의로 제사를 드린 것이 결정적인 실수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아주 달랐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 느렸습니다.
도망자의 신세로 왕의 자리와 거리가 먼 전혀 다른 길, 다른 상황으로 가서
하나님이 전혀 도와주실 것 같이 보이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굴 안에서 만나서
다윗의 부하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을 철저히 기다립니다.
다윗은 참 대단합니다. 코너에 몰리고 몰리다가 왕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손을 데지 않고 하나님의 속도에 맞췄습니다.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면 그 시간을 기다리는 다윗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내십니다.
시간은 한없이 지체되지만, 주님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내가 볼 때는 안 될 것 같이 돌아가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이 정확하게 돌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돌리시는 수레바퀴는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잘게 그리고 곱게 빻으신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괜히 시간을 끌어 야이로의 딸을 죽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차가 없으십니다.
타이밍의 귀재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있지만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에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사정과 원통함을 알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깊숙한 문제들을 꿰뚫고 계시는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방해하고 다른 사건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36절「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당연히 야이로의 딸이 죽을지 알고 계셨고
야이로의 입장에서 딸의 죽음은 아주 힘든 일이지만
주님은 그 일로 야이로의 믿음을 한 단계 올려놓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일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한 단계 자라나기 원하십니다.
만약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 일 없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문제는 끝임없이 또 닥치게 될 것인데
우리는 그 문제로 허덕이면서 또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제 자체보다 문제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한 단계 자라게 되면
어떤 문제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냥 자라지 않습니다. 단련되고 시련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게 됩니다.
주님이 혈루증 여인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옷에 손만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나온 이 여인을 보라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어서 너무나 답답하고 결국 딸이 죽는 상황이 일어났지만,
시간을 끄는 과정을 통해서 야이로의 믿음을 더 연단시키시고
혈루증 여인이 조용히 나음을 입었지만 끄집어내셔서 두려워하지 말고
손만 대어도 낫는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오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믿음은 시간이 지나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미리 믿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당장 해결되게 해달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정신병에 걸립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야만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는 기다리는 과정에서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지금 이 연말에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지 않아서 지쳐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초신자들은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믿는다고
모든 것이 다 잘되지는 않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도 말씀과 우리의 삶의 간격은 이해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고난이 오면 이해가 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지 혼란스럽고
시간은 지체되고 어떨 땐 절망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붙잡아야 할 것은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과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며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함부로 설명할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욥기서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고난은 설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겪어야 할 고난이 있지만 기대하며 하나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 잘 될 것이라고만 믿고 끝내면 굉장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땅에서 다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 안에 모든 결론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라는 전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까지는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고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 같은 일들이 닥쳐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내 생각되고 돌아가지 않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신앙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종종걸음을 멈추십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사는 것 같은데
어떤 날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알 길이 없을 수도 있지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반복해서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12년 혈루증 환자가 주님의 옷깃에 손만 닿았는데도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밤에 주님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터치하는 순간 한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던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면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때문에 곤고한 분들이 있다면
오늘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아뢸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에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고 어떠한 것도 체념하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편에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믿음처럼 여러분의 마음 문을 조금이라도 열고 다가가 기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이 밤에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