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기도하는 사람이 일을 해낸다

LNCK 2025. 1. 1. 07:4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신년, 송구영신>

 

기도하는 사람이 일을 해낸다        느2:1~10           2012.08.17. 설교문 스크랩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50일 만에 완공한 역사적인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방인의 땅에서 출세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제국인 바벨론의 왕실 수산 궁에서 술 관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술관원은 왕의 가장 측근에 있는 사람으로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정도의 직책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아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하면 누리고 향유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마음이 변질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느1장을 보면 훼파된 예루살렘 성벽의 소식을 가져온 형제와 몇 사람이 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느헤미야는 가슴이 미어지고 잠을 못 이룹니다.

일종의 눌림 현상인데 우리는 이것을 부담감이라고 말합니다.

 

눈만 감으면 생각이 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르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부담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부담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부담감에 반응하면 사명이 됩니다.

느헤미야는 현실의 안락한 삶보다 예루살렘의 현실 문제에 더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왕실에 있는 자신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의 동의를 받아서 가야 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의 성이 재건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왕은 과거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을 방해했었는데

성의 재건으로 유다나라가 세워지면 귀찮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재건을 제안하다가

자칫하면 자신의 신상마저 어려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왕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왕이 허락하지 않으면 나갈 수도 없고 성벽 재건의 과정을 수행하려면

왕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왕이 신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만,

신하가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느헤미야 1:11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왕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모든 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집에서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그 아이의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항상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구소련이 무너질 때 하나님이 고르바초프의 마음을 움직이셨다고 믿습니다.

구소련이 70년 만에 공산주의의 문을 닫는 핵심에 고르바초프가 있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공산 세계 전체가 흔들리며 세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는데

그 일에 중요한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도 기도하지만,

그 중 북한 핵심자의 마음을 움직여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일 하시는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고레스는 이방의 왕이었지만,

그 왕의 마음을 바꾸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에스더서에서도 유대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게가

에스더에게 왕의 앞으로 가도록 이야기했는데

그 당시에는 왕비라 할지라도 왕이 오라고 명령하기 전에 가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멈칫거릴 때 삼촌 모르드게가

‘네가 왕비가 된 것은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하니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갑니다.

 

에스더가 그냥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왕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면서 갔을 것입니다.

왕은 흔쾌히 에스더 왕비를 맞아주었고 잠 못 이루게 된 왕이 궁중실록을 가져오게 해서

읽고 모르드게가 세운 공을 알게 되면서

하만에 모르드게를 장대에 매달려고 한 그 장대에

오히려 하만이 매달리게 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든, 친구사이든 마음이 꼬이고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

누군가 그것을 푸는 작업을 할 때 문제가 풀립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처럼 복잡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고 또 잘 바뀔 것 같지만 잘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어도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힘씁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여러 계약을 위해서 마음을 움직이려고 접대하면서 애를 씁니다.

 

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나는 기도한 것밖에 없는데

주변에서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일이 풀립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나의 동역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할 때 사람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요즘 현대 상업주의 마케팅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직장에서도 상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처세술의 발달이 다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경영학, 심리학이 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모든 것을 푸는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이 좋아하는 술로 아니면 뇌물로 마음을 움직이려고 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쓰는 방법은 다 꼼수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2:8절을 보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의 기도응답이 일어난 장면입니다. 느헤미야는 정확하게 핵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되게 하려고 하면 해답을 가진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다음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으로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정확한 과녁을 겨누고 기도하는 일종의 화살기도입니다.

 

자신이 섣불리 설득하려고 하다가는 문제가 더 꼬일 수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난 후 느헤미야가 한 것은 딱 하나

왕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은 성격이 괴팍하고 고집이 세고 변덕이 심한 좋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왕이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한 것은 기도하는 것이었고 기도한 다음에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꽤 흘렸지만, 느헤미야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왕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충분히 왕의 마음을 바꾸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면 될 것이라는 신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무리 믿기 어려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바꾸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인간관계가 꼬여서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섣불리 풀려고 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인간관계는 오묘하고 복잡해서 잘못하면 오해가 생겨 더 꼬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움직여보려고 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풀어주시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가 자주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사람을 만나고 동원하는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기도한 다음에 기다렸습니다.

느1장과 2장을 대조해 보면 약 4개월간의 기간이었습니다.

4개월은 짧지 않은 기간입니다.

 

기도할 때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사항은 당장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눈 뜨니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주 초신자 때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즉시로 이루어진다면 내가 신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즉각적인 응답보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응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응답 자체에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의 입장은 다릅니다.

 

우리는 결과에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은 과정에 관심이 더 많으십니다.

그런 입장의 차이 때문에 우리는 오해하고 시험에 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입장에 서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하나님이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기도하고 응답되는 기다리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서 부수적으로 얻는 축복을 경험한다면

결과에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인내, 오래참음>

내가 구한 기도응답보다 기다림을 통해 주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서 인내심이 자라게 됩니다. 인내라는 것은 큰 자산입니다.

 

요즘 교육적으로 아이들에게 인내심을 길러 주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마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유혹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어릴 때 기다림의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기다림의 훈련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인내심을 통해 얻는 것입니다.

당장 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하고 응답되는 과정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요즘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이 다 인내심의 실패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으로 낙심하고 절망할 일이 많겠지만, 인내심을 기르시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신뢰입니다.

신뢰하는 사람은 끝까지 기다립니다. 지금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고 반드시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다리는 과정을 통해 신뢰가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통해 계속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깊어지게 됩니다.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이 기도하고 응답받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 문제로 기도했는데 응답되지 않아서

계속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체험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더는 내 삶에서 문제가 되지 않고

주님과 친밀한 삶으로 내가 누리는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응답을 받으면, 좀처럼 기도를 많이 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너무도 많은데

내 방식대로 사는데 익숙해서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서 기도의 능력이 배양됩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응답 자체가 아니라

응답되지 않아서 긴 시간 동안 기도하면서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면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문제가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그런 문제들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의 기반은 기도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니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응답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고

응답되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기도의 자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무한하고 놀라운 축복들을 주시기 때문에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할 때는 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느긋하십니다.

 

우리는 결과를, 하나님은 과정을 중요시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라가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자리지 않으면 계속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시고 우리가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조급증을 잘 처리해야 합니다.

조급함 때문에 기도를 쉽게 포기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미루실 때는 나를 믿으시기 때문에 시간을 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빨리 응답하시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루실 때가 나를 더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기다리게 되어도 계속 신뢰하며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에서 기도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기도하고 기다려야 할 때 잘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서두르지 않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결단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급증 때문에 기도를 포기하고 내가 먼저 일을 치면 사고가 납니다.

기도한 후 기다림에서 실패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 믿습니다.

 

▲2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왕의 앞에 나아갔는데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기도한다고 근심과 염려가 전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근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현실은 기도한 것과 거리가 멀면 인간인지라 근심할 수 있습니다.

 

근심하는 것은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우리도 기도했지만 낙심되고 근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심은 되지만 기도의 줄을 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라 우리의 마음속에 세상적인 생각이 파고들어 오지만

느헤미야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상황이 기도한 것과 다르게 펼쳐져 근심과 눌림이 있어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기 바랍니다.

 

마침내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는 제안을 받습니다.

드디어 기도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왕의 마음이 변한 것은 기적입니다.

 

아닥사스다 왕보다도 더 높으신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서 전체를 보면서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기도해서 왕의 마음이 바뀌어서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그 순간에

느헤미야는 순간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다리던 기회가 왔을 때, 행동으로 옮기기 전 먼저 기도하는데, 아주 짧은 기도를 합니다.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기도했던 일이었지만 왕의 제안 앞에서 다시 한 번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성은 매 순간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평소에 기도한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서의 뒷부분을 보면 거대한 성벽재건이 52일 동안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데

그 순간순간마다 느헤미야는 무릎을 꿇습니다.

 

느헤미야는 균형 잡힌 기도의 사람이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루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꾸준히 기도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급한 일이 닥쳤을 때도

기도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었던 일인데 순간적 실수로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주 작은 사건 앞에서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하나님 앞에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한꺼번에 몰아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묻는 생활습관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주일성수 신앙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주일성수를 하려면 6일 동안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만 강조하니, 나머지 6일은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십의 구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물질을 사용하겠다는 의미인데,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삶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특별히 일주일의 하루를 구별해서

하나님 앞에 드려 내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예배가 되도록 힘쓰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작은 사건도 하나님 앞에 묻는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때가 옵니다. 기도하는 과정은 어렵지만,

하나님의 응답의 때가 오면 봇물이 터지듯이 일이 급하게 일어납니다.

마침내 느헤미야는 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왕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페르시아의 친위대를 이끌고 성벽재건에 필요한 제반 일들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입성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주어 파격적인 후원을 받고 들어가게 됩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한순간에 간단하게 해결되면서 속도를 붙게 되었습니다.

 

왕의 마음이 움직여지니까 힘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놓으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힘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제 느헤미야의 손이 아주 바빠지게 되었는데, 그는 미리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시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대책 없이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내가 기도한 그 기도대로 이루어진다면

내가 그 기도의 응답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응답을 걱정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응답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걱정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책임을 지지도 못할 거창한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기가 막힌 느헤미야의 치밀하고 용의주도하고 일사불란한 전략과 계획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쏟으며 오랜 기간 동안 훼파된 성벽을 52일 만에 깔끔하게 해결합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기도의 사람이면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기도한 만큼 치열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준비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중건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절을 보면 도비야, 산발랏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느헤미야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일을 해 나가면서 내부적, 외부적으로 어려움을 당해

공사가 중단될 위기를 여러 번 맞습니다.

 

산발랏은 유대인들 가운데 스파이를 심어놓고

백성이 공포를 느끼도록 조장하고 교란작전을 벌입니다.

 

남들이 이뤄낸 것을 보면 쉬워 보일지 몰라도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응답을 받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방해하고 흔들어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자주 헛갈리는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셨는데도

상황이 어려워질 때입니다.

 

기도하고 응답받았으면 일사천리로 가야 하는데, 어려워지고 더욱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늘 긴장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응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만만치 않는 환경이 펼쳐지게 됩니다.

 

믿음생활을 한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이 잘 되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연속적으로 몰려올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더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장애물이 몰려옵니다.

우리는 몰려올 장애물을 예상하고 각오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개척자입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갈 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자는 남이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개척자와 같이 늘 모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낯선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나아갈 때 간 믿음의 길은 낯선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장애물이 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장애물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장애물이 다가오면 주눅이 들고 위축되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장애물을 당연히 여기고 통과하면 장애물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닙니다.

마라톤을 할 때 완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이 완주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 주저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조롱과 협박, 모함이라는 장애물을 만났지만 기죽지 않았습니다.

20절을 보면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너희가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삶을 풀어가는 중심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었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사람이나 환경으로 흔들리지 않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다면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더 흔들리면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살 줄 믿습니다.

 

장애물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분명하게 붙잡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방해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나와 함께 하느냐가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다고 하셨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있으면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모든 열쇠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는 너무도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시고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잘될 것으로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불러내시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는 일에

준비하는 자로 사용하셨습니다.

 

한 사람이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한가운데 그를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한 마음을 가지고 주를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고자 할 때

우리가 가는 길에 많은 방해물이 있겠지만,

방해물을 제거하시고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이셔서

당신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일에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면 그 기도를 통해서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일이 밀려오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꼬여있는 일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지만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지체될 때가 있지만,

그 지체되는 기간 동안 하나님은 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지체하실 때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더 다듬어 가시고 준비시키셔서

더 놀라운 축복이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께 묻는 영성을 가질 때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고 순간순간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 간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게 해 주시고,

어떤 장애물도 흔들리지 않고 넉넉하게 이겨나가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붙잡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