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가지 소원
https://www.youtube.com/watch?v=50gQstpXq5E
◈오직 한 가지 소원 시27:4 2025.01.01.
시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새해 첫 시간인데요. 너무나 기쁜 시간이고 또 반가운 시간이긴 한데,
꼭 그럴 마음만 가지고 여러분들을 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여러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참사의 희생자들과
친지가 되고 또 지인도 되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아마 그 가족들, 유족들도 오늘 이 집회에 영상으로라도 들어오신 분도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참회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될 그와 같은 때에.. 2025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 비장해지고
오늘부터 21일 금식기도가 시작이 됩니다만,
금식을 하지 말라고 해도 금식을 해야 될.. 그런 절박함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때가 되었을 때에
한국교회 지금 어느 교회도, 특별 기도 기간에 들어가 있고,
또 선한목자교회처럼 특별신년집회를 하기도 하면서,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엄청 많이 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어려운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도 되는 것입니다.
항상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의 계기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나라를 다 잃어버리는 그런 기가 막힌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부응을 주셨잖아요. *1905, 1907
그래서 한국교회가 그 말할 수 없는 민족의 어려움 속에
오히려 한국교회가 민족을 책임질 수 있는 교회로 서게 되었거든요.
그토록 우리가 한국교회와 우리나라의 영적각성을 위해 기도해왔는데
어쩌면 그때가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이 집회가, 그런 집회가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기도하는 일 자체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내가) 금식기도에 참여하고, 또 신년집회에 참여하면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아니고,
여러분을 이끄시고, 여러분을 통해 무슨 일을 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인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선한목자교회에 와보신 목사님들이
'선한목자교회의 부흥의 원인이 기도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으십니다.
실제로 선한목자교회에 와보고, 이렇게 집회에 참석해보고,
또는 금요성령집회에 참여해보고, 또 마가 다락방에 가보고,
또 우리가 매일 합심해서 하는 합심기도회를 보고,
그리고 새벽기도회나, 우리가 모여서 들리는 여러가지 기도회를 보면서
'아 이 교회가 엄청난 기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구나...' 그렇게 깨달았다는 거예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이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올 때만 해도
나라와 민족의 어려움이 아니고,
당시 우리 교회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만한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기도하기도 참 어려운 여건이었는데도, 거의 목숨을 걸고 기도를 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있는 바로 이 자리가, 그렇게 무섭도록 기도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당시에 이 예배당 공사가 완공되어지지 않고,
완전히 그냥 시멘트 콘크리트 맨바닥이었을 그때,
그때 정말 무섭게 기도를 했고,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하여, 선한목자교회를 지금 이만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 자리가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한목자교회를 이만큼 세워주셨다면,
그렇다면 이제 정말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될 때입니다.
선한목자교회는 정말 그렇습니다.
2025년 초에, 21일 다니엘 금식기도회를 담임목사님이 선포하시고,
또 놀랍게 영적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고,
여러분 모두가 다 그 기도의 현장에 있고, 또 응답의 체험도 얻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가정 안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처해져 있는 정치적인 혼란이 빨리 안정 되고 *2024비상계엄, 탄핵
우리나라 국정이 정상화되어지는 일,
또한 무안공항 참사와 같은 이런 끔찍한 재난과 어려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그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해서, 모두가 다 안정되도록, 회복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당연한 기도 제목이죠.
그러나 나라와 우리 사회의 문제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저와 여러분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에요.
어느 한 청년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제가 물었더니
그 청년이 제게 하는 대답이 충격이었어요.
'목사님, 제 주변에 선후배, 친구들, 결혼한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 다 이혼했어요.
그걸 보니, 더 이상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그런 동기도.. 안 든다는 거죠.
이건 엄청난 충격이죠.
지금 가정이 다 무너지고 있고,
그리고 개인의 마음의 심령의 상태가 망가져 있는 것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우울증에 고생하는 이들이 많고, 자살의 충동을 받는 이들도 많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음란물에 중독이 되고, 도박에 중독이 되고, 술과 담배에 중독이 되고,
게임에 중독이 되고... 이렇게 거의 중독된 상태에서 살다 보니, 가정이 다 망가지고...
지금 이런 형편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정치의 문제, 사회의 혼란의 문제는
한 개개인의 마음의 심령이 망가진 것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정치도, 나라도,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라와 사회의 극도로 혼란스러운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지만,
사실 그 기도의 가장 첫 번째 기도 제목, 또한 응답되어야 될 문제는
우리 자신의 마음, 심령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 일은 오늘 우리에게 너무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오늘 설교의 본문으로 잡았습니다.
다윗에게 어떤 기도 제목이 있었나요?
그는 단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이건 참 우리에게 던지는 엄청난 메시지예요.
'나는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시27:4
여러분도 오늘 이 집회가 끝나고,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가
단 하나의 소원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21일 동안 그 기도가 계속 되기를,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음을 여러분이 깨닫고,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 다윗의 한 가지 소원은, 하나님의 집에서, 거기서 계속 머물며
또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성전(임재)에서 하나님과 늘 의논하면서 사는 것!
그게 다윗이 가진 단 하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형편도 좋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을 정도면 꽤 괜찮은 사람이잖아요.
'먹고 살기도 괜찮고, 다급한 문제도 없고 그러니
그런 소원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하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의 기도는, 편안한 침상에서, 또는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그가 읊조렸던 고백이 아니었어요.
시27:2절에 보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한마디로 지금 다윗은, 군대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정말 말로도 할 수 없는 살벌하고 두려운 순간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 처지에서 이 고백, '나는 한 가지 소원밖에 없습니다' 그런 기도를 드렸던 거예요.
형편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나라도 그렇고, 경제적인 위기도 심각하고,
그리고 끔찍한 사고들도 일어나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그냥 다 무너진 것 같고..
그래서 나 자신도 정말 정신 차리기 힘들 만큼 혼란스러운 때에,
한가한 기도 제목이나 말씀드리는 게 아닌 거예요.
여러분 다윗은,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살려주세요.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세요.
내 대적이 다 꺾이고 도망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임재)에서 영원히 살고,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리고 하나님과 늘 의논하며 제가 살고 싶습니다.'
그런 기도를 드린 거예요.
하나님이 다윗을 왜 그렇게 좋아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 대신 이스라엘의 새 왕을 세워야 되었을 때에
명확한 조건을 제시하셨어요. 그것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였어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겠다 겁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에게, '너는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사람을 찾아서
그의 머리에 기름 부어서 왕으로 세우라' 그렇게 명령을 내렸어요.
사무엘이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보니까 첫 아들부터 딱 왕인 거예요.
보자마자 '이 사람이 왕이구나'
인물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지혜롭게도 생겼고,
벌써 왕같은 외향.. 그런 모습이 풍기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 사무엘에게 즉시 말씀하셨어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하나님께서 '절대로 사람을 외향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이새의 아들들을 다 선을 봤습니다. 다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아들이 없느냐? 하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는 볼 필요도 없는 아들인데, 들판에 있는 막내 다윗입니다.
'그 아들까지 봐야 되겠다...'
그래서 급히 그 양을 치던 어린 다윗을 오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은 지금 사무엘 선지자 앞에, 왕이 될 자가 누군지
선을 볼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들판에서 양 치다가 그냥 바로 뛰어 온 거예요.
그런 다윗을 딱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감동하셨어요.
'바로 이 사람이다. 저에게 기름 부으라'
삼상16:12절에 보면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그랬어요.
그런데 이 말은 다윗의 얼굴이 잘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이 되려면 얼굴도 잘생겨야 되는구나' 절대로 그런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얼굴에 은혜가 넘친다'는 거예요.
다윗이 볼품도 없고, 이제 막 양치다가 급히 왔는데도,
사무엘이 그를 딱 보는 순간에, 은혜가 확 끼쳐지는 얼굴이었다는 거예요.
그건 다윗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에요.
여러분 중에, 얼굴이 아무리 쳐다봐도 잘생긴 얼굴이 아닌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여러분도 열쇠는 마음인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면, 이런 말을 듣게 되요.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은혜 있는 얼굴이 되는 거예요.
은혜 있는 얼굴을 가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이 소원이 있었어요. 그의 마음에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유능해지는 것도 아니었어요.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소원이, 다윗에게는 없었어요.
다윗의 소원은 오직 하나였어요. 오늘 본문의 고백 그대로예요.
그는 편안할 때나, 어려운 위기 때나, 그 마음의 소원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오늘 이 다급한 상황에, *시27편
지금 죽느냐 안 죽느냐, 거의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제 소원은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모습을 쳐다보며, 하나님과 늘 의논하며 사는 겁니다'
이런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평소에 그런 소원이 아니었던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 '이런 자기 소원이 하나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마음)을 보느니라' 삼상16:7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모두들 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외모나 처지나 형편이 보잘것없다고 위축되지 마세요.
그건 그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나는 별 볼일 없고, 보잘것없는 자야...'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보세요.
▲지금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게 뭡니까?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그 사람,
오직 하나님만 원하는 사람,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나라가 필요로 해요. 그런데 여러분이 (다윗처럼)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다른 것을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자격이 없을 수 있습니다.
무슨 학식이 필요하거나, 여러분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되거나,
무슨 재산이 있어야 되거나... 그렇다면 자격이 없을 수 있죠.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원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사람만 필요하다 그러면,
오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영상으로 이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도대체 누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있겠냐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그 사람을 찾으시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우리를 사랑하고, 오직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 분이세요.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자기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저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이 시간에,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오늘 여기 계신 어느 누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나는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너를 떠나지도 않을 거야. 너를 위해서라면 내 손에 못이 박히고, 발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 가시가 찔리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도, 나는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
주님이 그렇게 여러분을 전심으로 사랑하신 거예요.
그게 복음인 거죠. 그 은혜 때문에 우리가 오늘 여기에 주님 앞에 온 거죠.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다윗만 그렇게 사랑하신 게 아니셨어요.
사울도 그렇게 사랑하셨고, 다윗의 형들도 다 사랑하셨어요.
문제는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셨지만,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시는데, 그런데 사울 왕과 다윗의 형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어요. 문제는 마음이었어요. 물론 그들도 하나님은 알았을 거예요.
사울 왕도 다윗의 형들도... 다 하나님을 알았을 거예요.
아마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두 번째쯤은 되셨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에게 있어서, 두 번째가 된다는 것은 모욕과도 같은 거예요.
그건 하나님을 모욕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에게 두 번째이십니다.
나에게는 첫 번째가 따로 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따로 있어요.
그 다음에 제가 하나님을 구할게요.' 그건 하나님을 모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여러분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하나님이 사랑하셨어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믿고,
자기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한 사람은, 다윗 한 사람밖에 없었어요.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스스로의 마음을 한번 주님 앞에 점검해야 돼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실 때, 그때 하나님이 사울왕에게 화를 내고,
그리고 그 이새의 아들들, 곧 다윗의 형들에게, 하나님께서 화를 내신 게 아니에요.
너무 하나님이 섭섭하신 거예요. 그들에게 하나님은 둘째, 셋째예요.
그들의 생각과 마음 중심에 완전히 하나님이 첫째라는 생각이 없었어요.
구할 것은 많죠. 원하는 것도 많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첫째가 아니에요.
오직 한 사람 다윗만, 그는 그 절박한 처절한 위기 상황에서도
그는 소원이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어요.
여러분,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도 그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조차도
'하나님만 원합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고백을 두려워해요.
그건 너무 지나친 거라고 생각해요.
'어휴, 그렇게까지 믿어야 되냐고요?'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진짜 하나님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어느 전도사님이, 하루는 제게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어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목회 성공할 수 있는지 좀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제가 그를 보니, 아주 잘생기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인상과 외모도 정말 리더가 될 만한 분이고...
'이런 분이 목회자가 되면 참 목회를 잘 하겠다...'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질문을 하는 마음의 태도도 너무나 좋잖아요.
제가 그 전도사님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전도사님,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거 바라보지 마세요.
오직 전도사님은 하나, 내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가?
진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신가? 나는 모든 일에 예수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그것만 계속 확인하세요.
거기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우리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전도사님은 이미 성공한 목회자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도 똑같아요. '전도사니까, 목사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아니에요.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비즈니스를 하든, 직장을 다니든,
여러분이 어떤 전문인이든, 지금 공부하는 학생이든... 여러분도 똑같아요.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그게 잘 사는 길이라니까요. 그 자체가 이미 성공한 거라니까요.
다윗을 보세요.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원했어요.
'나는 다른 거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요?
그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됐어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왕,
이스라엘의 국기가 '다윗의 별'이에요.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어요. 다윗은 소원이 하나님밖에 없었다니까요!
그게 지나친 걸까요? 아뇨, 그게 잘 사는 길이에요.
▲오늘 우리가 금식하면서 기도하기로 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진짜 큰 어려움 속에 빠져 있어요.
그러나 도대체 이 나라에는 어떤 사람이 지금 필요한가요?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다윗처럼 그렇게 소원하고 기도하는.. 그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캐나다 토론토에 가면 The Peoples Church 라는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 명성과는 많이 다르지만,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였어요.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었던 오스월드 스미스 목사님, 그분이 30살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저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만 원합니다'
그는 아무것도 다른 소원을 갖지 않았어요.
'저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만 원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기도했어요.
그는 어떤 순간에도 '저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만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깨우쳐 주시는 대로 순종했어요.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이 구하지도 않았던.. 그는 큰 교회 목사가 되고
그렇게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는
그런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진짜를 붙잡으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는 거예요.
우리가 그 진짜를 놓치니까.. 자꾸 혼란스러운 겁니다.
▲저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부흥사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아주 해박한 성경 지식을 탁월하게 잘 설명해주는 그런 강해설교자도 아닙니다.
저는 인문학적인 지식이 많아서, 아주 들으면 너무 재미있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설교자도 아니에요.
저도 물론 그런 설교자가 되고 싶었었어요. 설교자로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휘어잡는..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나도 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성경도 많이 배워서
성경 곳곳에 있는 그런 성경적인 지식을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가르치고,
인문학적인 지식도 많아서 풍성하게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설교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예수님을 알고 난 다음부터, 제 꿈이 모두 다 바뀌어버렸어요.
저는 저 자신이 너무 추하고 악한 것을 알아요. 여러분들이 저를 정확히 잘 모르세요.
너무 추하고, 또 너무 악하고, 너무 보잘것 없고,
게다가 이제 또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더 꼴(모습)이 이상해져요.
그런데 유명하면 뭐해요? 사람들에게 성공했다고 알려지면 뭐하냐고요?
제 실상은 그런데...
제가 얼마든지 사람들 앞에는 잘 보일 수 있어요.
그렇게 꾸미고.. 저 자신을 그렇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요.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제 진짜 모습하고, 사람들이 아는 모습하고 차이가 나는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건 저를 더 허탈하게 만들 뿐이죠.
그런데 참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주님이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거예요.
저는 사랑받을 자격도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추하고 더러운 자인데,
주님은 저를 여전히 떠나지 않으시고, 저와 함께 하시고, 저를 이끌어 주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더 이상 제 개인적으로 성공하고, 그리고 뭔가 이렇게 탁월한 것을 이루고, 자랑하고 싶은 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없어졌어요.
제가 원하는 게 있다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을 태웠던 나귀처럼,
그 나귀같이 되고 싶어요. 나귀는 그냥 하찮은 동물일 뿐이에요.
그런데 그 나귀가 예수님을 태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나귀도 같이 갈 수 있었던 거죠.
저도 예수님이 없으면, 그냥 나귀에 불과한 그런 초라한 존재예요.
그런데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시는 거예요.
정말 질그릇 같은 저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와 계신 거예요.
그게 너무너무 감사한 거예요.
더 이상 '내가 성공해야 되겠다. 유명해져야 되겠다. 잘 돼야 되겠다. 높아져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싹 다 없어졌어요.
▲그런데 이 은혜를 저만 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한목자교회 교우들에게, '그들도 이런 놀라운 주님을 실제로 만나게 해드려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나는 하나님 한 분만 원합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걸 못 붙잡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에 눈뜨고,
점점점 주님을 알아가는 삶을 살게 해드리려고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법을 성도들에게 훈련시키기 시작한 겁니다.
그게 예수동행훈련이에요.
예수동행운동을 선한목자교회에서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교우들이 너무 어려워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자리가 잡혀져가고, 예수동행운동이 선한목자교회에 정착이 되는가 싶었던 때에,
그만 장로님들과 교회의 어떤 현안을 가지고 의논하다가 큰 분란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니까, 선한목자교회도 늘 좋은 일만 있었겠어요?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저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때 주님이 저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어요. '너는 실패할 거다'
어떻든지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회를 세우고, 그런 교인들을 세우고,
예수님이 진짜 주인인 교회를 세우고 싶은 그 제 마음이
결국은 열매가 없을 거라는 거예요. 다 허사가 될 거라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충격이었는지요...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겨우 이것을 해나가고 있는데...
잘 될 거라고 해도 쉽지 않은데, 실패할 거라니...
그때 제 마음속의 어려움은, 아마 여러분들이 거의 상상하기 어려울 거예요.
담임 목사는 어떤 방향으로 성도들을 이끌어 가다가, 그게 아니라고 할 때는
사실은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거거든요.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또 물으셨어요.
'너가 실패할 거기 때문에 그러면 안 할 거냐?
결국은 열매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중단할 거냐?'
저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또 어려운 문제였어요.
잘 될 거라고 하는 기대 때문에, 희생도 하는 거잖아요.
어려워도 어떻게 해서든지 노력해 가면서, 모든 애를 다 써가면서
그 일을 진행해 나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실패할 일을 위해서 왜 그렇게 해요?
열매도 없는데 왜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진짜 답답했습니다. 도무지 회복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이 세상에서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네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기를 그만둘 것이냐?'
제 마음에 그동안 내가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있음을 알았어요.
'너는 실패할 거기 때문에,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 되시는 그 일을 그만할 거냐?
너는 실패할 거라고 해서, 성도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도록 훈련하는 일을
여기서 그만둘 거냐?
네가 정말 믿고 사랑하고 했던 그 사람으로부터,
네가 배신을 당하고, 오히려 상처를 받을 거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누구를 믿고 사랑하는 일을 그만둘 거냐?'
제가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주님은 계속해서 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저는, 제 안에 있었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가 알게 되었어요.
저는 제 안에 '내가 시작했다. 내가 이룬 거야. 내가 결실도 봐야 돼!'
그런 야망이 여전히 제 안에 있었던 거예요.
'내가 했잖아? 내가 이렇게 고생했잖아.. 내가 이렇게 섬겼잖아..'
계속 저 자신에 대한 보상 심리가, 제 속에서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거예요.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어요. '수고하고 그리고 욕을 먹어라.
고생하고 비난과 조롱을 받아라. 그것을 알고 가라'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도 너는 그 길을 가라는 거예요.
제가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을
일순간 잊어버렸었어요.
그때 생각난 분이 스데반 집사예요. 그분은 순교까지 했어요.
부활의 주님을 전하다가, 그토록 동족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생명의 주님을 전하다가, 그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서 순교했어요.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어요. 온갖 모욕을 당했어요.
그런데 '나는 실패하면 (사역을) 못합니다. (뻔히 실패하는 길을) 가기 싫어요.'
그렇게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 역사에, 그저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을 담당할 뿐이에요.
제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게 아니었어요.
수고하는 일, 그리고 심는 일, 그리고 고생하는 일... 그게 제가 해야 될 일이에요.
주님을 따라가려면 고난을 당해야 돼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면, 때때로 버림받는 일도 있어요.
실제로 제가 제 주변에 보니까,
그렇게 신실하시고 귀한 목사님들이,
목회 현장에서는 엄청난 고생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봐요.
목사님 중에도, 사모님 중에도, 또 그 자녀들 중에도...
'어떻게 저렇게 귀한 분인데, 저렇게 힘든 삶을 사시나? 그분들은 다 실패인가?'
저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저의 할아버님이 순교하시고, 저의 아버님이 말할 수 없이 어려운 목회를 하셨어요.
'그분들은 다 실패자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요6:66절에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힘든 일이 있을 거다. 어려운 일이 있을 거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떡을 달라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육신의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의 양식을 구하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니까... 군중들은 다 떠나갔어요.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하고 다 떠나갔어요.
주님이 저에게도 그렇게 물으시는 것 같아요.
'너 고생할 거야. 너 힘들 거야. 어려운 일이 많을 거야..
네가 기대한 것처럼 되는 게 아닐 거야.. 그래서 너 그만하겠니? 너 떠나갈래?'
'실패할 것을 미리 알게 해주신 것, 아 그것도 감사하구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리 알고 그리고 그 일을 겪으면, 적어도 마음의 충격은 덜하잖아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그러셨지..' 하고 미리 마음 준비를 할 수 있잖아요.
'아 주님이 여전히 저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사람들이 다 떠나가니까!
그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요6:68
그래서 저도 그렇게 대답해야 된다는 게 딱 깨달아졌어요.
'주님, 실패하더라도 저는 계속 하겠습니다.
열매가 없어도 저는 계속 하고,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엄청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눈물만 나는 게 아니고,
제 마음속에서 이상한 기쁨이 일어나는 거예요.
정말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정말 왕인 삶을 살기로 결단하면,
'나는 주님과 함께 이미 죽었고,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고 예수님이 내 왕이십니다' 고백하고,
가정문제든, 일터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와도
'저는 주님만 따라갑니다.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저는 실패해도 끝까지 갈 겁니다!' 이렇게 딱 마음에 결심하면,
주님 안에서 누리는 놀라운 기쁨이 제 속에서 누려지는 거예요.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 주님만 택하는 자에게 주님이 주신 약속이에요.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금식하면서까지 기도하는 이 결단의 시간,
진짜를 붙잡게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금식기도는 단순히 밥을 먹지 않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진짜 나의 왕이심을,
내 생각, 내 계획, 내 고집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이제는 주님만 제가 원합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길만 가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 제가 바라는 것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게 금식기도인 거예요.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 길을 그때 여셔요.
'아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정말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이 분명히 알게 하세요.
'아, 목사님 저는 주님을 그렇게 만나고 싶은데 주님을 만나지 못해요.
저도 예수님을 만나면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 속에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거예요.
그냥 '나는 예수님을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지 마시고
'내 생각 속에 예수님을 모셔 드린다' ... 그때 여러분이 느낌이 달라져요.
이미 내 생각 속에 주님이 오셔요. 그래서 예수님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정말 실제가 되시기 시작해요.
그 예수님은 여러분의 왕이시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왕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여러분들은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처지와 어떤 형편 속에 있든지, 여러분의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것,
기가 막힌 수렁에 빠진 것 같은데, 어디서 오는 기쁨이 있는지...
어디서 오는 감사가 있는지...
그렇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데.. 사랑할 힘이 생겨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이 복음이 나를 살리는 거예요.
다윗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만 붙잡으면, 하나님만 바라면
이기지 못할 시험이 없고, 감당하지 못할 위기가 없다는 걸 다윗이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 저는 단 한 가지 소원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며,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의논하며 모든 길을 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삶을 살게 하신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도, 이 나라의 위기 상황이
우리를 더 믿음 안에 견고히 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적당히 교회만 다니는 식으로 예수 믿는 것을, 이제는 청산해야 돼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다가 내 인생을 끝낼 겁니까?
'진짜 예수 믿는 삶을 내가 살아봐야 되겠다...
하나님, 이 나라를 위하여 저를 쓰세요.'
'이 나라에 하나님을 진정 경위하는 자가 누구냐?' 주님이 찾으실 때에
'주님 저 있잖아요. 아무도 안 하겠다는 일, 누구도 가지 않겠다는 길이 있을지라도
주님 저를 쓰세요!' 오늘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우리 찬양합시다. '소원 소원, One thing, 나의 평생에 단 한 가지 소원'
우리 그 찬양을 함께 부르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텐데,
오늘도 세 번 같이 기도하고, 자유롭게 기도하고, 안수기도 받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기도-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 나라가 이렇게 무너질 나라가 아닙니다.
북한 동포를 살려내야 하고, 그리고 동아시아 뿐만 아니고
전세계 열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구별한 나라입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하는 성도들인 저희들이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위하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의 허물, 온전히 하나님 앞에 살지 못했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다른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결국은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 성도들인 우리의 잘못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땅을 고쳐주소서. 이 땅을 살려주소서.
주여~ 하나님,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역사를 인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합니다.
절망하며 사모하며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하나님, 마음의 간절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며 구하는
우리의 중심을 주여 받아주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의 간절한 마음과 갈망과 소원,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의 백성 되기만을 원하며,
예수님의 왕 되신 삶을 살기를 원하는 우리의 소원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정치적으로 말할 수 없이 혼란한 상황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 국민들이 갈라져도 이렇게 갈라질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다윗처럼 나도 한 가지 소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늘 하나님과 의논하며 살기만을 원합니다.
제가 소원하는 건 그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다윗처럼 제가 그렇게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찾으시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주의 마음을 저에게 부어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는 것을 제가 알기 원합니다.
주의 마음에 사로잡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독생자를 주시며 사랑하신 것처럼, 저도 주님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 여기서 완전한 답이 주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제 문제의 어떤 것도, 주님은 이 기도에, 다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오늘 이렇게 모였으니, 우리 가정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한국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다, 우리 교인들이 다, 한국 교회가 전체가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되는 영적각성의 그 사건을 주시옵소서.
주님 이 시간에 우리가 정말 함께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이 민족의 위기의 때, 1903년에 1907년에 원산과 평양에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허락하신 것처럼
하나님, 이 민족 역사에 너무 중요한 2025년에
하나님 우리 민족 가운데, 거룩한 주님의 임재를
모든 성도들이, 우리 가족 모두가 다 보게 해주시옵소서.
저를 그 도구로 사용하소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여 그렇게 기도로 섬기고
우리 자신을 준비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