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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LNCK 2025. 2.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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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 YouTube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사6:1~13           2025.02.02. 

◑도입

오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삶의 모든 무거운 짐들이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치유가 필요하면, 치유도 경험되기를 원합니다. 

본문 이사야 6장의 말씀은, 너무나 고귀한 말씀이어서 
이사야서에 수려한 문장들이 많이 있지만 
본문은 그걸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계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계시를 통하여, 본문 말씀으로 우리를 지져주실 때에, 
우리 영혼이 치료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단 숯불로 이사야를 지지셨듯이요.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들 마음 하나하나를, 상처나고 트라우마 된 것을 
치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에, 지금 현재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으로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본문 이사야 6장 전에, 바로 사5장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했는데, 
너희가 들포도를 맺었도다' 5:2  

사5:4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2절에, '극상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이 본문의 말씀을 잊을 수 없는게, 저는 4형제인데, 제가 맏아들이에요. 
제가 동생들하고 약간 티격태격 한다든지, 
아니면 저희 부모님이 보시기에 '조금 부족하다' 그럴 때 

우리 아버지는 저를 불러서, 성경구절을 가지고 이제 저를 이제 교훈하셨어요.
'피차 물고 먹으면 서로 망할까 조심하라'  갈5:15
그 다음에 오늘 이 말씀으로 저를 훈계하셨어요.
'하나님은 너에게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하셨는데, 너는 의찌하여 들포도를 맺는가?' 

제가 그 때는 잘 못 알아들었어요. 
그렇지만 이 말씀을 제가 설교준비를 하면서, 그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내 인생도 그렇고, 또 우리 민족도 그렇구나'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극상품 포도를 맺기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먹지도 못하는 들포도 열매를 맺기 쉽다는 거죠.

하나님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바라셨는데 
실제로 현실은, 그들이 들포도 열매를 맺는 상황이었어요...

▲본문 사6:1절에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근데 본문 6:1절의 바로 직전 구절에는 뭐라고 되어 있는가요? 
사5:30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그러니까 상황 자체가, 웃시야 왕이 죽던 상황이고, 
'흑암과 고난으로 그래서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고 했습니다. 

그러니 극상품 포도를 맺어야만 하는데, 들포도를 맺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들포도는 포도 알이 형편 없이 작고, 또 맛도 시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포도입니다.
잘라서 내다 버릴 수밖에 없는... 아무 쓸데 없는 열매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라는 것은   6:1
웃시야는 52년 동안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본문 이사야 6장이, 역대하 26장과 그대로 연결되는데 
대하26:15b절에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서,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아주 경제 군사 강국이 되었고, 디지털 강국이 되었고, 방산 초일류 국가가 되었습니다. 
너무 잘 되니까 나중에 16절에 보니까 
대하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통치를 잘했어요. 잘하다 막판에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분향하는 일을 나는 좀 집례할 수 없나?' 
그렇게 해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이 그를 치셔서, 이마에 나병이 나가지고 쫓겨나서, 
별궁에 갇혀서 지내다가 죽었어요.  대하26:16~23

그 다음에 그의 아들 요담 왕이 나라를 물려받았는데 
당시 나라 상황이 그렇게 만만한 상황이 아닌 거예요. 
마치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정세하고 좀 비슷한 그런 상황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오늘 본문에 보면, 서너 가지 동사가 나오는데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접목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말씀을 통한 치유를 여러분들이 경험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1. '내가 본즉'

6: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지금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본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뭘 보았는가요? 

6:2~3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너무나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기 때문에, 스랍 천사들도 자기 얼굴을 가리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 둘로는 자기 발을 가리었고' 
발을 가린다는 말은, 자기 부족함과 수치를 가린다는 의미죠.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3

'거룩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최상급을 표시하는 거예요.
이런 스랍 천사들의 찬양이 울려퍼지면서, 4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요?

6: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구약에 보면 성막이나 성전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빽빽하게 임할 때에 
소위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연기가 충만해졌습니다.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의 (연기, 구름으로 성전이) 빽빽하게 가득차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6:8  이런 내용들이 쭈욱 이어지죠.

그래서 먼저 '내가 본즉' 이라는 이 동사를 통해 깨닫는 것은 뭐냐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아야, 사명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믿으셔야 됩니다. 
제가 <이사야서>를 해석할 때에, 제 개인의 실력과 능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약의 창과, 교부들의 창 window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본문 이사야 6장을,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때, 내게 주신 사명을 확인하고, 
주님 앞에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이걸 사람들이 믿지를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12장에서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요12:39~41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사명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드리는 이 주일 예배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은,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어떤 사람은 목도하지 못하는 것인가요? 
요12: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모하면, 
찬란한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내 것으로 확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에요. 

 

*'쉐키나'의 문자적 뜻은 “거주, 임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는 것.

  보통 '쉐키나의 구름'이라고, 또 '구름'과 함께 사용하죠. 임재의 영광의 구름입니다.

오늘 여러분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보다 앞세운다'는 어떤 뜻이에요? 
소위 '사람이 먼저다' 또는 '인본주의가 먼저다' 이런 소리를 많이 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그렇게 계속 말하는 동안,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에요. 

소위 '자기 중심, 자기 프라이드,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자아를 죽이고... 
'자아를 죽인다'는 것은, 자기 욕심이 커질 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또 반대로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간절히 구하면, 주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요? 
롬6:4절에서 바울이 깨달은 진리가 뭐냐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셨다' 그랬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셨다면, 
오늘 여러분들의 죽은 것 같은 상황도,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을 체험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죽은 것 같은 상황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 

제가 한번씩 말씀드립니다마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많이 주세요. 
우리에게 의식주 살아갈 것을 주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만은 아무에게나 응답해 주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영광만은, 오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쉐키나의 영광을 깨닫고, 
그 쉐키나의 영광을 통하여, 자기 자기 중심이나 어떤 자아가 아니라 
정말 자기를 부인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눈이 가리워지지 아니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우선순위가 되어서, 
'주님, 내가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하면서, 

어려움과 고난과 문제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내 영적인 시선과 안테나가 
주님께 고정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그래서 이사야가 '내가 본즉' 하였듯이,   6:1
우리도 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말하되'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제가 교부들의 창으로 보면서, 전 세계 수많은 교부 church father 들,
어거스틴, 이레니우스, 폴리갑 등 4~6기의 여러 교부들을 볼 때,
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분들에게 나타난 두 가지 공통적인 현상이 있었어요. 

-하나는 뼈 때리는 '자기 부정함'에 대한 각성, self-denial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성에 대한 각성을 하고, 

-또 하나는, 그 각성 이후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한 사람들은 
지난 2000년 교회 역사에 예외 없이, 
자기 죄성을 각성을 하고, 
그 다음에 자기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할렐루야! 

그것이 오늘 두 번째 나타난 동사 '말하되' 입니다.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자기 죄성 발견
 
이사야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의 부정함 unclean 때문에 
'나는 망하게 된 사람이다' ... 이렇게 처절하게 죄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2000년 교회 역사에, 누구나 예외가 없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면, 
첫째는, 죄에 대한 각성으로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한탄하고, 
또 하나는, 그 이후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여러분, 이 죄에 대한 각성을 한다 그래가지고
이사야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너무나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비춰볼 때에,
누구나 거룩한 절망에, 영적 절망에, 긍정적인 절망에 빠지는 것이에요.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비춰 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죄성이 많은지 비로소 보이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빨래를 해서, 깨끗한 빨래가 놓여 있는데,
흰 눈이 내리는 거예요. 흰 눈이 내리면 가운데, 그 자기가 한 깨끗한 빨래를, 
흰 눈에 비교해 보면... 이거는 칙칙하고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죠.

우리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그 빛 앞에 나를 비춰볼 때, 
'나는 정말 죄인 중에 괴수요...' 라고 바울이 고백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눅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 주셨어요. 
그때 베드로에게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 

베드로는 '낮에는 깊은데 가면 고기가 없는데 뭐 가봐야 소용이 있겠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의 압도돼 가지고,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어요. 

그는 깜짝 놀라 가지고, 그 예수님의 영광을 깨닫고 난 다음에 뭐라고 고백했나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이거는 긍정적 절망이에요. 이거는 거룩한 절망이에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너는 앞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다음에, 자기 부정함을 깨닫게 되고, 
그 이후에 또한 자기 사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제

모세도 가시떨기나무 불 앞에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에게 사명을 주시잖아요. 예외가 없어요. 

이 고백은, 이사야가 남보다 더 죄를 많이 짓고, 더 부족하다... 그게 아니에요. 
이사야가 찬란한 하나님 영광 앞에서 '나는 망하게 된 존재다'
그 찬란한 영광의 빛 앞에서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긍정적이고도 거룩한 절망을 한 것이에요. 그 영광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것이에요.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걸 통하여 거룩한 두려움으로, 또한 거룩한 절망감 때문에 탄식할 때, 
이거는 굉장히 긍정적인 탄식이 되는 거예요. 
그야말로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에요.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2007년도에.. 지금부터 한 18년 전이죠.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의 블랙 마운틴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께서 거기서 마지막 노년을 보내고 계셨는데, 

그때 좀 오라고 그래서, 제가 거기 가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하고 시간을 좀 보내고 
기도를 하고 그랬어요. 아마 1시간 반 이상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1시간 반 동안 세계적인 리더요, 하나님이 쓰시는 종인데, 
그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목사님은 노년이고, 몸이 좀 아프셔도, 휠체어를 타고 계셔도...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내가 그분 앞에서 '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그런 반응을 했어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분처럼 노년에도 그런 아우라와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러니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같은) 인간도, 그런 영광과 아우라가 있는데,
하물며 영광으로 찬란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오늘 여기 본문처럼 '말하되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이렇게 고백할 때에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사명을 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사명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언제인가요?
6: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그 때에'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뵈옵고, 자기 부정함을 깨달은 때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신앙의 북극성과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 영광에 우리 눈이 열리게 될 때에, 
내 자아를 부인하고, 어떤 거룩한 절망을 하고... 
이것이 우리 삶의 나침반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 부친은 늘 '극상품 포도열매'를 자주 말씀하시고 
그때 저희 집의 가훈은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체크하고 점검할 때, 
이걸 제일 우선순위에 두라는 것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하는 '영적 가족'인 줄로 믿습니다. 
저의 부친이 저에게 그렇게 얘기한 대로, 나도 똑같이 여러분들과 함께
이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상품 포도를 맺어야만 하는데, 
그걸 위하여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거룩한 절망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가운데서 무슨 일을 할 때에 표준이 뭔가 하면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을 늘 물어봄으로 말미암아, 그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때 어떤 축복을 주시는가요? 
6: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6: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오늘 설교 서두에 제가 말씀했습니다만, 
천사가 제단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을 지져버렸어요. 

부젓가락으로 핀 숯을 가져와서, 이사야의 입술을 지졌을 때에 
그의 악과 죄가 사하여 졌고, 이사야가 치유가 된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이사야 때의 말씀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2,7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이 사건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삶에 그대로 접목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한국에서 유명한 교육 기업가를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제가 참 은혜로운 간증을 들었어요. 

그는 4대째 신앙인인데, 그분의 외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 외할아버지가 경남 창원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했어요. 
평신도로서 반대를 하니까, 일본 사람이 잡아갔어요. 

그래서 이제 감옥에 갔는데, 순사가 '내가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 신사참배에 참여했다고... 
난 앞으로 안 그럴거다 하고 이 서약서에 싸인만 해라, 그렇게만 하면 풀어 주겠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그냥 싸인을 하고 경찰서를 나왔대요. 

나왔는데 기도를 하는데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경찰서로 가서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싸인 한 거 취소합니다' 
그래서 다시 감옥으로 갔대요. 

그래서 그 분이 감옥에서, 매를 맞고, 고문당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완전히 거기서 생명이 거의 다 소진되고, 숨만 좀 붙어서 남아있었을 때,
감옥에서는 책임지기 싫어서인지, 거의 시체처럼 된 그 분을 석방시킵니다. 

그래서 이분이 '내가 이제 죽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때가 40대 후반이었는데, 
'기도라도 하고 죽자' 하는 마음으로, 눈이 쌓여있는 기도원에 가서 산 기도를 하는데,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환상 중에 스랍천사가 와서, 그가 인두를 가졌는데, 
그야말로 자기의 몸의 아픈 부위를 인두로 막 지지는 것 같은... 그런 은혜를 받았대요. 
그래 가지고 '곧 죽는다'하던 사람이, 건강이 완전히 회복이 돼 갖고, 95세까지 살았대요.
그 후손 가운데 교육기업가도 나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들으면, '전설 따라 삼천리 아닌가?' 그런 분도 계실 거지만,
또 어떤 분은 '그렇지, 하나님이 오늘도 내 삶의 아픈 부위라든지, 내 아픈 몸을
주님이 스랍들을 보내가지고 숯불로 지져 주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명자가 되겠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져주실 것입니다.

저도 그 얘기를 듣고서, 제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그래서 '나도 몸에 좀 아픈 부위가 있었는데, 하나님 제단 숯불로 지져주소서' 기도했어요. 
근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좀 나은 거 같더라고요. 

이거는 여러분들이 믿음대로 알아서 하세요. 
제가 평소에 신유를 많이 얘기하는 목사도 아닌데, 
근데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거 아닙니까.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내가 거룩한 절망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여, 스랍 천사들을 보내사, 핀 숯불로 제 입술과, 제 아픈 부분과, 
내 스트라우마와, 내 상처를 지져주시고,  
주여, 심지어 민족의 상처까지도 다 지져주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체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3. '듣고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가 성전에서,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한 후에, 
자기 죄에 대한 각성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
반드시 주님 앞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명의 확인'입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오늘 이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결단이,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내 동생을 보내 주시옵소서. 우리 목사님을 보내 주시옵소서!' 가 아니라,
그게 아니고, 
실제로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와닿아 가지고, 
여러분들의 상황 가운데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사명 받은 자로서 살기 원하오니,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마음이 없는데,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 주소서' 
이런 사명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이 바뀔 수가 있겠어요? 

'나를 보내소서!' 라는이 사명, 이 마음 자세가 없고, 이런 우리 반응이 없는데, 
어떻게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가 있겠어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그냥 표피적으로 종교 생활하고, 
그 다음에 신앙생활을 그냥 피상적으로만 한다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데, 
피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다면,
이사야처럼, 이런 고백을 반드시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 했을 때 
자기가 무슨 왕족 출신이고, 자기가 왕궁 교육을 받고, 
자기가 굉장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이런 자기 실력으로, 
그것 때문에 '나를 보내 달라고' 한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각성하고, 
'내가 사명받은 자'라는 깨달음을 갖게 될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에, 
'자기를 보내 달라'고 말씀하는 것이에요. 

▲오늘날 여러분의 실력과, 여러분 재능과, 여러분 능력과, 여러분 환경을 보면 
갈 입장이 되는 분이 거의 없어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내 실력과, 내 능력과, 내 지식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숯불을 가지고, 거룩한 인두를 가지고, 
내 인생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우리가 수많은 더러움을 지져 주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그 변화의 능력 때문에 '나를 보내 달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이걸 제대로 깨달으면, 
주님 앞에서이 말씀에 반응하고, 
오늘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대한민국의 지난 12월부터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여 나를 보내소서' 라고 우리 모두가 다 진심으로 고백하고 매달닐 때, 
세상이 변화될 것이에요. 

여러분이 진심으로 '나를 보내소서' 할 때에, 
우리의 부족한 인생이 주님 앞에 놀랍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요? 

6:9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하신 것처럼  마28:19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우리를 '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이 말씀을 깨닫고,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여러분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하죠.

진짜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깨닫고, 여러분들이 고백을 하게 되면
이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정규군이 될 것입니다. 
우물쭈물하는 당나라 군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규군이 될 것입니다. 

저는 청년 사역을 많이 했잖아요. 그리고 청년 시절에 수양회를 하면 
마지막 시간에 꼭 콜링을 해요. 마지막에 헌신하고 결단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과 은혜를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적당한 곳에 가는 것, 좀 한한 곳에 가는 것보다도, 
오히려 오지, 험지, 어려운 곳에 더 많이 가겠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는, 오히려 어려운 일일수록, 
더 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

이거는 어마어마한 특권이에요. 산꼭대기든, 바다 밑이든 
적당히 쉬운 곳이 아니라, 
'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거기가 어디든지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사무엘상 3장에 보니까, 어린 사무엘이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뭐든지) 듣겠나이다 하니' 3:10b
'내가 여기 있나이다 (어디든지) 나를 보내소서' 하는 본문의 이사야와 같은 맥락이죠.

이런 사람들이 무엇이 되는가요?

6:13b '...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 땅의 거룩한 씨가 되는 것입니다.

6:11~13절까지 보면, '황폐하다'는 말이 4번이나 나와요.
또 베임을 당했다, 소망이 없다...는 말도 나오죠.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고난과 어두움이 가득 밀려와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유일한 희망은 뭔가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죄에 대한 각성을 통하여 사명을 발견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즉 '직장에도 나를 보내 주십시오. 학교에도 나를 보내 주십시오' 
어디든지 내가 사명자로서, 
가정주부로서 내가 그저 밥하는 주부 정도가 아니라 '사명자 가정주부' 

그런 식으로 사명자 직장인, 사명자 대학생들, 사명자 비즈니스 맨,
이렇게 사명자로서 역할을 감당할 때에, 
'거룩한 그루터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에요. 
거룩한 씨가 되는 것이에요. 

▲우리 옛날에 농업국가 였을 때, 보릿고개 라는 게 있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 집에는 남아있는 양식이 이제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춘궁기라 하더라도, 
다음 파종을 위하여 종자를 꼭 남겨 두었어요. 

왜냐면 이 종자 씨앗이 있어야, 봄에 새롭게 씨앗을 뿌려서 추수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춘궁기, 보릿고개라도, 그 씨앗은 남겨 두었어요. 

황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교회의 신실한 죄의 종들을,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겨두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거룩한 그루터기, 거룩한 씨'라고 얘기할 때 
'이건 남들이 하는 거다.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과 저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을 위하여, 모두가 다 
'거룩한 그루터기, 거룩한 씨'라는, 
주님이 주시는 사명과 비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거룩한 그루터기는, 황폐한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고난을 겪는 가운데, 강력한 왕인 웃시야가 죽던 해에,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그 황폐함을 극복하고, 고난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룩한 그루터기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창으로 또 해석을 하면, 
오늘 이사야서의 본문 상황은, 야고보서 1:3~4절과 일치합니다.

약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발견할 때, 이것이 수월한 환경은 아니에요. 
어려운 환경이에요. 어려운 환경, 시련이 많이 있어요. 

근데 그걸 다 극복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하고 구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제대로 된 나무를 가지고 그 집의 기둥으로 쓰려고 하더라도, 
톱질을 해야 되고, 대패질을 해야 됩니다.  

거친 바람을 극복해 내야, 좋은 사공을 만들 수 있듯이, 
우리 나라의 역사는, 전 세계 나라에 비교하면, 
우리처럼 이런 고난이 많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민족이 무슨 죄가 많아 가지고,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거는 단순히 누구를 찬성하고, 누구를 반대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큰 그림어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연단하시고, 
우리 민족을 빼를 깎게 하시고, 톱질하시고, 대패질하셔서, 
우리 민족의 뼈를 녹이는 고통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이 그릇을 키워 가지고, 한반도에서 그만 싸우고 
'이제 통일을 위하여 큰 그릇 좀 제발 준비해라' 하시는 주님의 뜻이 숨어있는 줄 믿스비다.

그리고 '단순히 너희 나라만 위해서 살지 말고, 이스라엘은 숫자가 많지 않지만, 
세계 전 민족에게 그 나름대로의 역할 모델을 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앞으로 역할 모델이 되어라.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수많은 고난과 뼈를 깎는 아픔을 통과한 민족이니까, 
그걸 그냥 아픔으로만 끝나지 말고, 
오늘 말씀의 사명의 인두질을 가지고, 아픈 부위를 다 치유받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제 영적 질서 new international spiritual order 와, 
새로운 문명사에 도움이 되는 이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나라와 정세가 앞으로 한두 달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저희 교회 교우들과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은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때를 깎는 기도를 할 때에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에,
새로운 국제 영적 질서 new international spiritual order 를 세우는 일과, 
새로운 문명사에 도움이 되는 이 민족이 될 것입니더.

그래서 평양에서도 그야말로 우리가 집회할 수 있는 그날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27일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삼상11장의 말씀처럼 '일어나 길갈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 해서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세우자. 자유의 나라, 생명의 나라, 창조의 나라, 
거룩한 나라, 영광의 나라, 기적의 나라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한국교회가 연합으로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비록 내가 부족하고 내가 나를 볼 때 '내가 망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 거룩한 절망 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이런 내용들 가지고 마음에 품고, 믿음의 분량을 키워 가지고, 
이사야처럼 쓰임받게 되기를, 파송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의 용량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요.
100만 와트에 전력 발전소가 있는데,
내가 10와트의 전구만 갖고 있다면, 그냥 조그만한 불만 하나 켜고 그걸로 끝나는 겁니다. 

100만W(와트)의 전기 발전소에서 그 전력이 공급될 때, 
여러분들이 10만W, 50만W... 이렇게 준비가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더 귀하게 써 주실 수 있는 것이에요

우리는 이미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초청에 응한 바가 되었습니다. 
안식에 대한 초청도 받았습니다. 요14:6

오늘 본문은 주님이 우리를 사명으로 초청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말하되, 주여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먼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야만,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6:3
21세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사명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패스트 팔로우워 였습니다. fast follower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이 잘 하면, 우리가 열심히 따라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이제는 우리가 first mover 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영적으로도 대한민국 교회가, 대한민국 성도가 
이제는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first mover 가 돼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흑암과 고난 속에서 
들포도를 맺었던 어두운 인생에서, 
오늘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는, 빛나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그 순간 가슴을 치며 회개할 때에, 
새로운 사명으로 불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때로 뼈를 녹이는 고통으로 사람을 키우고 준비시키고
이 나라도 그렇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엄동설한 같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씨와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게 하여 주셔서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실 때 
우리 모두가 다 '주여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영적 전투력을 갖춘 정규군으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 교회를 세계교회를 향한 앞장서는 거룩한 선봉장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