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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LNCK 2025. 2. 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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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2 주일예배 //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 YouTube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말2:17~3:6        2025.02.02. 

※누가 먼저 가서 길을 내면, 다음 부터는 차츰 길이 편해지고, 길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는  말2:17~3:6절까지는, 말라기에 나오는 6개의 논쟁 중
네 번째 논쟁이 됩니다.       주1) '말라기의 6개의 논쟁'

◑말2: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말라기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했다' 
이렇게 말라기 선지자가 이야기를 하니까, 
제사장과 또 백성들이 뭐라고 반응하는가 하면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습니까?' 

'우리가 안식일이 되면 예배도 잘 드리고, 또 헌금도 잘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게 해 드렸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라고 그들이 말을 했다는 겁니다.  

이런 말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 밉게 보이는게 정상인데, 
그게 아니라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인다고.. 당시 사람들이 말했다는 겁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미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  

또 당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거죠.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이것은 수사 의문문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뜻이죠.

'정의의 하나님은, 성경에 글로 기록이 되어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분이시다' 라는 뜻이
이 질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것도 경건하다고 이야기하는 백성들이 
이런 (신성모독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거는 우리가 추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왔고, 
성전을 다시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꿈과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기근도 찾아오고, 불경기도 찾아 오고,  
이미 예루살렘과 유다는 다른 민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금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귀환민들 중에서, 누가 안정적이고 누가 성공적인 삶을 사느냐?  

교회는 (성전에는) 나오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세상에 악과 타협하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국은 안정도 누리고, 성공을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죠? 이런 말이 나오는 거죠. 
'야,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악을 행하는 자들이 벌을 받는게 아니라, 
더 성공하고 더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일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날까?'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좋아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  
'성경이 말씀하는 정의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책에는 있지만,  
현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야' 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반드시 행동이 따라오게 되죠. 
이렇게 말하면서, 이 세상을 살 때 
교회는 나오지만, 안식일은 지키지만, 또 헌금도 드리지만, 
세상과 똑같이 타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말들을 하면서, 하나님을 괴롭게 했다는 겁니다.  

그들의 질문의 핵심은 '도대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디 계시냐?' 하고  그들은 질문을 했습니다.       *예화 /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주2)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3:1~6절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그 말씀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정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 관련해서  4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1) 3:1절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정의로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메신저가 먼저 등장을 해서, 
그 분이 하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일이 먼저 일어날것이다... 

2) 하나님의 사자, 메신저가 먼저 나타나서 길을 준비하고 나면  
3:1절 후반부는 '주님이 찾아오시는데, 갑자기 찾아오신다. 
또한 공간적으로는 바로 그의 성전에 그분이 찾아오신다' 라고 선지자는 예언합니다. 

3) 3:2~5절까지는, 바로 정의의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두 가지 일을 행하시는데, 

-그분은 정화의 일을 하십니다. :2~4
 불순물과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는 정화의 일을 하실 것이며,
-악행을 행하는 자들을 그분은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5

4) 그래서 3:6절은 어떤 이야기로 이 논쟁이 마무리가 되느냐?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고 '변덕이 심하다' 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하나님이 스스로 선언하십니다. '나는 변하지 않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소멸되지 않았다' 라는 선언으로 이 논쟁이  마무리 됩니다. 

자 그러면 한 구절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보라'는 강조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겠다'
여기서 '사자'는 메신저입니다. 
메신저란, 쉽게 표현하면 말씀의 사역자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여기 내 '사자 使者' 메신저가, 히브리어로 '말라기'입니다. 
'내가 말라기를 보내겠다' 이렇게 됩니다. 

'말라기'의 뜻이 뭔가 하면 '내 사자, 마이 메신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일을 하느냐? 
'내 앞에서, 즉 하나님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먼저 그분의 사자를 보내서,
하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시는 일이 먼저 일어날거다' 

이 말씀은, 이사야 40:3~5절에,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죠. 
이사야서는 40장부터 후반부가 시작이 되는데, 
40:1~2절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고통, 그 가운데 있을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내 백성을' 이렇게 하나님의 위로를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그들의 모든 복역과 고통의 때가 끝났다' 하는 위대한 팡파레가 울리게 됩니다. 

그런데 40:3절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말하라' 그런데 내용이 뭔가 하면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해라'  

지금 '여호와의 길과 대로를 준비해라' 그러면서 40:4절에
'낮아져 있는 골짜기는 돋우워지고, 높아진 산과 언덕마다 낮아지게 만들고, 
고르지 아니한 곳은 평탄하게 되고, 험한 곳은 평지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왕의 행차를 위한 도로 공사를 하라는 거죠. 물론 상징적인 뜻입니다.

40:5절에, 이렇게 길이 준비되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전에,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납니까? 
바로 하나님의 메신저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지는...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근데  잘 아시는 것처럼, 말라기는 구약 성경의 마지막 성경입니다.
말라기 다음에는, 신약이 기록되게 됩니다. 

말라기서의 예언이 마치고 나서, 한 300~400년 정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예수님께서 오시게 되죠.  

본문 말3:1절 말씀은, 막1:2~4절에 등장합니다. 
연대적으로 첫 번째 복음서라고 알려져 있는 마가복음의 첫 구절인 1:1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선언한 후에,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선지자 이사야' 라고 말씀했지만, 이 인용은 
말라기서 오늘 본문 말씀과, 이사야 40장에 믿는 말씀이 같이 섞여 있습니다. 

막1:2~3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리니 그가 내 길을 준비하리라' 하는 막1:2절은, 
본문 말라기 3:1절 말씀의 인용이죠.  

지금 복음의 시작(막1:1)은 무엇으로 시작하나? 
말라기서에 나왔던 '내가 내 사자를 보내겠다'라고 하신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즉 말라기서가 구약의 끝 성경인데, 신약의 첫 성경인 마가복음과 연속된다는 거죠.

막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사야서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사40: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말3:1              
*말3:1 = 사 40:3 = 막1:3

이렇게 기록된 것처럼  누가 등장하나?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게' 됩니다. 막1:4  

말라기서를 통해, 즉 말라기를 통해 주신 하나님 이 예언의 말씀은, 
1차적으로 누구를 통해 성취되나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세례 요한은 누구냐? 
바로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의 역할을 했고, 
그 준비된 길 속에서 누가 등장하시나? 
바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게 됩니다. 

먼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정의의 하나님께서 오셔서, 
심판과 구원의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누구를 보내시느냐?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그분의 사자, 메신저를 보내는 일이 먼저 일어날거다'  
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말3:1절 후반부를 보시죠. 
이제 구원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께서 등장하는데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3:1b

정의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방문하실 때, 두 가지 인상적인 단어가 소개됩니다. 

1) '갑자기'
사람들, 회의로운 자들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라고 불평하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갑자기 내가 찾아가겠다. 갑자기 그곳에 임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근데 이 '갑자기'라는 단어가, 선지서에 보면 또 한번 사용이 되는데, 
예레미야서와 이사야서를 보면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바벨론이 멸망할 때, '갑자기'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그 바벨론이, 어떻게 멸망당하느냐? 
'갑자기' 그들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것처럼, 사람들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불평하고, 2:17  
하나님을 향해 무시하지만,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갑자기 그들에게 찾아가십니다. 

2) 근데 장소입니다. 어디에 그분이 찾아가시느냐? '그의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  
성전 앞에 소유격이 붙어 있죠. 누구의 성전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내가 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임하시는 그 하나님을, 두 가지 단어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합니다. 
-'주님' (아도나이) .. 이 말은 '온 세상에 통치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시죠? 
 온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십니다.  

-'언약의 사자'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3:1b
'언약의 사자'는 쉽게 말하면, 언약을 집행하는 분이십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또 제사장, 레위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킨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상을 주시겠죠.
그러나 지금  말라기 시대는, 그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그들을 정의로 심판하시는.. '언약의 사자(실행자)'로
등장하실 것이다, 찾아가실 것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리하면, 먼저 하나님의 메신저가 가서 백성들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그 길을 준비하고 나면,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킵니다.  
주 곧 언약의 사자가 찾아가십니다.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시고, 
그의 성전에 그분이 임하시게 됩니다. '언약의 사자'로서 임하십니다.

◑3: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2절부터는 내용이 '그분이 임하셨을 때 어떤 모습이 될 건가?
그분은 무엇을 하실 것인가?' 

2절도 수사 의문문입니다. 
'누가 당하고 누가 설 수 있겠느냐?' 아무도 그분 앞에 설 사람이 없다는 뜻이죠.  
이렇게 압도적인 영광과 능력으로, 정의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찾아오실 때의 모습을, 두 가지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1)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을 것이다' 
고대에 금과 은을 가공하는 방법은
-망치로 때리고 두들겨 펴서 원하는 어떤 모습들을 만들 수 있고, 
-뜨거운 불로 최대한 온도를 높여서 금과 은을 녹이는 겁니다.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나죠? 그 속에 있는 불순물과 찌꺼기들이 다 타거나 제거되죠.
그래서 가장 순한 정금, 순은이 다듬어지게 됩니다. 
이 장면을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죠.

정의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가실 때, 
그 모습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을 것이다'  

2) 두 번째 이미지는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다'
'잿물'의 영어 번역은 비누, 또는 세제입니다. 
하나님은 세탁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비누와 세제와 같을 것이다.  
비누와 세제가 있으면, 어떤 얼룩과 더러움도 깨끗하게 씻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3절을 보시죠.  

◑3: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연단'은 제련을 뜻하죠. 불로 태우고, 망치로 두들겨 깨끗하게 하는 겁니다. 3:2

정의의 하나님께서, 대장장이처럼 작업실에 앉아서 망치로 두들겨, 
누구를 깨끗하게 하겠다는 겁니까?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겠다'

이 레위 자손은 누군가 하면, 레위 제사장들입니다. 
앞에서 책망 받았던 레위 제사장들을,  정의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연단하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들이 깨끗하게 연단되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정의의 하나님이 임하셔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이 무엇이냐? 
금과 은을 연단하는 것과 같은 연단하는 일을 하실 텐데 
대상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레위인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을 제련하고 연단해서 깨끗하게 만들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결과물이 무엇이죠? 
'제사장들이 앞에서 책망을 받았던 부정한 재물이 아니라, *1:6~2:9, 두번째 논쟁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과 기준에 부합되는 
공의로운 제물을 여호와께 바칠것이다.'   *'제련, 연단' 관련 예화    주3) 

◑3: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봉헌물'은 제사 때 드리는 예물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나 주를 기쁘게 할 것이다' 새번역
'그들의 제사와 제물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4절까지 말씀을 정리하면, 
'정의의 하나님(2:17)'은  예수님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임하시면, 첫 번째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제사장들을 금과 은같이 연단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서
그 결과물이 뭐냐?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공의로운 제물을 드리고,  
이것 때문에 모든 백성들의 예물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예배의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라기서는 신약을 통해서 보시면, 이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풀립니다. 
지금 '금과 은을 단련하는 뜨거운 불'이 등장했고,  
또 '빨래를 깨끗하게 씻는 잿물'이 등장했습니다. 3:2

'정의의 하나님이 등장하실 때 이와 같은 모습이 될거다' 수수께끼 같죠? 
그러나 신약을 통해서 보면 어떻게 됩니까? 

먼저 세례요한이 등장했고, 그 후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분은 '주'와 '언약의 사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3:1

예수님이 오셔서 어디를 방문했죠? 공생애 마지막으로 성전을 방문해서 
그곳에서 돈바꿔주는 상을 뒤집어엎고, 가축들을 파는 사람들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찌꺼기와 같고, 불순물로 더럽혀져 있던 당시 종교지도자(본문의 레위인 제사장)들을 
예수님(하나님)께서는 다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때로부터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죠? 

행2장에 120명의 제자와 성도들에게 불같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거기서 초대 교회가 탄생을 합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공동체입니까? 

거기에는 소위 레위 제사장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깨끗하여지고, 
성령을 통해서 그들의 모든 욕망의 불순물과 찌꺼기가 불타 없어져 버린...  

그들을 베드로의 선언대로 하면 '왕 같은 제사장'들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즉 초대교회 공동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라기를 통해 꿈꾸셨던, 예언하셨던, 
그 살아있고 참된 예배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불과 같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이야기가, 
바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입니다. 이 말라기의 말씀은 그렇게 성취되어지게 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제가 하나 회개하게 된 거는, 
저는 영적인 비누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깨끗해지고,  
불같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모든 욕망의 찌꺼기와 더러운 것들이 깨끗하게 불타면, 
우리의 삶이 거룩해질 것이다... 라고 저는 (말라기 본문) 뒤에 기록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근데 본문 뒤에는 '삶이 거룩해질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배가 회복이 될 것이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예배가 되어질거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이 회복이 될 거다' 라고 오랫동안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일 수도 있는데  
여러분, '예배가 먼저이겠습니까? 삶이 먼저이겠습니까?' 

말라기서 본문을 통해서 보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회복시키실 때, 
먼저 예배를 회복시키시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회복을 시키십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보실 때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갈수록 자꾸 '예배'에 대한 강조점들이 우리 마음에서 사라질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요즘  젊은 분들도 그렇고... '이제는 예배가 뭐가 필요 하냐?' 
'예배보다는 삶이 먼저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깨끗함을 받고,  
불과 같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욕망의 모든 찌꺼기들이 불타 없어지게 되면, 
우리가 가장 열망하는 것이 무엇이 되느냐?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회복되게 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회복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셨던 모습이다...라고 
말라기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예배'에 관한 예화   주4) 

◑3: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정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심판하러 너에게 임하실 것이다'.

여기서 '심판'은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입니다.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느냐? '내가 정의를 위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백성들의 질문이 뭐였죠?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라고 묻는 사람들을 향해서  2:17
하나님이 답변하십니다. '내가 정의(미쉬파트)를 위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3:5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이, 여기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점치는 자 : 성경에서 점 치는 것을 하나님은 엄히 금하십니다.   
신18:10~12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한 자나 박수나 혼을 부르는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 용납하지 마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하나님이 쫓아내셨던 가나안 백성들은, 점과 이런 것들이 만연되어져 있었던 거죠. 

제가 얼마 전에 경주를 한번 갔다가, 경주 황리단길이 있잖아요. 
거기에 타로 점을 치는 곳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것도 충격이었지만, 
한 타로점 가게 앞에 이런 푯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 우대함!' .. 더 충격이었죠.

'사람들이, 심지어 기독교인들이 이런 곳에 많이 가시는구나' 
여러분 중에 '그냥 장난삼아 갔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볼 때는 회개하셔야 됩니다. 

이런 무속신앙, 우상숭배에 사로잡히면, 여호수아 때 가나안 사람들이 심판받은 것처럼, 
또는 말라기 때 사람들이 심판받은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드시 심판받게 됩니다. 

2) 간음하는 자
점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자고, 간음하는 자는 가정을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3) 거짓 맹세하는 자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맹세했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곳은 딱 두 군데입니다. 
-법정에서  
-중요한 계약을 맺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4)~6) 탐욕 때문에 약한 자들을 짓밟는 자
거짓맹세는 무엇이죠? 하나님의 이름으로 증언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중요한 계약을 맺었으면서도, 그것을 파기시키는 행동이죠. 
이거는 사회관계를, 소위 거짓과 속임수와 사기로 망가뜨리는 사람들입니다. 

뒤에 나오는 세 부류의 사람들 품꾼들에게 삯을 잘 안 주고,  
고와 과부를 힘들게 하고, 나그네를 억압하는 사람... 이 세 부류는 누구입니까? 
바로 탐욕 때문에 약한 자들을 짓밟는 사람들입니다. 

7) 이거는 근원적인 죄입니다. '나를 경외하지 않는 자'  
앞에 6가지는 뭐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모습들, 6가지 양상입니다... 

5절 마지막에 '(내가, 하나님이) 속히 증언하리라 
하나님 자신이 증인이 되겠다는 거예요. 
너희가 바로 악행을 범한 자라는 것을, 
하나님 자신이 재판관이 될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속히 증인이 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3:1) 그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을 연단(3:2)하실뿐만 아니라, 그들의 악행을 반드시 의롭게 심판하시겠다는 거죠. (3:5)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도의 제목을 받을 수 있다면 
1) 먼저는 우리의 예배가 회복이 되어야 됩니다.  
2) 두 번째는,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 6절 말씀을 한번 보시죠.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바로 여기 6절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냐? 변하지 않는 하나님!

무엇이 변하지 않습니까?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6
 
그래서 어떤 결과 주어지나요? 
야곱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그들의 죄와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들이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겁니다. 
 
너희가 망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금도 너희가 남아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너희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마치는 말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기 등장하는 회의론자들처럼 (2:17)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자들보다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 
'정의의 하나님, 그것은 성경에나 있지, 현실에는 없어!' 그러면서  

교회 와서 경건의 모양은 가지지만, 이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앞에 누구를 세우시죠? 
말씀의 사역자를 먼저 세우셔서, 그분을 위한 길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회개로 준비시키십니다)

1) 본문을 대하는 제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이거였어요. 
앞으로  한국 사회에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이 찾아오려면, 누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준비하신 말씀의 사역자들이 일어나서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준비시키는 
말씀의 사역자들이 일어나느냐/ 일어나지 못하느냐? 
저는 여기에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말씀의 사역자는 노력한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제가 지금 말씀을 전하고 있잖아요. 제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지금 성경이 예언한,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말씀의 사역자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이 세워 주실 때에만, 
하나님이 보내주실 때에만, 하나님의 사자, 말씀의 사역자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2) 두 번째  기억하셔야 되는 것은, 정의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세워주십니다. 

 

첫 번째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 예수님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불과 같은 성령께서, 우리들의 모든 찌꺼기와 모든 불순물들을 불살라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불과 같은 성령만이 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 일을 행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요?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세워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저 자신부터가, 우리 한국 교회 예배는 병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의 예배는 병들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한번 보시죠. 저도 저를 볼 때, 한국교회 예배는 병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씻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심으로 의지합니까? 

우리의 욕망과, 욕망의 모든 찌꺼기를 불살라 버리는 성령의 그 역사하심들이, 
한국 교회 속에, 우리들 속에 과연 나타나고 있습니까?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보혈과 불타는 성령께서 우리를 태워 주실 때에만 
우리는 참된 예배자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3) 세 번째,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 <심판>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매 순간 바르게,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영원히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4) 마지막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은 무엇이냐?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실 것이고,  
그분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가정, 예수님을 믿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그분이 끝까지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망하지 않고 여전히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한 주간 살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참된 예배자로 우리가 살아가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서, 
하나님께 상 받는 삶이 되고,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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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말라기에 나오는 6개 논쟁


주2) 예화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기독교 상담가 지멘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상담했던 베티라는 여성이 있었다. 

베티는 ‘나는 아무 쓸데없어. 나는 사고로 태어난 사람이야.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자랐고 
커서 어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부모가 결혼한 이유가, 엄마가 자기를 임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고 
베티가 태어나자마자 아빠는 집을 나갔고 
엄마 혼자 자기를 키우면서 ’너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는데 태어났어,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고달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없어져야 할 존재, 나는 사고로 태어난 존재..’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런 베티와 상담을 하다가, 상담가 지멘스가 숙제를 하나 줬습니다. 
상담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당신이 이 숙제에 대해서 한번 당신의 생각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태어날 때,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지던 그 순간 
하나님이 어디 계셨는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베티는 숙제가 좀 황당하고 이상한 것 같아서 며칠은 하지 않다가 
마지막 날 억지로 숙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썼는데 이렇습니다. 
『오 하나님, 사랑 많으신 아버지께서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않으려 하셨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벅차오릅니다. 내가 세상적인 정욕으로 잉태되었을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어머니 뱃속에서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빚어주시고,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때, 아버지의 빈자리에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버린 아이가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울었을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내내 하나님의 부드러운 팔로 나를 안고 있었고, 
당신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나를 부드럽게 흔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왜 당신의 존재를 몰랐나요? 하나님 사랑하는 아버지 
내 마음은 얼어붙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의 빛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3) 예화 '연단을 받은 맹인 노인'

어느 멋있는 여인이, 기차역에서, 기차표를 사고 나서,
시간이 남았다고 역 주위를 관광 삼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짙은 안개가 점점 몰려오더니,
어느 듯 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뿌연 안개로 뒤덮이고 말았다.
오직 보이는 것은, 자기가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 뿐이었다. 

영국 런던의 안개가 그렇게 짙다고 하는데,
다른 것은 주위에 하나도 안 보이는 그런 짙은 안개가 있는데, 바로 그 날이었다.

이제 그 멋있는 여인은, 안개로 인해, 기차역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 보니,
안개 속에서.. 가로수에 얼굴이 찔리는가 하면,
전봇대나 길에 세워진 우체통에 자기 몸이 부딪히기도 하였다.
이렇게 헤매다가는.. 아무리 애써도, 정한 시간에 기차역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여인은, 주위에 걸어가는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몇몇 남자들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자기가 늘 다니던 길이 아니라서.. 안개 속에서 그들도 갈팡질팡 하는 것이었다.
시간만 더 허비될 뿐이었다.

그렇게 절망 가운데, 여인은, 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한 구부정한 노인이 지나가다가.. 이 상황을 감지하고,
혹시 자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그 초라한 노인은, 걸음이 보통 사람보다 느렸지만,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모퉁이를 돌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그 짙은 안개 속에서도 능숙하게.. 여인을 기차역 앞까지 정확하게 인도해 주었다.

여인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그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 노인은 소경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성한 눈을 가진 사람들도 찾기 어려운 길을
눈 먼 노인이 찾을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연애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가족들이 소풍을 가면서 기차역을 이용하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다른 사람들이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던 시간에..

그 소경 노인은,
기차역 앞을 지나다니면서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가로수 가지에 얼굴이 찔리기도 하고,
전봇대에 부딪혀서 혹이 나기도 하고,
횡단보도를 잘 못 찾아서, 하마터면 교통사고를 당할 뻔도 했었다.

그러나 그 소경 노인은, 그 주변 일대를 날마다 ‘연단(훈련)했다.’
남들이 누리고 즐기는 그 시간에
그 소경 노인은 연단과 훈련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거리에 짙은 안개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며 헤매고 있었다.
자기가 아는 길로만 겨우 걸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길을 먼저 간 사람’이
그 길에서 남들이 웃고 즐길 때, 그가 연단을 받은 것은
‘짙은 안개의 날’에, 길 잃은 사람들에게 눈이 되어주기 위해서였다.

본문에 '제사장'이,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연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은 큰 잘못이 없고, 제사장만 유독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을 먼저 연단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어
'백성들'을 잘 인도하게끔 하기 위함입니다.


주4) '예배를 좋아했던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

CNN 기자였고 작가인 리온 해리스(Leon Harris)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역대 미국 대통령을 분석하는 글을 쓴 것을 흥미 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비교적 미국인들이 좋아했고, 건강한 영향을 남긴 대통령들을
3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1)유능한 대통령-조지 워싱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등이 들어갔고,
2)성실한 대통령-우드워드, 지미 카터가 들어갔고
3)행복한 대통령- 여기에는 로널드 레이건과 윌리엄 맥킨리 가 들어갔습니다.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은 특히 그의 겸손함과 조용한 미소,
그리고 평화를 느끼게 하는 부드러움으로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국민들은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의 행복이 어디서 유래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서슴없이 “교회와 가정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그의 성장 과정에서의 시골 교회의 예배와
시골 자기 집의 식탁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고 하면서
교회 예배의 장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가정의 식탁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유능한 것도, 성실한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행복한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