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3장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내일교회 2025-02-09 주일예배 //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 YouTube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말3:7~12 2025.02.09. 교정예정
저희들이 말라기서 말씀을 계속 나누게 되는 중에,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라기에 나와있는 6개의 논쟁 중에 다섯 번째 입니다.
제가 심방을 가거나, 밖에서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편 되시는 분이 교회를 안 다니셔 가지고,
그래서 어떻게 교회를 안 다니시느냐?' 라고 물어보면,
아내가 열심히 권면해 가지고, 남편이 오랜 만에 큰 마음 먹고 교회를 나왔는데,
그날 목사님이 마침 헌금에 대해서 설교를 하셔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남편이 또 발길을 뚝 끊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십일조'나 '헌금'에 관한 설교는, 말라기 본문을 따라서 설교하는 것이고,
그래서 성경에 십일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는가 하는 걸 듣고
여러분들이 한번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 재정이 부족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말3:7~9절까지는 책망입니다.
3:10~12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도전하시고 또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말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먼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했다'
'조상들의 날'이라는게 정확하게 언제를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살펴 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떠났다'는 것은 의도적인 거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교훈을 하셨지만, 백성들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떠났습니다.
'떠났고 지키지 아니했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평가를 하십니다.
그 다음 그들에게 도전하시는데, 뭐라고 도전하시는가 하면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7절에 '돌아오다, 돌아가다.. 히브리어 슈브가 3번이나 쓰였죠. 영어로는 Return.
이 표현은 언약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 갈거다'
('언약'이 잠시 깨어져 있었는데, 다시 회복을 염두에 두고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특별히 선지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가
'슈브'라는 단어입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면(슈브)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겠다(슈브)'
근데이 말씀 바로 앞에 성경인 스가랴 1:3절에 이미 나왔던 말씀입니다.
슥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려 한 구절 속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 3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강조점은 '내게 돌아와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돌아가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7절 후반부를 한번 보시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질문을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겠습니까?'
이 질문 내용은 뭔가 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는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어떤 부분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됩니까?'
'어떤 영역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됩니까?' 라고 백성들이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래 8절입니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여기서 도둑질은, '강탈하다 rob'라는 뜻입니다.
피조물인 아담 어떻게 하나님을 강탈하고 빼앗을 수 있느냐,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행동이라는 거죠.
그런데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뭐라고 말을 하느냐?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했습니까?'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간략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것은 '곧 십일조와 보는 봉헌물이다'
여기서 '봉헌물'이란, 십일조를 제외한 제물과 예물을 다 포함하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십일조는 성경에서 어디에 등장하며,
십일조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나요?
1) '십일조'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14:20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가신 318명을 거느리고 4개국 연합군을
공격해서 그들을 패배시키고 승리합니다. 승리하고 돌아올 때
소돔과 고모라 왕뿐만 아니라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이
아브라함을 마중을 나오게 됩니다. 이때 이렇게 말합니다.
창14: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지금 '아브라함 당신은 정말 위대합니다' 이렇게 칭송을 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멜기세덱 제사장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말을 듣고, 전쟁을 통해서 얻은 전리품 중에
1/10을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드리게 됩니다. 이때 십일조가 처음 등장하는 겁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바로 이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바로 땅의 주인이시고,
그분이 내 삶의 된 공급자이시다'
라는 내용을 담은 신앙고백으로, 아브라함은 최초로 십일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초의 십일조의 의미, 정신은
'하나님이 땅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공급자이십니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예배 행위로 드렸던 것이 바로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2)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서 도망을 가다가 벧엘이라는 곳에서 노숙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야곱이 잠이 깹니다. 그가 누워 잤던 베개의 돌을 가지고 세워서
그 돌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가 서원하는 내용입니다.
창28:21~22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결국 앞에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살폈던 것처럼, 야곱도 마찬가지로 고백했습니다.
십일조는 무엇에 대한 고백이냐?
'하나님이 내 인생에 참된 공급자이시고, 내 삶의 주인이시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예배 행위가 뭔가 하면,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겁니다.
3) 십일조가 율법으로 주어진 것은, 출애굽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주십니다.
그런데 율법에서 처음 십일조가 등장하는 곳이 레27:30절입니다.
여기에 율법에서 처음 십일조가 등장하는데요.
레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그 땅에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의 1/10분은 여호와의 것이다. 여호와의 성물이다.'
즉 1/10은 그분의 것이고, belong to the Lord
그분에게 거룩한 것이다. holy to the Lord
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가나안 땅을 주시겠죠.
그 가나안 땅을 주실 때, 그 땅의 소산물의 1/10은 '내 것이고' belong to the Lord
그것은 여호와께 거룩한(구별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holy to the Lord
그러면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1/10을 거두어서 뭐 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십일조를 거두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민수기에는 십일조에 대한 용도가 나옵니다.
민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pay'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섬기는 일만 하는데,
십일조를 통해서 그들에게 '갚아주겠다, 즉 pay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의 생계를 돕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것이죠.
신14:22~23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명기 14장은, 거룩한 삶에 대한 교훈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옷은 어떻게 입고, 머리는 어떻게 하고, 먹는 것은 어떻게 하고...
그 가운데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입는 것, 먹는 것' 등 모든 것에서 달라야 되는데
특별히 물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달라야 된다는 거죠.
그 대표적인게 무엇이냐?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매년 토지 소산의 1/10을 드리는데
23절을 보면, 장소가 어디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 이거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1/10을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드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드리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3
여러분, 십일조를 명령하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항상 배우도록 하라는 거죠.
여러분,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결국 무엇이냐?
내 삶의 기반을 누구에게 둘 것인가?
-나의 능력, 내가 가진 부, 재산... 거기에 내 삶의 기반을 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내 삶의 기초를 둘 것인가?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
-내 능력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을 구분 짓는 것이, 바로 십일조 라는 겁니다.
신14:28~29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십일조를 2년 동안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갑니다. *1년에 한 번
그러나 매 3년에는 십일조를,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가지 않고,
자기 성읍에 십일조를 저축합니다.
저축을 해서 어디에 사용하느냐? 구제에 사용했습니다. :29
그래서 3년에 1차씩 드려지는 십일조는,
그 성읍에 사는 레위인 뿐만 아니라 (*레위인이 48개 성읍에 흩어져 섬기고 있었죠)
거기 사는 고아, 과부, 객 등 가난한 자들을 돕는 용도로 사용하라고 하셨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약속하셨느냐?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29
이제까지 율법책에 기록된 십일조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렸는데,
십일조는 하나님이 그리셨던 이스라엘 사회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고 가나안 땅에 이끄시면서
꿈꾸셨던 모습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전을 누가 섬기느냐?
열두 지파 중에 하나였던 레위인들은, 이 성전을 섬기는 일,
즉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그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적으로 헌신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1지파는 무엇하느냐?
이들의 도움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깨달아서,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또 하나님이 주신 기업들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이런 세상을 하나님이 꿈꾸시고, 그리셨던 거죠.
그래서 십일조를 통해서, 그 성전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던 레위인들을 돕고
매 삼년마다 한 번은, 그 재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거기에 십일조가 사용될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거였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생겼는가요?
이 말라기와 동시대 사람으로 이해되는 느헤미야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느13: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성전이 건축되고 한 70년 정도 지나서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부임해서 수많은 개혁 사업을 했는데
마지막에 보니까 어떤 일이 생겼느냐? 레위 사람들이 뭐라고 했죠?
'자기 밭으로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도와야 할 레위인들이 집으로 다 도망갔다는 거죠.
이유가 뭡니까? 그들에게 삯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십일조를 통해 그들의 생계 유지를 도와줬어야 되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까, 다 자기 집으로 도망갔던 것입니다.
느13: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11절은 느헤미야가 총독으로서 백성들을 모아서 꾸중을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내도록, 12절에서 독려합니다.
느13: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이스라엘 사회 가운데 십일조가 제대로 드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한쪽에서는 예배가 몰락이 됩니다.
또 한쪽에서는 고아, 과부, 객 등 사회 저변층에 대한 구제 방법이 없게 되는 거죠.
이 사실은 말3:5에 나옵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겠다.. 라고 할 때,
그 대상 중에 하나가,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근데 말3:5에 나오는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억울하게 만드는 사람은
직접적인 고용주라든가,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또 누가 여기에 포함되느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3년에 한 번씩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돕도록 했는데,
이 의무를 다 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느냐?
가난한 사람들이 압제 당하는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할 때 어떤 일이 생기나요?
그냥 교회 헌금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무너지게 되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한테
주의 사랑이 전달되지가 않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이, 다 사라져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죠.
우리 교회 예를 한번 들어보면,
저희 교회는 재정의 70%가 십일조를 통해 충당됩니다.
이 재정을 가지고 어디에 사용이 되나?
교역자와 직원들의 인건비가 재정 수입의 20%가 사용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레위인들을 섬기는 일이죠.
또 25% 정도는, 건물 관리 비용에 약 25%가 사용됩니다.
선교와 구제를 포함해서
저희 교회가 또 대구에서는 큰 교회 속하니까
여러 가지 책임을 져야 될 영역들이 많습니다.
그 부분을 감당하는데 20% 정도가 사용이 됩니다.
그 다음에 정말 많이 사용하는 것이 교육 분야입니다 .
다음 세대, 청년들, 장년들 교육에 저희가 20%가 또 사용이 됩니다.
아마 교육비는 저희 교회가 (다른 교회에 상대적으로) 굉장히 지출을 많이 하거든요.
지금 다른 교회는, 다음 세대와 청년들이 거의 와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청년 1부 수련회를 마쳤는데, 대학생 150명 정도가 같이 참석을 했어요.
제가 청년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 또 그들의 간증문을 읽는데,
저도 오랫동안 청년 사역을 했었기 때문에...
여러분, 저희들이 청년 사역할 때 200명하고,
지금 청년들 200명은 종류가 다릅니다.
저희들 때는, 그때는, 학생들이 넘쳐날 때였어요.
그때는 대학생들 그 청년 나이가 60만 명 정도가 될 때였고,
지금은 3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와중에 저희 교회 청년들이 얼마나 열심이 많은지 몰라요.
지난주에 또 고등부 수련회를 갔는데,
저희 교회 고등부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한 150명 가까이 돼요.
다음 주에는 또 중등부 수련회가 있습니다. 중등부는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장의자 20개를 새로 들였잖아요.
중등부가 정말 많거든요. 요즘 이런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아이들은 누가 먹입니까? 이 아이들은 어떻게 먹일 수가 있겠어요?
과거에 제가 청년사역 할 때, 저는 라면 먹이면 충분했거든요.
요즘 애들은 라면이나 떡볶이 먹여 보십시오. 항의 들어옵니다.
그러면 요즘 애들이 뭐라고 저한테 말하느냐?
'목사님, 큰 아들 오고 며느리 오면 뭐 먹습니까?
목사님이 아들과 며느리한테 라면과 짜장면, 떡볶이, 김밥 사 주시면,
그러면 우리도 기꺼이 먹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마다 교육비가 많이 책정되고,
또 실제로 많이 사용되는 것은, 현실이라는 거죠.
가정도 마찬가지죠. 부모님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부모님들이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습니다.
전부 다 자녀들 뒷바라지로 다 들어가요.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우리 교회 규모는, 부장 장로님이나 이런 분들이
한번 선심 쓸 수 있는 규모를 훨씬 초과했습니다.
교사들도 보면 부서마다 100명씩 되는데,
누가 어떻게 한 사람이 그걸 혼자 낼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교회가 이거를 공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부서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뭔가 하면, 저희 교회에도 바로 성도님들께서
참 어려운 생활 가운데도, 주님을 사랑해서 떼어 드린 마음으로
선교와 구제와 예배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비를
왕성하게 배정하고 집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말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너희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다'고 하십니다.
앞서 3:7절에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이런 대화, 변론이 있었습니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은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돌이키라'고 하셨는데,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에서 떠난 것은 '십일조와 헌물'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길 역시 '십일조와 헌물의 돌이킴'에 달려있다는 거죠.
더욱이 '십일조와 헌물'을 등한시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죄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서야, 사람이 평안히 살 수 없습니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성전에 십일조를 모아두는 방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온전한 십일조'는 영어성경에 주로 whole tithe로 번역했죠.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하나님이 먹겠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죠.
레위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한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를 시험하여... 보라'
원래 성경에서 '시험' 이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trial, temptation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test 할 때이죠.
이것은 승진이나 상을 주기 위해서 test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긍정적 의미이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내가 하늘문을 열고'
이것은 일차적으로 '비가 내리게 하겠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축복의 단비를 내려서
그들이 농사짓는 것에 풍성한 수확을 주셔서
정말 창고에 쌓을 것이 없도록 그들의 삶을 채워 주시겠다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에 대한 첫 번째 약속이고,
두 번째 약속은 11절에 나옵니다.
◑말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이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수확물을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다는 거죠.
메뚜기와 벌레로부터!
아마 우리들도 살다 보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벌레와 메뚜기를 금해서, 우리들의 수확물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마지막 12절을 보시죠. 세 번째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말3: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원래 번역은 뒷부분이 먼저 나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든 이방인들이 너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제가 문자적으로 번역하겠습니다.
'너희 땅은 기쁨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은총 땅이 될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보고 복되다고 할 것이다' 라고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세 가지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첫 번째,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0
두 번째,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1
세 번째,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12
즉 우리 삶의 터전과 가정을 무엇으로 만들어 주시느냐?
기쁨의 땅, 또 은총의 땅으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서
모든 이방 사람들이 '정말 저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적용
저 역시도 원래 제가 목사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 가정도 어려웠기 때문에,
교회에 오면 물질, 특별히 헌금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이 너무너무 듣기 힘들었습니다.
만약에 수입이 있는데,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면, 타격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면, 내가 쓸 돈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제가 청년시절에 가장 고민했던 단어는 '이 세상은이 닫힌 세계인가,
아니면 이 세상은 하나님을 향해 열린 세계인가?'
저는 대학에서 원래 물리학을 공부를 했으니까,
'닫힌 세계'는 뭔가 하면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 경제학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1/10분을 드리면, 내 것은 없어져 버리는 것,
그러면 나한테는 가난이고, 나한테는 손해죠.
이것은 뭔가 하면 닫힌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가정하는 갇힌 세계에서는, 내가 드리면 드릴수록 손해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세계는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을 향해 열린 세계입니다. 오픈 시스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열린 세계' 이 말은 무엇이냐면,
내가 하나님께 1/10을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하늘의 창을 여시고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시고,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다 지켜주시고, 우리 삶의 현장을 기쁨의 땅으로 바꿔 주셔서,
우리가 드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을 것이 없는 복으로 갚아 주시는 분,
그래서 이 세상은 닫힌 세계, 즉 내 힘으로, 과학으로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열린 세계이며,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을 곳이 없도록 갚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이것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무엇을 통해서 주어지느냐?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겁니다.
제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십일조와 헌물은, 한국 교회 성도들만의 마치 DNA 같아요.
우리 앞선 세대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거는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잘 흉내낼 수 없습니다.
(이거는 부정적 측면도 있습니다만)
세계 어느 나라 교회도 흉내낼 수 없는, 한국교회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에 가서, 많은 타민족 교회들을 봤을 때,
그들은 들과 똑같이 시작하지만 , 독립적인 신앙 공동체를 잘 세우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배를 참석하고 기쁘게 찬양하며 즐기는 것은 잘하지만,
무엇을 못하느냐? 하나님께 드리지를 못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항상 공동체가 남들에게 종속되어져 있습니다.
떠돌이 공동체 밖에 될 수 없어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이민자들이 고단한 삶 가운데서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이냐?
그분들은 교회를 세우셨어요. 그리고 독립적인 공간들을 얻게 되었어요.
여러분, 이거는 한국 교회만이 가시는 강력한 힘이었어요.
그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갚아 주셨느냐?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다른 나라들이 볼 때 '지금 분명히 위기에 처했다'고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기적의 연속인 나라입니다. 은총의 땅, 기쁨의 땅입니다.
이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주어졌겠습니까?
우리가 물질에 있어서, 때로는 강요가 됐을 수도 있고,
거기에 수많은 오류가 있었다 할지라도,
드리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공급자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이 믿음으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국 사회를, 정말 쌓을 곳이 없는 은혜와 복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또 큰 하나의 큰 위기에 직면했죠.
그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없애 버려야 되나?
그렇지 않죠. 다시 한번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물질의 첫 자리에 하나님을 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주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또한 선교하는 일에, 우리 삶의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또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구제하는 일에, 우리 교회의 가정 우선순위를 둘 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이 말라기의 본문 말씀대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창을 여셔서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이 세상에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지켜 주시고,
마침내 우리들의 가정과 일터와 이 땅을, 은총의 땅으로, 기쁨의 땅으로 바꿔주십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위대한 사업가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꿔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소망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이 대구 땅에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저는 감히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물질에 있서서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어서,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이 만드시는 기쁨의 땅, 은총의 땅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의 가정에,
하늘에 창이 열리고, 주님이 우리들의 삶을 지켜 주시고,
가정과 일터가 기쁨의 땅, 은총의 땅으로 바뀌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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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며, 지금의 신약시대는 율법이 폐하여졌으니까,
십일조를 꼭 드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규정으로서의 '율법'은 신약시대에 폐하여졌다고 봐야 되겠지만,
'율법 정신, 원리'는 여전히 신약시대에도 남아 있습니다.
일례로 '안식일 율법'은 신약에 폐하여졌지만,
그 '안식일의 정신, 안식의 원리'는 신약에 계속 이어져서,
오늘날 우리는 '주일'로, 또한 '안식의 의미'로 계속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계명들도 마찬가지죠. 구약의 율법 규정은 폐하여졌지만,
그 율법을 주신 원래 의미, 정신, 뜻은... 신약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우리가 율법 규정 그대로 지키지는 않지만,
그 의미가 정신을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지켜서
우리는 고난-부활주간,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3
(이 구절을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 지시기 이전이므로, 구약율법을 말씀하셨다고 보는데,
이 구절은 신약의 '새언약' 범주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아브라함, 야곱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모세율법이 생기기 이전에 드린 것입니다.
즉 모세율법 이전에 어떤 거대한 '영적 원리' 라는 것이죠.
거기서 십일조 율법이 나온 것입니다.
신약 복음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구약의 율법을 모두 내버리는 게 아니라
율법의 정신, 율법의 원리, 율법을 주신 의미는..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아니 그것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이전부터 세상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그것을 율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지요.
신약시대에 그 율법을 폐한다고 해서, 그 율법의 정신, 의미, 원리까지도 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의 법(영적인 원리)을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일이죠.
하나님은 땅 분배 하실 때, 12지파에게는 기업의 땅을 주셨고,
레위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으신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풀타임으로 섬기게 하셨고,
나머지 12지파가 수입의 십일조를 드려서,
레위지파도 12지파와 비슷한 수입을 갖게 정하셨죠. 이게 하나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도 보면, 영적 침체가 있었던 시절들이 많았고,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의 활동 저하, 약화를 가져왔고, 그 극명한 예가 느13:10절이었죠.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침체로 이어지는 '빈익빈'의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