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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4장 새 언약의 일꾼

LNCK 2025. 3.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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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특강(4) - 질그릇에 담긴 보배(고후 4장) - YouTube
*위 동영상 전반부 녹취


◈새언약의 일꾼                    고후4:1~5       

◑지난 시간 복습

우리가 지난 시간 고후3강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이름을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불렀습니다. 3:2~3 

고린도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 거짓 선지자들이 종이 추천서를 한 장씩 들고 와서 
그들이 가지고 온 추천서로 바울을 모략하고, 바울을 힘들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종이 백 장이 있어도, 사람이 쓴 추천장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우리가 복음으로 길러낸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사도들의 편지'라고, 
곧 하나님께 보여줄 수 있는 추천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3:6
옛 언약은 곧 율법인데,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지키면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결국은 그 안에서는 무력감만 느낍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로구나, 내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결국 율법의 저주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받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 성령이니까, 
'새 언약의 일꾼'된 자들은, 성령으로 일하는 자입니다. *중요한 개념     3:6  
그게 우리가 지난 고후3장에서 공부한 바입니다. *3강

그리고 '수건을 걷어내야 된다'는 말씀까지 살펴보았습니다.  3:13~16

오늘은 '새 언약의 일꾼'된 직분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된 직분을 받아,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고후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이 직분'이란, 새 언약의 일꾼된 직분을 말합니다. 

옛 언약, 즉 '율법의 일꾼'으로 사는 자가 아니고 
율법의 일꾼으로 사는 자는 어떻게 사는 걸까요? 

'너 왜 이 율법 안 지켜?, 너 왜 이 법 안 지켜?' 이렇게 계속 남을 정죄하고 
계속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사람을 좇아다니면서 괴롭히는 사람들...
그 '율법의 일꾼'이 아니라,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즉 성령으로 일하는 자들이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그렇죠. 새언약의 일꾼들은 다 긍휼을 입은 자들입니다. 

왜냐면 율법으로 안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손 들고 포기했으니까,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의 정과 욕심을 못 박았으니까,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즉 바울과 그와 함께한 동역자들은 모두가 다 새언약의 일꾼인데, 
긍휼을 입은 자로서, 성령으로 일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이어서 새언약의 일꾼으로 성령으로 일하는 자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4:1
첫 번째는 낙심이 없습니다.          ①

왜냐면 성령이 우리 속에 가득하게 임해서 일하는 자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낙심하다' 라는 말은 '엔카케오 : 두려움에 굴복하다. 용기를 잃다' 입니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살리는 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해서 일하면 
어떤 상황이나 어떤 환경에서도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항상 입에 원망과 불평과 혹은 '안 된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이거는 집을 치워야 된다고...' 
이런 분들을 보면 '성령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으로 일하는 사람은,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긍휼하게 하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영이기 때문에, 

죽은 자도 살리신 하나님께서 못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영으로 일하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후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두 번째,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새 언약의 일꾼의 두 번째 특징이죠.   ②

성령으로 일하는 사람, 새언약에 일꾼된 사람은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즉 남들 모르게 뭔가를 숨겨두고 '이건 저 사람은 알면 안 돼' 
이렇게 비밀을 만들어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바울은 '내가 새언약에 일꾼된 자로 사역했기 때문에, 
나는 너희 고린도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숨은 부끄러운 일을 만들어 둔 적이 없다. 
나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행한 적이 없다. 숨긴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 일은 이 사람에게 숨겨야 되고, 
저 일은 저 사람이 알면 안 되고... 이렇게 살다 보면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런데 거짓말도 똑똑해야 잘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명철하고 똑똑하지 못해서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숨기지를 잘 못합니다. 

특히 성령은 밝히는 (밝게 비추는) 영이잖아요.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는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속이면 됩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감추면 됩니까? 

교회가 이중장부 쓰면 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성도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일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깨끗하게 다 보여줄 수 있고, '누구나 와서 보십시오/ 누구나 와서 다 열람하십시오' 
라고 얘기할 만큼, 숨은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의 원리를 창세기에서 설명하십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성적 결합만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투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투명해야죠. 모든 걸 다. 
인간관계나, 금전관계나 모든 게 다 투명해야 됩니다. 
모든 게 다 깨끗하고 투명해야, 숨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아야 
그 공동체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데, 숨은 부끄러운 일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③
숨은 부끄러운 일을 자꾸 하다 보면, 숨기다 보면, 
그 숨김이 나중에 남을 속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게 별로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나중에는 그게 조금 더 진도가 나가면 속이게 됩니다.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일하는 새언약의 일꾼은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④ 
'혼잡하게하다' 헬라어로 돌로오 입니다. 불순물을 덫에 걸리게 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케 풀어주는 말씀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시험에 드느냐? 
그 말씀에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그걸 가지고 자기 욕심으로 불순물을 뒤섞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나에게 부딪혀올 때, 
우리가 거기서 불순물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인간 목회자가 사람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거기에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그걸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버리면... 시험이 되는 거죠. 
그래서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실력과 수준이, 전하는 말씀이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 
그 불순물을 분리하고 걷어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덫에 걸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성령이 우리를 조명해서 그 말씀을 누구에게 가르치고 전하고 성경공부를 하는데, 

 

거기에 자기 인간적인 생각을 집어넣어서, 불순물을 만들어서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바울이 자기 사역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다. 너희들이 나의 곧 추천서다' 
그러면서 지금 이 말씀을 하는데, 

'너희는 새언약의 일꾼인 우리로 인하여 배운 자들 아니냐?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어서 가르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성령으로 사역했기 때문에, 감춘 적도 없고, 속인 적도 없다' 라며
자기 변호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니까, 성령으로 사역하고 성령으로 가르치면,
거기에는 진리만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고후4:1절과 2절은, 새언약의 일꾼된 자가 어떻게 사역하는지, 
어떻게 일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럼 우리에게도 적용시켜 볼 수 있겠죠. 
'내가 과연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가?' 
-낙심하지 않고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이지 않고 
-불순물을 뒤섞지 않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고 

그러면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아직까지 성령으로 사역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비추어서 나를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은 또 디모데전서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딤전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이 말하는 직분은 다 이런 맥락입니다. 새언약의 일꾼된 직분입니다. 
우리는 '직분'이라고 하면, 내 수준에서 생각하니까 
목사, 장로, 권사 등등 교회의 직책, 직분을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고 바울은 훨씬 더 포괄적인, 훨씬 더 근본적인 '직분'을 말했습니다. 
즉 새언약의 일꾼된 직분으로, 성령으로 일하는 직분을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언제 활동할까요? 
사탄은 하나님의 일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에는, 사탄도 함께 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을 하면, 사탄도 그만큼 열심히 일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게으르게 누워있으면, 사탄도 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어있는 교회는, 사탄도 잠자고 있습니다. 
살아서 꿈틀대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악한 사탄마귀도 같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전도하면... 사탄이 방해를 하겠구나' 
'내가 말씀 공부를 하면... 사탄도 나에게 방해를 하겠구나' 
'내가 선한 사역에 힘쓰면, 사탄도 여기에 이곳에 함께 역사하겠구나' 
이걸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속 편합니다. 

안 그러면 '아니, 내가 하나님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문제가 많고, 
왜 이렇게 사탄의 방해가 많은 거야?' 

그건 당연합니다. 사탄이 그게 자기 일이니까요... 우리가 이해해 줘야 됩니다. 
사탄도 자기 일을 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그 사탄의 일에 걸려 넘어지면... 안 되는 거죠. 
그걸 우리가 충분히 알고, 
사탄은 복음사역을 어떤 식으로 방해합니까? 

◑고후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우리의 복음'은 뭡니까?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바울과 함께한 동역자들 즉 바울, 디모데, 실라, 누가 등등이죠.

이런 분들이 전하는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워진 것이라... 
즉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게 가리워진 거죠. 

'가리워진'은 칼립토... '덮다, 은폐하다' 즉 덮여진 겁니다. 은폐되어 있는 겁니다.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전도 아무리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그 비밀과 그 재미가 드러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앉아서 한 시간 정도 성경 공부하는데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앉아 있으면... 그건 심한 고문입니다. 
도저히 못 앉아 있습니다. 어떻게 앉아서 듣습니까? 이 재미없는 얘기를. 

밖에 나가면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한 시간을 왜 앉아 있습니까? 
그런데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 보다 더 달콤합니다' 그게 참 놀라운 일입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이 누굴까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마귀죠. 

이 사탄마귀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혼미하게 하다... '눈을 멀게 하다. 어둡게 하다'는 뜻입니다. 

사탄마귀가 하는 짓이 '나는 믿지 않겠다'고 하는 자들의 눈을 확 가려버립니다. 
사탄마귀가 그들의 눈을 가려서,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귀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눈을 딱 가려버리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 사탄 마귀가 눈을 가리는가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나오잖아요. 
우리가 잘 아는 마4장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우린 그걸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가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1) 첫번째로 '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면 
이 돌이 떡이 되게 해라' 그랬습니다. 마4:3 

여러분 이게 어떤 시험일까요?  
자 떡은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빵이 필요하잖아요. 밥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물질이 필요합니다. 수고해서 일해서 물질을 버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돌이 떡이 될 수 있습니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능력 있다면, 그러면 과정을 생략해봐!' 이런 뜻입니다. 

떡이 되려면, 빵이 되려면, 밀농사 지어야 됩니다. 씨를 뿌려야 됩니다. 땀 흘려야 됩니다. 
농부의 수고가 따라야 됩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해가 내리쬐어야 됩니다. 
밀이 자라야 됩니다. 수확해야 됩니다. 탈곡해야 됩니다. 찧어야 되고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얼마나 많은 시간의 수고가 거기에 들어가야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식탁에 떡이 하나 올라오기까지, 빵 한 조각 올라오기까지 
우리가 수고해서 땀 흘려서... 비로소 밥을 먹고, 돈을 벌고, 일터에서 수고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돌이 떡이 되는 건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만들어 와!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이게 교회가 당하는 시험이기도 하고, 믿는 사람들이 당하는 시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결과에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정을 너무너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너 지금까지 보여준 게 뭐가 있어? 네가 지금까지 열심히 산다고 했고, 
너는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손에 쥔 게 뭐가 있어? 
자식이 잘 됐냐? 네가 돈을 많이 벌었냐? 사람들이 너를 칭송하기를 하냐? 
지금까지 네가 성취한 결과를 가져와 봐, 복 받은 결과를 보여줘 봐!' 

빨리 그 결과를 보여달라고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정 중에 있는 거거든요. 

여전히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는,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빚어지고, 연단되고, 단련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정을 굉장히 무시합니다. 
하나님은 과정과 절차를 너무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공동체가 모여서 토론하고, 회의하고, 
어떤 사람의 의견도 소중하게 듣고, 함께 의논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돌이 떡덩이가 되는 것처럼, 
그냥 한순간에 뭐가 탁탁탁 되고 하는 거... 그게 결과적으로 좋은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사탄은 자꾸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2) 마귀가 두 번째 시험을 하죠.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4:5~6 

이건 한마디로 얘기하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기적을 보여줘!' 이런 뜻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너는 죽지 않을 테니까 기적을 보여달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기적은 일어나죠. 성경에 보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일어나고, 
못 보는 자가 눈을 뜨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안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여러 번,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어떤 과정에서 일어났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기도하고 애쓰는 과정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병이어 사건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먹일까?' 
제자들이 말하죠. '해는 저물었고 장소는 빈들이니까, 나가서 사 먹고 오게 합시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갈 것도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애를 써보라'는 뜻 아닙니까? 
빌립처럼 주저앉아서 '조금씩 돈을 걷어도 200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부족합니다' 
이런 소리하고 앉아있지 말고, 뭘 좀 해보라는 뜻입니다. 뭐라도! 

안드레가 막 돌아다니잖아요. 한 아이의 도시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걸 들어서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니까, 오병이어가 된 거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어떤 일도 하지 않는데, 기적이 일어납니까? 
그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겁니다. 

그냥 '높은 데서 뛰어내려라. 천사가 너의 발을 받쳐줄 것이다' 
아닙니다. 그대로 떨어져 죽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적만 구하면! (그대로 떨어져 죽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기적 이전에 상식이 중요합니다.
상식의 바탕 위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 <일반법칙과 특별법칙>
 
   
그런데 교회는, 이 상식을 대단히 무시합니다. 
일반적인 상식, 보편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 상식을 매우 무시하는데, 이 상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엎드리고, 
구하는 자에게 기적이 나타납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이 다 그렇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상식 없는 기적은, 그게 신비주의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신비주의는 역사적으로 배격되어져 왔습니다. 

교회사에서도, 믿음의 백성들은 상식 위에 집 짓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보편적 상식과 가치 위에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이 있잖아요.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잖아요. 
그 위에서 하나님은 때로는 초자연적인 기적도, 역사도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이게 사탄이 이런 식으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3) 세 번째,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4:8~9
 
물질에 대한 욕구, 탐욕을 자극하는 거죠. 지극히 높은 산에 마귀와 예수님 둘만 있습니다. 
이 말은 '너하고 나하고 둘밖에 없잖아? 딱 한 번만 여기서 나한테 엎드려 절하면, 
네가 보는 거 다 네게 줄게'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는 거죠

사탄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는 방식,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 안목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우리 눈을 유혹합니다. 

이런 것들로 우리 눈을 가려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복음 사역을 방해합니다. 

그럼 우리가 교회에서 많은 일들을 하잖아요. 
가정에서도 복음적인 일을 할 때, 우리가 이런 것들을 조심해야 되는 겁니다. 

-'과정을 건너뛰지 말자. 항상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걸 반추하고 돌이켜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상식의 바탕 위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탐욕에 눈이 멀어서, 안목의 정욕에 눈이 멀어서, 
내가 너무 큰일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도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자 이렇게 점검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마귀가 우리의 눈을 뒤덮어서 못 보게 합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바울을 포함한 동역자들의 사역 방향과 목표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사역하는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고후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리는' 
'우리'라고 하는 건, 바울의 동역자들이죠. 
바울을 포함한 동력자들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역 방향이 아주 중요한 겁니다. 

즉 '우리를 나타내려 함이 아니다' 당연한 거죠. 
당연한 건데, 현실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정말 당연한 겁니다. 교회를 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지우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계속하고, 또한 열심히 해야 됩니다. 

이걸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내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고 있기 때문에... 이게 잘 안 돼요. 

창11장을 보면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창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 사건의 핵심이 뭡니까?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까? 
'우리 이름을 내고' 입니다.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명예욕과 권력욕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굉장히 위험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잖아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했고 수많은 교회들 개척했는데, 
거기서 자기가 주인 느릇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는 '우리는 우리 이름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분자들이 항상 이거 조심해야 됩니다. 
목사, 저 같은 사람은 항상 강단에서 설교말씀을 전하잖아요. 

말씀 전하는 사람이 조심해야 될 것은, 
이 교회가 자기 걸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또 결정권자의 자리에 있는 분들,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분들, 장로님들, 
우리 교회가, 자기 교회가 아니잖아요. 
주인의식은 가지되, 주인 노릇은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철저하게 조심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건 성경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금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에,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5 

근데 오히려 이렇게 얘기하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바울의 사역방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면, 나는 예수의 종이 되는 거죠. 
'주'라고 고백하는 순간, 나는 종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나는 그 몸의 지체가 되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함이라' 
'우리가' 그랬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누가가 
고린도교의 성도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그들의 사역 방향이었습니다. 

종은 뭡니까? 섬기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섬겨주셨습니다.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새 언약의 일꾼'이셨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게 '새 언약의 일꾼'에 계속 이어지는 거거든요. 
새 언약의 일꾼은 성령으로 사약합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결코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신데, 
내 이름이 드러나고, 내가 주인노릇 하고, 내 마음대로 합니까? 그럴 수 없잖아요. 

예수가 주가 되시고, 나는 그 성도들을 섬기는 자로 서 있는 거죠. 
이게 사울의 사역 방향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린도교회를 섬겼는데, 지금 여기서는 
바울이 고린도교의 성도들에게 야속함을 표현하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섬긴 걸 너희가 모르느냐? 
나는 성령으로 사역하고, 너희를 섬기는 자로 있었는데, 
너희는 거짓 선지자들, 거짓 사도들에게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더냐?' 
그런 말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