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요20장 부활의 예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LNCK 2025. 4. 21. 19:5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부활변증

2025-04-20 주일예배 // 부활의 예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YouTube

 

◈부활의 예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20:19~29      2025.04.20.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시간,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는데, 제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아두었다'고 기록합니다. :19
한마디로 제자들은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긴장할 수 있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적대적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두려움 가운데 놓여져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아마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6월에 대선이 있게 됐고, 
    또 미국발 무역전쟁, 관세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가끔 저한테 얘기를 하십니다. 
    '목사님, 제가 살다가 살다가 정말 요즘 같은 날은 제가 좀처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표현은 하지 않지만,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두려워하거나 
    또 염려 속에 많이  놓여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셨고, 그들 가운데 서서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 
이 말씀이 오늘 본문에 세 번 등장합니다. :19, 21, 26

그러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평강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부활절을 맞이해서, 여러분 마음에 혹시 두려움이 있으시다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 마음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두려움을 평강으로 바꿔주시는 은혜를 함께 누리면 좋겠습니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이 변해서 기쁨으로 바뀌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겠습니까?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예수님은, 영적인 존재가 아니고, 
바로 몸을 가지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못에 찔렸던 손,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예수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게 됩니다. :20 
너무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부활하신 게 아니고,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사도신경 '이 다시 사는 것과'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1~23절을 보면,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네 가지 말씀을 주시는데 
이 네 가지 말씀은 여러분이 마음에 두시고 한 주 동안  되새김질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1) 첫 번째는, 19절에 이어 반복하시죠.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참된 평화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2) 두 번째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신 것은,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라, 
이 목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 분명한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와 슬픔과 사단과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상 가운데 보내신 이유는 무엇이냐? 
바로 죄와 사망과 그 사단의 권세 속에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죠.

해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처럼,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절은 어떤 날인가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마음의 참된 평안을 얻지만,
그렇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한평생 감당해야 될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새롭게 확인하는 날이 바로 부활주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는 22절에, 요한복음에만 기록하고 있는 독특한 행동을 하십니다.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들보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더 많았습니다. 
근데 이분들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하죠. 
그래서 당시에 세계 공용을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헬라어를 
그들은 훨씬 더 편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히브리어로 쓰여졌던 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게 되고, 그래서 헬라어로 쓰여진 번역된 구약성경을 
우리는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숨을 내쉬며' 이 단어가,   *에네퓌사센 (엠피사오)
70인역에  아주 인상적인 곳에 등장을 합니다. 어딘가 하면 창2:7절이죠.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에네퓌사센, breath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다음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 
사람이 바로 생명,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바로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숨을 내쉬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어떤 작업을 하시느냐? 
새 창조의 역사를 지금 시작하고 계시죠.  

주님의 부활 생명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요? 
바로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보낸다' 라고 말씀하시고 :21 
이제 그들을 무장시키십니다.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성령을 받으라'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22 

저는 오늘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들이, 주님께서 첫 번째 부활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바로 이 성령을 받는 귀한 아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제

4) 이어지는 23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조금 어려운 내용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의 죄를 사함받고, 용서받게 하라는... 이 네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래에 계속)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셔서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습니까? 
(네 번째로) 바로 세상 사람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도록, 
그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감당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우리가 죄 용서할 수 있는 마치 권한을 가진 것처럼,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교훈을 통해서 볼 때,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이것은 우리가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게 아니고,
죄를 사하는 권세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주님이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 사하면, 사여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죄사함의 복음을 그들에게 들려주어서,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역사가 
그들에게 펼쳐질 수 있도록, 그들을 돕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네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처럼 내가 너희를 보낸다.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아라 
-죄사함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돕고 섬기라.


그런데 24절을 보면, 이 날 문제가 하나 생겼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방문하셨는데, 
그때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예수님 방문하셨을 때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5절에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다' 하고 말하니까 
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이 도마가 누구를  닮았습니까?  정말 나하고 비슷한 것 같지 않습니까? 
'내 눈으로 안 보면,  내가 손으로 넣어서 만져보지 않으면, 나는 절대 못 믿어!' 
이렇게 말합니다.   

▲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신약 성경을 보면 요한복음은 
도마에 대해서 두 가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1) 요11:16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이 말씀을 보면, 도마는 정말 열정적인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갈릴리에 계시다가 전갈을 받았는데, 나사로가 죽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은 유대를 향해 갈 때 '제자들아, 유대로 가자' 그러니까, 
제자들이 말렸습니다. 
'얼마 전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는데, 또 그쪽으로 가려 하십니까?' 11:8

이때 도마가 이 말을 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그러니까  도마는 열정주의자였죠.  

    위 요11:16절은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게 
    한국 교회사 가운데 아마 최고의 설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라는 설교가 있습니다. 

    주목사님이 신사배를 끝까지  거부하시고, 죽음(순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성도들에게 한번 잠시 풀려나서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설교하실 때 
    '일사각오'의 내용으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본문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요11:16 

그러니까 도마는 열정적인 인물이죠. 그런데 도마는 열정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니다. 

2) 요14:1~5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이때 또 도마가 등장합니다. 
14:5 '아니,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성도님들 중에도 두 부류가 있죠. 
-질문이 있는데 속으로 삭히면서 안 하시는 분이 있고, 
-도마처럼 질문이 생기면 꼭 해야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마는 어떤 사람이었느냐? 이성주의자였습니다.  

5절의 도마의 질문에, 예수님은 정말 유명한 답변을 하십니다.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바로 나를 떠나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이 유명한 말씀은, 도마가 질문을 안 했으면, 
예수님은 말씀 안 하셨을 거예요.   

정리하면, 도마는 열정주의자였고 또 이성주의자였습니다.  
본문에서, 그가 은혜의 자리에서 소외가 되었잖아요.   
어떤 이유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방문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마가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아니 예수님은 언제든지 오실 수 있을 텐데, 왜 꼭 내가 없을 때 오셨습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뭔가 하면 
은혜의 자리에서 소외될 때입니다. 

저도 아주 마음에 사무쳤던 게,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생과 같이 기도도 열심히 하러 다녔는데, 
동생은 정말 기도할 때, 방언도 하고, 항상 은혜도 뜨겁게 받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인 저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어버버버' 수준의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은혜를 받지를 못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도, 정말 수련회 때마다 참석해서, 
강사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다 따르고, 
'주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하나님, 제발 저를 한 번만 좀 만나 주세요. (뜨겁게 주님을 체험하게 해 주세요)'하고 
제가 간절하게 기도를 했는데, 

정말 결국 수련을 끝마치고 나면,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나 하면, 
'이번 수련회는 나만 빼놓고 다 은혜 받은 것 같다' 저는 그런 마음을 종종 가졌어요. 
정말 주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나만 쏙 빼놓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 은혜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이런 섭섭한 마음이 나중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내가 바로 하나님께 선택함을 못 받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그런 두려움을 항상 저는 가졌어요. 

그래서 저는 성도들 가운데서 '은혜 받는 자리에 나만 빠진 것 같은, 
나만 소외된 것 같은 그 감정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도마가 이런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그의 기질과 결합이 되어서 
'내가 보고 만져보기 전에는, 절대로 나는 안 믿는다' 라고 선언을 합니다.  :25

◑20:26 '(부활 후)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이제 한 주간이 지나갔습니다. 제자들이 다 집안에 있었고, 
이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고, 또 문들은 닫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했지만, 제자들은 아직까지 별로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한 번 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최고의 강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시나?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물론 유대인의 인삿말이지만, 거기에 본심도 담겨 있는 거죠.
이어지는 27절을 보시면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NIV는 이렇게 번역했어요.  "Stop doubting and believe."

'의심하는 거를 멈추고  믿는 자가 되라' 라고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도마가 되어서 이 말씀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제가 만약에 도마였으면, 저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야, 또 누가 일러바쳤어? 누가 예수님께 찔렀어(고자질했어)?' 

왜냐하면 지금 도마가 '나는 내 손가락으로 예수님 손의 못 박힌 곳에 넣어보고,
내 손으로 예수님 창에 찔리셨던 그 옆구리에 넣어 보기 전에는 나는 절대 못 믿어'  
그 말을 할 때, 제자들만 있었지,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안 계셨거든요. 

예수님이 안 계신 자리에서, 자기는 그렇게 말했는데 
예수님은 오셔서 '도마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하시는 거죠. :27

이건 제자들이 예수님께 고자질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로 이 도마의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도전을 하셨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Stop doubting and believe."

저는 아마 성도님들에게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도전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심하는 것은 멈추고 믿는 자가 되라!'  

이 말씀 통해서 보니까 예수님께서 두 번째 제자들을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이죠? 
예수님의 부활을 똑바로 믿지 못하는 한 사람 도마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소위 말 잘 듣는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고,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절대 못 믿습니다' 라는 의심하는 사람들도  
주님은 사랑하셔서, 그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찾아오셨습니다. 

이때 도마의 반응이 정말 유명한 말씀이죠.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저는 청년 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구절이 이 표현이었거든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제가 청년 시절에 저한테 많은 영향을 줬던 책의 제목이 뭔가 하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었어요.    송인규 저

청년들이 성경 공부할 때 많이 사용했던 책인데,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저는 이 표현이 너무 멋있어가지고 
정말 아주 훌륭한 분이 이 말을 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성경말씀이더라고요.
그것도 의심많은 도마가! '그 도마가 이런  좋은 말을 하다니...'

여기서 모임이 마치면 좋았을 텐데, 29절에 보면,  죄송한 말씀인데  
주님도 약간 뒷끝이 있는 것 같아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도마 한 사람을 향해 주신 말씀이지만, 또 누구를 향해 주셨겠습니까? 
도마 이후에  '나는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믿을 수 없다

이처럼 도마같은 이야기를 할 사람들을 아마 염두에 두시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너가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 

그런데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자리에 시몬 베드로가 같이 있었을 것 같아요.  
베드로는 그때 들은 말씀을 잘 기억해서, 그가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주었던 편지에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우리만 예수님 못 본 게 아니고, 초대교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성도들 대부분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사랑하는구나.  
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구나...' 하고 성도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오늘 부활주의를 맞이하여서  
비록 우리가 도마와 같은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의심을 멈추고 믿는 자가 되고,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보지 못하면서도 믿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분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적용

원래 여기까지가 제가 준비했던 내용인데,  
제가 설교를 여기서 끝내려고 하니까, 
아마 틀림없이 여러분들 중에 '도마 과'에 속한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이 말씀에 비추어 제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됐어요. 
그럼 사람들이 만약에 저한테 
'목사님, 목사님은 그러면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언제부터 믿게 되셨습니까?' 이렇게 질문한다면...

저도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무엇은 믿을 수가 없었나?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 
'이게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걸 받아들일 수 있나?' 
그래서 저는 예수님 부활과 관계되는 것은, 그냥 머리로 생각을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뭐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니까요. 

그래서 과거에 어르신들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어라' 그래서 저도 그냥 부활을 믿었어요. 
이해되지 않지만, 예수님 부활에 대한 것을 그냥 믿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게 되는 일이 (회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저를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저를 의롭다 하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제가 거듭나게 됐어요. 

그때 저한테 무엇이 믿어졌나 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 하는 것이 
저는 그때 너무 자연스럽게 믿어지게 됐어요. 

왜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의롭다 하셨는데, 
이 일이 일어나려면, 예수님이 살아계셔야 되잖아요.  

죽은 예수님 안에서, 내가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이건 말이 안 돼죠. 
'그분이 부활하셔서 살아 계시니까, 내가 지금 용서함을 받고,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구나!' 

그런데 성경이 분명히 이야기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어떻게 지금 살아계실 수 있나?'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구나' 
저는 그래서 그때 예수님 부활에 대해서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리스도인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는 
저는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자가 되고 나니까, 청년들한테 
이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을 해야 되는데, 
'그냥 무조건 믿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어!' 
이렇게는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저는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거는 증명할 수 없는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청년들에게 설교할 때, 부활에 대한 설교는 거의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제가  유학 가 있을 때,  많은 분들의 설교를 들었고  
그 설교 속에서, 저는 희미하지만, 부활과 관련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떤 목사님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셨다 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데, 이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다.' 라고 하셨어요.

그때 그분이 뭘 소개하셨느냐? 예수님의 빈 무덤을 설명해 주셨어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이 '빈 무덤'을 무너뜨릴수만 있으면,  
기독교는 한 방에 없어질 수 있습니다. 

'야, 이 예수님의 빈 무덤은 다 가짜야'
이걸 증명할 수만 있으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기독교는 한순간에 가짜요, 사이비 집단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동안, 누구도 예수님의 빈무덤을 
그게 가짜라고 설명해 내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 '예수님의 빈무덤이, 바로 예수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의 
역사적 사실이며, 이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되는구나'  
그때부터 부활에 대해서, 제가 자료를 찾고 검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은  
조금 오래된 책이지만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저.
이 책이 저한테는 제일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혹시 기독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갖고 계신 분들은 
조금 딱딱하지만 이 책은 한번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이미 영화로도 나와 있습니다. 

혹시 유튜브 같은데 '예수는 역사다'를 치시면, 영화도 나와 있어요. 
그걸 보면, 훨씬 이해가 쉬울 수 있어요. 

리 스트로베리는 어떤 분이냐면,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나오시고, (로스쿨 중 탑이죠)
또 시카고의 트리뷴 지의 법률 담당 기자였어요. 아주 탁월한 사람이죠. 

그런데 이 사람한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부인이 자기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분이 누구신가 하면, 예수님이셨어요. 
이 분이 너무 충격을 받아가지고, 그 사이비 집단(교회)에 빠진 아내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분은 뭘 하기로 결심을 했나? 

 

'기독교는 허구다. 특히 기독교의 허구됨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가 조작한 사실이다 라는 것만 증명하면, 
기독교는 한순간에 바로 무너지고 사이비 집단임이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내 아내를 데리고 나올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분이 성경과 모든 관련 자료를, 법률가의 관점에서 자료 검토를 합니다.  
나중에 어떤 결론에 도달했겠습니까? 

그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 과정이 이 책 속에 기록되어 있고, 
특별히 <부활의 증거>라는 아주 작은 소책자가 있습니다.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역사적인 사실이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이 수긍하실 수가 있어요. 

▲부활절 영어로는 Easter 거든요.
이 분은 4개의 E로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1) Execution (처형)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2) Early (이런 시간) 부활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졸도 이론'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게 아니고 졸도하셨다가, 그 동굴의 서늘한 기운에 깨어나셨다. 

또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절도 이론'도 받아들이진 않지만,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이론이 뭐냐?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제자들의 영적인 체험이다'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부활하신 게 아니고 
제자들의 영적인 체험 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신 거다... 
이 '영적인 체험'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신화로 발전한 것이 바로 복음서의 
부활 기록이다... 이 이론을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개인의 영적 체험이 공동체에게 전달이 되고 퍼뜨려져서 
이것이 신화로 발전된 것이 복음서의 부활기록이다... 라는 거죠. 

그런데 리 스트로벨은 여러 자료나 문헌들을 면밀히 검토를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서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부활하신 후에 20년이 채 안 되어서 
바울서신이 기록됩니다.  30년이 지나면 4개의 복음서가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이 복음서, 그리고 서신서가 보여주는 게 무엇이냐? 
'이미 기독교 공동체는, 한 가지는 분명히 그들이 함께 믿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결국 설명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부활이 신화로 발전되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에 Early
공동체에서 부활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게 세워졌고 
확실한 기록들이 통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리 스트로벨은 이야기합니다. 
Early, 즉 너무 이른 시간에, 
이미 공동체적인 믿음과, 믿을만한 기록들이 쓰여졌다는 거죠.
 
3) Empty (빈무덤)이죠.  
빈무덤을 설명하려면 어떤 일이 있어야 되나? 
예수님 스스로 무덤에서 뛰쳐나가셔야 돼요. 

예수님께서 벌떡 깨셔서, 그 무거운 돌을 밀어내시고 
밖에 있는 모든 지키는 로마 군병들을 제압하고, 예수님께서 막  나가셔야 됩니다. 
이건 불가능하죠. 십자가 처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소문이 있는데,
제자들은 이미 절망에 빠졌는데...  
로마 황제가 봉인한 그 돌을 옮겨서, 
로마와 맞서면서 지키는 군인들과 싸워서 예수님 시신을 쟁취할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거죠. 

그러면 제자들이 훔쳐가지 않았다면, 누가 훔쳐갑니까?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이 훔쳐갑니까? 
아니면 로마 군병들이 훔쳐갑니까? 그래서 그들이 얻는 게 뭐가 있습니까? 
이건 불가능한 거죠. 

그러면 무엇밖에는 가능성이 없는가? 무덤이 비어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4) Eye witness (목격자)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전15:4~8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못 믿겠거든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그러면 그들이 너희들에게 분명한 답을 줄 거다'

7절에 또 누구를 이야기합니까?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구고에게 물어보고,
8절에는 바로 자신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복음에 대해서 그렇게 핍박했던 내가(바울이) 돌아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들! 

그리고 제자들의 급격히 변화된 삶이 무엇을 보여주느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실이 무엇을 증명하느냐?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한 법학 교수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야기를 했다가 
그 말을 듣고 있던 청년이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법률 교수로, 법학 교수로서 모든 사건을 다룰 때 
'증거를 중심으로 이해를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 부활을 교수님이 부인하시는데, 증거를 통해서 그걸 입증하실 수 있습니까?' 

그 도전을 받아들이고, 이 법대 교수가
성경과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다 검토를 했습니다. 
검토한 다음에, 그가 어떤 결론을 내리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역사적 사실보다도 더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라고 실토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광신자들의 행동이 아니라, 가장 철저하게 이성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문서와, 그 외 모든 관련 자료들을 검토해도 
변할 수 없는 내용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부활을, 광신도들의 집단 광기,
이성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허황된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철저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철저한 자료 검토를 통해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다시 한번 우리 성도님들이 믿고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고    *도마처럼 
이제 우리들의 앞으로 남은 삶은, 
내 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