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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1편 우리 삶이 망가지는 이유, 죄의 뿌리

LNCK 2025. 5.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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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 망가지는 이유, 죄의 뿌리 -  - YouTube

 

◈우리 삶이 망가지는 이유, 죄의 뿌리         시131:1~3

시131편은 3절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성경인데 
그 메시지는 굉장히 강하고 또 대단히 중요합니다.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자기 교만을 버렸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을 두고 '어휴, 사람은 참 교만해' 
또는 자기 자신을 두고서 '제가 참 그동안 교만했습니다' 이런 표현을 자주 쓰기 때문에 
교만에 대해서 우리에게 특별한 경각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교만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렇지 않습니다. 교만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고, 모든 죄의 뿌리이고, 
마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패망의 선봉입니다. 

결국은 교만해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지 못하는 거고, 
우리의 삶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만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내가 교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도 잘 구분하지를 못합니다. 
교만이 무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혼을 하겠다고 저를 찾아와서 인사하는 커플에게,
제가 해주는 당부가 '교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서 사는데, 절대로 교만하지 마라' 
그러면 두 사람은 '결혼해서 사는데, 교만이 무슨 문제 될 게 있는가요?'

대부분은 그냥 '아 그래요. 알겠어요.' 이렇게 무심하게 반응하지, 
제가 드리는 권면을 아주 깊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신혼여행 가서부터 싸우는 겁니다. 
교만이 뭔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혼하는 부부가 교만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가요? 
'우리는 앞으로 잘 살 거예요. 두 사람이 열심히 살면, 잘 살겠지요.' 
이런 생각이 교만한 것입니다. 

아니 결혼하는 커플이 잘 살겠다고 그러고,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됩니까? 하나님이 빠진 거예요. 

'우리가 잘 살아볼 수 있어요. 우리는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요. 
우리는 서로 사랑해요. 우리는 행복할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빠져 있어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우리가 부부가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
우리 부부가 함께 잘 살게 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싹 빠져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 전체가, 사실은 이 문제, 이 교만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저는 목사이면서도 하나님 외에 더 의지하던 대상이 있었어요. 제 아버지였습니다. 
제 아버님도 목사님이셨어요. 

자, 목사 아들이, 아버지 목사님을 의지하는 것... 그게 뭐 큰 죄입니까? 
아버지 목사님에게서 배우고, 아버지 목사님의 도움을 받고, 
그래서 나도 목사로서의 삶을 이렇게 살아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의지하는 일이, 큰 문제라고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제가 다리가 부러져서, 장애인이 될 그런 다급한 상황에 처해졌을 때, 
목사이면서도 저는 하나님보다 아버지를 더 먼저 찾았어요. 

'아버지가 나를 도와주실 수 있고, 아버지가 손을 써서 내가 좀 더 좋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면, 그러면 내가 장애인이 되지는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중에 정신 차려보니까, 내가 목사이면서도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아버지를 찾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잘못해서 두려운) 일인지... 

그때 그 사실을 제가 깨닫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 사람에게 기대는 마음, 
그것이 제가 회심하게 된 시작이었고, 그로 인해서 제 믿음의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1절에서 
'제가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자기 분수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그걸 이제는 내려놓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하거나, 
또는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하는 걸 보면, '저 사람 참 교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죠. 

'자기 능력, 자기가 준비되어진 거... 그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큰 걸 얻으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참 이상하죠.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녀가 그러면 
'비전이 있네, 정말 적극적이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군!' 이렇게 좋게 봅니다. 

이렇게 사람이 참 자기를 몰라요. 다른 사람을 보면 '교만해 보이는데' 
그게 자기에게 적용되면, 큰 꿈과 비전을 가졌대요.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우리를 자꾸 그렇게 부추깁니다.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뭐냐 하면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성공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어, 신분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아주 강력하고 아주 매력적인 메시지입니다. 

2세기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일이에요. 그 당시는 신분사회였습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아주 철저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그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시대는, 누구든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자기 실력이 있으면, 
그러면 성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결과가 뭔지를 한번 보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절감과 열등감, 우울증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데, 누구든지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런데 왜 난 안 되지? 왜 난 이 모양일까?'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비참하게 느끼는 거죠. 
여기에 교만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빠져 있는 거예요.

'실력만 있으면, 노력만 하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 참 그럴듯해 보이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고 / 폐하시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시고 / 하나님이 막으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 딱 빠져있는 거예요. 

마귀가 아주 교묘하게 우리 사람의 마음속에 
'너 노력하면 될 수 있어,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이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마귀가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준 생각이에요. 
'먹고 싶지? 먹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결국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죄가 들어왔죠. 지금도 똑같습니다. 
사람들마다 '좀 더 노력하면 될 텐데.. 
내가 조금만 더 실력이 있으면, 내 삶을 바꿀 수 있을 텐데...' 

근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온 건 뭐지요? 
일의 노예가 된 거예요. 성공의 노예가 된 겁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23:1절 말씀을 우리가 다 좋아합니다. 다 아멘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동안 누가 먹이고 살렸습니까? 
그동안 애들은 어떻게 공부시켰습니까? 
그동안 집은 어떻게 마련했고, 차는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까? 아니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서 한 거지...' 생각하시나요?
그런데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까? 

우리 속에 실제로는 하나님이 빠져 있어요. 
잘 살아보고 싶고, 잘 되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데, 
그 속에 하나님은 빠져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정말 벗어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일의 노예입니까? 
쉬는 것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어요. 일의 노예는 쉬지 못합니다. 
쉬라고 그래도 못 쉬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의 노예로 살고 있어요. 

쉴 시간이 왔습니다. 쉬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도 그는 일이 바빠서 못 쉬고, 두려워서 못 쉬고, 
노는 법을 못 배워서 못 쉬고... 이런 저런 핑계는 많지만, 결국은 하나예요. 

일을 쉬는 것 자체가 두려운 거예요. 
왜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일을 쉬면 그 책임은 누가 져요? 

자기가 자기 인생을 개척해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결국은 잘 되는 거라고 그렇게 믿으니까 
쉴 시간이 주어져도 못 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주셨습니다. 
안식일... 이런 예가 없어요. 

역사가 토마스 카일이, '역사상 그 어떤 문명도, 보통 사람들에게, 
정기적인 휴일을 준 적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사람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이죠? 일은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절대로 일의 노예가 되지는 말라... 입니다. 

그 말은,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서 먹고 사는 개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를 먹이고 살리는 건 하나님이시지,
내가 일 열심히 해서, 내가 실력이 있어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래서 잘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잘 사는 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충분히 쉬지를 못해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자기를 믿고 사는 거예요. 내 능력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아까워서 쉬지 못하고, 두려워서 쉬지 못하는 거에요. 
그런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난 다음에, 시핀 기자는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131: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교만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졌더니... 그 결과가 뭐지요? 
평안이에요. 젖 뗀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그런 평안을 얻었다는 거예요. 
그 말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산 사람이, 얼마나 노예처럼 살게 되는가를 말해주는 겁니다. 

여러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의 특징이, 
주님 안에서 쉬는 거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돼요.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교만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예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인생인 거예요.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완전히 달라져요. 
'....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 믿은 축복이 뭐죠? 진짜 쉴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에요. 
쉴 시간에도 쉬지 못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마음에 쉼이 없으니까 힘든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께 다 맡길 수 있어요. 
내 삶의 모든 짐, 내 삶의 모든 무게, 
내가 결국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산 게 아니고,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신 거예요. 

'일'은 나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기뻐서 일을 하는 거예요. 
일 자체가 기쁨이에요. 일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에요. 

먹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신 걸 정말 믿으니까, 
일할 때는 열심히 기쁘게 하지만, 쉴 때는 또 편안하게 쉬는 거죠.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놀라운 복이, 성공하는 거, 부자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오직 주님만 의지하라'고 외칩니다. ↓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의지할지어다)'

여기에서 교만과 겸손이 갈라지는 거예요. 
교만은 '결국은 내가 다 책임져야 된다. 내 노력으로 성공해야 된다'하는 게 교만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빠져 있어요. 

그런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 이것이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삶 속에서 주님이 드러내세요. 

제가 저희 두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줄 말이 있다면, 저는 이 말씀을 꼽겠어요. 
'너희는 무슨 일이 있든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라 :3
너희가 앞으로 좋은 일이 있든, 어려운 일이 있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너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해지든 
너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라'

저는 오늘 우리 모든 우들에게, 이 설교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정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이겁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게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진짜 복은,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유학을 하신 목사님이, 목동 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깻묵을 저장해놓은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깻묵이 타들어가는 거예요. 
*깻묵 : 식물의 씨앗(주로 참깨, 들깨, 콩)에서 기름을 짜내고 나온 부산물. 
주로 가축 사료, 낚시 떡밥, 비료로 씀.

깻묵이 타들어가면서 고소한 냄새가 막 번지니까 
양떼들이 그 불이 붙은 창고로 막 몰려드는 겁니다. 그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서. 

그래서 이 목동이 막대기를 들고, 양들이 그 창고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계속 위협하면서 그 양들을 내어 쫓았는데, 끊임없이 밀려드는 거예요. 
이쪽을 막으면 저쪽이 들어오고, 저쪽을 막으면 이쪽으로 들어오고... 
그 양떼들을 막느라고 불을 끌 생각도 못하고 얼마나 진을 뺐는지... 

그 일 후에 며칠을 앓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목동의 말을 잘 듣던 그 양들이, 그날 어떻게 그렇게 돌변했는지... 
아무리 막아도, 때려도, 끊임없이 자기가 불에 타서 죽을지도 모르고, 
그 깻묵 타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들어오는 걸 보고 너무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 우리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욕심이, 욕망이 한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속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한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가 없는 게... 우리의 문제예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절대로 건성으로 들으시면 안됩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귀에, 주님이 정말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에요. 
그래야 사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그 사실이 정말 분명하다면,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이제는 예수님 하자는 대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다니까요. 
이 엄청난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정말 예수님 하자는 대로 살아야죠.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어요. 
이것이 진짜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돼죠? 

어떻게 하는 게 진짜 잘 사는 길이죠? 우리 안에 오신 주님을 따라만 사는 거죠. 
주님 말씀대로만 사는 거 아니겠어요? 그 외에 다른 어떤, 더 좋은 길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합니다. '그래도 될까? 그래도 잘 살 수 있을까?' 
조지 뮬러 목사님이 이런 호소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모든 염려와 무거운 짐과 필요를 다 하나님께 맡기는 
행복한 길을 가지 않으렵니까? 이 길은 나처럼 여러분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곤고한 날에 그분을 부르도록 초대와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이여, 이렇게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과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게 되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하늘 아버지가 여러분을 돌보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이 그 호소문을 쓰실 때의 심정이, 
이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내내, 저에게도 가득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중에 
정말 이 말씀을 들으셔야 될 분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것이 사는 길이에요. 
내 속에 교만이 없어지고, 그리고 정말 겸손하게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데, 
연세가 드신 어느 목사님이 그런 말씀하시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혼자 다니기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이제는 아내만 따라다니게 된다는 거예요. 

집에 들어가도 '아내가 있나 없나' 그것만 먼저 찾게 된다는 거예요. 
다른 목사님도 다 동의하셨어요. '나도 그렇다고... 나도 그렇다고...' 

그래서 제가 '그래도 우리가 이제부터 아내 좇아다니지 말고, 예수님을 좇아서 삽시다'
그래 가지고 분위기가 싸늘해졌어요. 
'저게 뭔 소리래?' 이렇게 반응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나와 늘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검증해 보지를 않아요. 
여러분 막연한 생각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매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 놓치면 안 돼요. 
계속 주님께 귀 기울이고,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정말 주님이 필요할 때, 
'주님이 나를 이끌어주셨으면...' 하고 원할 때, 전혀 주님의 이끌림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과거에 젊었을 때, 저는 성공을 위해서 목회했던 목사예요. 
'이왕 목사가 되는 거, 큰 교회 담임 목사가 돼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학교에 갔어요. 저는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 안 했습니다. 
목사가 열심히 목회해서, 그래서 교회가 크게 부흥되는 게 뭐가 나쁜 일이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기뻐하지 않으시는지를 제가 몰랐어요. 
열심히 목회하면서 끊임없이 주님께 저를 목회 성공하도록 도와달라고 구했어요. 

제가 목회하는 일에, 제가 설교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그래서 제 목회가 잘 되기를 제가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에는, 주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게 두려웠어요. 

'혹시라도 주님이 나보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길로 가라고 하시면 어떡할까? 
나에게 어려운 일을 명령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게 두려웠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을 위한 열심이었어요. 
그게 바로 교만인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꿈꾸던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큰 능력을 주시면 
그래서 기적을 행하는 그런 목사가 되면, 
구름같이 교인들이 많이 몰려들지 않겠나?' 그런 헛된 꿈도 한 때 가졌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 성경을 읽고서 알았어요. 
마7:22~23절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던 이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능력을 행하면, 그러면 제 사역이 크게 부흥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면 불법을 행할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교회 일 하는, 목회하는 것조차도, 전혀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 욕심만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이번에 호주 집회 마치고 호주 '위지엠 예수동행운동'을 설립하고 돌아오면서 
주님은 저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셨어요.  *With Jesus Ministry (위지엠) 
'사역이 커지고 그리고 화려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말라. 
오직 한 사람, 정말 진실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세워지는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라. 그 다음에는 주님이 하신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예수 동행운동이 일어나는 것도, 그건 다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해야 될 일이 아니라는 것, 

저는 오직 정말 진실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주님과 정말 동행하는 사람을 세워가고, 
그들과,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을, 서로 나누고 사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있어서 정말 구원의 복음과도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때때로 사역의 무거운 짐에 눌려 있을 때가 있습니다. 
또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예상하는 것처럼, 사역이 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고려대상에서 빠져버린 것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게 되니까, 무거운 게 아무것도 없어졌어요.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가 원망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를 망쳤습니다.' 
어떤 분도 또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내가 그 결혼 때문에 내 인생이 다 망가졌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됐습니다. 
여러분, 해석을 잘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독하게 교만해서,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내 지혜로, 
그렇게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시려고 
내가 의지하던 거, 믿었던 거를 다 막아버리십니다. 

여러분, 언제 여러분은 기도에 열심을 가졌습니까? 
언제 여러분은 주님을 그렇게 갈망하게 됐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내 노력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엄청난 유익을 얻는 순간이었어요. 

우리가 길에 나가면 자동차 조심해야 되고, 운전도 조심해야 되고, 
매사에 조심할 게 많은데... 그 모든 것 중에 정말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된다/ 안 된다 결론을 내리지 않았는데, 
내가 된다/ 안 된다... 미리 결론을 내려버린 거예요.

하나님이 하라/ 말라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한다/ 안 한다 결정해버린 거예요. 

하나님께서 좋다/ 나쁘다 말씀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냥 좋다/ 나쁘다를 평가해버린 거예요. 이게 무서운 교만이에요. 

그것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인도 못 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의 삶 속에 역사 못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동행 일기를 쓰는 이유는, 철저하게 우리 주님만 의지해서 
주님께만 순종해서 살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오늘 결단해서 '목사님, 제가 더 이상 이제 나를 의지하지 않고, 
이제 정말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보겠습니다. 성령님 도와 주세요' 
이렇게 결단하셨다면, 정말 잘 하신 거예요. 

언제 내가 주님과 친밀히 동행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놀라운 걸음을 시작하신 겁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이끌어 가실 거예요. 

주님이 우리 안에 이미 오셨으니까요.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삶에 지쳐있습니다. 열심히 살기는 하는데 마음이 무너져 있는 사람,
정말 어디론가 그냥 떠나버리고 싶고, 지긋지긋한 이 삶에서 좀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오늘 주님이 정말 말씀하시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속에, 여러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의 노력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여러분의 실력 가지고 잘 살아보려고 하는 교만이 있었다면,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답은, 섣불리 평가하지 않는 겁니다. 
한다/ 못한다의 결정을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된다/ 안 된다... 그것도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도대체 좋고/ 나쁜지... 우리가 스스로 알 수 있어요? (없어요)
그때 좋다고 결정했는데, 1년만 지나서 보면, 결과가 다 뒤집혀 질 수 있는 겁니다. 
내 스스로 좋다고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 그제 진짜 좋은 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부터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주님, 제가 이 시간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께 이제 다 맡깁니다. 
젖뗀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그렇게 저는 이제 편안하게 쉴 겁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내 안에 오셨으니 
이제는 내 인생 전체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주님만 가자는 대로 가겠습니다. 
주님 인도하는 대로 가겠습니다. 

주님이 좋다. 그러면 그게 좋은 거고, 주님이 나쁘다 그러시면 나쁜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제게 주를 바라보는 눈을 더욱 열어주옵소서. 
이 시간 교만했던 나를 용서해 주시고, 겸손히 주님을 따라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