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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2장 완성을 예수님처럼

LNCK 2025. 5. 3. 03:0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경주>    <참고 견디기>

완성을 예수님처럼  | 2025-0427 - YouTube


완성을 예수님처럼      히12:1~2       2025.04.27. '예수님 시리즈 9회'     

'예수님처럼' 이라는 주제로 한 설교 시리즈, 오늘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처럼 큰 삶, 예수님처럼 목적을 가진 삶, 
예수님처럼 시험을 이기는 삶,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삶, 예수님처럼 용서하는 삶을 살펴봤는데, 오늘의 마지막 시간으로 

"예수님처럼 내 인생을 어떻게 온전히 완성할 (마무리할) 것인가?" 입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아주 긴 마라톤과 같은 경주인데, 마라톤은 42.195km입니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마라톤 평원에서 전투)의 승전보를
아테네 성에 알리고 죽은 병사가 있는데, 그가 달려 온 거리가 대략 40km였는데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왕실의 요청으로, 
원저성에서 경기장까지 거리(42.195km)로 조정되어 
공식 마라톤 거리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마라톤에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① 북극 마라톤, 얼음 위 코스를 달리는 마라톤입니다.

② 울트라 마라톤, 42.195km보다 훨씬 더 긴 거리를 경주하는 마라톤으로 
나미비아 울트라 마라톤은 250km를 6박 7일 동안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막 지역을 달려가는데 그 울트라 마라톤의 특징은 
간단한 짐을 챙겨 가면서 GPS는 필수장비로 챙겨갑니다. 
GPS를 가지고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마라톤인데, 
우리 한국 청년이 3등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③ 스파르트슬론 이라는 마라톤은,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250km(246km)를 36시간 만에 주파하는 마라톤 대회입니다.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마라톤 대회가 있는데 
어쨌든 마라톤은 굉장히 긴 거리를 경주하는 것입니다. 

이 마라톤 경주에 있어서, 우리의 인생과 신앙생활이 마라톤 경기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많은 교훈들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라톤 경주를 잘했느냐, 못했느냐는... 주파 시간입니다. 
이것이 마라톤에서 승리하는가 못하는가를 결정한다면 
우리 신앙생활의 이 경주는 '빨리 달리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잘 달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빨리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달리느냐? ...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잘 달리는 것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finish line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 결승선을 통과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것이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슨 차를 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임종의 그 순간에, 내가 생전에 무슨 차를 탔는지가 중요할까요?
내가 응원하는 어느 야구팀이 이겼느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No

우리가 지금, 이 시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그 극심한 스트레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것이 그때도 똑같이 우리에게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No

다시 말해서 우리는 finish line을 통과하는

신앙 경주, 영적 마라톤에 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꼭 그때 중요하지 않다면, 
지금 우리가 목숨 걸고 어떤 것을 지키려고 하고, 뭘 하려고 하는 

그런 현세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최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설교 제목이 우리에게 그 답을 줍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인생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인생의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어떻게 이 경주를 잘할 수 있는가요? 
어떻게 이 기나긴 여정의 경주를 잘 할 수 있는가요? 

42.195Km가 훨씬 넘는 우리 인생의 경주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요? 
그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설교 시리즈의 주제이고, 결론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 예수님처럼 경주하는 것',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 앞에 설명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히12:2
무슨 말인지 잘 알 수가 없는데 
다른 많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믿음의 시작이며, 또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쉬운 성경)
“우리는 오직 믿음의 창시자이시요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쉬운말 성경) 
“믿음의 창시자(알파)요 완성자(오메가)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우리말 성경)

'믿음의 시작이요 믿음의 완성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시작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게 하신 그 믿음의 여정을 끝낼 때, 
예수님께서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우리 믿음의 여정을 완성하게 하시는 
그 예수님을 바라보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우리 인생의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고, 
정말 예수님처럼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고 완성하셨고, 이제 우리가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시고, 
우리를 안내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해주심으로 
우리가 그 경주를 완성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울트라 마라톤에서 굉장히 중요한 GPS라는 방향을 정하는 장비를 제공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방향을 정하는 GPS처럼 
우리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 우리의 믿음 생활을 경주로 비유하고, 
마라톤으로 비유하는 비유가 굉장히 많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도 굉장히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그리스·로마 시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스포츠는,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거의 종교였습니다. 

마라톤도 기념하기 위해서 마치 예배하는 마음으로 이 마라톤 경기를 주관했고, 
사람들은 이 마라톤 경기를 봅니다. 

그들이 섬기던 아폴로 신을 비롯한 많은 신들을 섬기는 그들의 모습이 스포츠였습니다. 
그들은 스포츠를 통해서 그들의 삶의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는데 
오늘도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마라톤과 같은 경주를, 
어떻게 예수님처럼 완성할 수 있을까요, 완주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교훈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는데, 네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내 인생을 '경주'로 받아들이라

우리의 인생이 경주라는 사실을 알고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경주라는 사실을 알고 달려가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에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 하나는 '내가 이 땅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는 것입니다. 
우주가 갑자기 어떤 큰 사건이 생기면서(일명 빅뱅이론) 
내가 우연히 만들어지고, 우연히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내가 우연히 이 땅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인생의 목적이 있겠습니까? 
우연히 존재했다가 우연히 없어질 존재가 사람인데, 
내가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며,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요? 

그들에게 있어 삶의 목적은 없을 것이고, 삶의 목적이 없다면 경주도 없는 것입니다. 
경주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목적지를 향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달려가는 게 경주인데 
그 목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그냥 세상을 끝내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목적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뜻이 있고, 목적이 있어서 
내가 그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는데,

 

예수님처럼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을 완성해 주시고, 
그 목적지 너머에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경주하는 삶을 살 수 있겠어요?

저는 이 시대 젊은이들, 어린 청소년들이, 그렇게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몸부림치는 것은, 

성공을 위해서 한다고 말합니다. 그 성공이 무엇입니까? 돈을 버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손에 움켜쥐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성공하는 그것이 인생의 목적인데, 그것을 위해서 달려가는 그 인생,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 인생, 여러분들은 어떤 인생을 사십니까? 

우리는 경주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경주를 받아들이십시오. 
경주의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 하나의 선택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나를 부르셨고, 이제 내가 이 땅 사는 동안 
그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갈 것이고, 그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는 내 삶의 어떤 순간도, 
내가 생각할 때, 낭비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도, 

 

결코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순간을 다 합해서 
우리로 하여금 삶에 성공하게 하시고, 우리들의 삶을 완성하게 하신다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을 믿고 달려가는 인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경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방향 없이 가다가, 
그냥 세상을 끝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개인적으로 부르시기도 하셨지만, 그룹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바,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들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들 앞에 그 경주를 마친 사람들이 finish line을 다 넘어서 
우리에게 증거가 되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인생을 경주로 받아들이십시오. 
힘들고, 고통스럽고, 삶에 문제가 많고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를 알고 계시고, 
그 모든 우리들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finish line을 아주 멋있게 통과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12:1절 말씀은 “이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많은 믿음의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노아 그리고 모세 수많은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너희도 믿음의 경주를 잘하라. 아브라함의 삶, 그리고 이삭과 야곱과 노아, 그리고 다윗... 

굉장히 훌륭한 사람들의 믿음 생활을 잘했던, 
순도 높은 믿음의 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쫙 기록돼 있는데, 

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들의 삶의 현장으로 가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삼손.. 믿음의 사람들의 반열에 들긴 했지만, 그의 삶은 형편없었습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고 뭐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지만, 
자기가 죽을까봐 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누이라고 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첩을 통해서 아들을 얻었잖아요. 

노아.. 굉장한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노아의 삶 마지막에 술에 취해 
그냥 막 아주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 막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모세는 살인자였어요. 다윗도 살인했고 간음했어요. 
히브리서 11장에 주는 ”이러므로“의 교훈이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그 히11장의 믿음의 조상들을, 정말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가정할 때 
'그것은 믿음의 질이 아니구나, 믿음의 순도가 높지 않구나' 
믿음의 뛰어난 질로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에 믿음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질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걸어갔던 그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판정하고,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게 된,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아서 
힘들어도, 심지어는 죄를 지을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삶에 때때로 실수하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주는, 하나님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향해서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허다한 증인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12:1
그들이 우리에게 증거와 증인들이 되었어요. 
그들이 살아가면서 모든 시간에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믿음의 삶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믿음의 여정을 달려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다 때로는 시험에 들고, 달려가다가 때로는 '이 길이 맞나, 틀리나?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저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finish line을 통과했더니 
성경은 그들이 우리의 증인이야 
이제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우리에게 본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죠. 

 

우리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게 진짜인가, 이게 믿음의 길인가? 내가 실수하지 않는 건가?' 할 때마다, 
그들이 우리에게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보면서 응원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12:1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그들 믿음의 선진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응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이 말씀의 진의는,

그들이 믿음으로 걸어갔던 그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우리를 인도하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능력,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증인, 증거가 되면서 '힘내라. 내가 살아봤더니 하나님밖에 없다. 
내가 살아봤더니 하나님의 손이 늘 함께하고 계셔!' 이렇게 그 선진들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증인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들이 우리에게 증인이 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가까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성경에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지나갔던 그 사람들의 
믿음으로 승리한 삶들이, 우리에게 증언이 된다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 

때로는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이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굉장히 많이 지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경주입니다. 마라톤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우리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선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마주 오는 트럭에 내 몸을 던질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다고 하죠.

존 오트버그(John Ortberg) 목사님의 책에, LA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옵니다. 
어느 LA 마라톤에 1800명이 출발했답니다. 
그들의 모습은 아주 다양했다고 합니다. 

축제처럼 광대 옷을 입은 사람, 이상한 옷을 그룹으로 만들어 입은 사람들, 
무슨 축제하는 마당처럼 사람들은 환호하고 기뻐하고 소리치다가 
"탕" 소리와 함께 뛰기 시작합니다. 

한 반쯤 가면 사람들이 좋아하기는커녕, 이제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막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3분의 2쯤 가면, 이제 고통스러워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마라톤이에요. 하면 할수록 더 힘든 거예요.
심장이 터질 듯 아픕니다. 
우리들의 삶이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질문을 해볼까요?

결혼식이 힘듭니까? 결혼 생활이 힘듭니까? 결혼식은 축제로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결혼 생활은 힘듭니다. 그 마라톤을 뛰기 시작하면 헉헉거리기 시작하고, 
아프기 시작합니다. 괴롭기 시작합니다. 

부모님들은 애를 가지는 것이 힘듭니까? 애를 키우는 것이 힘듭니까? 
애 가질 때는 축제이고 너무너무 기뻐요. 
그러나 낳고 키우면, 이제 숨이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힘들기 시작하는 이것이 
우리의 마라톤 같은 신앙의 경주입니다.    <참고 견디기>

혹시 지금 정말 힘든 상황이 있습니까? 숨이 막 아프고 심장이 터질 듯 그런 
괴로움의 순간을 지나가고 있습니까? 그것이 마라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2:1  
경주를 할 때,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참고 견디십시오.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2. 가볍게 달리라

(히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그렇지 않아도 힘든 그 여정에 
짐을 잔뜩 지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라' 
그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

우리가 인생 가운데 무거운 것을 지고 달린다는 사실입니다.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마라톤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너무 힘들어요. 
우리 안에는 이렇게 무거운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버려야 될 무거운 것들이 있습니다.

① '걱정', 우리들의 삶이 지고 가는 무거운 것은 걱정입니다. 
걱정이 우리들의 삶의 큰 무게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오지도 않은 그 미래, 생기지도 않은 그 일들을 걱정하고 또 걱정하면서 달릴 때, 

삶의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② '두려움'이란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실패할 것이 두렵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무거운 두려움이 있어서 힘들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이 무거운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③ '불안함' 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 
내 삶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 삶에 문제가 없을까?'
생각하면서 흔들리는 그 불안한 삶, 그 불안함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④ '죄책감' 입니다. 우리에게 죄책감이 있습니다. 이 죄에 대해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해결할 길을 다 마련해 주셨어요.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내가 좀 더 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더 하나님께서 나를 속죄해 주실 것 같고, 
나를 더 회복시켜 주실 것 같아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계속해서 아파합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계속해서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난 나쁜 사람입니다.
그때 그 죄를 지어서 난 나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미 다 용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죄책감을 
우리의 마음속에 이 무거운 짐으로 두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과거에 죄가 있잖아요. 

그 죄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믿지만, 그 죄가 아직도 내 마음에 있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나쁜 사람이야' 그 죄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이것도 
내려놔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⑤ '쓴 뿌리'입니다. 쓴 뿌리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들을 생각하면서 분노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했어', 
그래서 분노하고 속에서 막 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그런 삶... 
모든 것이 다 불만스럽습니다.

왜 사람이 이런 일이 있을까? 
'왜 저 사람은 나를 그렇게 말해? 내가 복수할 거야' 하는 그런 쓴 뿌리가 있어요. 
그런데 이 쓴 뿌리는 굉장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2:15) '너희는 ...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한다'고 그랬어요. 

다른 성경에 ”쓴 뿌리가 돋아나서“ 또는 ”쓴 뿌리가 자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히12:15
우리들의 삶에 저렇게 큰 무거운 쓴 뿌리들 이것은 아주 작게 시작한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어요. 쓴 뿌리가 싹이 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게 나서 커지면서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우리들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뉴욕까지 걸어서 횡단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횡단이 끝난 다음에 인터뷰를 했어요. 
'수천 킬로를 당신이 횡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가파른 언덕이었습니까? 가까이 지나는 듯한 낭떠러지였습니까? 
뜨거운 태양이었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파른 언덕도 아니고, 사막의 뜨거운 태양도 아니고, 나를 거의 포기하도록 여러 번 
나를 포기하도록 만든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내 신발 안에 있는 모래였습니다.“ 

내 신발 안에 있는 작은 모래, 이것이 내 삶에, 내 신발에 있으면서 
나를 자꾸 괴롭게 하는 거예요. 물론 신발을 털어내도, 모래는 계속 또 들어옵니다.
 
내 삶에 문득문득 올라오는 분노, 불안감, 세상을 향한 그 악한 마음들, 
우리는 그 작은 것으로 시작한 것, 그것 때문에 
사람이 이 큰 무게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문에서 보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그런 두 사람 간의 싸움이 있어요. 
어떻게 그 싸움이 시작됐는가?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모래 알처럼 
시작된 거예요. 뭐 차가 지나가는데 앞에서 안 비켜줬다고 싸움이 붙어서 
살인까지 저지르는 큰 사건으로 진행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한 대로 작은 그 뿌리를 제거하고, 
큰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놓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짐을 내려놓으세요. 걱정도, 두려움도, 불안함도, 쓴 뿌리를 다 내려놓으십시오.
또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히12:1

여기에 '죄'는 a sin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아요. the sin입니다.  *헤 하마르티아
바로 그 죄 지금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바로 '그 죄'입니다.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는 달리지 못하게 하는 바로 그 죄, 
여러분들의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바로 그 죄 우리 모두에게는 
지금, 이 시간 내가 그것 때문에 거기에 묶여 있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정말 힘들어하는 바로 
그 죄를 벗어 버리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분노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음란한 것입니까? 
지금 그것을 벗어놓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그 영향이 무엇입니까?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말하는... 우리를 얽매는 거예요. 

이 얽매이기 쉬운 죄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생각나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이 강한 스포츠 쇼트트랙이 있지요. 세계적인 선수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쇼트트랙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아주 짧은 트랙을 선수들이 떼를 지어서 확 돌아가고 있는 그 모습, 
그러다가 한 선수가 미끄러지면서 엉키고 다른 선수들을 
다 얽어매고 미끄러져서 벽에 부딪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얽매이는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그 죄 하나가 미끄러지면서, 우리들의 삶을 다 뭉쳐 다 얽어서 
그냥 벽에다 내동댕이치는 바로 the sin 
그 죄를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볍게 경주합시다.

◑3. 함께 달리라

(히10:23~25)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세 번째, '함께 달리라' 경주를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 습관을 버리고 함께하라. 함께 예배드리라고 말하고 있어요. 
혼자서 집에서 유튜브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것도 좋지만 그렇게 그런 습관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함께 모여서 우리는 지금 함께 있습니다. 몸이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함께 있는 거를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경주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런저런 이유로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모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그 습관대로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경주하면서 때로는 넘어질 때가 있어요. 

때로는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시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닿는 
그런 도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렇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은 약간의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는 서로 돕는 공동체입니다. 
함께 달리는 공동체예요. '누가 아프다. 우리 아기가 아프다' 
이러면, 교회 사이트에 뜨자마자 카톡에 올라오자마자 
교인들은 같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교인이 다 기도합니다. 우리는 서로 모여야 합니다. 함께해야 합니다. 
함께 이 경주를 합시다. 이 경주를 함께 이 마라톤을 달려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달리라

마지막 네 번째,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달리라. 
예수님께 다시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살아가면서 예수님께 집중할 때도 있지만 
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러니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은 다시 집중하고 다시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지 못해 대형 사고가 난 사건이 있습니다.
코스타 콘코르디아호 침몰 사건입니다. (2012.1.13. 침몰, 32명 사망)

이탈리아 지질리오섬(Giglio Island) 앞에서 그 섬을 지나가다가 암초에 배가 걸리면서 
그 4천 명이 탔던 배가 침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선장은 집중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수사로 알게 되었는데, 선장은 그 항로를 결정하는 것을 부하 직원에게 맡겼고, 
그 직원은 계산을 잘못해서 숫자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굉장히 가깝게 그 섬 지역을 통과하다가 암초에 걸려서 좌초되어 버렸어요. 

심지어 불법으로 이 선장은 애인을 태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기 전에 이 선장은, 배 곳곳을 다 돌아다니면서, 
승객들하고 파티하고 웃고 떠들며 즐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집중하지 않았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여기저기 관심을 가지고 이것도 좀 하고 저것도 좀 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까,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해요. 예수를 바라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중요한 두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길이 되시고, 우리가 가야 할 목적이 되심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습니다. 
북극성의 사람들을 인도하는 그래서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북극성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존재이십니다. 나미비아 울트라 마라톤에서 GPS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주시는 나침반과 같은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십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가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이 되시고 이렇게 살라고 
순간순간 말씀하시고 또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그때는 이렇게 해야 해, 그때는 이렇게 일어나야 해, 
그때는 이렇게 하면서 힘을 얻어야 해, 말씀하시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을 붙드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길을 가셨습니까?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었던 그 고난의 잔,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앞에 두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도망가셨습니까? 아니었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어요. 
우리가 그렇게 살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 남은 사람이 없었어요. 모든 제자까지 다 도망갔어요.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아무도 나에게 남은 사람이 없고, 
다 도망가고 나만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요?

예수님께서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서 그 모든 수난, 고통, 배신감을 다 당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는 기쁨 그것을 바라보면서, 다 견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상이 무엇일까요, 그 기쁨이 무엇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렇게 십자가에 죽어 제가 구원받는 것 
'그게 내 기쁨이야' 

오늘 여러분들이 구원받고 여러분들이 새 생명 얻는 그것이,

예수님께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참고 견뎠어요. 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이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삽시다. 
그러다 보면 finish line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결승선을 통과하게 될 겁니다.
이제 그 선을 통과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요 또 온전케 하신 그 예수님께서 그 결승선 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다가 우리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달립시다. 이 마지막 finish line을 통과하는 순간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우리가 누구처럼 된다고요? 예수님처럼 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