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렘40장 폐허속에도 하나님은 계시는가?

LNCK 2025. 5. 10. 21:2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예레미야

20181114새벽-폐허속에도 하나님은 계시는가?-예레미야 40장1~16절- YouTube


◈폐허속에도 하나님은 계시는가?         렘40:1~16           2018.11.14. 

◑도입 /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폐허가 된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대로,
(하나님의 예언이 있어도, 하나님과 사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었던 대로, 그렇게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그 무너진 폐허 속에서 소망을 찾아 헤맵니다.
(지금 본문은 예루살렘이 함락 된, 폐허가 된 이후 상황입니다)
 
한 자락 소망이라도 있으면, 
무너진 그 폐허더미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폐허가 된 곳에서도 소망이 있다면, 그곳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폐허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도, 
좀처럼 그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렵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온 어려움들과, '이 폐허더미 속에서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인생들이 많다 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직전 장인 렘39장에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훼파되고 무너지는 장면 속에서도 
그들은 (마찬가지로 우리는) 좀처럼 하나님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폐허더미의 현장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다... 라는 것을 우리가 찾게 되어집니다. 

폐허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까? 
우리의 깨어진 인생, 그리고 회복이 이제 막 시작되어야 될 인생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인가요? 물론이죠! 

동일하게, 이 예루살렘 폐허더미 속에도 하나님이 계셨다면, 
우리 무너진 인생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는 것인가?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한다면, 
그 진정한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폐허더미 속에 계시는가요?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폐허속에도,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계시는 이유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늘 당신의 종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1. 예레미야가 거기 있었습니다.

렘40: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그다랴는, 열왕기하 25장에는 '그달리야'로 나옵니다. 동일인물.

여기서 '미스바'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바벨론이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우고, 남유다의 새로운 수도가 된 곳입니다. 
그다랴가 미스바에서 남유다 총독 (왕은 아니고, 주지사)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예레미야가 미스바의 그다랴에게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미스바는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도 잃어버리고, 
모든 것들을 다 빼앗겨 버렸던 것은, 그때의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삼상4장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기도 하고, 그들이 우상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훼파되었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떻게 합니까? 

사무엘이 미스바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곳에서 대대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삼상7장

거기 미스바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우상들을 버려라, 아스다롯을 버려라'  삼상7:3
그들은 거기에서 회개하였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래서 거기 미스바에서부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장소, 그곳이 바로 미스바였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복의 중심이 되는 미스바는 그대로 내버려 두셨고, 
그 미스바라는 곳에 오늘 누가 있는 것입니까? 

예레미야가 찾아와서, 그곳에 여전히 백성들과 함께 있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백성들, 특별히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폐허 속에서도 희망이 있는 거죠!

바벨론 고관들이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으로 망명하자' 라고 이야기합니다. 
'거기 가면 네가 편안하게 살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40:4

그러니 '네가 바벨론으로 나와 함께 가면, 너를 선대하겠다'
그래서 노후의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었던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이제까지 거의 40년을 예언활동을 했고, 지금은 그만 쉬어도 되는 사람이에요. 

바벨론 군대장관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라' 하고 자유를 주었어요.
그때 예레미야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모든 것이 깨어져 버린, 이 폐허더미 속에서, 회복을 상징하는 '미스바'에서 
남은 남유다 백성들과 함께 살기로 선택하고, 미스바로 지금 나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함락되고 무너진 그 남유다, 그 현장에서 
여전히 남은 남유다 백성들과 함께 미스바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내가 지금 여기에 너희와 함께 있다' 라는 사실을, 크게 외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미스바에는, 다윗의 혈통은 아니지만, 그다랴가 총독으로 있었죠.
그다랴는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입니다.   40:5

사반이 누굽니까? 요시야 왕 때 율법책을 발견함으로 신앙부흥이 일어났을 때, 
그 율법책을 발견했던 왕의 서기관이요, 그래서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에 
함께 부흥을 일으켰던 사람이 사반입니다. 

아히감은 누구입니까? 그 훌륭한 사반의 아들이죠.

또한 그는 예레미야가 진리를 선포할 때에 
성전에서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고 했을 때에 
그를 구원해 주었던 사람이 아히감입니다.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6:24 

그러니까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다랴는 
지금도 여전히 대를 이어서 하나님 편에 서고,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 섰던 사람이었어요.

그가 지금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의 시작이었고 (사무엘 때) 
그 부흥과 회복을 상징하는 영적인 장소인 미스바에, 
예레미야와 그다라가 함께 있다... 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한 우리에게) '내가 지금도 너희와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지금의 폐허더미가 끝이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우리에게 외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을 두셨을 뿐만 아니라,  *그다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통하여서도  *예레미야 
우리는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 라는 것을 증명받는 것입니다. 

그다랴는, 남유다의 남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폐허더미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살 길(답)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섬기고 살면, 더 이상은 위험이 없다'

 

영적으로 그의 말을 해석하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매와 징계와 연단을 순순히 받아라'

바로 예레미야의 메시지였죠!

 

이렇게 폐허 가운데서도, '살 길, 문제의 답'을 말해 주는
그다라 같은 사람을 그곳에 있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폐허속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십니다.  ↓

40:9~10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내 옆에 '살 길'을, 즉 문제의 답을 제시해 주는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예레미야가 있었지만, 예레미야 말고도 그다랴가 있었다는 거죠.
그는 '바벨론에 항복하면 이 땅에서 두렵지 않게 살 수 있다'라고 현명한 판단을 말하죠. ↖

▲3. 또한 하나님은 '의외의 방식'으로도 말씀하십니다.  *느부사라단
항상 우리가 깨어있어야 되는 게, 하나님은 의외의 방식으로 역사하시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놓치지 miss 않게 되죠.

1절 말씀 끝에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그런데 아주 좀 독특하게, 하나님께서 직접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고,
이어지는 2~3절을 보면 하나님이 '느부사라단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절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해놓고, 
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것은 2~3절의 느부사라단의 말입니다.
그러니 '여호와의 말씀이, 느부사라단을 통해서 임했다' 라고 본문은 증거하는 것이죠.
그가 말한 내용을 봐도, 여호와의 말씀이 맞습니다.

40:2~3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느부사라단은 바벨론 사람 이방인이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훼파하는 데, 회초리로 쓰셨던 
바벨론 나라의 군대 장관입니다. 

그 총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너희가 이렇게 된 것은 
바벨론 왕과 바벨론의 신의 승리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재난을 선포하셨고, 그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졌고,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졌다' 라고 
하나님의 뜻을 지금 선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 계시는가?' 
'내가 완전히 망한 그 폐허더미 속에서도 하나님이 계시는가?' 할 때,

이 일에 대한 원인과 진리를 이야기해주는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지금도 그곳에 계시다... 하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해야야 될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하난

40: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이스마엘을 시켜서 
지금 그다랴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14

그다랴는, 지금 그 위태한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하난 장군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포로로 잡혀갔지만, 요하난은 지방에 숨어 있으면서, 자기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요하난은 이스마엘의 테러를 간파하고서,
그 사실을 그다랴 총독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15
그러면서 '총독 당신이 허락해 주면, 내가 이스마엘을 찾아서 죽이겠다'고 하면서,
해결책까지 제시해 줍니다.
  
이렇게 요하난 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그를 통해서 또 전달되고,
남유다의 회복을 방해하는 (이스마엘) 세력들에 대하여 경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이 간접적으로 선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그 폐허 속에도 그들과 함께 계시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예루살렘에 훼파된 그 성읍 속에서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라는 질문을 가지고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비록 남유다는 망하고 폐허더미 속에서 겨우 남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을... 미스바에 두셨음을 알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지금 내가 처한 이 순간에,

내 삶의 위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한 경계해야 될 부분들을 말해주는 

요하난 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아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동행은 이렇게 증명되어 지는구나!' 하고 우리가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삶 속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까? 
폐허더미 같은 내 삶 속에서도,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까? 

저 멀리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땅에는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곳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누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편에 선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같은 사람이 있고,
에스겔 같은 사람도 건재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두셔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나는 여기에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도, 
아직 남유다에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 그 외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메시지를 주시면서, 하나님의 동행과 함께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그런 사람들을 두셨습니다.
이것이 본문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바탕으로, 우리 각자의 삶을 한번 스스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삶 주변에, 내가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내 삶 주변에,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내 삶이 이렇게 깨어지고 부서진 것 같아서
'이곳에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라는 내 질문 속에,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을 분명히 세워놓았다' 라고요! 

그래서 예수님은 종종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귀가 열려있고, 영혼이 깨어있어야... 그걸 분별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가 경계해야 될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사람, 내게 조언해 주시는 분들도 있죠.
그런 일들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구나' 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느부사라단 같은 아주 의외의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마치 돌들이 소리지르는 것처럼 해서라도요!

그리고 나를 보내신 이곳,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해 
끊임없이 우리의 삶 속에서 말해주고 있는 그다랴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나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 라는 것을 수없이 확신하게 됩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도, 
의외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믿음이 아주 연약한 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시하시고, 살 길을 가르쳐 주시고, 올바른 선택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귀를 열고 들을 수 있는 '듣는 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 있어야...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다랴는, 요하난의 경고를 듣지 못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같이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한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