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21장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21:1~ 2025.05.25.
'요한계시록' 하면 '좀 이상한 책이다'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요한계시록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
늘 요한계시록만 말하는 사람들 중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늘 요한계시록만 붙잡고 얘기하는 교회들 중에 이단도 많죠.
그래서 그런지, 반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시록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을 설교도, 성경공부도 잘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손해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자체로 우리 신앙에 아주 소중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성경이 전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맨 마지막 결론이잖아요.
계시록을 잘 모르면, 성경 전체에 대한, 구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과 신학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빠지게 됩니다.
계시록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주제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왜 이 중요한 계시록이 소외되는가요, 왜 다르게 이상하게 보이는가요?
여러분 이것은 계시록이 성경의 그 외 부분들과 다른 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방식으로(장르로)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쓴 모든 글에는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습니다. 장르라고 하죠.
장르에는 시, 소설, 수필, 희곡 이런 장르가 있고,
뿐만 아니라 과학자가 쓴 논문, 신문, 기사, 유머... 이렇게 방식(장르)이 다 다릅니다.
<컨택트 Contact>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주인공이 우주에 대한 흥미를 갖고 열심히 공부해서 커서 과학자가 되고,
마침내 우주를 여행해서 아무도 못 보던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그때 했던 말이 이렇습니다.
「우주가 너무 시적이네요. It's poetic!
우주에 내가 아니라 시인을 보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정말 아름다워요. 너무 아름다워... 우주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상상도 못했어요. 상상도...」
이런 일을 잘 정리해서 전달해주기는, 과학자보다 시인이 더 낫겠다는 거죠.
여러분, 과학의 언어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제대로 기술하여 전달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은
필요합니다만... 편협한 생각입니다.
이 <컨택트 Contact>라는 영화가 본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건데,
이걸 쓴 사람이 과학자입니다. 칼 세이건 아세요? <코스모스>라는 책도 유명하고,
TV에 출연해서 아주 유명했죠. 그 과학자가 이런 말을 해요.
'과학 논문이 못하는 것을 포임, 시가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현실, 어떤 진리는, 시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언어로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시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게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장르인가요? '묵시' 장르입니다.
계시록은 '묵시' 장르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죠.
우리말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라고 첫 마디가 되어 있는데, 1:1
'계시'라는 말은 '묵시'라는 말로 번역하죠. *아포칼립시스
'감추었던 것을 나타내 보인다'라는 뜻입니다. 묵시(아포칼립시스)는 아주 독특한 장르예요.
계시록이 다른 성경과 달라 보이는 것은, 장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장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에요.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창가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세레나데' 라고 하죠.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카페에서 말할 수도 있고,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죠.
<Love Actually> 라는 영국 영화가 꽤 유명했는데, 이 영화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사랑하는 여자 집 앞에 가서 문을 똑똑 두드립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종이에다가 뭘 써왔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한 장, 한 장 보여줍니다.
이 장면이 굉장히 히트 쳤습니다.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데, 아주 강력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랑의 노래, 사랑의 그림, 사랑의 춤,
사랑의 편지 등 굉장히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춤이냐 노래냐? ...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즉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에요.
성경은, 요한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묵시다' 라고 하고 있지만,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 계보, 묵시 ... 다 장르는 다르지만 핵심은 뭐예요?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도 미래의 일을 이하여인 게 초점이 아니고요. 예수가 주인공이에요.
예수를 알아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신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걸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어떤 상황에서 주어졌는가요?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에서
'읽는 자'는, 옛날 이때는 집집마다. 성경이 없었습니다.
요즘 웬만한 집에 성경책이 다 몇 권씩 있죠.
그런데 옛날에는 신구약 성경을 한 권만 갖고 있으면 갑부였어요. 부피도 엄청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을 듣습니다.
그래서 1절에 '읽는다'는 영어로 'read aloud 낭독한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앞에서 낭독을 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앉아서 듣고 있고
그 사람들이 말씀을 지키는 거예요.
생각을 해보세요. 어떤 상황입니까? 예배 상황이에요.
이게 공동체고 교회인 겁니다. 그래서 좀 더 분명하게 번역을 하면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사람과, 듣고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처음에 이 말씀이 보내질 때에, 낭독할 때에,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지금의 에베소 앞바다에 밧모성에 유배되어 있었고, *거리가 약70Km
에베소부터 라오디게아까지 일곱 교회가 북두칠성처럼 차례대로 위치해 있습니다.
그 일곱 교회 사람들이 읽고, 듣고, 그대로 지키라고 했던 편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편지는요. 구체적으로 들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상이 있습니다.
본래 이 편지를 쓸 때 그 독자들은 누굽니까?
당시 1세기의 로마 제국하에서 살아가던 소아시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하여 쓰여졌지만 written for us
그러나 우리에게 쓰여진 것이 아니다. but not written to us
이게 아주 중요한 원리이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666이 뭐냐?
옛날에 한때 그런 말이 있었어요.
로날드 레이건이 1981년에 대통령이 됐는데, 1981~1989
Ronald Wilson Reagan 그의 이름 스펠링이 6자씩 666이에요.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로날드 레이건이 666이다... 라고 말했던 적이 있고요.
조금 후에 소련 대통령 고르바소프를 보니까, 이분의 이마에, 붉은 반점이 크게 있었어요.
계시록에 보면 '붉은 용' 이런 말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혹시 붉은 용이다'
제 말의 의미는, 계시록은 우리에게 쓰여진 게 아니에요.
성경이 하나의 상징인데, 암호 코드처럼 읽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1세기에는 이걸 몰랐다가
20세기에 와서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됐다면...
지난 2천년 동안에는 계시록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너무너무 이상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쓰여진 것이 아니다'... 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 1997년인데, 그때 <Left Behind>라는 책이 굉장히 유행했습니다.
이게 영화로도 나왔는데요. 꽤 유명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했죠.
이 영화의 처음이 어떻게 나오냐면,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을 해요.
이유를 조사해 보니까 조종사가 없어졌어요. 그의 뼈도 없습니다. 소위 휴거된 거예요.
휴거는 성경적인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예수님 재림 때, 성도가 공중으로 올려져서
주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 책이나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은 안 일어납니다)
그런데 휴거에 관계된 책과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이렇게 읽는 게 요한계시록을 잘못 읽는 예입니다.
한때 그런 말도 있었어요. 여러분 EC 라고 아십니까? European Community
지금 EU 가 옛날에 EC 였거든요. European Union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이 기억나는데, 당시에 EC 가입국이 9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가 가입할까 말까 그랬거든요. '이제 곧 10개국이 된다.
EC가 10개국이 되면, 그것 중심으로 세계정부가 될 것이고, 그러면 세계의 종말이 온다.
요한계시록을 봐라 열 뿔이 있지 않느냐?'
저는 그때 그 책을 읽고 굉장히 무시무시했습니다. '곧 종말이 다가오나 보다...'
굉장히 무시무시해서 어떻게 했을까요?
교회도 열심히 가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사님의 말씀도 열심히 듣고...
그런 효과가 조금 있기는 했어요. 그래서 이단들이 요한계시록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겁니다.
또 그때 유행했던 말 중에 '슈퍼컴퓨터의 출현'
앞으로 컴퓨터가 너무 발전해서, 그 속에 굉장히 많은 정보가 들어가는데,
'이 슈퍼컴퓨터 때문에 이게 세계 정부가 될 것이다. 그게 계시록의 짐승이다' 그랬는데요.
여러분 당시 1980년 초에 슈퍼컴퓨터가 요즘은 집집마다 다 있어요.
심지어는 핸드폰 안에 다 들어와 있습니다.
지구 종말하고 별 관계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단들이 이렇게 종말을 너무 지나치게 이야기하는 건 주로 겁주려고 그래요.
겁을 주어서 헌신을 유도하려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반대로 종말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계시록이 우리의 신앙과는 별 상관없는
책으로 치부하는 것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원리는,
성경은 전체로 하나의 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고 읽어야 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저자가 각각 다르지만, 하나님이 저자이시기 때문에,
전체의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은 그 결론에 해당하는 거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중에서도 맨 마지막 21장, 22장에 나오는 만물의 회복,
그 부분을 먼저 읽고, 나머지 전에 성경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성경 전체의 주제를 먼저 파악하고, 성경을 읽으라는 거죠)
오늘 요한계시록 첫 시간인데 앞으로 6주 동안 설교할 건데요.
첫 시간인데 계1장에서 시작 안 하고, 계21장을 본문으로 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계시록은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계21장, 22장.. 성경의 맨 마지막 두 장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생각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장세기 1장, 2장.. 성경의 맨 첫 두 장이 그대로 반복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생명나무가 나오죠. 생수의 강도... 굉장히 많은 부분이 닮아 있습니다.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하늘과 새 땅'
하늘만이 아니고, 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게 캐슬이 아니고요. The Holy City 입니다. 모든 영어성경이 city 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이 곧 도시였죠.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최고로 예쁜 거죠. 가장 잘 준비한 상태이고요.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key sentence
이 말씀이 성경 전체의 결론이고, 요한계시록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결론을 알고 성경을 읽으면,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우리가 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개념 (만물을 새롭게 함)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거룩한 도시, 그리고 만물을 새롭게 하느라...
다 같은 주제의 말을 하는 거죠.
여러분, 복음이 뭡니까? 구원이 뭡니까?
예수 믿고 천국 간다... 는 말은 맞아요.
우리가 지금 당장은 예수 믿고 천국 가고, 하나님께서 영광중에 우리를 맞이해 주시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에요.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복음의 굉장히 중요한 시작이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핵심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경은, 역사 전체가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역사의 완성이 뭐냐?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 역사의 완성은, 하나님이 다스리심 입니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나라가 구원이었고,
그것이 (계시록에서) 완성되는 겁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지금은 바벨론이 힘이 센 것처럼, 세상을 다 장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앗수르가 세상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상의 향배는 하나님 손 안에 있다.' 그걸 말하는 게 복음인 거예요.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라는 말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발이 아름답다...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세상이 로마제국이 세상을 다 다스리는 것 같지만
'아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은 다 멸망하고 불에 타고 없어지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나만 천국에 들어가면 된다' 그거는 복음이 아니에요.
▲여러분 위 사진 어떤 사진인지 아십니까? 1975년의 사진입니다.
베트남이 패망 때, 사이공 미 대사관 옥상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대피시키는 장면입니다.
이때 한국 사람들도 거기 사이공에 있었죠.
장사하던 사람, 우리나라 주재원들, 공무원들, 대사관 직원들이 있었는데
겨우겨우 얻어 타고 왔습니다. 피신 못한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피난 못간 사람들은 거기에 억류되고 잡혀가지고 감옥 생활하고,
정말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던 그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게 1975년의 이야기입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보면, 이걸로 시작을 하죠.
'구원은 이건가? 지금 세상은 다 불타고, 악의 소굴이 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만 구해주시는 그게 구원인가?'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악의 세력이 너무 강해서
'나 God 는 힘이 약해서 할 수 없다. 이 세상은 이제 포기하자. 우리는 포기하고 간다.
그래도 너희들은 내가 보호해 줄게. 저기 가면 좋은 데 있어, 천국!'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본래 선하게 지으셨는데 사람들이 망가뜨렸어요.
너무 심하게 망가졌어요. 이제는 너무 악해졌어요.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God : '그럼 다 부셔버려. 다 불로 태워버려. 멸망시켜버려!'
성도 : '이 땅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우리는 어디 딴 곳, 하늘나라에 가서 구원 받을 거야'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여러분 믿습니까?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전체를,
우리 성도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그 사랑,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면,
'이 땅은 포기하자, 이 땅은 불에 타서 없애버릴 거야, 회복불능이야'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땅은 악의 세력의 손에 영구히 있을 거야...'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은 (심판하신 후에) 만물을 회복하실 줄 믿습니다. 그게 구원이에요.
하늘만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주권은 하늘뿐 아니라, 온 세상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전체에 미칩니다.
그래서 '만물이 새롭게 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이게 구원의 핵심인데, 그 구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뭔가?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여러분,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은지... 무슨 황금 길을 걷고, 진주 문으로 들어가고...
이게 핵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것이 구원입니다.
마태복음도 똑같습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러분 보세요. 요한계시록과 마태복음이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까? No
똑같은 말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게 구원입니다.
이게 인류의 출발부터 그랬습니다. 에덴동산에 가면,
에덴 동산이 얼마나 장소가 좋았다. 낙원이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어요. 이 '임마누엘-구원'이 중요한 거예요.
에덴동산에 아담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잖아요.
친구같이 함께 산책하고 같이 얘기했잖아요.
그게 여러분, 모든 구원과 복의 핵심인 거예요.
▲그런데 인류가 죄를 범함으로 쫓겨났죠. 뭘 잃어버렸습니까?
'에덴 동산'이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출애굽하시죠.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신내산에서 많은 명령을 주시는데,
가장 중요한 명령, 가장 길게 되어 있는 명령이 뭔가 하면, 성막을 만드는 거예요.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그들의 백성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후에 가면 그 성막이 성전으로 바뀌죠. 그리고 교회로 바뀌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 새하늘과 새 땅이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해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21:21절에 보면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러분, '천국' 그러면 우리는 열두 진주문, 황금길.. 그런 것만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게 핵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게 핵심이에요.
그런데 그 천국 (새 하늘과 새 땅)에, 없는 게 있습니다.
21: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예루살렘의 핵심은 성전이에요. 근데 새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없어요.
성전이 있어야 예루살렘에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근데 왜 성전이 없는가 하면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고대의 모든 도시들은, 서양의 지중해에서 페르시아까지 모든 고대 도시들을 방문해 보면
예외 없이 템플 신전이 있습니다. 제우스든지 아폴로든지 아르테미스든지 신전이 있죠.
에베소 가면 아데미 (아르테미스) 신전이 굉장히 유명하죠.
여러분 어떤 도시에 만약 성전 (템플)이 없으면, 그 도시는 심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탬플은 대단히 중요한 도시의 핵심입니다.
그만큼 당시 사람들이 신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예루살렘 성전은 더욱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이 왜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삐까번쩍 잘나서 구경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성전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늘 가고 싶어 했던 거예요.
그런데 새 예루살렘에는 뭐가 없어요? 성전이 없어요. 왜 없어요?
성전은 본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런데 새 예루살렘은 어때요? 하나님이 친히 거기 계시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성전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늘 함께 하시고, 그곳에 늘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실현되는 것입니다. 24/7
◑그러면 그것이 '구원'이라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가요?
예수 믿는 게 뭔가요?
여러분 단순히 예수 믿으면, 죄 용서 받고 천국행 티켓 확보하는 것입니까? No
옛날에 우리 부르던 찬송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아주 아이들에게 구원을 잘 설명한 좋은 찬송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나 좀 부족합니다. 구원열차 올라타고 나만 천국 가는 그게, 구원이 아니에요.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 되시니'
물론 구원열차의 모든 주권은 하나님 안에 있어요.
여러분, 주님은 차장이 아닙니다. 주님은 선장이 아닙니다.
우리를 탈출시키기 위한 '탈출 프로젝트' 헬기의 조종사가 아니에요.
여러분, 주님은 온 만물의 주권자시고 통치자이신 줄 믿습니다.
만물을 회복하시는 게 구원의 큰 그림인 거예요.
그러면 예수 믿는 것은 뭐냐? 아브라함을 불러서 세상에 복이 되라 그러셨잖아요.
'너희 가운데 착한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느라'
이 말은, 이 전체 큰 회복의 여정, 만물을 회복하는 이 큰 하나님의 여정 가운데,
이 '선교' 가운데, 교회를 그 중심에 세우신 거예요.
아브라함과 그 자손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역사의 중심 에이전트로, 성도를 사용하고 싶으신 거예요.
룻기와 요한계시룩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깨어진 사람이, 이상적인 여자로 회복회는 겁니다. 에세트 하일
남자로 더 이상적인 남자로 회복되어저 가는 것입니다. 기보르 하일
그 회복인 거예요. 우리 남성과 여성들이 회복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한 가정의 회복이죠. 한 마을의 회복이죠. 한 나라의 회복이죠.
이것이 결국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이 만물 전체를 회복해 가시는 하나님의 큰 구원 ... 이걸 성경이 말하고 있는 거예요.
룻기, 마태복음, 요한계시록이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물의 회복'을 향해서 가는 길에, 룻기는 멀리서 설명하고 있고,
마태복음은 굉장히 가까이서 설명하고 있고요.
이제 요한계시록은, 그 끝지점에 가서,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가 무엇인가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미시오 데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Missio Dei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선교에 동참하고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병원 지어 사람을 고치고 회복하고 하는 이 모든 게, 선교입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착한 일 많이 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오겠지... 이게 구원이야'
아니에요. 세상을 회복하는 전체, 사람들의 심리와 관계와 그리고 몸을 회복하는 그 전체가
크게 보아서 범주적으로 하나님의 선교 Mission Dei 에 속해 있는 겁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의사들이 의료를 연구하는 일,
우리가 마을을 돌보는 일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을 목회, 선교라는 게 가능한 거예요.
우리 교회가 '창조세계의 돌봄', 우리 녹색교회 팀들하고 열심히 하잖아요.
여러분 다들 플로깅도 열심히 하셨습니다. * 조깅 산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운동
여러분 만약에 이 땅이 전부 다 불타 없어질 거라면,
우리는 그냥 이 땅을 탈출해가지고, 구원열사 타고 딴 데 가는 게, 그게 구원이면,
여러분 이 환경보호 별 의미 없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데, 그것을 누구를 통해서 하는가 하면,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래서 교회는 만물을 회복하시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 안에 있습니다.
거기에 쓰임 받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지난주에도 교회창림 120주년 기념을 참 멋지게 했는데
오늘까지 포항제일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포항제일교회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만물 안에서, 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나님과 동참하기 위해서 있는 게
그게 바로 교회가 하는 일이요, 선교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해가는 과정에서, 교회를 사용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먼저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복음입니다.
1세기 말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굉장히 강력한 도전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성경 전체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오늘을 위한 미래>라는 요한계시록 책이 번역돼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제가 설교할 때도 굉장히 이 책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위한 미래' ... 그러니까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종말이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냐는 시나리오를
보여주기 위해서, 즉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쓰여진 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또한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계시록이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오늘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베드로후서에도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나옵니다. 결론이 이렇습니다.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런즉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벧후3:11
'오늘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고 것입니다.
계시록의 메시지는, 우리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줌으로써
교회를 새롭게 합니다. 미래의 일을 알려줌으로써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계시록의 하나님은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 2장과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에 두 장 21장, 22장이
아주 비슷하다는 걸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어요.
창세기 1, 2장에서는 에덴 동산, 손대지 않은 자연, '천연'이라고 그러죠.
요한계시록 21~22장 마지막에서는 '거룩한 성'이 나옵니다. the holy city
여러분 '도시'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좋아하면서도 염증을 느끼죠. 고개 돌려버리고 싶은,
아주 많은 타락과 죄악이 관영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차이... 본래는 에덴 동산이었는데,
마지막 결론에서는 거룩한 도시로 끝난다... 라고 하는 게 무슨 말인가요?
계시록 18장에 보면, 바벨론이란 도시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죠.
그것만 보면, 성경 요한계시록이,
'도시'라는 것과 인간이 이룩한 문명 전체를 거부하는,
타락했다고 버리고 부수고 싶어한다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못 읽으면 '자연주의'에 빠집니다.
인간의 모든 문명 등을 다 집어치우고, 이제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면 인간이 행복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문명을 긍정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류의 완성이 그냥 동산이 아니라, 자연 풀밭, 그냥 밀림이 아니라
도시입니다. '거룩한 도시' 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 전체가 많이 타락했지만, 많이 더럽혀졌지만,
그런 과학과 기술과 문명 문화와 예술을, 하나님이 전적으로 거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죠.
인정해 주신다는 것이죠.
물론 인간이 기술을 숭배하고 '과학 만능주의' ... 거기서 구원을 찾는 것은 잘못이에요.
인간의 문화와 예술이 타락한 면이 많아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의 과학과 기술 문화와 예술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의 영역 속에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사용해서
인간을 복되게 할 수 있는... 그 문화와 예술로 과학과 기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지난 주일날 우리가 좀 특별한 예배를 드렸잖아요.
룻기를 주제로한 뮤지컬을 통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들은, 성경을 잘못 읽어서, 음악과 예술의 과도한 사용을 경계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음악과 예술도 하나님의 것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요즘 AI 시대가 되어서 많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희 교회에서도 신중하게 우리 AI를 목회에 조금씩 활용하고 있습니다.
두 주 전부터 여러분에게 보내드리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설교 내용을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거 ... 여러분 들어보셨습니까? 꼭 들어보세요.
이게 AI로 만든 겁니다. 굉장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복이라고 하는 게, 여러분 우리가 '회복'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성경적 '회복'은, 창조의 상태 그대로 돌아가자,
창조의 상태 그대로 돌아가는 회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해서 좋은 출발이었지만, 완벽한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완성을 향해서 가는 거예요. 가다가 실패했습니다.
가다가 타락해버렸습니다.
그럼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어린 양의 백성들이, 어디로 가야 되는가 하면
그 지점이 본래 창조했던 그때로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의도하셨던 그 본래 목표, 아직 간 적이 없죠.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죠) 그 길을 향해서 가는 겁니다. ↙
그런 점에서 여러분 새로운 길을 가는 거예요. 교회가 새롭게 되는 것도,
'옛날에 그때가 좋았는데' 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던, 하나님의 미래 안에서 나아가는...
그것이 교회가 새롭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조때 그 상태, 에덴 동산 그 상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주의'일 수 있죠.
동산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렇지 않고 이게 도시다 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했던 모든 일들이 의미 없지 않다' 라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거예요. 좀 쉬운 예를 들면
컴퓨터를 사와서 쓰다가 바이러스 먹고 엉키잖아요.
그러면 다시 리부트하고 고치고, 포맷을 새로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게 컴퓨터가 완전히 망가지면, 정말 골치 아파지면,
'공장 초기화'라는 걸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내가 5년 전에 사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돌려놓는 거예요.
그럼 깨끗하게 새로운 컴퓨터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죠? 그 사이에 찍은 사진, 그 사이에 내가 썼던 글들, 썼던 일기들,
받았던 편지들...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공장 초기화를 한다는 것은, 에덴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사이에 인류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 라는 말이 되는 거죠.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때 일기 썼던 기억이 있으십니까? 그 일기 갖고 있습니까?
대부분은 안 갖고 있죠.
그걸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열심히 일기 쓰던 그 노력이 의미가 없습니까? 아니죠.
그때 나름대로 열심히 일기도 쓰고, 글도 배우고 했던 것이,
다 모여서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돼가지고 오늘의 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그 목표대로 가자는 거지,
에덴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자연주의는 아닙니다.
다른 예를 들면, 부부가 결혼해서 살았는데, 너무 부부관계가 악화되었어요.
그런 말들 하죠. 결혼할 때는 '너 없이는 못살아' 이랬는데
한참 살다 보니까 '너 때문에 못살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혼 때 연애할 때 그 순수한 사랑으로 돌아가자' 해서 돌아가보세요.
그러면 좋을까요?
그때는요. 서툴러요. 뭘 몰라요. 뭘 모르니까 사랑한다 그랬지요.
그리고 여러분 결혼해서 20년 30년 살면서, 헤매기도 하고 실망시키기도 하고,
원망하고, 미움도 가지면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해서 오늘까지 왔잖아요.
여러분 정상적인 부부라면, 신혼때로 돌아가면 손해입니다.
그 과정을 다시 하라고요?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 원리를 인류 역사 전체에 적용하면,
천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이 많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못된 짓도 많이 했지만,
세상 문화가 많이 더럽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 초기화 상태로, 옛날의 풋사랑 거기로 돌아가는 게
'회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슬프게 해놓은 모든 문명들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손에서 아름답게 종합하셔서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말은, 이걸 다 버리고, 새로운 뭐를 탁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망쳐놓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면서 만들어온 이것을
하나님이 새롭게 바꾸신다는 거예요. 의미 있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활절 때 자주 인용하는 말씀인데요,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여러분, 이 세상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부활할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그 메시지의 결론이,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신다'는 게 결론이에요.
오늘 우리가 애쓰고 힘쓰는 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복음 증거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일들이... 헛되지 않은 줄 믿습니다.
또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면, 우리가 믿으면,
우리의 일상이 달라져요. 이 만물 안에 뭐가 속했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키우고, 여러분 일터에서 어쨌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답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자연 보호를 하려고 노력하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하는 그 모든 일이... 의미 없지 않습니다.
다 불에 타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아직 어설프지만, 우리의 모든 삶의 여정들을
하나님이 그 손에서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구원의 완성을 향해서 새롭게 되는 교회, 날마다 새롭게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