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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장 인카운터 P1

LNCK 2025. 6. 2. 21:0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거듭남, 회심

“인카운터” (창세기 12장 1-3절) 2023.11.04 수련회  - YouTube   ~52:57초까지 녹취

◈인카운터 P1            창12:1~3              2023.11.04.  

▲도입 / 저희 교회도 젊은이 교회입니다!
여기 청년들이 모여있는 거 보니까 너무 좋네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저는 그 대학에 있는 선교단체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믿기 시작했는데 
네비게이토 라는 단체였어요. 

그래서 그 단체에서 예수님을 만나고는, 대학생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사역하는 게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아침마다 모여서 QT하고, 또 말씀 암송하고, 전도하러 나가고... 
그게 너무너무 재밌어서 뭐라고 하나님한테 기도했냐면 
'하나님, 평생 이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억하셨나 봐요. 

지금은 제가 나이가 많지요. 제가 올해 2023년에 만으로 57세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계속 청년들을 보면 제 마음이 뛰게 하시고, 
또 저희 교회도 그 사이에 많이 늙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아직도 '청년 교회'의 끝자락에 끼워주는 것 같아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23년 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때는 교회에 정말 청년들밖에 없었어요. 
대학생들밖에 없었는데, 23년이 지나는 사이에, 대학생들이 아저씨가 되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이래가지고, 지금은 아저씨들 아줌마들도 많은 교회가 됐는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계속 청년들과 함께 호흡하게 하시고, 
또 청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게 하셔서... 여러분 청년들을 보니까 너무 좋네요. 
이 많은 청년들이 어디 있었는지... 참 감사하네요.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말씀은 "인카운터 Encounter"   *대면
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본문 창12:1~3절인데, 아브라함의 여정이 시작되는 그 말씀이죠. 
그런데 저는 오늘 이 말씀의 내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 건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까?' 를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창12:1~3절 말씀을 들을 때는 
'어 그렇구나, 이런 내용으로 아브라함의 여정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내용에 집중하지만, 
여러분,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 음성을 들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사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을 대면(인카운트)하면서 시작한 거죠.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여정도,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없이는, 우리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 가운데,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믿음이냐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거예요. 
말씀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신다는 거예요.

얼마나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시냐면, 그분의 별명이 '말씀'이세요. *로고스
얼마나 말씀하시는 걸 좋아하시면, 하나님은 그 별명이 말씀이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죠.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정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 원하시고, 또 말씀하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벙어리로 만들어버리는... 

물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건 인정하고 익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글(성경)만 쓰실 수 있는 분이지,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건 인정을 또 안 해요. 

하나님은 여러분 글만 쓰실 수 있는 벙어리이십니까? 
아니죠.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그랬거든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여정이 시작될 때도, 모세의 여정이 시작될 때도, 
사도바울의 여정이 시작될 때도, 베드로의 여정이 시작될 때도, 
항상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이런 하나님과의 인카운터 Encounter 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 인카운터는 꼭 초자연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물론 초자연을 포함하긴 하지만, 
하여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주1)
그리고 그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믿음의 여정의 시작인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요? 또는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요? 
저는 하나님의 임재라고 믿습니다.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나님을 인카운터하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인카운터할 때, 우리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재'인데, 
임재라는 것은 뭐냐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우리 쪽에서는 뭐냐면, 임재는 '하나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거죠. 

그런데 당연히 하나님은 여기 계십니다. 무소부재하신 분이신데요. 
여기만 계신 게 아니고, 저기도 계시고, 북한에도 계시고, 아프리카에도 계시고, 
안 계신 곳이 없어요. 그렇죠.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셔서 어디나 계세요. 

그런데 '임재'는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다'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거예요. 그게 임재예요. 

당연히 하나님은 여기 계신데, '그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아 하나님이 지금 여기 계시는구나' 하는 것이 인식되는 순간이 있죠. 그것이 임재입니다. 

그래서 '임재'는 뭐냐면,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고 인식하는 것이고,
하나님 편에서 '임재' 라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은 어디나 계세요. 
그런데 거기 계시기를 기뻐하시는 곳이 있어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죠. 어디서는 근심하시기도 하시고, 또 어떤 곳에서는 슬퍼하시기도 하시고 뭐 그러겠죠. 
예를 들어서 평양에 있는 김정은 궁에서는 하나님이 거기 계세요. 
하지만 근심하시고 슬퍼하시겠죠. '얘가 왜 하나님을 모르냐?' 
이렇게 하나님이 근심하시고 슬퍼하실 수도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하나님이 뻐하실 수도 있어요. 
거기 계시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실 수 있죠. 
그래서 임재는 뭐냐면,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를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인카운터 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여기 계시기를 기뻐하게 하세요. 
하나님이 여기 머무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세요. 그러면 그곳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고, 
그곳에서부터 우리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줄로 믿습니다.   *주제
이 이야기를 오늘 좀 더 심도 있게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해야, 나의 데스티니를 찾고, 그걸 이루는 삶이 시작된다

제가 항상 설교를 시작할 때는 '데스티니'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을 하는데, 
지금도 데스티니에 대한 얘기를 한 5분 정도 나누고, 
그 다음에 임재라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데스티니를 풀어가는가? 하는 내용을 나누겠습니다. 

데스티니 Destiny 라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계획, 또는 디자인 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있으세요. 하나님은 '왕 J'세요.  

(*MBTI에서 Judging 과 Perceiving 로 나뉘는데, 하나님은 아주 창세전부터 계획을
철저히 세우시는 스타일이라서, 강한 J 스타일이라는 거죠. 물론 반대 측면 P도 있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태초부터 종말까지 모든 계획을 다 세우셨대요.' 
그런데 그 계획 속에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도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실 때, 갑자기 어쩌다 우연히 지으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대충 진흙 가지고 장난하며 노시다가, '아이코 이거 좀 잘못 만들었는데, 
그래도 세상에 나가서 대충 살아라' 그래서 여러분이 이 땅에 던져진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왕 J' 이세요. 
창세 전에 여러분을 지으실 때, 아주 섬세하고 아주 디테일한 계획을 다 가지고 계셨어요. 
믿으십니까? 남자로 태어나게 할지, 여자로 태어나게 할지,
또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할지, 미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할지, 
심지어 머리카락을 몇 개로 할지까지 다 세셨다고 했어요. 

또 키가 얼마까지 자라게 할지, 또 우리의 눈 색깔은 어떤 색깔을 가질지, 또 체형도... 
물론 전부 다 하나님의 책임은 아닐 수 있어도, 큰 그림을 하나님이 그려놓으셨다는 거죠.

우리 각자의 관리는 '그 큰 그림 속의 작은 그림들'이예요.
우리의 관리와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작은 것들은 바뀌죠. 
근데 큰 그림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고, 그건 못 바꿉니다. 
그래서 하여간 하나님께서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목적은 뭐냐면, 이 하나님의 계획, 디자인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계획 destiny 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것이, 여러분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다시 한번 잘 듣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요. 놀라운 계획이 있어요. 
선하고 복된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거예요. 
차츰 발견하고, 일평생 그걸 이루어가는 거예요. (*이게 순리, 자기 트랙을 벗어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데스티니는 두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1) 그걸 발견하고 2) 그걸 이루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발견하는 게 뭐냐면 하나님을 인카운터(1:1 대면) 해야 돼요. 
그렇죠. 우리를 향한 계획은 다른 데서 찾을 수 없어요.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돼요. 

그래서 자기 데스티니를 발견하는 것이고, 이루어가는 것은 뭐냐면 순종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데스티니는 이 두 파트로 이루어져요. 
1) 하나님을 인카운터함으로 우리를 향한 계획이 뭔지를 알게 되고, 
2) 그것을 순종함으로 이루어가는 거예요. 

▲어쨌든간에 저와 여러분에게는 데스티니가 있습니다. 
그 데스티니를 이루어가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데스티니 안에 어떤 DNA를 넣어두셨냐면, 
이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어가면... 행복해지도록 만드셨어요.
그게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신 방식이에요. 

우리 삶을 지혜롭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지음받았는지를 잘 알아야 됩니다. 

우리 몸도 어떻게 지원받았는지를 잘 알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잘 관리를 해야, 몸도 건강하고 행복해지죠. 

그렇지 않고 우리 몸이 어떻게 지음받았는지 모르고 함부로 막 굴리면, 
절대로 건강하거나 행복할 수가 없겠죠. 몸은 망가질 것이고, 삶도 굉장히 고달파질 거예요. 

우리 몸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디자인하신 분이 계세요. 
그래서 어떻게 디자인하셨는가를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우리의 삶이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러나 반대로, 자기 데스티니에서부터 멀어져 있으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해도... 계속 삶이 공허하고 허무하다고 느껴요. 그렇죠.

왜요? 자기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거거든요. 자기 존재 목적을 상실하면 허무한 거죠. 
허무하다고 느낍니다. 뭘 해도 허무하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음악의 재능이 있도록 창조하신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하루 종일 음악만 하고 있으면 행복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도록 창조하신 사람이 있어요. 
아마 그 사람의 데스티니는 분명히 그림 그리는 것하고 연결이 되어 있겠지요. 

그 사람은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해요.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고, 돈을 좀 못 벌어도 괜찮고, 
하여간 그것만 하고 있으면 행복해요. 그런 거 여러분에게 각자 있으시죠? 
한 가지는 있을 거예요. 한 가지는! 

타락한 세상은, 그 속에 사는 세상 사람들은,
모든 걸 다 이렇게 획일화시키려고 해요. '소득 얼마' 이런 식으로 획일화시키는 걸 좋아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안 만드셨거든요. 
우리 각자를 굉장히 다양하게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은 창의적인 분이세요. 
하나님은 말씀(로고스)이시고, 또한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끊임없이 창조하는 분이세요. 

정말 창의적이고 다양하신 분이셔서, 
우리를 다 의사되고 변호사되도록 만드신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에 줄을 세우고 획일화 시키려고 하죠. 

그래서 어쩌면 여러분들이, 자기 데스티니를 발견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반드시 있어요. 반드시 뭔가는 있어요. 
'그것만 하고 있으면 여러분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죄 짓는 거 말고요. 하여간 그 뭔가는 있어요. 
음악이 됐든, 체육이 됐든, 마케팅이 됐던, 하여간 뭔가는 있어요. 

저는 원래 수학을 전공했었는데, 하나님이 저한테 주신 선물은 수학이었거든요. 
그냥 수학만 하고 있으면, 저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여러분이 저보고 '와~' 하고 부러워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는 게, 누구나 하나씩은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보세요. 여러분 제가 이런 퉁퉁한 몸을 가지고, 제가 운동을 잘 했겠어요? 
또한 특별히 저는 어렸을 때 말도 심하게 더듬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수학공부 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이 딱 하나, 제게 주신 건 수학자 라는 재능은 주셨어요. 

그것만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래서 마지막에 미국에서 수학으로 Ph. D를 할 때까지 
한 번도 수학 때문에 힘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어떤 사람은 이런 재능도 주시고, 저런 사람은 저런 재능도 주시고, 
하여간 그것만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게 있죠. 
그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지으신 방식이에요. 

물론 이것은 구원받은 이후에는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긴 하지만, 
구원받기 전에도 여전히 그 창조의 원리는 그대로 워킹합니다. 

하여간 데스티니 안에는 뭐가 있어요? 행복해지는 DNA가 있어요. 
그러나 반대로 데스티니에서부터 멀어져 있으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성취해도, 계속 내 인생은 허무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이제 제 간증을 잠깐 할게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좋은 대학만 가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어요. 
여러분도 아마 그 '신화 myth' 에 속아서 여기까지 오셨을 텐데, 가보니까 아니잖아요. 그랬죠? 

중고등학교 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좋은 대학만 가면, 서울대학만 가면... 그럼 모든 게 행복해지는 줄 알았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별 기억이 없어요. 그냥 공부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서울대를 들어갔습니다. 
서울대 수학과를 들어갔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잠깐은 정말 행복했어요. 정말 내 인생은 이제 장미빛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행복이, 이 약발이 딱 6개월 가더라고요. 
딱 6개월 지나고 나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는 기적(?)을 보게 됐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80년대였는데, 학생운동이 굉장히 심할 때였어요.  *85학번
그래서 매일 최루탄 냄새를 맡으면서 가야 되고, 
수업을 들은 날보다 안 들은 날이 더 많았던 것 같고, 
그리고 주변에서 친구들이 분신자살하는 거... 이런 거를 하여간 계속 보면서 다녔어요. 
그러니까 삶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던 때였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간고사를 보니까, 불행해지더라고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등수와 점수를 이제 받아야 되는 거니까... 뭐 그렇잖아요. 

어쨌거나 서울대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고등학교에서 2등, 3등이라는 것도 
별로 해본 적이 없거든요. 계속 1등만 했었는데, 
가보니까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되는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중간고사를 보고 나니까, 이제 그 다음부터 제 삶이 바뀌어요. (의기소침 해졌어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들어가면서 결단했던 게 있습니다. 
뭐냐면 '1년은 무조건 논다. 난 아무것도 안 하고 논다!' 였어요. 

왜냐하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하여간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집이 서울이었는데, 거의 집에 안 들어갔어요. 어디서 잤는지... 
술 먹다가 쓰러져 자고, 친구 하숙집에서 자고, 학교에서 자고, 어떤 날은 길바닥에서 자고... 
그러면서 1년을 보냈는데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뭐냐 하면 노는 것에도 굉장히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게 놀면 놀수록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렇죠? 
이걸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하잖아요. 

처음에는 이 정도만 놀아줘도 10 정도의 만족이 있었는데, 
그다음에는 더 강한 강도로 놀아줘야지, 이전과 똑같은 강도로 놀아주면 
계속 만족도가 떨어지는 거죠.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그래서 한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이제 창의력이 다 바닥이 났어요. 
더 이상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놀 만한 것도 없고... 
그러면서 제 안에 아주 심각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이게 뭐지? 내가 가장 행복할 거라고 기대했던 순간에, 지금 내가 도달해 있는데, 
그 약발이 1년도 못 가고, 6개월도 못 가는 거라면... 
내가 또 앞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무언가를 성취한들, 그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정말 심각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 결론은 뭐였냐면 '이렇게 밥을 몇 공기 더 먹고 사나, 
지금 인생을 끝내나 아무 차이가 없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갔으면 정말 위험했을 거예요. 
조금만 더 갔으면 정말 위험했을 텐데... 그러면서도 제가 교회는 또 나갔어요. 

제가 이제 모태신앙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모태신앙들은 참 저력이 있습니다. 
밤새우며 술을 마셔도, 새벽이 되면 기어서라도 교회를 가요. 
술 냄새 팍팍 풍기면서도 교회를 가요. 

하루는 그러고 교회를 갔어요.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서 교회를 갔는데, 
제 선배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다가, 제 인생이 너무 위험해 보였는지, 
붙잡고 앉아서 저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어머니 모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제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제가 불신자라는 뜻이잖아요. 내가 사실 불신자가 맞았거든요. (그때는 그걸 몰랐죠)

그래서 약간 자존심은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쿨한 척, 그렇게 복음전도를 받고서, 
마치고 나서 '나도 다 아는 얘기라고...' 그러고 집에 돌아왔어요. 

집에 왔는데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던 복음전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날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거예요. 
계속 그 선배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나고, 계속 그 말이 떠오르고요. 
그러니까 성령께서 일하신 거죠. 계속 그때 들었던 말이 뇌리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결국 잠을 못 자고 뒤척거리다가 결국 일어나 앉았어요. 
일어나 앉아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드렸던 제대로 된 기도였던 것 같아요.
그 전에도 물론 모태신앙이니까 기도를 계속 했겠죠. 
하지만 제대로 된 진지한 기도는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제가 뭐라고 기도했냐면 아직도 기억이 나요. 
'하나님, 나는 당신이 계신지, 안 계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계시다면,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오, 이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거예요. 
참고로 저는 '왕T' 예요.  *MBTI 강한 사고형 Thinking 

저는 감정 (F - Feeling) 하고는 굉장히 거리가 먼 사람이고요. 
그렇죠. F인 사람이 수학을 하겠습니까?  저는 왕 T고, 왕 J예요.  *INTJ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거의 두세 시간을 펑펑 울었어요. 
왜 우는지도 몰라요. 왜 우는지도 모르는데 두세 시간을 펑펑 울었습니다. 

그건 뭐냐면, 제가 첫 번째로 하나님을 인카운트(1:1대면)하는 순간이었어요. 
지금 되돌아보니까, 성령께서 일하신 거죠. 

그때 제 안에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저도 잘 설명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두 시간을 펑펑 울고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제 안에 뭔가가 달라졌어요. 
'아~ 하나이 살아계신 분이시구나' 하고 믿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믿은 게 아니에요. 믿어진 거지요. 

저는 그것을 지금도 그렇게 믿습니다. 
믿음은요. 믿는 게 아니에요. 믿어지는 거지요. 
정말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시는 거죠.

물론 우리의 의지적인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고 하죠. 롬1:17
우리의 의지적인 믿음도 필요하지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려 하나니 에서)  후자에 있는 '완성된 믿음'은, 
그냥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믿어지는 거예요. 

이게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제 인생에 새 날이 열렸습니다. 
정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어요. 정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고, 
그냥 보는 것마다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날씨가 좋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오고 
나비만 보더라도 '와,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걸 창조하셨지?' 하고 감탄이 나오고... 
그러니 불과 며칠 전의 제 모습과 비교하면, 이건 미친 거죠. 
그래서 정말 약 6개월 이상을 매일 울고 다녔어요. 

매일 버스를 타면 창피해가지고, 맨날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어요. 
타면 분명히 울 거거든요. 그렇게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있던 그 깊은 허무와 슬픔과 고통이, 정말 눈녹듯이 다 사라졌는데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얘기거든요. 
그리고 지난 37년 동안, 그때 느꼈던 깊은 허무는,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어요!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힘들 때도 있어요. 힘든 게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힘든 때도 있고, 고민될 때도 있고 그렇죠. 

하지만 나의 존재의 이유로 말미암아 깊은 허무 가운데 들어가는... 이건 다른 얘기거든요. 
그건, 그날 이후로 정말 한 번도 없었어요. 

나에게는 나를 창조한 분이 계시고, 나를 구원한 분이 계시고... 할렐루야! 
그날 그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대면한 이후로, 
내 인생의 존재론적인 문제, 회의, 갈등 들이 순식간에 다 해결되어 버렸어요. 풀려 버렸어요.

▲그러면서 '나의 데스티니' 까지도, 이제 발견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인카운트 Encounter 를 통해, 나의 데스티니에 눈 뜨기 시작한 겁니다.

이것이 데스티니의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데스티니는 여러분, 그것을 발견하고 그 길로 들어서면 
거기서 느끼는 행복하고 충만해지는 DNA가 있고, 
반대로 거기서부터 멀어지면 허무해지는 DNA가 있습니다. 
애초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예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과거의 저처럼 깊은 허무 가운데 계시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데스티니의 이슈'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인카운트'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세요. 인카운트 하세요.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여러분의 데스티니를 들으셔야 돼요. 

꼭 귀를 듣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성령께서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치시고 보이실 거예요. 
그랬을 때 우리 삶 가운데, 새로운 날이 열릴 줄 믿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데스티니를 이루어가는가요?

사실은 이 데스티니에 대한 설교를 제가 1년을 한 거거든요. 
50여 차례 저희 교회에서 했습니다.   데스티니 설교 재생목록

이 데스티니가 어떻게 시작되는가 하는 것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데스티니의 또 다른 측면들이 많이 있는데, 
하여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셨던 케이스를 샘플로 한번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데스티니를 이루어가셨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인생이 어떻게 됐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충만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여정을 보면, 어떻게 데스티니가 시작되죠? 
오늘 본문 창12:1~3절에, 그가 하나님을 인카운트하면서 시작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여정도, 하나님을 인카운트하면서, 자기 데스티니를 시작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예배가 중요해요. 사실은 예배가 거의 전부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예배의 시간을... 군대에는 어떤 얘기가 있냐면 
'작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이런 말이 있어요. 저는 똑같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거에 실패한 건 전부 다 용서받을 수 있어도, 예배에 실패한 거는 용서받을 수 없어요!'

요즘은 그런 일이 적은데,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를 청년들하고 시작했을 때, 
우리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제 마음에 안 든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주일날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예배는 마음에 안 들어' 
예배팀이 찬양을 인도하는데... 주님의 임재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찬양 마치고, 제가 설교하러 이렇게 강단에 올라왔는데... 설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 오늘 안 되겠다' 하고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오늘 이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그래서 예배팀(찬양팀)을 다시 올라오라고 하고, 

'여러분은 이 예배가 끝나고, 여기서 (힘빠져서) 기어내려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임재를 이곳에 누릴 수 있게 해야 된다...' 그래서 예배를 처음부터 다시 드렸어요. 
그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 

하여간 예배에 실패한 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게 예배거든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예배인데, 그거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뭘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대면하는 걸 실패했는데,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해봐야 의미 없는 일들인 거예요. 

모든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시작하는 건데, 
그거를 실패했는데... 그 다음에 뭘 할 게 없는 거죠. (첫단추가 잘못 꿰지면.. 나머진 다 꽝이죠)

여러분, 예배에는 생명을 거셔야 돼요. 
모든 예배는 그 예배가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드려야 돼요. 

'예배에 실패했다?' 그러면 대충 넘어가면 안 돼요. 
처음부터 다시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여간 예배는 성공해야 돼요. 

예배가 성공한다는 의미가 뭔지는 또 설명이 필요한데, 
하여간 예배는 성공해야 돼요. 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이곳에 임해야 돼요. 아멘!

◑아브라함의 하나님 대면 Encounter

자, 아브라함의 여정을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을 인카운트하면서 
그의 데스티니가 펼쳐져 나갑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 12장에서 한 번만 하나님을 인카운트하는 것이 아니에요. 
15장에 가면 또 인카운트하고, 
18장에 가면 또 인카운트하고, 
20장에 가면 또 인카운트하고...
그래서 자기 삶 속에서 계속 하나님을 반복적으로 인카운트하는데, 

그 인카운트하는 사건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인카운트하시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언제 아브라함을 인카운트 하셨는지를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서, 조카 롯을 떠나보내죠. 그러고 나서 바로 하나님이 인카운트 하시거든요. 12:7
또 아브라함이 4개국 연합군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인카운트 해주시죠. 15:1
또 이삭을 바칠 때, 아주 하나님이 강력하게 인카운트 하시거든요. 22:16

그러니까 아무 때나 인카운트 하시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여간 전후의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 이야기들을 우리가 잘 살펴보고 따라가 보면,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언제 인카운트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세 번의 떠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던 때
-조카 롯을 떠나보내떤 때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떠나보낼 때    *모리아 산

이렇게 세 번의 떠나보내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세 번이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때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세 번의 떠남과, 세 번의 인카운터가 있는 거예요. 

▲1. 첫 번째,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남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데, 
아마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거룩함에 대한 상징일 겁니다. 

갈대아 우르는 어떤 땅이냐 하면, 우상을 섬기던 땅이에요. 
그곳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서 팔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기 전에, 죄악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갔던 삶이죠. 
그것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 하나님의 임재는, 죄가 있는 곳에 임하실 수는 없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죄가 있는데 하나님이 임하실 수는 없어요. 

하나님은 죄가 있으면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냐면, 
모세한테 '내가 돌격하겠다'고 말씀하세요. 
그냥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죄가 있으시면 진노하시는 거예요. 

'내가 돌격할까 하노라' 출19:22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개역개정)

그러니까 하나님은 죄하고는 함께 하실 수가 없으세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는 열쇠는 뭐냐면 거룩함이에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거예요. 아멘! 

△제가 간증을 하나 할게요. 제가 미국에서 Ph.D. 논문을 쓸 때였는데 
그 논문을 다 쓰면, 디펜스라는 걸 합니다. 

관련 교수들을 5명 정도 모아놓고, 제가 그 논문을 이렇게 발표를 해요. 
그러면 교수들이 질문을 하는데, 제가 디펜스(방어)를 잘 해야,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잘 하고, 그 교수들의 제 논문에 대한 이의 제기와 반대 의견을 
제가 이겨야, 교수들이 오케이 하면서 이제 박사 학위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디펜스를 다 끝냈습니다. 그때 제가 박사과정 6년 차였는데,
지난 6년 동안의 공부를 다 끝내고, 드디어 이제 학위를 받게 된 거죠. 

그래서 원래는 한 5년 차에 끝낼 수 있었는데,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시간을 좀 넘겼어요. 데드라인을 넘기는 바람에, 
이제 한 학기를 더 하면서, 학기 초에 디펜스를 통과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시간이 좀 남는 거예요. 그래서 여유가 있으니까 
'그동안 밀렸던 일들도 좀 하자' 그래서 교회 나가서 봉사도 좀 하고... 그러면서 지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시간을 보니까 이제는 파일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책을 묶어서 제출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싸인을 받으려고 지도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똑똑 두드리고 들어갔더니, 지도교수가 앉아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스탠포드에 있는 교수 한 분이, 
그 교수가 제가 전공하는 분야로는 가장 권위자였어요. 
소련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이름도 안 잊어버려요.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지... 

엘리야 시버거 라는 스탠포드 수학과에 있는 교수인데, 
그 교수가 내 논문을 읽어보고는, 
오늘 아침에 조금 이상하다고 자기들한테 이메일을 보냈다는 거예요. 

아휴, 그 얘기를 듣는데 처음에 든 생각이 뭐냐면 
'아이씨, 재수 옴붙었다'

원래 학계에 룰이 있습니다. 인문과학 쪽은 잘 모르겠는데 
공대나 자연과학 쪽에는 룰이 있어요. 뭐냐면, 어떤 논문도 완벽한 논문이라는 건 없지요. 
항상 보면 조금씩 틈들이 있고, 부족한 게 있는데 
그것을 발표하고 난 다음에, 저널에 싣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그런 걸 지적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무슨 문제점이 지적되면, 그걸 또 토론해가면서, 그다음 논문이 나오고 이러는 거거든요. 

그런데 발표하기 전에, 누가 클레임을 걸면, 그것을 해결하고 발표해야 돼요. 
그게 학계의 룰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빨리 파일링을 해서 싸인을 받아서 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지도교수 싸인받는 날 아침에, 그 이의 제기가 온 거잖아요. 
이메일로 클레임이 온 거예요. 

(제가 부지런히 움직여서 논문을) 하루만 일찍 싸인을 받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건데, 
하루 상간으로... 재수가 진짜 없는 거죠. 

그런데 물이 엎질러진 것을 어떡하겠어요? 
교수가 '뭐 어쨌거나 가서 고쳐보라고' 
그래서 제가 '알겠습니다'고 그러고 교수실을 나왔습니다. 

그러고 돌아와서 제 박사학위 논문을 다시 리뷰해보는데, 
처음에는 작은 실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2, 3일 고치면 되겠지...' 했는데, 
어휴 이게 생각보다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빅 미스테이크가 있는 거예요. 

틀린 건 아니에요. 논문 자체가 틀린 건 아닌데, 
이제 수학 논문은 A면 B이고, B면 C이고, C면 D이고 
이게 하여간 쭉 매끄럽게 논리적으로 연결돼야 되는데, 한 부분이 설명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원래 이런 것 정도는, 누가 클레임을 안 걸면 상관없거든요. 
그런데 클레임을 걸면, 하여간 설명을 해줘야 되는 건데... 이게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졸업을 한 학기를 미루게 됐습니다. 
한 학기를 미루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말 폐인처럼 매달렸어요. 
제가 정말 패인처럼 매달렸어요. 수염도 안 깎고, 집 밖에도 안 나가고, 
대충 자다가 일어나면, 논문에 제기된 문제를 풀다가... 쓰러져 자다가... 
문제를 풀다가... 쓰러져 자다가... 아, 제가 한 달 동안 계산한 용지를 보니까 
A4 용지 3,000장을 썼더라고요. 어, 근데도 이게 완벽하게 안 풀리는 거예요. 

이게 보니까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른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이제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오, 이거 해결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해결 못하는 걸 생각하니까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그때가 제가 박사과정 6년차, 7년차 넘어갈 텐데, 
저희 학교에서는 6년차까지는 장학금도 주고, TA한테는 생활비도 줘요. Teaching Assistant

그런데 미국에서 등록금이 비싸거든요. 그런데 이제 7년차가 넘어가면, 장학금을 안 줘요. 
그럼 그때 부터는 사실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는 거예요. 
저희 집이 부자도 아니고, 사실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걸 해결을 못하면, 그다음부터는 생계가 막막해지는 거죠. 
그리고 이걸 포기하고 새로운 주제를 잡아서 다시 논문을 쓰려면, 
그게 1년이 더 걸릴지, 2년이 더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요. 

이걸 해결 못하면, 잘못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더라고요. 
그걸 생각하니까... 그때 제 나이가 34살 되었을 때인데...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거죠. 

일단 그 나이가 돼가지고서, 어디 취직하기도 어렵죠. 
이제 30대 중반이 돼가는데 어디 취직하겠어요? 회사는 젊은 사람들을 뽑잖아요. 

또 제가 공부하는 동안 국비장학생으로 공부를 했는데, 
한국 정부에서 3년 동안의 학비하고 생활비를 전부 대줬거든요. 
그런데 학위를 못 받으면, 이걸 다 갚아야 돼요. 이게 어마어마한 돈이잖아요. 
그 당시에도 큰 돈이긴 했는데, 오늘날로 환산하면 수 억이죠. 
그걸 이제 제가 물어내야 되고... 

그 다음에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쪽팔리잖아요.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가장 악몽이 뭐냐면, 학위 못 마치고 중간에 돌아오는 거예요. 
이게 인생이 아주 아주 정말 곤란해져요. 취업하기도 힘들고... 

저희 선배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간에 학위 포기하고 돌아오면, 어디로 잠적해서 없어집니다. 연락도 안 되고... 

또 박사학위에 논문 패스 안 되면, 지도교수를 총으로 저격하는 사건도 가끔씩 발생합니다.
그 정도로 학위과정을 하다가, 박사학위를 못 받게 되면... 자살하든지, 남을 죽이든지
하고 싶을 만큼 학생은 충격에 휩쌓인다는 거죠. 

이게 이제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어느 정도 스트레스인지 아시겠죠? 
마치 자기 인생이 거기서 끝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니까 그 문제를 해결해야지, 해결 못 하면 큰일 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매달렸는데, 그래서 일단 한 학기를 미루고, 

그런데 어느 날 새벽이었어요. 3시쯤 된 것 같아요. 이 문제가 기적적으로 풀렸어요. 할렐루야!
'와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가지고 시비 걸었던 엘리야 시버거 교수에게 제가 이메일을 썼습니다. 

'사실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고, 저렇게 쭉 돼가지고... 
당신이 질문했던 거에 대한 답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딱 그러고 이제 자리에 누웠어요. 누운 게 아침 7시쯤 됐는데, 
누웠는데 머리가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 
왜냐면 그 논문 생각만 지금까지 줄곧 한 6개월 이상을, 자나 깨나 정말 식음을 전폐하고 
그 문제에만 매달렸으니까 계속 머리가 (관성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다 끝났어, 끝났어 스탑, 스탑!' 그런데도 이게 말을 안 들어요. 
제 머리가 계속 돌아갑니다. 제 논문을 통째로 다 외우고 있는 거죠. 

그러더니 이게 틀린 걸 또 찾았어요. 
그러니까 전혀 해결된 게 없는 건데, 제가 착각한 거예요. 
워낙 이 문제가 이제 비비 꼬인 문제이다 보니까, 풀었다고 착각을 했는데 
실제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에휴 뭐 그렇지... 이 문제가 쉽게 풀리겠나?' 그러고 일단 잤어요. 
잤는데 한 12시 한 시쯤 일어난 것 같아요. 일어나서 이메일을 체크하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답장이 온 거예요. 그런데 답장에 "Congratulations!" 이러고 온 거예요. 

이 사람도 속은 거죠. 원래 논문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속고 속이는 건데... 
그러면서 학문이 발전하는 거예요. 그 교수도 속은 거죠. 

그래서 논문 통과가 돼버린 거예요. 그냥 넘어가 버려지게 된 거죠. 
제가 아예 논문을 잘못 쓴 것도 아니고, 
그 분이 클레임만 안 걸었으면 사실  별 문제 없었던 논문이었고, 
괜히 그 분이, 그것도 뒤늦게 클레임을 걸어서, 사태가 복잡해진 건데...

어차피 논문이 틀린 건 아니고, 그 교수가 '괜찮다' 했는데, 거기서 문제될 거 없잖아요. 
그럼 '그냥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까?' 이 생각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날 아침에 이제 제가 QT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후 1시, 2시에 일어나가지고서 그때 무슨 QT를 했는데,
제가 그때 <매일 성경> 으로 QT를 하고 있었는데, QT 말씀에 또 그게 걸리는 거예요.

그때 본문이 뭐였냐면 요한계시록이었어요. 거기 7장에 보면 '흰옷 입은 주의 백성'이 나오죠. 

하필이면 본문이 딱 거기 걸렸어요. 그러니까 우연이 아닌거죠. 

그래서 그 본문 말씀을 읽는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왜 하필이면 흰옷이지? 
검은 옷도 있고, 회색 옷도 있고 많은데, 왜 주의 백성들은 항상 흰옷만 입지?' 
이 생각이 드는 거에요. 

성령께서 그림 하나를 딱 떠오르게 하시는데, 어떤 그림이었냐면 
하얀색 와이셔츠에 잉크 방울 하나가 딱 떨어지는 그림이에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시냐면 '검은 옷이나 회색 옷은 대충 볼펜으로 그려도 
티가 안 나지만, 흰 옷은 작은 잉크 방울 하나에도 딱 티가 나지 않니? 
나는 내 백성이 죄에 대해서 이렇게 민감하기를 원한다.' 

그 얘기를 듣는데 여러분, QT가 무섭습니다. 정말이에요. 하나님은 정확하세요. 
우연이 없어요. 

그러니 어떡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학교로 갔습니다. 
그래서 지도교수 방에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지도교수가 '잘했다고', 
지도교수도 이메일을 같이 받은 거죠. 
그러면서 '싸인해줄 테니까 파일링 하라고' (논문책을 꾸미라고) 

그런데 제가 그 앞에서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래저래 돼서 사실은 해결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교수님도 속았고 착각한 겁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그러냐고 알았다고... 그럼 조금 더 해보라고' 
그래서 제가 교수실 문을 닫고 나왔어요. 

그런데 나오는데 제 안에 어떤 마음이 들었냐면 
'아, 나는 다 끝났구나... 더 이상 연구해서 뭐 나올 수 있는 게 아니고'

여기서 당장 생계도 유지할 수 없고, 장학금이 안 나오니까요. 
다음 학기 등록금 낼 돈도 없고... '여기서 이제 멈춰야 되는 거구나' 
새로운 학위논문 주제를 채택한다면, 이게 2년 걸릴지, 3년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거고... 

그래서 '이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을 내리고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차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차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마치 어떤 느낌이냐면 
차가 하나님으로 꽉 차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차가 폭발할 것 같았어요. 

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이런 하나님의 임재는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비슷한 경험이 한 번 더 있긴 했는데... 

하여간 마치 차가 하나님으로 꽉 차 있는 것 같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귀에 소곤 소곤 소곤 말씀하시는데, 귀로 들리는 건 물론 아니에요. 
그런데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아요. 소곤 소곤 말씀하시는데 천둥이 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그거를 어떻게 묘사하시냐면 
제 영적인 멘토가 이재환 선교사님이신데, 그 분은 이걸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온 몸이 귀가 된 것 같대요.' 저도 그 말에 동의가 돼요. 

정말 저의 온 몸이 귀가 된 것 같아요. 쩌렁쩌렁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막 차안에서 울었다 웃었다, 울었다 웃었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때 제게 아브라함의 약속을 주셨어요. 
'너를 통해 믿는 자들이 바다에 모래알 같을 것이고, 하늘에 별 같을 것이고, 
많은 열매가 있을 거라고...' 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혼자 부흥회를 하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걱정이 1도 안 되는 거예요. 
참고로 제 MBTI는 INTJ예요. *전략가형

INTJ는 어떤 사람이냐면, 플랜 B, 플랜 C가 있어도 불안해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거든요. 플랜 B가 있어도 불안하고, 플랜 B도 빵꾸나면 어떡하지? 
플랜 C가 있어도 불안해해요. 그게 제가 태어난 성격이에요. 

그런데 지금 아무 대책이 없거든요. 아무 대책이 없는데. 염려가 없다... 
이거는 진짜 기적이에요. 정말 기적이에요. 

그러면서 제가 중요한 진리를 한 가지 알게 됐는데, 뭐냐면 
'아, 평강 또는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상황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구나. 
하나님의 임재에서부터 오는 거구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평강을 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지 않으면, 완벽한 상황 가운데서도 불안한 것이구나'

이건 여러분 정말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평강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상황에서부터 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으면,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평강을 누리는 거예요.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평강을 누리는 거예요. 할렐루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거룩함은 뭐라고요?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열쇠예요.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열쇠예요. 아멘! 

그리고 나서 한 일주일쯤 지났어요. 
저는 이제 한국에 돌아가려고, 더 이상 논문 문제 해결을 안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일주일 뒤에 자다가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제가 그 문제를 막 다 푼 거예요. 
꿈에서 문제가 풀렸어요. 

그런데 꿈의 특징은 뭐냐 하면, 깨어나면 기억이 잘 안 나는 거죠. 
분명히 꿈에서는 풀리는데... 

아침에 제가 눈을 번쩍 떴습니다. 맞아요. 개꿈은 깨어나면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달라요. 깨어났는데 생생히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뭐지?' 그래서 풀어봤더니 그게 정답이더라고요. 
그래서 졸업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던 거죠. 할렐루야! 

여러분, 영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열쇠이고,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능력을 여는 열쇠예요. 그래서 거룩함이 능력이에요. 

많은 경우 오늘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충분하지 못하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충분히 경험되지 않는다면, 
사실은 우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지를 한번 돌아봐야 돼요. 
'나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가?' 

'예배에 성공해야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예배가 성공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감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였을 때의 예배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주일 동안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모여야 돼요. 
일주일 동안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예배로 모여야 되는 거예요. 

내가 죄와 싸움에서 계속 실패했는데 
그렇게 실패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할 때, 성공적인 예배가 드려질 수 있을까여? 
아니요. 여러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물론 예배는, 우리에게 그 다음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예배에서 얻은 그 힘으로, 일주일 동안에 죄와 싸워야 돼요. 
그래서 이겨야 돼요. 승리해야 돼요. 

물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러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전심으로 회개해야 돼요. 

하여간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예배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지는 않아요.  P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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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런 인카운터는 꼭 초자연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물론 초자연을 포함하긴 하지만, 
하여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영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게' 뭔지는 사실 잘 몰라요. 익숙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서 죄 가운데 태어나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의 기능은, 
아담의 죄와 함께 다 죽었는지, 소멸됐는지... 하여간 그랬다고 나오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영으로 듣는 게 뭔지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래요. 

제가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있을 때, 저하고 같은 오피스를 썼던 대학원생 중 하나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친구였어요. 미국인이었는데, 날때부터 맹인이니까 
당연히 색깔을 구분을 못합니다. 노란색이 뭔지, 빨간색이 뭔지 모르죠. 

그런데 색을 구분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심각한 문제는 뭐냐면, 
'색이 뭔지'에 대한 컨셉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살다가 중간에 시력을 잃었다든지 그러면, 색에 대한 개념은 있겠지만, 
그게 아니고 날때부터 소경이었던 친구는 '색이 뭔지'에 대한 컨셉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걸 설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더라고요. 
색이 뭐라고 하는 걸, 이 친구한테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와 같이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면서 영이 멈춘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영어로 듣는다는 게 뭔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그것은 우리 귀로 듣는 것하고는 달라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그것은 하여간 경험이 없어요. 감도 없어요. 그래서 설명하기가 참 쉽지는 않습니다.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하여간 분명한 건 뭐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에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우리 영에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믿음의 여정의 시작인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