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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49장 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LNCK 2025. 6. 13. 18:0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예레미야

 

◆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렘49장           출처, 정리

 

본문 렘49장은, 이스라엘 주변에 위치해 있으면서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정치적 사회적 관계를 맺어 왔던 소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보응자가 되어 그들에 대해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앞서 46장 애굽, 47장 블레셋, 48장 모압의 심판 예언이 있었고,

본문 렘49장은

 

암몬에 대한 심판(1-6절),

에돔에 대한 심판(7-22절),

다메섹에 대한 심판(23-27절),

게달하솔에 대한 심판(28-33절),

엘람에 대한 심판(34-39절)

 

이어지는 렘50~51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입니다. 총 10 나라죠.

 

◑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예레미야의 후반부 46~51장은, 10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열번째 맨 마지막 나라는, 열국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았던 바벨론입니다. 

 

과거에 부모님이 아이를 매를 때리고, 회초리를 꺾어 버리듯이,

바벨론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쓰임 받고, 결국 자기도 심판 받고 버려집니다.

 

당시 남유다의 멸망은, 남유다 혼자만의 멸망이 아니라,

중근동 전체의 멸망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이었죠.

 

20세기에도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세계대전을 통해서, 수 백만 ~ 수 천만의 인구가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역사가 있었죠.

하나님은 때때로, 전쟁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기도 하십니다.

이런 세계적인 전쟁은,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모습을, 예표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전쟁을 통한 심판으로... 죄인은 (영)벌하시고, 또한 자기 백성은 찾으시고, 구해 내십니다.

 

마24장이나 계시록에 보면, 세상 종말은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천체 격변 등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이 완성될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 렘49장을 읽으면서, 몇 가지 교훈을 아래에서 생각해 봅니다.

 

1. 하나님은 심판하시지만, 이방 민족도 회복시켜 주신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심판을 예언하면서, '너희들 심판 받으니까 내 속이 후련하다' 하지 않았죠.

그는 이방의 심판을 예언하면서도, 어떤 적개심이나, 보복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심판 중에 '이방의 구원'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 백성만 회복시키시는 게 아니라, 이방 민족들도 회복시켜 주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God  주1)

   이방 모압은 시온으로 피하라  rfcdrfcd.tistory.com/15979490

 

49: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유다를 심판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셨던 하나님은

암몬 자손에게도 포로 된 자들이 후에는 다시 돌아가게 된다는 희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이방신을 섬기는 나라에게까지 회복을 명하시는 것인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모압을 향해 선포되었던 회복(48:47)과 동일한 회복의 예언이 암몬에게도 주어집니다.(49:6)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회복시키신다는 이러한 메시지는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구속사의 전반에 걸쳐 언급됩니다. 창12:1, 사56:6, 7

 

49:39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애굽, 모압, 암몬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엘람(고대 이란)에게도 회복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바이킹을 소재로 어느 영화에 이런 줄거리가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내용입니다.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들이 영국을 침략, 약탈했습니다.

6세기 경부터 이오나 수도원은     *스코틀랜드 서부 이오나 섬

스코틀랜드와 북부 잉글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당시 영국과 북유럽 복음화에 큰 선교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루는 배를 타고, 바이킹들이 약탈하러 스코틀랜드에 들어왔습니다.

이오나의 수도사들은, 그들에게 성경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멀리 대피시켰습니다.

그들은 ‘성경처럼 거룩한 것을, 저 강도같은 바이킹들에게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저들은 멸망당해야 마땅한 자들인데, 다른 것은 다 약탈 당해도

성경은 약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거죠.

 

우리나라도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을, 내장산 등지에 피신시킨 적이 있죠.

수도사들도 성경을 외지로 숨겨서 피난시켰습니다.

당시는 성경이 귀한 재산목록이기도 했고요.

그보다는 ‘강도, 극악한 약탈자 죄인들에게 성경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거죠.

 

결국은, 스칸디나비아에 복음화 되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그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그들이 영국에서 약탈해 간 ‘성경’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외 요인으로, 그들이 약탈해 갔던 기독교 여인들이 또 큰 역할을 했다고 하죠.

물론 나중에 이오나의 선교사들도 가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래서 8세기 경부터 덴마크가 먼저 기독교화되었고,

이후 스웨덴과 노르웨이도 차례로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약탈자, 강도 떼들인 바이킹들은, 절대 예수를 믿을 수가 없어!’ 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시각이 좁았던 셈이었지요.

 

▲2. 암몬, 에돔이 심판 받은 이유

 

하나님의 심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이유가 없는 심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암몬과 에돔이 무엇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는지, 본문을 깊게 묵상해 보면, 

 

49: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암몬 자손의 조상은 창세기 19장에 등장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하고, 롯과 두 딸이 산 속에서 온 세상에 자신들만 남았다고 생각하여

두 딸이 자신들의 아버지인 롯을 술에 취하게 하여 동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큰 딸에게서 낳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이며

작은 딸에게서 낳은 아들의 이름은 벤암미이며 암몬 자손의 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주신 갓 지파 땅을   *갓 지파 바로 아래에 암몬 위치

갓 지파 자녀와 상속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암몬에게 그 땅을 빼앗긴 이스라엘 책망하시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유업으로 주신 땅을 무력으로 빼앗은 암몬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암몬의 죄악은 무력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빼앗은 것이고,

갓을 점령한 것이 ‘말감’이라 표현되어 있는데, 말감은 암몬이 섬기던 이방 신입니다.

*말감=밀감=몰렉

 

암몬 자손은 하나님의 유업을 강제로 빼앗고 우상숭배를 하였기에

심판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암몬에 이어 에돔이 심판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49:7~22절은 에돔에 대한 예언

49:16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에 나타난 이유는, '교만'입니다.

자기들은 바위 틈에, 산꼭대기에, 독수리의 거처 같은 곳에 위치하기에

위 16절에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겼다'고 했는데, 

스스로 힘을 뽐내거나, 스스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들의 조상 에서가 원래 터프한 면이 있었는데, 후손들이 그런 DNA를 물려받았나 봅니다.

 

또 한 가지 에돔의 죄는, 오바댜서에 보면, 오바댜서는 '에돔의 멸망'을 예언한 책이죠.

오바댜 1:10~14절에 보면, 

에돔은 예루살렘 함락에 일조(一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바벨론의 용병 그룹에, 에돔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옵1:11~12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

 

에돔은 다 이스라엘의 친척들인데, 

그들은 친척 남유다의 멸망을 기뻐했다는 거죠. 옵1:12

공의로운신 하나님은, 그래서 에돔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에돔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3. 지혜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

역시 에돔에 대한 심판 내용인데요.

 

49:7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명철한 자에게 책략이 끊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

 

'데만'은 북부 에돔에 위치했으며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고향이기도 했죠. 욥2:11

또 이곳은 에돔 족속 가운데 유력한 한 부족이 거주하던 성읍으로서,

여기서 데만은 에돔 전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죠. 암1:12, 합3:3

 

이 데만에는 특징이 지혜자가 많았던 것 같으며 그로 인해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의 명철과 지혜가,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위 7절은 반어법입니다.

'데만에서 지혜가 사라졌느냐? 슬기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막혔느냐? 지혜가 메말랐느냐?'

지혜를 자랑하던 데만(에돔)이, 그 지혜에도 불구하고 패망하고 말았다는 거죠.

 

오바댜1:8절에도,  에돔 사람들은 지혜가 있는 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옵1:8

 

삶을 살아갈 때 지혜는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지혜를 통해 조금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지혜를 믿고, 아무리 머리를 써도

하나님이 아닌 지혜를 의지하며 나아간 에돔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에돔에게

철저한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상징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49:9~10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모든 열매를 남가지 않을 것이고,

밤에 도둑이 욕심에 따라 물건을 훔쳐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교만함과 지혜는 발가벗겨져 숨을 곳이 없게 드러나게 되며

그 주변의 모든 나라가 멸망하고 심판을 받은 것처럼

그들 역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상징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심판 중에서도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49:11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멸망하는 가운데 살아남는 자들을 고아들과 과부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아와 과부는 당시에 자생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며,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은 이들을 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혜와 명철이 있는 에돔은 자신의 힘으로 심판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오히려 지혜와 명철이 없고 자생능력이 없는

고아들과 과부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구원의 손길이 임하는 곳이 있습니다.

구원에 손길은 자신의 지혜와 강력한 힘을 의지하는 자들이 아닌

자생능력이 없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아들과 과부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명철로 나에게 닥친 일들을 해결하려고 발버둥치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의지하고 도움을 구해야 할 분은 나의 지혜와 명철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자랑했던 에돔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은 어김없이 임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심판을 당하게 된 암몬과 에돔은 모두 이스라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암몬과 에돔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심판 하시기 전까지 인내하시며 충분히 돌아올 기회와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암몬과 에돔은 지속적으로 이방신을 섬기고, 자신들의 지혜와 힘을 자랑하였습니다.

두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였지만

그들은 세속적 틀 안에서 자신의 지혜와 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

 

주1) 하나님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God 은 성경 66권에 두루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말이죠.

먼저 하나님은 가인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창4:15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5장에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계보가 나옵니다.

또한 창10장에도, 노아의 자손들의 계보가 나옵니다.

 

‘선택과 유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족보가 다 그렇지만,

족보에는 선택된 자는 사실 얼마 안 됩니다(소수). 나머지 대다수는 유기된 자들입니다.

 

유기된 자의 족보를 뭐하러 길고 자세하게 기록했겠습니까?

지옥에 갈 사람들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입니까? No

 

족보에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 선택하신 사람들도 있고,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새사람되어, 구원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부 특별한 (선택된) 사람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택하신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라인도 사랑하시지만,

이스마엘의 자손, 그두라의 후손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마엘의 자손, 그두라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은 그들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그들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버린 자식, 유기된 자식들, 하나님 나라에 대적들’ 이렇게

라벨 label 붙여져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아브라함 중심의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스마엘의 후손, 그두라의 후손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본문 창25장 등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축복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창16:10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21:13 ‘그러나 여종(하갈)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7~18 ‘하갈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본문 창25장에 그두라의 후손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온 세상 열방을 모두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보편성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약속대로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모두는 하나님의 원수, 이스라엘의 원수가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보편성’을 특히 선교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선교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있고, 나머지는 그 원수’ .. 이런 개념을 가지면, 선교가 안 되겠죠.

 

일례로, 출애굽 때 바로와 그의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그럼 우리는 쉽게 ‘바로와 애굽은 이스라엘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출애굽 때 ‘여러 민족’들이 따라 나왔습니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출12:38

이스라엘만 출애굽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출애굽 때도, 아말렉, 헤스본, 아모리, 모압 등 여러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길을 방해하고 훼방했다고, 그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는데,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우상을 숭배하는 아모리 족속이며,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명하신 자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라합은(히11:31) 구원받았으며, 심지어 예수님의 족보에 등재되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신 가나안 7족속 가운데 구원받은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은 후로 이스라엘에

종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성전 봉사자들이 됩니다.

 

에스라7:43절 이하에, 귀환자들 명단에 ‘느디님 사람들’이 나옵니다.

‘느디님’이라는 말은 ‘성전 봉사자’라는 말인데,

레위인을 돕는 가장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이 기브온 성읍 출신들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돌아온 성전 봉사자 느디님 자손들 명단을 보면 족보가 뚜렷합니다.

 

나중에 그들은 예루살렘 동쪽 지역 요새화된 오벨 성채에서 기거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지성으로 감당했습니다. 성전 문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편성’을 잘 보여주죠. 다 진멸되어야 마땅한 백성인데.. 그들은 구원받았습니다.

 

다윗 왕의 신복 중에 ‘헷 사람 우리아’도 대표적인 이방인이죠. 헷족속.

또한 잇대도 블레셋의 가드 출신입니다.

 

다윗이 잇대에게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삼하15:19)라고 하는데,

즉 자기 고향 가드로부터 쫓겨나 망명한 사람이지만,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피신할 때, 결정적으로 다윗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 성 사람들을 아끼시는 심정은 또 어떻습니까?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11

 

다윗은 ‘하나님의 보편성’을 잘 이해한 사람입니다.

삼하22: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그리고 시편에, 모든 민족, 열방, 이방.. 이런 단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열방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유대인만의 하나님, 택한 백성들 만의 하나님이 아니라요.

 

그래서 창5장, 9장, 10장의 족보에 이어,

본문 창25:12~18에는 ‘이스마엘 후손’들의 족보가 등장하고

본문 창25:1~5에는, ‘그두라가 낳은 자손들’의 족보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 ‘유기’된 자식, 버린 자식들이라면.. 일일이 족보를 기록할 이유가 없죠.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선택, 예정 교리가 틀리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바깥에 있는 자들은 (일부 신학자들은 ‘유기된 자’라고 부르죠)

그들이 ‘선택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들도 하나님은 사랑해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옥 가기로 유기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모두에게 다 열려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참고로, 그럼 아브라함의 후손은 다 구원받았습니까? 그럼 에서는요?

다윗의 후손이라고 다 구원받았습니까? 그럼 압살롬은요?

그 안에서 또 선택과 유기가 나눠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flexible 하게 이해해야지,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곤란한 것이죠.

 

하나님이 창12장부터 '아브라함 가문'을 택하신 것은,

그들만 구원키로 작정하시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 가문을 도구로, 지렛대로,

특별히 들어 쓰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방 민족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해서, 거부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열방의 하나님, 모든 민족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민족은, 자기들이 선택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만 했지,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 도구'라는 책임감은..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죄인, 개, 저주 받은 자 취급을 하고... 자신들만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선민의 자격'마저 박탈당하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차별'이 되거나 '선민의식'이 되면 곤란합니다.

마음을 넓히고, 시야를 넓혀서.. 모든 세상 사람들,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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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별 해석

 

49: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자신의 딸에게서 낳은 벤암미의 후손이다(창 19:38).

요단 강 동편에서 농업을 주업으로 하면서 민족신 밀곰을 섬겼으며,

일찍부터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를 유지했다(삿3:13, 14, 암1:13, 습2:8-10).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암몬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사실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말감'에 대해서는 하반절의 '백성'이라는 말에 근거하여 이를 왕의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압신 '그모스'란 용어의 용례나(48:7) 3절 내용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는 암몬의 민족신 '밀곰'에 대한 별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칠십인역(LXX), 수리아역(Syriac), 벌게이트역(Vulgate)등은 이를 '밀곰'이라 옮겼으며,

왕상 11:7에 의하면 밀곰은 몰록과 동일시되는 듯하다.

결국, 몰렉, 몰록, 밀곰, 말감은 같은 말이다.

이 우상에 대한 숭배 의식중에 인신 제사가 유명하다(7:31, 왕하 23:10).

 

49: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랍바는 요단 강 동쪽 약 37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암몬의 수도였다.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이다.

 

촌락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형 '바트'는 '딸'을 뜻한다.

본 구절에서처럼 성읍(혹은 그 성읍의 백성)을 가리켜 딸이라 표현하는 예는

성경에서 종종 보인다(4:11, 왕하19:21, 사1:8).

 

49:3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헤스본은 아모리 왕 시혼의 지배 하에 있다가(민 21:25-30, 34)

후에는 모압의 지배에 들어가기도 했던 성읍이다.

그리고 아이는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된 곳이 아니라(수 8:1-29)

여기서만 언급되는 암몬의 한 성읍이다.

 

'울타리 가운데서 앞뒤로 달릴지어다'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다.

이는 죽은 이를 위해 여인들이 애곡하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이해되기도 하나,

그보다는 대적들의 침탈을 피할 만한 안전한 장소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황급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49:4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네 흐르는 골짜기로 자랑하느냐'

암몬땅은 동으로 아라비아 사막을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얍복 강을 국경으로 하고 있어서

천연의 요새라 할 만한 곳이었다. 이같은 자연 환경을 본 구절은

마치 첩첩 산중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다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흐르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주브'는 '흐르다'라는 뜻도 있으나

자동사로 쓰일 때는 주로 '쇠약해지다'라는 의미이다(애 4:9).

 

따라서 본 구절은 이렇게 의역해볼 수 있겠다. '너희가 깊은 골짜기들을 자랑하도다.

그러나 그 골짜기들은 더 이상 방패막이 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49:5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바로 나갈 것이요'

좌우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도망가기에 바쁜 다급한 상황을 암시한다.

 

49: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을 향해 선포되었던 것과 동일한 회복의 예언이 암몬에게도 주어진다(48:47 참조).

하나님이 이방 민족을 회복시키신다는 이러한 메시지는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은 구속사의 전반에 걸쳐 언급된다(창12:1, 사 56:6, 7).

 

▲49:7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암몬에서 → 에돔으로 이동)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명철한 자에게 책략이 끊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없어 졌느냐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데만'은 북부 에돔에 위치했으며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고향이기도 했다(욥 2:11).

또 이곳은 에돔 족속 가운데 유력한 한 부족이 거주하던 성읍으로서,

여기서는 에돔 전역을 가리키는 시적 명칭으로 사용되었다(암 1:12, 합 3:3).

 

이들 부족 가운데는 지혜자가 많았던 것 같으며 그로 인해 교만해졌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들의 명철과 지혜가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한다.

 

49:8 드단 주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할 것이다 깊은 곳에 숨을지어다 내가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닥치게 하여 그를 벌할 때가 이르게 하리로다

 

'드단 거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드단 거민'은 아브라함이 첩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 드단의 후손으로서,

에돔 남부 지역에 살았으며 상거래로 잘 알려졌다(25:23, 겔 25:13).

 

본 구절은 에돔과 긴밀한 상거래 관계에 있었던 그들이 에돔의 재난에 함께 휩쓸리지 않도록

피할 것을 말한다. 한편 이들 중 상당수는 에돔 족속에 동화되어그들과 함께 살았다(대상 1:9, 37).

 

49:9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본절을 의문문으로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남기지 아니하겠느냐?

또 밤에 도적이...멸하겠느냐?'(KJV, NIV, RSV).

 

즉 포도를 거두는 자들은 그중 얼마를 남기기 마련이며,

도둑이 침입해도 모든 재산을 다 훔쳐갈 수는 없다.

그러나 에돔은 대적들의 침탈로 인해 깡그리 빼앗김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옵1:5절과 동일한 내용이라 하겠다.

*오바댜서의 주제는 에돔 멸망에 대한 선포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

 

49:10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내가 에서로 적신이 되게 하여'이는 침략군의 말발굽을 피해 숨은 에돔인들이

모조리 그 앞으로 끌려나오게 될 것을 뜻한다.

아울러 그들이 의지하던 재물이나 지혜등 모든 것이 빼앗김을 당하며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예언이다.

본 구절을 주로 탈취당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이는 옵1:6절과 평행을 이루는 셈이다.

 

49:11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이 구절을 오히려 철저한 심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즉, 9절처럼 의문문으로서 '네 고아들을 남겨두겠느냐?...'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 자체는 굳이 의문문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한글 개역 성경이나 영역본 KJV, NIV, RSV등과 같은 번역을 지지한다.

 

그렇다면 본절은 극심한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엿보게 한다.

특히 고아와 과부는 성경에서 특별한 보호의 대상으로 언급된다.

 

49: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도 반드시 마시겠거든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너는 반드시 마시리라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도 반드시 마시겠거든'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도 공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늘,

어찌 이방 족속인 에돔이 지은 바 죄악에 대한 심판에서 피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라는 벧전 4:17

말씀과 통한다. 또한 에돔은 예루살렘 함락에 일조(一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10-14).

 

49: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보스라가 놀램과 치욕 거리와 황폐함과 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그 모든 성읍이 영원히 황폐하리라 하시니라

 

'보스라가...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보스라'는 페트라(Petra)와 사해의 사이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예레미야 당시 에돔의 수도 성읍이었다.

또 이곳은 삼면이 가파른 암석으로 된 계곡인지라 어떠한 외세의 침입에도 견딜만 했던

에돔의 여러 성읍 가운데 가장 견고한 요새이다.

따라서 여기서 '보스라'는 에돔의 모든 성읍들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언급된다.

 

한편, 모압이나 암몬의 경우와는 달리 에돔에 대해서는 회복과 관련된 위로의 메시지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이스라엘과 혈연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돔인들의 잔인함이 다른 족속보다 더했음을 암시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시 137:7).

 

49:14 내가 여호와에게서부터 오는 소식을 들었노라 사절을 여러 나라 가운데 보내어 이르시되 너희는 모여와서 그를 치며 일어나서 싸우라

 

여기서 예레미야는 에돔에 멸망이 임하게 하시는 장본인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천명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에돔 족속이 순식간에 멸망되리라고 생각하기

힘들겠지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자를 열방 중에 보내어' 하나님이 실제로 사자(使者)를 보내셨다는 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열방들로 하여금 에돔을 침공하도록 허락하셨다,

혹은 그렇게 하도록 마음을 움직이셨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49:15 보라 내가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작아지게 하였고 사람들 가운데에서 멸시를 받게 하였느니라

 

'내가 너를...멸시를 받게 하였느니라'

많은 주석가들은 이를 장차 에돔이 당하게 될 수치에 관한 예언으로 해석한다.

물론 그것도 가능한 해석이겠으나, 16절 상반절과 말1:2, 3을 참조할 때

이는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던 사실을(25:29-34) 암시하는 듯하다.

 

에돔인들은 하나님의 미움을 사서 황무한 산간 지대에 거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나서 그처럼 교만해 하는가 라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49:16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위 틈...산꼭대기'

이는 에돔의 지형이 험해서 외적의 침입을 천연적으로 방어해 주었던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이러한 천연적 방파제를 믿고 교만해졌으나,

오히려 그 교만으로 인해 멸망당하고 말 것이다.

 

49:17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49: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한 것 같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으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에돔의 멸망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소돔과 고모라와...멸망된 것 같이'

소돔과 고모라 및 그 주변 성읍들의 파멸이 너무도 끔찍하였던 관계로(창 19:24, 25),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은 종종 본절과 같이 소돔 등의 경우에 비유되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하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사 1:9)고 말했던 것을 보더라도,

본절의 심판 선언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49:19 보라 사자가 요단 강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여기서부터 21절까지는 50:44-46과 매우 유사한 내용인데,

거기서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언급되고 있다.

 

'사자가 요단의 수풀에서 올라오는 것 같이'

요단 강은 매년 우기가 되면 나일 강이나 유브라데 강처럼 범람하였다.

요단 강 주변의 평지에 서식했던 사자들은 강물이 범람하면,

산이나 기타 높은 지대로 피해 올라간다.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본 구절은 에돔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마치 사자의 먹이가 되듯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것으로 비유한다. 이 예언은 B.C. 582년경에 성취되었다.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여기 '택한 자'란 에돔을 보호하고 인도할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고 추방할 외부의 권세자를 일컫는다.

 

49:20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양떼의 어린 것들을...끌어가고'

19절의 '목자'라는 말과 함께 본 구절은, 에돔의 연약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그들은 천연의 요새를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강한 자로 자부하였지만,

맹수의 공격 앞에 자기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양떼에 불과하였으며

또한 그들을 보호해줄 목자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본 구절은 '양떼의 어린 것들'을 주어로 보고,

심지어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에돔인들을 끌고갈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역 성경 중 KJV가 이를 따랐다 : 'Surely the least of the flock shall draw them out.'

 

49:21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

 

'그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

에돔에서 홍해까지는 200km가 넘는 거리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에돔의 멸망이 당시의 국제 사회에 커다란 파장과 충격을 일으킬 것을 나타낸다.

 

한편, '홍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얌 수프'는 '갈대의 바다'라는 의미로서

그 주변에 갈대를 비롯한 풀들이 무성했음을 암시한다.

 

49:22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 와서 그의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에돔 용사의 마음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보라 원수가 독수리같이 날아와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독수리'에 비유한 예는 48:40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히 갑작스럽고 신속한 공격을 암시하기 위해

독수리의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당시 상황에서 에돔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 137:7에도 암시되듯이,

당시 에돔은 바벨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시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49:23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여기서부터 27절까지는 다메섹을 향한 예언이다.

다메섹은 아람 왕국의 수도로서 아람 영토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

안티 레바논(Anti-Lebanon) 산맥의 동쪽 기슭에서 남서쪽으로 헬몬 산을 내려다 보고 있는

'다메섹'은 교통의 중심지로서 옛부터 군사적, 상업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다메섹'은 통일 왕국 시대부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경쟁 상대로 존재했으며(왕하 5:12,

6:24), 한때는 유다 침략을 위해 북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사7:1, 암1:3-5).

 

'하맛과 아르밧' 이 두 성읍은 다메섹과 함게 아람의 주요 성읍으로서

자체 내에 지역왕이 존재했다(왕하 19:13). '하맛'은 다메셋 북방 약 176km 지점에

위치했으며, 아르밧은 하맛보다 약 152km 북부에 위치했다.

 

'바닷가에 슬픔이 있고'

'바닷가'에 관한 언급은 다분히 상징적 의미를 띠는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아람의 영토를 보면 해변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불안과 동요 그리고 혼란에 휩쓸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겠다.

 

49:24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해산하는 여인같이...그를 사로잡았도다'

본서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갑작스런 파멸이 임하게 되는 상황을

이처럼 표현하는 예가 종종 눈에 띈다(6:24, 13:21, 22:23, 50:43).

 

49:25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

본 구절은 파멸에 직면한 다메섹에 대해 비꼬는 투의 풍자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된다.

 

공동 번역은 이를 '이름난 수도, 흥청대던 도시'로 옮겨,

아람인들이 광대한 국토와 경제적 풍요로 인해 쾌락에 탐닉했던 사실을 지적하고자 했다.

 

49:26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49:27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다메섹이 패망할 절망적인 상황을, 청년과 군사 및 성벽의 멸절과 파괴를 통해 부각시키는

내용이다. 이 예언대로 다메섹은 BC 605년 멸망하여 바벨론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바벨론은 서진(西進) 전략에 있어 결정적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다.

 

벤하닷은 B.C. 9, 8세기에 다메섹을 통치하던 왕조를 지칭하기도 하며,

왕들 개개인의 이름을 지칭하기도 한다(왕상 15:18, 20, 왕하 13:24 참조).

 

▲게달과 하솔에 대한 심판 예언

49:2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게달'은 다메섹 남동쪽 곧 팔레스틴 동부의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했던

이스마엘 계통의 유목민으로서(창 25:13, 사 21:16, 겔27:21).

대규모로 양을 치고(사 60:7) 인접한 항구 도시인 두로, 시돈과 교역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능숙한 궁수(弓手)들을 많이 보유했기 때문에(사21:16, 17)

작은 부족이면서도 큰 영향력을 떨쳤다.

 

그리고 '하솔'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며(북부 팔레스틴의 요새였던 하솔'

수11:1-13 과는 다른 지역임), 팔레스틴 남부의 아랍 족속,

혹은 반유목의 아랍인들이 거주했던 마을들에 대한 집단 명칭으로 이해한다.

 

49:29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여기 언급되는 '장막', '양떼', '휘장', '약대' 등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보여줌과 아울러

가장 긴요한 재산들이 깡그리 빼앗기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49: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을 통한 멸망이 이미 정해졌으므로,

그들이 아무리 멀리 피해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뜻하는 반어적(反語的)표현이다.

아마 이들 부족은 넓고 넓은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하였던 터라

외부 침입자의 공격을 쉽사리 따돌릴 수 있다고 자신해 왔을 것이다.

 

49: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거하는 국민'

장막에 거하며 넓은 사막 지역을 무리지어 다니는 유목 생활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49:32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살쩍을 깍는 자들’은

과거 개역에는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 자들'로 번역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추츠 페아'에 대해 칼빈은,

하솔 백성이 바벨론의 침공을 당해 각처로 추방당하게 될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즉 '머리털'에 해당하는 '페아'가 '끝', '구석'이란 뜻을 지니므로,

더 이상 피신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 하솔 백성이

마침내 사면 팔방으로 추방당하게 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상 숭배와 관련된 행위로서 머리털을 깎는 것과 연관지어

본 구절을 이해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 본다(9:26 참조).

 

49:33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영원히 황폐하리니' 하솔은 B.C. 598년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멸망되어

역사 가운데서 그 이름이 사라지고 말았다.

 

▲49:34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람(고대 이란)은 바벨론 동부 산악 지대에 위치한 고대 왕국이었다(창 14:1 참조).

B.C. 8세기경 막강한 힘을 자랑했으나 앗수르 왕에 의해 정복당한 후(B.C. 640년경)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후에 엘람은 메대, 바사에 병합되었으며,

수도 수산은 바사 제국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느 1:1, 단 8:2, Myers).

 

49:35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엘람의 힘의 으뜸 되는 활' 엘람 군사력의 핵(核)이 궁수(弓手)들의 능수 능란한 활솜씨에

있었음을 보여준다(사 22, 6).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작정 앞에서는 그것도 무용지물이었다.

 

49:36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사방 바람'이란 막강한 군사력의 파상적(波狀的)인

공격을 시사하는 표현으로서 겔 37:9, 단 8:8, 슥 6:1-8등에도 나온다.

특히 '하늘의 사방'이란 말은 이 심판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뜻한다.

 

49:3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엘람으로 그의 원수의 앞,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엘람의 철저한 파멸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49:38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왕과 고관들을 그 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위를 엘람에 베풀고'

정복한 왕이 정복당한 땅 위에 보좌를 둔다는 말은 1:15, 43:8-13에도 나오며,

정복하여 굴복시킨다는 뜻의 상징적 표현이다.

여기서는 그 정복자가 다름 아닌 바로 여호와이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49:39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애굽, 모압, 암몬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엘람에게도 회복의 약속이 주어진다.

특히 '끝날에'는 다분히 종말론적 의미를 띤다(행 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