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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 예수님이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 되기

LNCK 2008. 9. 22. 23:57

◈예수님이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 되기            요2:24            큐티자료



우리가 예수님을 초청해도,

실제로 예수님이 들어오시지 못하는 개인/가정/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2:23~25절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아래 설명) 


▲사람들의 초청을 거절하시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을 보고 요2:14~17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나섰습니다.

“예수님, 우리 집에 오십시오. 예수님, 식사 대접을 한번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실 곳이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의 호의와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자신을 초청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지

아셨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2:24

(성경 본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초청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치 않으셨다’는 말씀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위 요2:24절은 아주 짧은 말씀이지만,

묵상할수록 예수님으로부터 정말 많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말씀은,

예수님은 당신을 초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셨고

그들의 초청을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사모’가 결성되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짐승을 파는 사람들을 내쫓고, 또 환전상의 상을 뒤엎으셨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를 내좇으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 성 안에 소위 ‘예사모’라는 모임이 만들어진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의 인기가 굉장히 좋아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유대인들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되어지는 일들을 보고서

‘이것은 도무지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던 이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성전타락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권력이라는 것이 어느 권력보다도 무섭습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권세를 쥐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은 했지만,

성전에 들어가서 감히 그렇게까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고 내어 �으신 것입니다. 요2:14~17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를 갖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이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를 좋아할 뿐,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께 뜨거운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아님>을 아셨습니다.

아직 예수님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진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통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든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실제로,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자기를 맡기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깊은 교제/임재/의논을 하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으나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입니다.

마음이 예수님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에 있던 이 당시의 유대인들의 마음만 문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때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우리나 똑같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더러운가에 대해서 무섭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17:9

 

이런 부패한 마음을, 민감하게 깨어서 청소하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을 초청/예배/기도해도.. 임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 오시면.. 내게 <예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심심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적 용


▲하나님은 우리 <속마음>을 알기 원하십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릅니다.

부부 사이에도 ‘저 사람 마음은 어떨까?’ 그런 때가 있지요.

부모 자녀 사이에도 ‘도대체 마음은 어떤가?’


하나님도 똑같으십니다. 하나님의 관심도 우리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궁금해 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신8: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궁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것인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

하나님이 정말 궁금하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광야 길 어려움 속에 거하게도 하고

또 시험도 겪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봐야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을 알고 싶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내 마음을, 무엇으로 시험하셨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까, 아니면 굴복했습니까?


환자를 심방해 보면

어떤 분은 “목사님, 이 병이 고침을 받으면 정말 신앙생활 열심히 할 거예요.”

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대단한 변화이지만, 아직 겉만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고백합니다. “목사님, 저는 병든 것이 감사합니다.

몸이 병들고 은혜의 눈이 뜨였습니다. 

지금부터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그는 마음까지 변하여 이미 예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세미나를 은혜 중에 잘 끝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많은 목사님들이 함께 은혜도 받고 말씀의 도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휴게실에서 <주몽 드라마>를 보시는 목회자도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미나에 와서까지도, 마음이 딴 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안되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우리를 쓰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세상에 가있고 엉뚱한데 가있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29:1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암3:3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 안에 오셨어요.

그런데 내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아직 하나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무 일을 못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나를 도와주세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단지 우리를 도와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이 있으면 예수님, 제가 있지 않아요? 제게 맡겨주세요.”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가 두려웠던 권사님

어느 여자 권사님 한 분이 목사님께 와서 신앙 상담을 하는데

자기는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다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못한다는 고백을 했어요.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신실하신 권사님이신데.

어떻게 이 권사님께서 그 기도를 못하느냐 말이에요.


그 권사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래요.

‘만약에 하나님 뜻대로 다 하도록 맡기면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하고,

또는 내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시거나 그렇게 하실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기도하셨지 않아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는 바람에 십자가에 끌려가서

못 박힘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었지 않느냐?

나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러면 십자가에 끌려가서 못 박힐 것 같다.’

 

그렇게 신실하고 충성 열심히 하는 권사님이

여전히 그 점에 대해서 마음이 두렵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권사님께 물었답니다.

“만약에 권사님 아들이 오늘 권사님에게 와서

엄마, 이제부터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말씀하세요.”


그러면 ‘정말 잘됐다. 오늘 한번 정말 죽도록 고생시켜야지.’

이렇게 결심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물론 부모는 <아들이, 엄마 말대로 다 순종할테니 내게 말씀만 해 주세요>

이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가 아들에게, 가장 좋은 길,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을 말해 주고 싶은데,

아들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는 말은 다 잔소리로만 생각해서, 너무 마음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망하는 길, 고통스러운 길을 가라고 하시겠습니까?
주님 뜻대로 살고, 십자가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2006.11.05.인터넷설교 발췌, 축약   *원제목: 믿음 하나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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