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좋은 것 마음껏 누리는 것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눅16:25
설교 편집
▲지옥은 실재하는 곳 눅16:19, 20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은 비유로 하신 말씀이 아니며
19절에 분명히 ‘한 부자가 있어’라고 기록했고, (분명히 그 때 살았던 사람)
거지의 이름 ‘나사로'를 분명히 거명 하고 있습니다
▲1. <살아서 좋은 것 마음껏 누리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눅16:25
그것이 신명기 28장의 복이라고,
하나님을 잘 섬긴 결과라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귀따갑게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가는 것이 어렵기까지 합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믿음 없어서 그렇다는 핀잔까지 들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눅16:25절을 읽어보니, 부자가 책망 받는 이유가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좋은 것을 마음껏 누렸다>는 죄입니다.
신명기와 누가복음 말씀이 서로 충돌되는 것을 발견하십니까?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구약부터 신약까지 계속 강조하는 것은,
‘네가 받은 복을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서 ‘물질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을 부지런히 가난한 이웃과 나누지 않으면
추수가 차고 넘쳐서 창고를 더 짓겠다고 하다가 그 날 밤에 죽은 부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비유에 나오는 부자,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근심하여 돌아간 부자 관원...
이런 사람처럼 됩니다.
복 받아 <살아서 좋은 것 마음껏 누리며 살자!> 할 때 그렇게 됩니다.
복 받아 <가난한 이웃과 열심히 나누어 살자!> 해야 정답입니다.
신명기 28장처럼, 진짜 하나님의 복 받아서 부자 되면... 기꺼이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눅16:14절처럼, 돈을 좋아해서 부자가 되면... 아까와서 못 나눠 줍니다.
▲2. 어느 날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눅16:22
①사람은 <죽는 즉시> 받들어 아브라함 품으로 모셔갔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죽는 즉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위 본문에 <죽는 즉시>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그런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한편 강도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②<이끌려>라는 말은 <받들어>라는 뜻입니다.
아주 정중히 모셔간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살아서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긴 성도들은,
천국으로 <융숭한 영접>을 받습니다.
천사들이 ‘영접사절’로 성도에게 보내집니다.
그래서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③<아브라함의 품>
우리는 죽어서 눈을 뜨게 되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져 있게 됩니다.
(이것이 심판 전이냐, 후냐 논의는 차제에 하고)
이 단어 역시 ‘받든다’는 말과 비슷하게 ‘아주 소중히 대하신다’는 뜻입니다.
④왜 이토록 나사로(내가 될 수 있음)를 끔찍하게 소중히 대하실까요?
25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온갖 나쁜 것을 겪은 것을 기억하여라
이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16:25
‘성도의 고난’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등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할 고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라고 하면서
그런 고난은 거의 겪지 않고서,
대신에 <살아서 좋은 것 마음껏 누리는 것이 좋다!> 하다가
글쎄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길까요?
아니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사람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게 될까요?
지옥의 뜨거운 곳에서, 부자에게 또 한 가지 고통은
천국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천국이 안 보이고, 그 실재를 모르면, 어쩌면 더 나을 것 입니다.
▲3. ‘너는 땅에서 좋은 것을 가졌다’는 말은 눅16:25
‘너는 이 세상의 좋은 모든 것을, 영원히 좋은 것으로 알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뜻이지요. 바로 내 이야기 아닙니까?
본문의 비유에서 성경은,
<무엇이>,
<왜>,
부자는 지옥에
나사로는 천국에 갔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문이 설명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원리와
저 천국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원리가 다르다
입니다.
우리 판단으로는, (잘 믿어 신명기 28장의 복을 많이 받은) 부자는 천국 갔고,
(잘 못 믿어 저주 받아 가난하고 병든) 나사로는 지옥 갔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잣대는, 인간의 잣대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제
그 진리에 대해 무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단어 중에 ‘헛것’이 있습니다.
‘헛것’이란 우리가 세상에는 매우 중요한 가치인줄 알았는데,
저 천국에 가보니까 아무 것도 아닌 휴지조각 같은 것들이 바로 ‘헛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랑거리로 삼는 것들은
건강, 외모, 재산, 학벌, 자격증, 자녀들의 성공,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좋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위로를 받는 것들이
막상 하나님 앞에 이를 때, 그것이 ‘헛것’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불리려 하는데... 눅16:21
여기서 ‘불린다’는 뜻이 배 터지게 먹는다는 뜻처럼 보이나,
사실은 <허기진 배를 겨우 채운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최하위 1% 인생을 살았지만, 천국에서 그는 우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대하시는 사람을, 내가 무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4. 이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거기서 <고통>을 받느니라 눅16:25
예수님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으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너무 위로 받는 것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위로 너무 많이 받다가, 천국에서 쪽박 찰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고통 받는 것, 너무 상심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천국에서 위로와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세주의에 물든 우리의 잘못된 신앙이
모든 신앙생활의 보상을 <현세>에 받으려고 난리 치고,
또 그런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비유는
진정한 보상과 상벌은, <내세>에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순례자의 길, 나그네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저 천국의 보상을 바란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일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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